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빌런의 인생2회차-31화 (31/200)

031 미끼 [Saturday with Girl]

미사모란 이름의 일본 가정식 전문점은 현성백화점 다큐브시티점 7층 식당가에서도 가장 목이 좋다는 곳에 있었다.

“우와. 줄 진짜 길다.”

사장이 일본에서 제대로 가정식을 배운 사람이라 그 맛이 남달랐고 덕분에 맛집으로 소문이 나 이렇듯 토요일 점심시간에는 긴 줄이 늘어서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번호표 받아 올게.”

박수연이 번호표를 받으러 나서려 하자 시국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박수연이 화들짝 놀라며 시국을 바라봤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시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데 가자.”

“왜? 여기 맛집이란 말이야.”

“다른 데 가자.”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번호표 받고 기다리자.”

“…… 다른 데 가자.”

“아이잉. 좀만 기다리자. 웅? 웅? 내가 먹구 싶어서 그랭. 웅?”

박수연이 시국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순간 시국의 표정이 더 썩어들어갔다.

속이 미식거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꾸물꾸물 역류해 올라오려는 느낌을 받으며 시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았으니까, 빨리 가서 받아 오든가 해.”

“고마워! 좀만 기다려. 갔다 올게.”

번호표를 받으러 가는 박수연을 바라보며 시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 밥만 먹고 헤어지자. 밥을 먹고 바로 집으로 가는 거야. 그래. 그렇게 해야지. 그래. 그래.’

잠시 후 박수연이 번호표를 들고 시국에게로 돌아왔다.

“대기인이 18명이야. 조금만 기다리면 돼.”

“…… 그래.”

시국은 말없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멍하니 자기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뒤통수만 쳐다봤다.

그 곁에서 박수연은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셀카를 찍던 박수연이 시국의 팔을 잡았다.

시국이 박수연을 바라봤다.

그 순간 박수연이 자신과 시국을 스마트폰 화면에 담았다.

“…… 뭐야?”

“뭐긴 뭐야, 셀카지. 에이. 너 표정이 왜 이래? 어제 잠 안 자고 뭐 했어?”

“지워라.”

“그래. 이거 지우고 새로 찍자. 표정 좀 풀어 봐.”

“치워라.”

시국은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이후로도 박수연은 몇 차례 더 시국과 함께 셀카를 찍고자 했으나 시국이 강하게 그것을 거부했고 또 그것 때문에 둘은 한동안 티격태격했다.

그러는 사이 대기 줄은 점차 짧아졌고, 마침내 둘은 창가 쪽 자리에 앉게 됐다.

“난 돈까스랑 고로케 먹을 건데 넌?”

“야끼우동.”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시국은 곧장 젓가락을 들어 야끼우동을 먹으려 했지만, 박수연이 그의 손을 가볍게 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시국이 박수연을 바라봤다.

“사진 찍고 나서 먹어야지.”

시국은 콧김을 내뿜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피식 웃어댔다.

“됐다. 먹자.”

사진을 다 찍고 나서 박수연이 말했다.

시국은 곧장 젓가락을 들고 야끼우동을 흡입하듯 먹어댔다.

“음~! 돈까스 고기 진짜 부드럽다. 너도 하나 먹어 볼래?”

“우와. 고로케 진짜 맛있다. 너도 하나 먹어 봐.”

돈까스 한 조각, 고로케 한 입 먹을 때마다 박수연은 자기 감상을 떠들어대며 시국에게도 한 입 권했다.

하지만 시국은 그저 말없이 야끼우동 흡입에만 집중할 뿐, 그녀의 말에 답을 하지도 않았고 젓가락으로 집어 주는 돈까스 한 조각, 고로케 한 덩어리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순식간에 야끼우동을 비운 시국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박수연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응? 벌써 다 먹었어?”

박수연의 물음에 시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연은 잠시 시국과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번갈아 바라봤다.

고로케는 3개 중 1개 반이 남아 있었고 돈까스도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돈까스랑 고로케 좀 먹을래?”

박수연의 말에 시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배불러서 그런데 조금만 먹어 주라.”

“나도 배불러.”

“에이. 그거 하나 먹고 어떻게 배가 불러?”

“배부르면 남겨.”

“아깝잖아.”

