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빌런의 인생2회차-130화 (130/200)

130 사건 [Accident]

2032년 5월 25일.

세계 51번 째 A급 헌터 리카르도 로드리게스가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현재 부검 중에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합동 수사단 정기 브리핑 때 말씀 드리겠습니다.”

FBI와 CIA, 미국 초인협회는 물론 국제초인협회까지 나서서 그의 사망 사건에 대한 합동 수사단을 구성했다.

LA에 있는 그의 저택 주변 감시카메라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이 합동 수사단 본부에 수집됐다.

그러나 거기선 그 어떠한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부검 결과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헌터의 피부와 내장에서 다량의 마력 침투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초인과 의사, 마력 공학자가 동원된 사흘간의 초정밀 부검 결과 리카르도 로드리게스의 몸에서 마력 침투 현상, 즉 마법 공격 징후가 다수 발견됐다.

“현재 합동 수사단은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헌터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그쪽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합동 수사단 대변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브리핑 발표문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은 물론,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던 일반 시민들의 표정은 경악과 공포, 불신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A급 헌터가 살해당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CNN 기자가 얼빠진 목소리로 던진 질문은 라이브로 브리핑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지닌 생각이었다.

“일단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입니다.”

그리고 대변인은 관료적인 얼굴로 담담히 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리카르도 로드리게스는 힐러 계열이었습니다. A급이라 어느 정도 전투력이 있다곤 해도 제대로 된 헌터 킬러들에게 기습을 당한 거라면 속수무책이었겠죠.”

전직 미국 초인협회 부협회장이자 현직 국제초인협회 초인범죄수사국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에이미 추아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름 합리적인 근거를 들며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시키고자 했다.

“최근 초인범죄수사국 차원에서 전 세계 주요 정보기관 및 초인협회에 공문을 보낸 게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빌런으로 추정되는 자들의 은밀하고도 긴박한 움직임이 발견됐기 때문이죠.”

생방송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에이미 추아는 공개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빌런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갑작스런 이야기에 폭스 뉴스 앵커는 그녀에게 “이거 공개해도 되는 정보입니까?”라고 질문했고, 이에 그녀는 “협회 차원에서 공개수사로 전환하기로 했다.”라고 대답했다.

A급 헌터 리카르도 로드리게스의 죽음으로 이미 사람들은 한 차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거기다 범국제적인 빌런의 조직적 움직임을 국제초인협회 초인범죄수사국 자문위원이 공개적으로 밝히며 혼란은 가속화됐다.

일시적으로 미국과 유럽 증시에서 패닉 셀 현상이 나타났다.

리카르도 로드리게스가 살던 LA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잠깐이지만 나타나기도 했다.

“안심하십시오. 빌런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헌터의 사망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뒤늦게 국제초인협회 차원에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공포와 혼란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또 한 명의 A급 헌터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 * *

독일 프랑크푸르트.

부유층들이 모여 사는 저택가.

그중에서도 특별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마치 중세 시대 영주의 성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대저택.

대문에 큼지막하게 걸린 F과 A는 이 집의 주인이 독일의 A급 헌터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수목원 같은 느낌마저 주는 드넓은 마당을 지나 언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높은 지대에 위치한 대리석 저택이 나온다.

“끄허윽…….”

저택 1층의 거대한 홀.

수영장으로 써도 될 법한 거대한 인조분수대의 물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핏물 곳곳에 목이 반쯤 잘리거나 옆구리가 갈라져 내장을 쏟아내는 시체들이 둥둥 떠 있다.

“너…… 너……!”

그리고 저택의 주인, 독일의 A급 마법 계열 헌터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은 흰 잠옷이 피로 물든 채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손가락조차 까딱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이 40대 마법사는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눈으로 자기 눈앞에 선 상대를 노려봤다.

그런 그를 향해 사내, 시국은 진한 조소를 날려 주었다.

“도대체…… 왜?”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의 물음에 시국은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영어로 대답했다.

“글쎄? 왜 이러는 걸까?”

그때, 허공에서 시커먼 악마 하나가 시국의 등 뒤편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 더 없습니다, 주인님.

사역마의 텔레파시에 시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은 사역마를 보자마자 피를 토해 냈다.

“저, 저 망할 검둥이 악마는 뭐지? 쿨럭!”

계속해서 피를 토해내며 소리치는 그에게 시국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역마에게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놈의 마법 공격을 다 맞고 죽어 가는, 아돌프 란델링거 사후 독일 유일의 A급 헌터로 군림하던 자의 최후를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쿨럭-!”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은 다시 한 번 더 피를 왈칵 토해 냈다.

그리고 그 순간 시국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뿜어져 나와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을 감싸고 압박했다.

“꺼억-!”

전신을 압박하고 정신세계까지 꽉 쥐어 짜내는 압력에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은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눈을 까뒤집고 흰자만 드러낸 채 코피마저 줄줄 흘리는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에게 시국이 물었다.

“NAC에 대해 알고 있어?”

“끄어억……”

시국의 물음에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시국은 서두르지 않고 다시 천천히 물었다.

“NAC에 대해 알고 있어?”

“끄으윽…… N, NAC는…….”

고통에 신음하며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은 천천히 자신이 알고 있는 NAC에 대한 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시국이 기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울룰루 툼베베와 NAC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

시국은 질문을 바꿨다.

그러나 역시나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에게선 신통한 정보가 나오진 않았다.

“모, 몰라…… 내, 내가 아는 건…… NAC 총회장이…… 런던에 있다는 것 정도…… 끄윽…….”

