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빌런의 인생2회차-138화 (138/200)

138 테러 [Terror]

“끼야아악-!”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 소리, 그것을 멈추게 한 것은 스켈레톤 메이지가 날린 불덩이였다.

불덩이는 활짝 열린 여인의 입으로 쏙 들어갔고, 곧 여인은 목구멍부터 타오르기 시작해 이내 잿더미가 됐다.

[크우어어어어-!]

시커먼 독물을 질질 흘리며 느릿느릿 움직이던 구울은 패닉에 빠져 그 자리에 누워 바들바들 떨던 어린아이의 머리통에 검은 손톱을 박아 넣었다.

[사아아아아-!]

검은 아우라를 풍기며 사이한 울음 소리를 내는 스켈레톤 나이트는 빠르게 움직이며 도망치는 사람들의 등 뒤에다 칼을 찔러 넣었다.

[카악-!]

허공에 뜬 3기의 스켈레톤 메이지는 딱히 어떠한 기준을 두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향해 불덩이와 얼음 화살, 번개 창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는, 시커먼 도포와 후드로 모습을 감춘 네크로멘서들은 이내 시간이 됐음을 확인하곤 언데드 군단을 불러모았다.

덴파사르 국제공항에서 그러했듯, 언데드 군단을 아래에 두고 나머지 네크로멘서들을 뒤에 둔 채 리더 격인 자가 앞으로 나왔다.

“공포가 너희들의 세계를 뒤덮으리라. 그리고 이 미련한 자들은 깨달을 것이니, 위대한 마왕 울룰루 툼베베께서 다스리는 공포의 질서가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줄 것임을!”

마찬가지로 울룰루 툼베베에 대한 찬양 연설을 미리 준비해 둔 카메라 앞에서 늘어놓은 네크로멘서 리더는 이내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마치 조그만 블랙홀과도 같은 워프 게이트가 인간의 시체와 거기서 흘러나온 피로 시뻘게진 트레비 분수 위에 나타났다.

먼저 네크로멘서들이 허공으로 올라가 워프 게이트로 빨려들어 갔고, 이후 언데드 군단이 그 뒤를 따랐다.

울룰루 툼베베의 테러리스트들이 사라지자 워프 게이트도 함께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저녁에 분수대 근처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과 동전 던지기를 하던 관광객들의 시체와 아주 운이 좋게 살아남았지만 반쯤 실성한 생존자들의 절규뿐이었다.

덴파사르 국제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테러 행위와 네크로멘서 리더의 담화를 포함한 모든 것이 가감없이 그대로 전 세계 방송사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CNN과 BBC의 경우 덴파사르 국제공항 때의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전문 보안 업자까지 동원해 해킹을 방지해뒀지만,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울룰루 툼베베의 해커들은 우습게 그 보안 방화벽을 뚫고 방송 송출 프로그램을 해킹해 살육 장면을 그대로 미국과 영국 전역으로 내보냈다.

오후와 저녁 시간대에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본 사람들은 무자비한 언데드 군단의 살육과 광기 어린 네크로멘서 리더의 궤변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2033년 3월 7일.

크렘린.

대통령 집무실.

이반 이바노프가 유선 전화기를 든 채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몇 번을 말합니까. 우리 쪽에선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그러는 CIA야말로 무슨 정보가 있을 것 아니요?”

짜증 어린 표정으로 이반 이바노프가 이야기하자 수화기 너머의 통화 상대, 미국 대통령 조나단 스미스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CIA가 훌륭한 기관이긴 하지만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란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이바노프 대통령.

“그럼 뭐 우리 쪽 정보기관 애들은 전지전능하답니까?”

- 전지전능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훌륭한 수준 아니겠습니까? 특히 아프리카 쪽 정보의 경우에는.

“실없는 칭찬은 공식 석상에서나 하시고, 지금 중요한 건 그놈의 다음 목표가 어디냐 하는 겁니다.”

- 부디 우리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이왕이면 아예 다음 목표란 게 없으면 더 좋겠고 말입니다.

태평한 목소리로,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이야기하는 조나단 스미스의 태도에서 이반 이바노프는 더 이상의 통화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상사태입니다. 당분간은 양국 간의 복잡한 외교적 난맥을 무시하고, 협력하도록 노력합시다.”

- 우리는 항상 협력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만 끊겠소.”

- 좋은 밤 되십시오.

이반 이바노프는 별다른 화답 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하아…….”

이반 이바노프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얼굴 위쪽을 가린 채 허공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이반 이바노프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를 호출했다.

“연방보안국, 대외정보국, 그리고 군 정보총국까지. 기관장들 1시간 내로 크렘린으로 불러.”

그렇게 이야기하고 이반 이바노프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5년 전 그는 저곳 한가운데에 있던, 당시까지만 해도 A급 던전이라고만 알려져 있던, 규격 외 등급 던전으로 용감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한국인 헌터 셋과 함께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로 이반 이바노프는 다시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규격 외 등급 던전과 아프리카 마왕성…… 어디가 더 지옥 같을까?’

이반 이바노프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이건 국제사회의 규범에 관한 도전입니다. 제 개인적인 복수가 아닌, 국제사회 차원의 보복과 응징이 필요한 일입니다.』

울룰루 툼베베의 테러로 인해 양부모를 잃은 시국은 국제 공조를 이야기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논리가 아니었다.

‘과연 공조가 될까?’

울룰루 툼베베의 영토 확장을 두고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국제 공조는 이루어진 바 없었다.

그저 울룰루 툼베베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하나 마나 한 금융 제재가 전부였다.

그러는 사이 울룰루 툼베베의 영역은 콩고의 정글에서 중앙아프리카 전체로, 그리고 지금은 남아공과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및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를 넘어 타 대륙에 대한 테러까지 자행할 지경이 됐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줄이야…….’

