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기획 [Propaganda]
당혹스러움과는 별개로 이동석과 배현일의 심경은 복잡했다.
대재벌 산하 길드의 마스터로서, 모스크바 국제 공격대 생존자로서, 한 집안의 가장이자 자식으로서,
그들이 느껴왔던 것들과 생각해왔던 것들이 취기와 함께 올라왔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고스란히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 드러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국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당장 D급 던전이 터져서 오크 정도 되는 것들만 튀어나와도 일반 보병 부대로는 상대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목숨 바쳐서 싸우는 거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과실은 누가 다 가져갑니까? 우리가 목숨 바쳐 싸워 얻은 평화와 부산물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부가가치는 도대체 누가 가져갑니까? 우리 손에 들어옵니까?”
탕-!
시국이 주먹으로 상을 가볍게 쳤다.
상 위에 올라가 있던 반찬들과 식기 시작한 고기가 들썩거렸고, 술잔의 술과 물컵의 물이 출렁이며 상 위에 쏟아졌다.
“이건 잘못됐습니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습니다. 왜 뒤에서 가만히 있기만 하던 대통령이란 인간이 숟가락을 얹고, 정부가 공짜로 마력석을 꿀꺽하는 겁니까? 그네들이 한 게 뭐라고!”
시국이 말을 마치고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동석과 배현일이 순간적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다시 두 사람이 시선을 시국에게로 돌렸다.
“허, 허허허. 이거, 이거, 이헌 많이 취했네요. 허허허.”
“마, 암만 젊어도 소주 4병 깠으면 힘들어질 때 됐지. 고마 일나입시더.”
웃으며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두 사람의 행태를 본 시국이 다시 한 번 더 상을 내리쳤다.
탕-!
이번엔 제법 힘을 줬기에 그가 내려친 자리를 중심으로 상에 금이 갔고 술잔과 물컵이 허공에 붕 떴다가 내려오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 덕분에 상 전체에 술과 물이 엎질러졌다.
“이헌…….”
이동석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시국을 불렀다.
배현일은 휴지를 뽑아 바닥에 흐르려는 물과 술을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시국이 소주를 병째 들어 마시곤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취했다고요? 이동석 마스터는 각성 후에 술에 취한 적이 있습니까?”
“…….”
“배현일 마스터는요?”
“…….”
“저 멀쩡합니다. 멀쩡한 정신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두 분은 화도 안 나십니까?”
시국의 격앙된 반응에 결국 이동석과 배현일은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초인으로 각성하기 전부터 뭔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국의 일장 연설 겸 정견 발표가 시작됐다.
“아버지를 도와 회사를 경영하면서 느낀 건,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시국이 새 소주병을 딴 후 이동석과 배현일 그리고 자신의 잔을 채웠다.
“우리 JH 그룹, 맞습니다. 깡패 출신입니다. 구로구 클로버파가 덩치 좀 키우고 일신 그룹 배은정 회장님 스폰 받아가며 준대기업의 자리까지 오게 겁니다. 하지만 제가 장담하건대 공식적으로 JH 간판 단 이후로는 절대 깡패 조직 운영하듯 경영하진 않았습니다. 노조도 있고, 매년 노동에 맞는 임금을 주기 위해 노사협상 때도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시국이 잔을 비웠다. 배현일이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죠. JH의 이시국이는 A급인데도 빌런만 잡는다. 던전 들어가면 떼돈을 벌 수 있는데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힘을 쓴다. 그런데요, 그거 완전 개소리입니다. 제가 왜 각성 후 모스크바 가기 전에 단 한 번도 던전에 안 들어갔는지 아십니까?”
시국의 물음에 이동석과 배현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국 또한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던 만큼 곧장 말을 이어갔다.
“반항한다고 그랬던 겁니다. 이 부당한, 우리의 착취 위에 세워진 체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었다, 이겁니다.”
시국이 잔을 비웠다. 이번엔 이동석이 그 잔을 채워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갑자기 왜…….”
그 물음에 시국이 씁쓸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모스크바 레이드를 통해 깨달았던 겁니다. 난 그냥 비겁한 새끼였구나, 하는걸요. 남들은 죄다 A급 헌터라고 빨아주고 띄워주고 하는데 정작 나란 놈은 비겁하게 행동했던 거구나.”
시국이 소주잔을 든 채 그것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요 남편이며 친구이자 아들인 사람들이, 누군가의 어머니요 아내이며 친구이자 딸인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영웅들이 너무 쉽게 죽었습니다.”
