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도발 [Provoke]
“그만!”
이정훈이 짧고 강하게 외쳤다. 그 타이밍에 맞춰 시국이 마력 파장을 룸에 뿌렸다.
강봉길의 주먹도, 사내들의 웃음도, 서민지의 비명과 울음도 일시 정지라도 누른 듯 멈췄다.
그 틈을 타 한명호가 서민지를 끌고 나갔다.
곧 나머지 사람들도 마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졌다.
강봉길의 손아귀에 잡힌 남자가 그의 손을 털어내곤 옷을 정리했다.
“강 사장은 잠시 뒤로 빠져.”
이정훈의 말에도 강봉길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서민지를 겁탈하려던 사내를 노려볼 뿐이었다.
“뭐해? 너네 대가리가 뒤로 빠지라는데.”
사내는 실실 웃으며 강봉길을 조롱했다. 순간 강봉길의 눈이 다시 뒤집어졌다.
그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려 할 때, 이정훈이 앞으로 나서서 그의 팔을 잡았다.
강봉길의 시선이 이정훈에게로 향했다. 이정훈은 가만히 그의 달아오른 눈을 쳐다보았다.
강봉길의 시선이 이정훈에게서 그의 뒤에 있는 시국에게로 옮겨 갔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시국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선 익히 보아왔던 광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양기를 시체로 만들던 날 보여줬던 그 눈빛이었다.
그것을 보자 강봉길은 팔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가서 아가씨 위로 좀 해주고 있어. 그리고 몸에 묻은 증거 훼손하지 말라고 하고.”
“……”
“어서.”
“…… 알겠심더. 회장님.”
강봉길은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빠졌다.
“민지야. 괜찮나?”
서민지를 위로하는 강봉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이정훈이 세 사내를 바라봤다.
시국 또한 이정훈의 곁에 서서 그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사내들은 실실 웃으며 이정훈을 바라봤다.
이정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클로버 회장 이정훈입니다.”
이정훈의 입에서 경어가 나오자 세 사내의 표정에 진한 비웃음이 걸렸다.
이정훈의 뒤편에 있던 클로버 스탭들과 한명호의 표정이 일순간 험악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나서지 않았다.
스탭들은 한명호가 나서지 않으니까, 한명호는 시국이 가만히 있으니까.
이정훈의 말이 이어졌다.
“조금 전 여러분들은 우리 업소의 여자 종업원에게 성폭행을 저지르려 했습니다.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이는 분명한 범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으로 오며 확인한 바로는 남자 종업원에게 폭력까지도 행사하신 것으로 확인이 됐으며 이 또한 분명한 범죄입니다.”
이정훈의 말은 차분했고 점잖았지만,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세 사내, 부천인천연합의 행동대원들은 그 말에 담긴 차분함과 점잖음만을 읽고는 더욱 기고만장해질 뿐이었다.
행동대원 중 서민지를 겁탈하려던 남자가 와이셔츠 단추를 몇 개 풀곤 입을 열었다.
“아니, 여자애가 가슴골이 예뻐서 거기다 돈 꽂아줬고 입술이 꼴리게 생겨서 좀 빨아보려 한 게, 뭐 그게 그렇게 큰 죄가 되나? 어차피 창녀잖아? 그리고 웨이터라는 놈이 싸가지 없게 손님 몸에 손을 대는데 뭐 그럼 가만있어야 하나? 물장사 하루 이틀 해?”
분명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이정훈은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 클로버는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성매매를 하지 않습니다. 이 원칙은 적어도 제가 클로버를 경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하. 그래요? 김양기 씨 재끼고 뭔 공부벌레 새끼가 경영한다더니, 이런 식이었어요?”
“시대가 변했습니다. 그건 당신네 백 사장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정훈의 입에서 백 사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그때까지 여유롭게 실실 웃고 있던 세 사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세 사내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정훈이 씩 웃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여겨, 우리 클로버 측에서는 세 분을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한 사장?”
“네, 네?”
“당장 경찰서에 신고해.”
“겨, 겨, 경찰서 말이여라?”
“그래. 손님들이 법을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 이참에 법을 좀 알려 드려야지.”
“아, 알겠당께요.”
한명호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경찰서에 전화를 걸며 밖으로 나갔다.
“이 개새끼가!”
이정훈과 대치하던 사내가 이정훈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그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기습적인 공격이었던 만큼 이정훈도 순간 당황했다.
그것은 이정훈 뒤에 있던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칼은 그대로 이정훈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정훈의 배를 찌르지 못했다.
“이, 이, 이!”
순식간에 이정훈의 앞을 가로막고 더 나아가 칼을 맨손으로 붙잡은 시국.
사내는 시국을 바라보며 칼을 뽑기 위해 용을 썼다.
하지만 칼은 전혀 뽑히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박히기라도 한 것인 양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사내는 시국을 노려봤다.
시국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사내를 마주 보며 칼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뚝-!
쇠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칼날은 거의 뿌리부터 부러졌다.
사내는 멍한 눈으로 칼날의 90%가 날아간 칼과 시국을 번갈아 쳐다보며 뒷걸음질 쳤다.
“이 새끼들이…….”
시국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동시에 광기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마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며 7번 룸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스탭들과 부천인천연합 행동대원들은 피부를 찌르고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미지의 두려움을 끄집어내는 마력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떠는 것은 이정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가 떠는 이유는 스탭들이나 행동대원들과는 달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느낌을.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안 돼. 여기서 저 인간들을 죽이면…….’
이정훈은 가까스로 손을 뻗어 시국의 어깨를 짚었다.
순간 시국의 시선이 빠르게 이정훈에게로 향했다.
광기로 타오르는 그 눈빛을 바라보며 이정훈은 아찔함을 느꼈다.
