소설리스트

B급 빌런의 인생2회차-146화 (146/200)

146 출정 [Go to Africa]

“어때?”

샤슬릭을 뜯어 먹는 시국을 바라보며 폴리나가 물었다.

시국은 입을 닦은 후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걸 보며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야. 와이튜브 영상이랑 이것저것 참고해서 만들어 본 거라 걱정이 많았거든.”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는 러시아 전통 수프인 보르쉬를 숟가락으로 떠 먹었다.

시국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잔과 자신의 잔을 보드카로 채웠다.

시국이 잔을 들자 그녀도 마주 잔을 들었다.

잔과 잔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이내 보드카는 두 사람의 속으로 들어갔다.

“크으윽…….”

다소 도수가 강한 탓에 폴리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보르쉬를 연거푸 세 숟갈이나 떠 먹어야만 했다.

반면 시국은 오만상은커녕 눈썹조차 까딱하지 않으며 샤슬릭을 뜯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가 이야기했다.

“예전부터 아빠도 그렇고 초인들은 술을 무슨 음료처럼 마시더라구. 그게 참 부러웠어.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 지금도 그렇고.”

폴리나가 살짝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시국에게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초인들은 술을 마시면 무슨 맛을 느껴? 독한 맛은 못느낀다던데.”

시국이 자기 잔에 보드카를 한 잔 더 따른 후 그것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향은 나지. 도수가 강한 술이면 그만큼 강한 알코올 향이 나는 거고.”

잔에 코를 갖다 댄 채 향을 맡던 시국은 이내 그것을 한 모금 넘겼다.

잠시 입안에 머금고 그것을 음미하던 시국은 이내 술을 위장으로 내려보냈다.

“독하다는 느낌은 있어. 하지만 그것조차도 색다른 맛으로 다가오지.”

시국이 잔을 내려놓고 티슈로 입을 닦으며 말을 마무리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의 뜨거움도, 위장에 들어가 있을 때의 화끈거림도 분명 있어. 하지만 느낌만 있을 뿐, 내 몸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하지. 초인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어. 단지 알코올에 취하지 않을 뿐, 술맛은 그대로 느껴. 궁금증이 해결됐어?”

시국이 웃으며 묻자 폴리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응. 충분히. 뭐, 취하지 않는 거는 나도 잘 하니까.”

물론 그건 일종에 허세였다.

그녀는 술을 마시면 쉽게 취하곤 했다.

그러나 시국은 구태여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오늘은 기분 좋은 자리로 만들어야해. 끝날 때까지.’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보드카를 곁들인 식사는 이어졌다.

“왜 사람들은 나한테 아빠가 푸틴처럼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대통령에 나올 건지를 묻는 걸까? 나도 모르는데!”

살짝 혀가 꼬인 채, 살짝 취한 모습을 폴리나가 보이자, 시국은 자리를 정리했다.

- 오랜만입니다.

“그래. 여기 탁자 좀 정리하고, 적당히 설거지 좀 해 둬.”

- 네, 맡겨만 주십시오.

사역마에게 뒷정리를 맡긴 후 시국은 폴리나를 안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애초에 가벼운 옷차림이었던 만큼, 따로 그녀의 옷을 갈아입히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랬기에 시국은 그녀를 침대에 눕힌 후 사역마의 뒷정리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 했다.

“꾹…….”

그러나 시국의 발걸음은 자신을 부르는 폴리나의 슬픈 목소리에 문 앞에서 멈췄다.

“응. 나 여기 있어.”

시국이 뒤로 돌아 대답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의 밝은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우울하고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 돌아 와야…… 해…… 꾹도…… 아빠도…… 다들…… 꼭…… 꼭…….”

울먹이는 그녀를 바라보던 시국은 천천히 침대가로 걸어갔다.

눈물 흘리는 폴리나의 윗몸을 살짝 일으켜 자기 품에 의지하게 한 후 시국은 그녀를 살짝 안아 주었다.

시국의 품속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하던 폴리나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걱정마.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니까.”

