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빌런의 인생2회차-78화 (78/200)

078 귀국 [Come Back Home]

국가 대표가 국제적인 행사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되돌아오면 입국 환영 행사 및 청와대 만찬을 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 모스크바 국제 공격대 참가자의 경우 그러한 관례에 따른 환영식을 열 수가 없었다.

비록 레이드가 성공했고 던전이 클리어됐다고는 하지만 전체 415명 중 411명이 던전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특히 독일과 중국의 경우 자국이 자랑하던 A급 헌터가 죽기까지 했다.

그랬기에 한국 정부와 초인협회는 공개적인 환영 행사나 만찬을 이전처럼 열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모스크바에서 되돌아온 세 명의 헌터들은 곧장 가족들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 * *

2028년 9월 28일 9시 30분.

서울 삼성동 JH그룹 본사 32층.

부회장실 겸 종합 기획 실장실 겸 JH길드 마스터 사무실.

“흐음…….”

책상에 앉은 채 시국은 가만히 그룹 홍보부 부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받으며 그룹 홍보부 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시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그딴 예능에 나가서 재롱을 피워라, 뭐, 그런 말입니까?”

가시 돋친 시국의 말에 홍보부장이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재, 재롱 잔치라니요. 설마 저희가 미쳤다고 부회장님을 그런 데다 보내겠습니까?”

하지만 시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프로, 잘 알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나가서 적당히 양념 바른 자기 사연 털어놓으며 감성 팔이 하고, 그러다 중간중간에 묘기 좀 보여주는 그런 쇼 아닙니까? 제가 뭐, 텔레비전도 안 보는 놈으로 보이십니까?”

“그, 그 부분은 저희 쪽에서 PD에게 충분히 이야기해 두면…….”

“집어치우십시오. 전 안 나갑니다.”

시국의 완강한 반응에 부장은 다급한 표정으로 시국에게 이야기했다.

“그, 그렇지만 지금 부회장님의 인기나 그 프로그램의 시청률 등을 고려해보면 방송에 나감으로써 그룹 차원에서 얻는 무형의 이득이…….”

“뭡니까?”

“네, 네?”

“그 무형의 이득이 구체적으로 뭡니까?”

“그게…… 그룹 이미지 제고라든가 브랜드 가치의 상승 같은 뭐, 그런…….”

“이보세요, 김 부장!”

시국이 언성을 높이자 홍보부 부장은 입을 다물었다.

시국은 은은하게 마력까지 피어 올리며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줘 이야기했다.

“왜 정부에서 저나 다른 두 헌터님들 환영 행사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았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

“비록 클리어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무려 411명의 헌터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그 판국에 우리에 대한 환영 행사를 한다는 건 국가적 자산인 헌터를 잃은 타국을 자극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에 정부에서 최종적으로 조용히 지나가자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

“그런데 제가 토크쇼에 나가서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일을 떠든다?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가는 거죠. 자칫 이제 갓 중국에 진출한 뷰티나 엔터, 식품 쪽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겁니다.”

“…….”

“그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제가 토크쇼에 나가서 떠들었을 때 우리가 얻는 이익, 그 이익이 구체적으로 뭔지 정도는 말해야 제가 검토를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닙니까?”

“……. 죄송합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구체적인 이익 그리고 이익과 손실의 계산 결과가 양수인지 음수인지가 데이터로 나오지 않으면 제가 토크쇼에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 다시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홍보부장이 시국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부회장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국의 눈빛에는 못마땅함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성준이 잠시 망설이다가 시국에게 이야기했다.

“저기…… 마스터.”

박성준의 부름에 시국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그……, 진짜 안 나가실 거예요?”

“뭘?”

“토크쇼요.”

시국은 즉답하지 않았다. 대신 박성준을 빤히 쳐다보며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라면 나가겠어?”

그 질문에 박성준은 살짝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라면…….”

“왜?”

“어……, 혹시 마스터께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인터넷에서 마스터 인기가 대단하거든요. 진짜로. 특히 SNS 같은 데선 막 마스터랑 자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여자들도 심심찮게 보이고요.”

“그래서?”