“그럼 처음부터 하나만 시켰어야지.”

“에이. 인제 와서 그런 말 하면 뭐하니? 그러지 말고 고로케 하나만 먹어. 응?”

박수연이 젓가락으로 고로케를 집어 들었다.

잠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시국이 한숨을 내쉬며 빈 야끼우동 그릇을 내밀었다.

박수연은 웃으며 거기다 고로케를 담았다.

시국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도로 젓가락을 들어 고로케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오?’

박수연의 말마따나 고로케는 제법 맛있었다.

‘사장이 일본에서 제대로 공부를 했다더니. 흠. 나중에 이 회장이 제대로 기업을 만들면 외식 쪽으로도 해보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시국은 고로케를 천천히 그 맛을 느껴가며 먹었다.

그리고 그가 고로케를 다 먹었을 때 즈음 박수연도 식사를 끝냈다.

“아. 잘 먹었다. 나 살찌는 거 아니겠지?”

군살이라곤 잡히지도 않는 배를 꼬집으며 박수연이 이야기했다.

시국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수연이 시국을 올려다봤다.

“벌써 일어나?”

“다 먹었으면 일어나야지.”

박수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국은 식당에서 나가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이는 입구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계산을 끝마치고 나온 박수연이 시국을 찾으며 두리번거리다 그를 발견하곤 다가갔다.

“이제 어디 갈까?”

박수연의 말에 시국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시국은 그녀의 볼이 빨개질 때쯤 입을 열었다.

“집으로.”

“응?”

순간 박수연은 당황했다.

집이라니? 벌써?

“무슨 벌써 집에를 간다는 거야?”

“용건이 점심 사준단 거 아니었어? 점심도 다 먹었으니 용건도 끝난 거잖아. 그럼 집에 가야지. 안 그래?”

“그, 그게 무슨…… 카페 가서 음료라도 한 잔 마셔야……”

“그건 데이트할 때나 하는 거고.”

“……”

박수연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시국이 등을 돌렸다. 박수연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결국 입을 다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시국의 뒤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박수연은 계속해서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하지만 그녀의 분홍빛이 감도는 입술 너머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곧 백화점 1층에 도착했고 이어 백화점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시국을 바라보던 박수연이 달려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시국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박수연이 입을 열었다.

“진짜 이렇게 가려고?”

“그러면?”

“에이. 너무 심심하다.”

“너 재미있게 해주려고 나온 거 아니야.”

“아니 뭐 너보고 나 재밌게 해달라곤 안 했잖어.”

“그럼 뭐? 비켜. 바빠.”

“뭐가 그렇게 바쁜데?”

“할 일이 있어.”

시국은 박수연을 지나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박수연이 그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고맙단 말은 듣고 가야지!”

시국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봤다.

박수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국이 말했다.

“뭐?”

“고맙단 말은 듣고 가야 할 거 아니야.”

“방금 들었네. 간다.”

그리고 시국은 그대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군중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수연은 결국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

식탁에 앉아 시국은 한 손으론 숟가락을 든 채 다른 손으론 스마트폰을 들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잘 나온 걸로 보냈어 표정 좀 풀어랔ㅋ 월요일에 학교에서 봐 ㅎㅎ>

박수연에게서 온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와 함께 온 낮에 미사모 앞에서 찍었던 셀카 몇 장.

“…….”

시국은 말없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응? 이거 뭐야?”

옆에 앉아 밥을 먹던 나연이도 시국의 스마트폰 화면을 봤다. 나연이가 손을 뻗어 시국의 스마트폰을 가져가려 했다.

시국은 나연이의 손길을 가볍게 피한 후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뭐야? 여자친구 생겼어?”

“푸흡!”

순간 국을 떠먹던 이정훈이 국물을 뱉어냈다.

이정훈이 시국을 바라봤다. 그는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네가?’

시국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연이와 이정훈에게 동시에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뭐야? 오빠 여자친구도 아니라면서 왜 같이 셀카를 찍어? 누구야? 오늘 만나기로 했다던 그 사람?”

“…… 그냥 뭐 도와준 게 있어서 밥 얻어먹은 거야. 신경 꺼.”

“그럼 월요일에는 왜 보자고 하는 거야?”