근 1년 가까운 세월을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며,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살아오며 잊고 있었던 감정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두려움.
아들 노릇을 하진 않겠다곤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을 어른으로 대우해 주었기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잊어버렸던 그 감정.
그 가슴 떨리는 감정의 동요 속에서 이정훈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하자.”
한동안 시국은 말없이 이정훈을 바라봤다.
이정훈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시국은 천천히 마력을 거두어들였다. 사람들의 심장을 조이던 공포가 차츰 사라졌다.
쨍그랑
시국이 손에 쥐고 있던 부러진 칼날을 땅바닥에 던졌다.
그의 시선이 이정훈에게서 부천인천연합 행동대원들에게로 옮겨갔다.
시국은 그들의 외모 하나하나를 유심히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시국이 손가락으로 그들 하나하나를 찌르듯 가리켰다.
행동대원들은 시국의 손가락이 자신을 향할 때마다 마치 칼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움찔거렸다.
그렇게 3시간 같던 3분이 침묵 속에서 흘러갔다.
“회장님. 왔습니다.”
한명호가 문을 열고 들어와 경찰이 왔음을 알렸다.
그제야 어느 정도 긴장의 끈을 놓은 이정훈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가서 경찰들 이쪽으로 안내하고, 너희들은 CCTV부터 해서 증거자료 찾을 수 있는 거 다 확보해 놓고.”
이정훈의 명령에 스탭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정훈이 한명호에게 물었다.
“강 사장이랑 민지는?”
“지금 VVIP룸에 있습니다.”
“경찰들 왔으니까 두 사람도 불러내.”
“알겠습니다.”
한명호마저 7번 룸에서 나가자 방 안에는 부천인천연합 행동대원 셋과 이정훈, 시국만이 남게 됐다.
이정훈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조두형, 이준재, 강홍수.”
이정훈의 입에서 자기들의 이름이 나오자 세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시국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지 놀란 이유가 다를 뿐.
그러거나 말거나 이정훈의 말은 이어졌다.
“너희들, 어차피 나오지도 못할 거야. 예전 같았으면 오야붕들끼리 만나서 한 놈 정도나 1년 갔다 오는 걸로 쇼부 봤겠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뭐, 한국 법이 워낙 거지 같으니 운 좋게 집행유예라도 나오면 뭐, 몇 개월 안에 다시 바깥 공기 쐴 수는 있겠지.”
이정훈의 말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점잖음이 사라졌고 냉혹함은 더해졌다.
“근데 명심해라. 너희 셋, 구로구에서 설치다 눈에 띄면 그땐 곱게 안 보낸다.”
이정훈이 딱 말을 마친 순간, 7번 룸 문이 열리고 경찰 다섯 명이 스탭들과 함께 우르르 들어왔다.
이정훈이 경찰 중 가장 계급이 높은 중년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이야기했다.
“이 세 사람이 저희 여자 종업원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고, 남자 종업원에겐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경찰에 인계하겠으니 모쪼록 법에 따라 엄중히 처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예…….”
이정훈은 다시 한번 중년 경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시국도 말없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바깥으로 나온 이정훈은 곧장 강봉길과 서민지부터 찾았다.
서민지는 눈물을 흘리며 강봉길에게 꼭 안겨 있었다. 강봉길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으며, 충혈된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조금만 툭 건들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정훈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그의 물음은 강봉길과 서민지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서민지는 대답하지 못했고 강봉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정훈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강봉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강봉길은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이정훈에게 고개 숙일 뿐이었다.
잠시 후, 7번 룸 문이 열리고 부천인천연합 행동대원들이 경찰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그들을 보는 순간 강봉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손을 이정훈이 잡아 주었다.
“저, 잠시 서로 좀 가 주셔야겠어요. 진술을 하셔야 해서.”
그들 곁에 서 있던 여경의 이야기에 강봉길이 주먹에서 힘을 빼고 손을 폈다.
“마음 차분히 가라앉히고 갔다가 와. 민지가 불안해할 테니 옆에 있어 주고.”
이정훈의 말에 강봉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과 제일 처음 VVIP룸으로 사태를 알리러 왔던 자 외 몇몇 스탭이 여경을 따라 나갔다.
“한 사장은 애들이랑 같이 정리 좀 해. 참, 그리고 경찰이 현장 사진 찍어 갔나?”
이정훈의 물음에 한명호는 급히 경찰을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와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찍어 갔다고 합니다.”
“그래. 그러면 7번 룸 깨끗하게 치우고 VVIP룸으로 돌아와.”
“넵.”
이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VVIP룸으로 향했고 시국이 뒤따랐다.
VVIP룸에 들어서서 각자의 자리에 앉고 나서도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국이 양주병을 들어 이정훈의 잔을 채워주었다. 이정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엔 자기가 콜라병을 들어 시국의 잔을 채워주었다.
시국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콜라로 가득 찬 잔에 양주를 약간 태웠다.
둘은 가볍게 건배를 하고 잔을 비웠다.
잔을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두 사람은 입을 열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이정훈이었다.
“아까는 고마웠어. 진심으로. 너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바로 옆에 있었으면서도 그걸 못 막았으면 병신인 거지.”
“아니야. 그래도 고마워.”
“뭐, 고마우면 내일 저녁에 미나모모나 가던가.”
“그렇게 하지.”
이정훈이 씩 웃었다.
‘당신이 없으면 내 계획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 무조건 살려야지.’
시국의 계획.
전생에 김양기가 YK그룹이라는 기업형 전국구 폭력 조직을 만들고, 그곳의 회장이자 초인들의 국정농단기구인 국정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서 누렸던 특권을 이번 생에는 자신이 누리겠다는 그 계획.
그 계획을 위해선 이정훈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