“아까 홍보부 부장이 말한 것도 그렇고 마스터가 그 토크쇼에 출연하시면 여러모로 이득이 될 것 같아서요.”

“무슨 이득?”

“그거야 당연히 이미지 제고죠.”

시국이 콧방귀를 뀌었다.

“성준아.”

“네.”

“너 아까 홍보부 김 부장이 나한테 털릴 때, 내가 왜 털었는지 제대로 듣기는 했어?”

“네. 그 이득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없어서 터셨잖아요.”

“너도 오늘 한번 털려 볼래? 길드 사무장 업무랑 무관한 그룹 홍보부 일로?”

“…….”

박성준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는 홍보부 부장처럼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다.

잠시 모니터 화면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박성준이 다시 시국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구체적인 이득 하나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태블릿 PC로 이고르 세친과 러시아 극동 개발부 장관과 FSB 극동 지부장에 관한 WSJ 기사를 읽던 시국이 시선을 박성준에게로 옮겼다.

“그게 뭔데?”

시국의 물음에 박성준은 곧장 대답했다.

“대중의 지지요.”

“뭐?!”

시국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그런 시국을 바라보며 박성준이 말을 이었다.

“뭐, 솔직히 그렇잖아요. 여기가 중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도 아니고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들의 지지 만큼이나 힘이 되는 게 또 있을까요?”

처음으로 시국이 흥미롭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계속해 봐.”

시국의 표정이 다소 밝아지자 박성준은 용기를 얻고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이때까지 와이튜브나 커뮤니티, SNS에 올라왔던 마스터에 관한 이야기들을 쭉 보면 대체로 국뽕들이랑 얼빠들이 마스터를 빠는 경향이 있었어요.”

시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마스터가 모스크바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게 러시아 대통령 피셜로 확인되면서부터는 국뽕이나 얼빠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스터를 좋게 보기 시작했거든요. 만약 마스터가 토크쇼에 나간다면 이게 대중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박성준이 말을 맺었다.

그리고 그가 말을 끝맺었을 때 시국의 표정은 아까보다 확연히 밝아져 있었다.

“성준아.”

시국의 부름에 박성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길드 차원에서 홍보부 만들면 네가 부장해라.”

시국의 입에서 자신에 대한 칭찬의 말이 튀어나오자 박성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국은 곧장 내선 전화 수화기를 들어 그룹 홍보부로 전화를 돌렸다.

“어, 나 부회장이에요. 김 부장 자리에 있나요? 그럼 10분 후에 사무장 내려보낼 테니까 김 부장이랑 1대1로 이야기 좀 나누라고 전해주세요.”

시국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박성준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멀뚱멀뚱 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준아, 너 한 10분 뒤에 홍보부로 가서 김 부장한테 방금 네가 했던 이야기 고대로 전해. 내가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 덧붙여서.”

“네? 제, 제가요?”

“그럼 내가 가서 하랴? 우리 사무장이 이런 의견을 냈는데 넌 홍보부 부장씩이나 돼서 뭐 했냐고?”

“아, 아니에요. 제, 제가 직접 갈게요.”

“그래. 네 이야기는 개론 수준이긴 하지만 홍보부 손을 거치고 하면 제법 구체적인 각론까지 나오게 될 거야. 넌 그냥 네 생각만 쭉 이야기해주고 오면 돼. 알겠지?”

“네.”

박성준의 대답에 시국이 씩 미소를 지었다.

시국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성준이가 젊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김 부장이 멍청한 건지…….’

시국이 듣고 싶던 대답.

거기에 가장 근접한 이야기는 그룹 홍보의 실무를 책임지는 홍보부장이 아니라 하루 종일 와이튜브나 보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나 떠도는 박성준의 입에서 나왔다.

‘대중의 지지라…….’

A급 혹은 등급 외 던전이 전생과는 달리 클리어되고 이반 이바노프도 생존하면서 역사의 물결 자체가 바뀌게 됐다.

‘전생에 헌터들은 대중의 증오를 받는 방식으로 권력을 장악했었지.’

전생에 한국 헌터들은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자이언트 맨티스에 의해 잡아먹히고 죽어가는 걸 방관했다.