워프 게이트.

2020년 격변 이후 각성한 초인들 가운데 마법 계열 초인들이 SF물에서 본 것을 토대로 구상한 거대한 공간 이동 장치.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나 가능할 뿐, 실체화는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그런 워프 게이트를 울룰루 툼베베의 네크로멘서들은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건가?’

당장 며칠 뒤 그가 보고 있는 붉은 광장에 혹은 성 바실리 대성당에 울룰루 툼베베의 언데드 군단이 강림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아니면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못 느끼는 듯한 신임 미국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나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사 밀집 구역 한가운데에 나타나 살육을 벌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상징성이란 측면에선 미국이긴 하지. 물론 모스크바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공격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무사하진 않고.’

이반 이바노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할까? 국제 공조가?’

그에 대한 이반 이바노프의 전망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 * *

2033년 3월 8일 10시 30분.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늦은 눈이 돼 거리에 쌓이기 시작한 때, 청와대 총리 관저 응접실에선 세 남자가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바노프 대통령에게는 이미 이야기를 해 두었어. 그러니 한 장관은 최선을 다해 미국을 설득하는 데 주력해야 해.”

시국의 말에 그의 왼편에 앉아 있던 남자, 전직 국정원장이자 현직 상원의원 겸 외교부 장관인 한창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최대한 가용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해서 미국 국무부를 설득시키겠습니다.”

한 장관의 말에 시국은 고개를 끄덕인 후 시선을 남한석에게로 돌렸다.

“다음 주에 한중 정상회담이 있지? 그때 리커바오 주석을 잘 설득해야 해. 아무리 그 양반이 고립주의를 고수한다 하더라도 아프리카에서 자기네들이 쌓아 둔 것들이 날아간 건 상당히 배가 아플 테니까.”

남한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시국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당장에는 미국이나 중국이 선뜻 국제 공조에 나서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계속해서 러시아와 함께 그것을 이야기해 둬야 나중에 전 세계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신속하게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시국은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런 시국을 향해 한 장관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대화 주제랑은 벗어나지만,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시국이 그를 힐끔 바라봤다. 남한석도 도대체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가? 하는 눈빛으로 한 장관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한 장관이 말을 이었다.

“최근에 미국의 스미스 대통령이 전임 존슨 대통령에 관한 수사를 하면서 어떤 비밀 모임에 관한 조사도 FBI와 CIA에게 지시했다고 합니다. NAC라고 했던가?”

순간 시국이 흠칫했다.

그는 이내 다시 평정을 되찾고는 계속해서 한 장관의 말을 경청했다.

“뭐, 미국이야 워낙 비밀 집단들 중 극단적인 성격을 지닌 것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미국 대통령이 그렇게 대놓고 특정 조직을 찍어 수사를 지시한 건 KKK 말고는 NAC인가 뭔가 하는 것들뿐이라서 말입니다.”

시국이 한 장관을 향해 물었다.

“소스가 어디지?”

“아, 예전에 저하고 같이 베를린에서 근무했던 CIA 요원입니다. 지금은 유럽 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NAC라는 조직에 대해 다른 말은 없었고?”

“뭐, CIA랑 FBI 쪽에 고용된 초인들이 뭘 알고 있는 것 같다고만 이야기했습니다. 그 인간이야 초인들하고 같이 일해 본 적도 없어서 그 이상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흠…….”

“혹시 뭐 알고 계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한 장관의 물음에 시국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커피를 든 채 가만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한 장관도 대답 듣기를 포기하곤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제럴드 존슨의 비리를 수사하며 NAC에 관한 수사도 지시했다라……. 그 이야기는 존슨 엔터프라이즈하고 NAC가 관계가 있다는 건데…….’

시국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울룰루 툼베베에 이어 NAC까지, 갑작스럽게 그가 따로 고려하지 않았거나 혹은 오랫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 따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존재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복잡하구만.’

시국은 가만히 커피를 들이켰다.

그런 그를 남한석은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힐끔거리며 마찬가지로 커피를 들이켰다.

* * *

“좀 더 자주 올라왔어야 했어…… 자주 통화했어야 했고…… 자주 메시지도 보냈어야 했어…….”

2033년 3월 9일.

잠원 마리안느 펜트하우스에서 이정훈과 유서영의 유품을 정리하는 내도록 나연이는 그렇게 자신을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곁에서 황준기가 최대한 그녀를 위로해 주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조금은 격정이 가라앉은 건지, 나연이는 실신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 슬픔을 마음껏 표현했다.

“…….”

그녀의 울음소리와 황준기의 위로하는 소리를 들으며 시국은 말없이 이정훈의 옷가지를 정리해 커다란 박스 안에다 담았다.

“엄마는…… 내가 빨리 결혼하길 바랐어. 그럴 때마다 내가 짜증을 냈는데…… 그냥 할걸…… 박사 학위, 그깟 학위 어차피 1, 2년 늦게 받아도 되는 건데…… 결혼했다고 박사 학위 따는 데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나연이의 슬픔에 시국은 차마 동참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그녀만큼 두 사람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시국은 이정훈이 자주 입었던 정장을 마지막으로 박스에 담고 뚜껑을 덮으며 알 수 없는 가슴 시림을 느낄 뿐이었다.

그가 막 박스 하나를 다 채우고 다른 박스의 뚜껑을 열었을 때였다.

지이잉-!

그의 폰이 짧게 진동했다.

시국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여정연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것은 오늘 한잔하자, 혹은 오늘 우리 집으로 와 달라는 등의 내용이 아니었다.

<속보> 터키 이스탄불에서 울룰루 툼베베에 의한 테러 발생

그것은 울룰루 툼베베의 3차 테러 소식을 속보로 알리는 뉴스 링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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