그의 말을 들으며 폴리나는 시국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 * *

2033년 5월 16일.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연합 항모 함대가 아프리카 서부 연안을,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터키의 연합 항모 함대가 아프리카 동부 연안을 봉쇄했다.

그리고 2033년 5월 17일.

이집트 남부 이부심벨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 마피켕에 대규모 다국적 육군이 집결했다.

자그마치 7백만이나 동원된 이 대규모 군대는,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투를 할 일은 없는 존재들이었다.

울룰루 툼베베의 언데드 군단에게 이들의 화기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이 할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 10여 년 동안 울룰루 툼베베가 장악한 아프리카 지대는 전반적으로 기괴한 변화를 겪었고, 자연스럽게 그 토양에 살던 짐승들도 단기간에 괴상하게 진화했다.

사실상 몬스터나 다를 바 없는 그런 진화된 짐승들과 싸우고, 헌터들이 해방한 공간의 치안을 유지하고 행정을 전담하는 것.

그것이 7백만 국제연합군이 할 일이었다.

울룰루 툼베베의 마수로부터 살아남은 남아공과 이집트의 국민들은, 자국에 집결한 국제연합군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부디 이들이 아프리카를 예전과 같이 만들어 주길, 예전처럼 서로 내전으로 죽고 죽일지언정 인간조차 아닌 존재들에 의해 죽임 당하는 일은 없어지길.

군인들 또한 저마다 기도했다.

부디 헌터들이 제대로 저 시체 덩어리들을 정리해 주길.

저들의 마수가 자신들에게 미치지 않길.

괴상한 진화를 겪었다는 짐승들이 부디 자동소총에 죽길.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면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길.

그렇게 민간인과 군인들 모두가 저마다의 소망을 기원할 무렵, 전 세계 각지에서 헌터들도 각자의 지점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 * *

“So hot.”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덥다는 말을 내뱉는 모습은 퍽 괴이했다.

그러나 시국은 그 말을 내뱉은 미국인 남성을 신경쓰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더운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남성이 시국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시국은 그제야 그를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대답 없이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시국이 다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장구류를 점검하자 미국인 남성, 조지 골든힐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더럽게 고고한 척하네. 영어에 능통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나 그의 표정에선 순식간에 그런 감정이 사라졌다.

“특무대장이신 만큼 잘 부탁합니다. 당신의 작전에 따라 나의 목숨도 달려 있으니 말입니다.”

조지 골든힐의 말에 시국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말이 특무대장이지 사실상 특무대원 수준입니다. 작전은 공격대장이신 이반 이바노프 헌터께서 세우시는 거고, 우리는 그저 현장에서의 세부적인 행동에 대해서만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제게 부탁하기보단 스스로의 실력을 믿으십시오. 작전에 들어가면 나라고 해도 골든힐 헌터의 사정을 챙겨줄 순 없을 겁니다.”

원론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조지 골든힐은 또 한 번 더 험악하게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 이거…….’

한국의 막후 실세이자 러시아 대통령 이반 이바노프의 예비 사위, 모스크바 규격 외 등급 던전에서 보스를 사냥한 자.

그리고 자신과 줄리아 텍슨이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자.

시국은 조지 골든힐에게 그런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의 인식 범위를 조금이나마 넓히고 싶었다.

그것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대화였다.

그러나 정작 시국은 대화를 별로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만한 거야, 아니면 그냥 말주변이 없는 거야?’

엄청난 자산가이자 기업인이며 경영자인 사람 중에서도 말주변이 없고 내성적인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조지 골든힐은 그런 사람을 제법 많이 봐 왔다.

그랬기에 그는 시국이 어쩌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상당히 내성적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품었다.

‘뭐, 내성적이건 아니면 그냥 오만한 거건 상관은 없겠지.’

조지 골든힐의 뇌리로 며칠 전 줄리아 텍슨과 나눴던 대화가 지나갔다.

『어차피 이반 이바노프와 이시국을 죽이려면 모두가 정신이 없을, 울룰루 툼베베와의 싸움이 그 타이밍이 될 거야. 그전까진 가능하면 이시국과 충돌하거나 하진 마. 알겠지?』

그때 조지 골든힐은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래. 계속 저런 식으로 나오면 차라리 낫지. 서로 할 이야기가 없으니 충돌할 것도 없겠지.’