그리고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은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의 사망을 확인한 시국은 콧방귀를 뀌며 드래곤 피어를 해제했다.

- 외람되지만,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주인님?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의 시체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국에게 사역마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시국이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질문?”

- 리카르도 로드리게스도 그렇고 프리드리히 알켄하임도 그렇고 결국 NAC나 울룰루 툼베베에 대해선 크게 아는 게 없는 자들 아닙니까?

“그렇지.”

- 그럼 왜 이렇게 구태여 수고를 하시면서까지 이들을 찾아와 이렇게 죽이시는 겁니까?

시국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그가 사역마의 두터운 팔을 손으로 툭 치며 이야기했다.

“성동격서라고 들어봤어?”

- 흡수한 기억 속에 있습니다. 동쪽을 흔들어 서쪽을 친다. 한마디로 양동 작전이란 거 아닙니까?

“잘 아네.”

시국이 시선을 다시 프리드리히 알켄하임에게로 돌렸다.

“국제초인협회 초인범죄수사국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간파했어.”

초인범죄수사국의 공식 발표 이전에 이미 시국은 그들이 카르텔의 움직임을 눈치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국 내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던 동양계 미국인들을 잡아 고문한 결과 얻어 낸 정보였다.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의 움직임은 나도 모르겠어. NAC일 수도 있고 울룰루 툼베베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처럼 빌런 카르텔을 만들려는 놈들일 수도 있지. 그것도 아니면 소규모 빌런 조직이 뭔가 자기들끼리 거래 루트를 만들고 있는 것이든가.”

시국의 말을 들으며 사역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국의 말이 이어졌다.

“그 상황에서 미국에 이어 독일의 A급 헌터까지 죽는다면, 그리고 둘 다 사인이 다발의 마법 공격 직격에 의한 사망이라면 당연히 초인범죄수사국의 눈은 대서양 연안으로 집중되겠지.”

그제야 사역마는 시국의 뜻을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국이 다시 사역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애초에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초인협회에 그리 크게 협조를 하지도 않아. 그 상황에서 아시아에서 보이는 미묘한 움직임보단 미국과 유럽에서 보이는 확실한 움직임이 더 시선을 끌겠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치는 시국을 향해 사역마는 감탄했단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 대단하십니다. 저의 짧은 식견으로는 미처 거기까진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주인님.

그런 사역마의 모습을 보며 시국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부는 구태여 배워야 할 인간의 덕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시국의 말에 사역마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 아부가 아닙니다, 주인님. 진심으로 저는 주인님의 지혜에 탄복하고 있습니다.

말해 봐야 뭣하나, 시국은 그렇게 생각하며 사역마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찹 소리가 나게 한 차례 치고는 놈을 지나쳐 분수대로 걸어갔다.

“슬슬 가자. 좀 있으면 경찰들 쫙 깔리겠다.”

그리고 동시에 시국은 사역마를 돌려 보냈다.

사역마는 검붉은 연기와 함께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 *

2개월여의 격차를 두고 미국과 독일의 A급 헌터 두 사람이 유사한 방식으로 살해당했다.

유례없는 충격적인 소식에 대서양 연안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소위 헌터 킬러라 불리는, 헌터 암살만을 전문적으로 한다고 알려진 범죄 집단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개시됐다.

두 사건 모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일어났기에 자연스럽게 국제초인협회 초인범죄수사국과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시선은 대서양 연안으로 집중됐다.

시국의 뜻대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흐음…… 덕분에 초인범죄수사국은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어 버렸군.”

이반 이바노프의 말에 러시아 초인협회 협회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극동개발은행 총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 이바노프가 커다란 손으로 자기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초점 없는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연일까?”

그 말에 세르게이 라브로프가 대답했다.

“우연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우연이라기엔 너무 완벽한 그림이지요.”

“그래. 맞아. 너무 완벽해.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모든 시선이 유럽과 미국으로 쏠리고 있어.”

순간 이반 이바노프의 머릿속에 ‘누군가’에 대한 이미지가 휙 하고 지나갔다.

극동의 조그만 나라에서, 자기 딸과 동거 중인, 예비 사위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리고 상당히 신뢰하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한 동양인의 얼굴이.

‘양동 작전인가? 서방 세계를 혼란스럽게 해서 아시아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그렇다 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이반 이바노프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이런 큰일을 시국이 저질렀다면, 왜 자기에게 언질이라도 주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뭐 두 인간 죽이는 걸 결사반대할 입장도 아닌데…….’

“흐음…….”

그의 복잡한 심경은 가벼운 침음성에서 드러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르게이 라브로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직접 물어볼까요, 니콜라예비치?”

순간 이반 이바노프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르게이 라브로프를 바라봤다.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 이바노프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쳐졌다.

이반 이바노프가 초인협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간에선 라브로프 총재를 두고 나의 페르소나라고 한다지?”

갑작스런 그의 말에 초인협회장은 그저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 차례 웃음을 터뜨린 이반 이바노프는 다시 세르게이 라브로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그나마 그 인간과 제일 지리적으로 가까우니까, 나중에 하바롭스크로 불러서 한 번 물어나 봐. 너무 대놓고 묻지는 말고 적당히 돌려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반 이바노프가 미소를 지으며 커피 잔을 들었다.

“진짜 녀석이 한 거라면…… 뭐 나름 사정이 있겠지. 나한테 말 못 할 사정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이반 이바노프는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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