그 말에 이동석과 배현일이 한숨을 내쉬더니 잔을 들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잔을 비웠고, 시국이 새 병을 따 다시 잔들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무려 411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뒤에서 마력석 배분 비율이니 뭐니 하며 입씨름이나 하던 것들은 죄다 각국 정부의 대표단들이었지요. 던전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것들 말입니다.”
다시 격앙되는 시국의 목소리.
이동석과 배현일의 눈빛에서도 점차 분노와 불만의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인도에서는 연일 전사한 헌터들의 유가족들이 중심이 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얼빠진 국제 초인협회 어용 언론들은 유가족들이 보상금 문제로 그러고 있다고 보도하는데, 당장 와이튜브 켜서 실시간 라이브 방송만 봐도 확인 가능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구호가 보상금 지급에 관한 건지 헌터를 착취하는 억압적 구조에 대한 개혁에 관한 건지.”
시국이 잔을 비운 후 스스로 그것을 채우며 말을 마무리했다.
“두 분 마스터는 이런 체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시국이 입을 다물자 한동안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렸다.
그 침묵 속에서 시국은 말없이 연거푸 잔을 비울 뿐이었다.
시국이 홀로 1병 반가량을 마시고 새 병을 따려고 할 때, 이동석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 어느 헌터가…… 지금의 체제를 마음에 들어 하겠어요?”
배현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동석이 소주잔을 비우며 말을 이었다.
“근데 어쩌겠어요? 입 잘못 놀리다 국제 초인협회에서 빌런으로 찍어버리기라도 하면 합법적으로 맞아 죽는 수가 생기는데…….”
마력석의 온전한 국가 소유 및 관리 통제 시스템을 골자로 한 2021체제.
시국의 말마따나 헌터의 희생 위에 세워진 이 체제는 초창기만 하더라도 숱한 헌터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초기에 반발하던 헌터들을 각국 정부와 국제초인협회가 나서서 회유했고, 회유하지 못한 자들은 빌런으로 찍어 숙청해버렸다.
세계 최초의 기업형 길드인 독일 린덴바움 길드의 초대 마스터 루돌프 크라우프나 베이징 공방전의 영웅인 초인 민병대장 리청이 대표적으로 헌터의 권익을 이야기하며 회유를 거부하다 빌런으로 지목당한 케이스였다.
엘도라도 발언으로도 유명한 루돌프 크라우프는 중앙아프리카의 A급 네크로멘서 빌런 울루루 툼베베에게 의탁했고, 베이징 공방전의 영웅 리청은 사형 당했다.
자연히 반발은 사그라졌고, 그렇게 2021체제는 지난 7년 여간 별문제 없이 잘 작동됐다.
하지만 모스크바 레이드 이후로 여론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전사한 헌터들의 유가족들과 아직 죽지 않은 헌터들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2021 체제에 대한 비판과 개혁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비각성자인 헌터의 가족들뿐이었다.
각성자인 헌터들은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 마스터 말이 맞심더. 총대 메고 입 터는 순간 고대로 총 맞고 뒤지삐는데 누가 그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꺼?”
배현일까지 거들고 나서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술자리는 2021체제에 대한 규탄의 장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시국의 눈꼬리가 살짝 움찔거렸다.
‘됐어. 넘어왔어.’
혁명적 계급은 나타났다.
혁명이 일어날 토양도 충분히 마련됐다.
필요한 건 혁명의 대의와 직업 혁명가뿐이었다.
‘대의야 만들기 나름이고.’
2021체제는 무력 위에 문명이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성립되고 유지되던 체제였다.
그러나 그 믿음이 무너진 순간, 그리고 NAC와 같은 헌터들의 비밀 사교 모임이 조직적으로 행동한 순간 2021체제는 막을 내리고 2030체제가 들어섰다.
‘대의에 걸맞은 행동도 필요하지.’
전생에 2030체제를 만든 전 세계적인 헌터 총파업의 대의는 민중의 외면을 받았다.
헌터에 대한 부당한 착취를 이야기하면서 민중의 고통을 방관했기에, 헌터들이 주장하는 대의를 민중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 정도가 심해 아예 헌터와 정부 및 협회가 정면충돌했던 한국은 헌터에 대한 착취가 헌터에 의한 착취로 변해버리면서 민중의 외면을 넘어선 민중의 저항까지 낳았을 정도였다.