어차피 조지 골든힐도 딱히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던 만큼, 차라리 시국이 저렇게 차갑게 나와 주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을 품으며 더 이상 시국에게 말을 걸거나 하진 않았다.

‘조지 골든힐…….’

더 이상 자신에게 말 걸기를 포기하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조지 골든힐을 힐끔 바라보며 시국은 생각했다.

‘줄리아 텍슨과 함께 미국의 헌터들을 참가시키는 데 일조했다지?’

시커먼 날에서 서늘한 예기와 독기마저 느껴지는, 40cm짜리 칼을 시국은 가만히 쓰다듬었다.

‘니콜라예비치는 NAC와 울룰루 툼베베 사이에 거래가 있을 가능성을 예측했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조지 골든힐과 줄리아 텍슨은 사실상 NAC 회원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움직여 국제연합 공격대에 미국의 A급 헌터들을 모두 참여시켰다는 것은 사실상 NAC의 의지가 그러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여기는 전 세계 헌터들의 무덤이 될 수도 있겠지.’

사실 울룰루 툼베베보다 더 무서운 게 그것이었다.

아군인 줄 알았던 자들이 배신을 한다면, 그래서 양쪽에서 공격을 당한다면.

결국 국제연합 공격대는 패배하고 말 것이었다.

‘재수없으면 울룰루 툼베베에 의해 언데드가 될 수도 있겠지.’

순간 시국이 칼을 역수로 쥐었다.

조지 골든힐은 시국에 대해 전혀 경계하지 않은 채 그와 등지고 있었다.

만약 지금 시국이 그의 뒤를 친다면, 그래서 그의 목과 등판 그리고 옆구리를 난도질한다면.

그는 분명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을 터였다.

그리고 사역마에게 놈의 시체를 흡수하게 한다면 사역마를 통해 놈의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국제연합 공격대는 출정을 앞두고 대대적인 내분에 휘말릴 터였다.

이반 이바노프와 류야오방은 어떻게든 시국을 엄호할 것이고, 줄리아 텍슨과 알렉스 버크는 어떻게든 시국을 처벌하려 들 것이다.

그것은 곧 레이드의 실패를 의미하고, 알려지지 않은 어둠이 제시한 의뢰의 실패를 의미하며, 시국의 죽음을 의미했다.

‘일단 확실한 건 없다.’

무엇보다도 NAC와 울룰루 툼베베 사이에 유착이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반 이바노프의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했다.

러시아 군 정보총국을 비롯해 그 누구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만약에라도 울룰루 툼베베와 NAC가 무관하다면 그야말로 나는 삽질을 한 게 되는 거지.’

생각을 정리한 시국은 칼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신축성이 좋은 가죽 갑옷을 꺼내 닦기 시작했다.

‘어쨌건 이번 레이드를 성공해야 해.’

아프리카 해방 전쟁이라 명명된 이번 레이드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역사에 유일한 케이스로 남을 만한 것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님에도 던전에 들어가는 수준이었고, 일개 국가를 넘어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다 집어넣어도 꽉 차지 않는 거대한 대륙 단위의 해방 전쟁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진실을 보여 준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암흑가를, 더 나아가 전 세계 암흑가를 통합하려는 시국의 원대한 구상.

그 구상이 중국에 카르텔 지부가 설립되면서 어느 정도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이때에 만약 그가 죽는다면, 그가 만든 카르텔은 반드시 와해될 것이었다.

시스템이 아닌 시국이란 개인의 카리스마와 인맥으로 운영되는 만큼, 당연한 수순이리라.

‘그뿐만 아니라 남한석이나 봉길이, 명호도 자기 세상이 온 양 설치겠지. 그렇게 된다면…….’

시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드시 울룰루 툼베베를 죽인다. 이건 무조건 이루어질 일이야.’

시국은 잠자코 묵묵히 자신을 지켜줄 갑옷을 닦고 또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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