“…… 그냥 하는 말이겠지. 신경 꺼. 밥이나 먹어.”

그렇게 말하며 시국은 숟가락으로 국을 떠 입에 가져갔다.

이정훈도 티슈로 입가를 닦고 다시 국을 떠먹었다.

잠시 생각하던 나연이가 시국에게 말했다.

“오빠 그 언니랑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아니야.”

“…… 그럼 그 언니가 오빠 좋아하는 거네.”

“……”

시국은 입을 다물고 잠시 나연이를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밥그릇에 고개를 박고 묵묵히 수저를 바삐 움직였다.

“왜 말이 없어? 맞지? 그 언니가 오빠 좋아하는 거 맞지?”

나연이의 계속된 물음에도 시국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나연아. 오빠 밥 먹어야지.”

유서영이 나서고 나서야 나연이는 시국에게 묻는 걸 그만두고 다시 자기 밥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

시국의 뇌리로 옛 기억의 부스러기가 지나갔다.

『사랑이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독일 철학자 막스 셸러에 따르면 사랑이란 한 개인의 인격 그 자체에 대한 간절하고도 진심 어린 마음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때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철학과 출신 빌런이 문득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철학과 빌런의 사랑에 대한 철학 강론이 달리는 차 안을 가득 메웠다.

한참을 말없이 뒷좌석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듣던 시국은 그에게 짧게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잠 좀 자자 새끼야.』

결국 철학과 빌런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시국이 그런 반응을 보였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철학과 빌런의 사랑에 대한 개념이 시국이 지닌 사랑에 대한 관념과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기만이야.’

시국이 지닌 사랑에 대한 관념은 굉장히 냉소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냉소적 관념을 심어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국이 유일하게 인간적인 정을 줬던 나연이였다.

‘이전의 나연이는 철이 들 무렵부터 사랑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사랑에 불과했지.’

제삼자인 시국이 봤을 때 인생이 한심한 양아치 한량에 불과하던 인간들을 나연이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한 나연이의 사랑은 늘 집착과 배신, 절망으로 끝났다.

언제나 이번엔 진짜라며 진정한 사랑을 찾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리고 숱한 절망 끝에 나연이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생일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이 전생에 나연이가 겪은 일이자 이번만큼은 반복되지 않게 하고자 시국이 마음먹은 일이었다.

‘박수연…… 걔가 보여주는 모습이 딱 전생에 나연이가 그 양아치 새끼들한테 보여줬던 일방적 사랑이야.’

그간 긴가민가했지만, 오늘 점심때에 비로소 시국은 박수연이 자신을 이성적 호감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이 시국으로 하여금 기억하기 싫은 나연이의 전생을 떠올리게 했고, 속을 메스껍게 했다.

‘어차피 1년 뒤면 박수연은 졸업이야. 나랑 만날 일도 없는 거지. 아직 그 애의 감정이 미약한 수준일 때 확실히 쳐 내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며 시국은 밥그릇과 국그릇을 비웠다.

수저를 내려놓고 시국은 잠시 나연이를 바라봤다.

‘이번 생만큼은 네가 그런 양아치들한테 기만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줄게. 넌 부디 네가 그토록 바랐던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네가 전생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시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이정훈과 유서영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국그릇과 밥그릇을 포개 수저와 함께 싱크대에 넣어둔 후 시국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시국은 책상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켰다.

박수연이 보낸 사진을 다시 열어 보았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것과 대조적으로 한껏 밝은 표정의 박수연.

시국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와이튜브를 켰다.

괜히 불편해진 심사를 달래고자 시국은 예능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영상을 클릭했다.

거의 모든 동영상이 그렇듯 광고로 영상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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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일신건설 브랜드 아파트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비율 좋고 예쁜 젊은 여배우가 소파에 편히 기대 눕는 모습에서 얼마나 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공을 들였는지가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

시국이 광고화면을 멈췄다.

그가 뚫어져라 여배우를 쳐다봤다.

‘……!’

시국은 곧장 동영상을 끄고 인터넷을 켰다.

그대로 검색창에 ‘일신건설 아파트 광고모델’을 입력했다.

바로 첫 화면에 그녀에 관한 기사가 노출됐다.

<떠오르는 신인배우 김혜진, 일신건설과 전속모델 계약!>

시국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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