‘이번엔 좀 더 부드럽게 먹어야지.’
지나친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는 빌런에게 호재가 아닌 악재로 작용했다.
사회적으로 생산성이 저하되니 구매력도 떨어졌고, 구매력이 떨어지니 자연히 빌런들이 취급하는 마약이나 불법 마력 아이템 등도 팔리지 않아 악성 재고가 됐기 때문이었다.
‘미국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본이나 중국, 유럽 수준 정도로만 질서가 잡히면 국내에서 수익 창출하기가 전생보단 편하겠지.’
전생에 시국이 자신의 뒷배인 김양기가 권력자로 있는 한국이 아닌 일본과 대만, 중국 등지에서 활동했던 데에는 그만한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헌터들의 혁명 정권을 세우고, 그 바탕에서 아시아 지하 경제를 장악하고…….’
B급이었다면 매우 힘들었을 터였다. 성공을 장담할 수조차 없을 만한 규모니까.
하지만 A급은 가능하다.
‘손이 많이 가긴 하겠지만……, 뭐,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시국의 시선이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청와대와 국회를 불태울 것처럼 열을 내는 이동석과 배현일에게로 향했다.
‘원래라면 죽었을 인간들 살려둔 거니까, 그에 합당한 대가 정도 받아내야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시국은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곤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약간 마력이 실린 시국의 목소리에 마치 운동권 학생처럼 열불을 내며 체제 성토를 하던 두 사람이 입을 다물며 시국을 바라봤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석이 시국에게 물었다.
“맞아요. 뭔가를 해야 해요.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하지만…….”
이동석이 말끝을 흐리자 배현일이 뒤이어 말을 이어갔다.
“마, 뾰족한 수가 없심더. 입 한번 잘못 놀리면 바로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라타든가 뒤지든가 하는 긴데…….”
두 사람은 방법이 없다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불만은 있었지만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던 이 두 베테랑 헌터들은 지금 20대의 육체에 스며든 40대 빌런에게 방법이 있느냐 묻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 실행 방안 없이 뭔가 일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시국에게는 분명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의 집이 청담동인데 2차는 거기서 고급 전통주로 입가심하는 게 좋지 싶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시국의 입가에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2028년 10월 19일 10시 30분.
강남 삼성동 JH 그룹 본사 33층 회장실.
이정훈과 시국이 마주 앉아 커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국책 사업 파트너 길드?”
시국의 말에 이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아침에 총리실에서 연락이 왔어. 국무 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됐데. 발표는 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 한다고.”
“흠……. 이 판국에 갑자기? 그거 원래 시그니엘 길드가 하던 거였잖아.”
시국의 의문에 이정훈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도 자기 나름의 추론을 이야기했다.
“예전부터 말이 많았잖아. 시그니엘 길드, 모기업인 시그니엘 그룹이 일본계 자본인데 왜 거기다 국책사업 파트너 자격을 주냐고.”
“그것 때문에 시그니엘 그룹, 본사 한국으로 옮겨버렸잖아. 뭐, 그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근데 그 자격을 갑자기 우리한테?”
“뭐, 원래 시그니엘 길드랑 계약 기간이 3년이었고, 그게 내년 1월 2일부로 끝이잖아. 거기다 국내 최초의 A급 헌터가 있는 길드라는 상징성도 있고.”
나름 타당한 이야기였지만 너무도 단순한 이유였다.
‘현웅렬이 겨우 그런 이유 하나로 이런 결정할 놈은 아닌데……. 그 피해망상증 환자가…….’
전생에 현웅렬이 보여줬던 그의 본모습.
그것은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정신질환자의 모습이었다.
최측근조차 믿지 않았기에 집권 후 하야할 때까지, 3년 내도록 계파와 측근, 정적을 불문한 대대적인 숙청을 일삼았던 존재.
측근을 의심했듯 헌터들을 의심했고, 헌터들이 파업하자 기다렸다는 듯 초인협회를 압박해 파업 참가자들을 모조리 빌런으로 낙인찍으려 했던 광인.
지금이야 달변가에 훤칠한 키와 모델 같은 비율, M자 탈모가 시작돼 살짝 빛바랬어도 여전히 잘생긴 얼굴 등으로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 여느 미치광이 빌런 못지않은 존재가 바로 현웅렬이었다.
그걸 전생에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봤던 시국이었기에 대통령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한 국책 사업 파트너 길드 교체 결정에 의구심을 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