방관의 대가로 그들이 얻은 것은 국가권력의 완벽한 장악이었지만, 그들이 잃은 것은 국민 대중의 마음이었다.

덕분에 한국 헌터들과 그들이 만든 국정자문회의는 2030년부터 시국이 사형을 당하던 2042년 5월1일까지, 대중들의 끊임없는 저항에 시달려야만 했다.

‘단순히 힘으로만 억누르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지.’

물리적 한계는 없었다.

2030년대에 다시 대학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경찰력을 동원해 진압 가능했다.

가끔 대규모 군중집회라도 일어나면 군을 동원하면 그만이었다.

군경이 해결 못 할 정도로 시위의 규모가 커지면 헌터들이 직접 나서거나 빌런을 고용해 진압하면 됐다.

‘덕분에 국제연합 안보리 제재도 받게 되고 말이야.’

물론 그 결과는 국제연합 안전 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와 개별 국가의 자체 제재였지만 어차피 고통 받는 건 국민 대중이었지 헌터들은 아니었다.

‘원래라면 나도 아마 그런 방식을 택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생의 일일 뿐이었다.

‘대중의 지지라…….’

박성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시국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세계 최강의 딜러.

세계 최강의 탱커를 친구로 둔 A급 헌터.

‘그림은 좋네.’

그렇게 생각하며 시국은 머릿속으로 하나씩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 * *

9월 28일 19시 30분.

광화문 초인협회 빌딩.

협회장실.

구성국이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러시아워는 끝났다지만 여전히 광화문과 그 인근 도로는 차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구성국의 표정에는 약간 그늘이 져 있었다.

“또 슬픈 표정이시네요.”

또각또각, 힐 굽 소리를 내며 협회장실로 들어온 C급 요원 여정연의 말에 구성국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여정연이 들고 온 서류를 구성국의 책상에 놔둔 후 그의 곁으로 가 함께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왜 협회장님은 항상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시며 슬픈 표정을 짓고 계시는 거죠?”

“……. 허허허. 이거, 여 요원 앞에선 항상 웃고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구성국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처연해 보이는 중년인의 억지 미소를 바라보며 여정연이 미소를 지었다.

“웃으세요. 억지로라도. 그러다 보면 언젠간 진짜로 늘 웃으실 날이 올 거니까요. 웃음도, 슬픔도 결국 습관이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아마도요?”

다시 쓴웃음을 지으며 구성국은 한 차례 여정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광화문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며 다소 몽환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본래 표정인지 아니면 슬픔을 감추기 위한 위장인지를 구성국은 그녀와 함께 1년간 일했으면서도 아직까지 분간하지 못했다.

“이시국 헌터 말이에요.”

그녀의 입에서 일 이야기가 나오자 구성국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음 주에 현이네 호프집에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구성국이 의아한 표정으로 여정연을 바라보았다.

“그거 연예인 토크쇼 아닙니까?”

“맞아요. 제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죠.”

“거기에 왜?”

“뭐, 담당 PD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요즘 가장 핫한 아이템이잖아요, 이시국 헌터가. 그러니 섭외해보려는 거겠죠.”

“흐음…….”

“거기 출현하고 나면 이시국 헌터의 인기가 더 높아지겠네요. 그 프로, 제가 재미있어서 자주 보긴 하지만 좀 사람들 감성을 흔드는 방식으로 편집을 잘하거든요.”

여정연이 구성국을 바라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대중들, 감성에 약하잖아요?”

구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곤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방송 출연이라……. 흐음…….”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렸다.

그 침묵을 깬 것은 구성국이었다.

“아!”

무언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도 지나간 양, 손바닥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며 구성국이 시선을 여정연에게로 돌렸다.

여정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바라봤다.

구성국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왜요? 뭐, 아이디어라도 떠오르신 게 있어요?”

구성국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알려주시겠어요?”

여정연의 물음에 구성국은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아직은 구체적인 언어의 형태로 표현될 정도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곧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겠죠? 남에게 설명이 가능할 만큼? 알겠어요. 커피 한 잔 갖다 드릴게요.”

여정연이 그대로 협회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남기고 간 은은한 향의 흔적 속에서 구성국의 뇌리에선 수많은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하나의 구체적인 아이템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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