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거래 [You're Next!]
“?”
다소 뜬금없다 싶은 시국의 발언에 세 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눈만 깜빡이며 시국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국이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김양기 씨 조직은 이정훈 사장이 앞으로 이끌어.”
시국이 재차 자기 뜻을 알리자, 그제야 세 사람은 정신을 차렸다.
이정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강봉길과 한명호는 동시에 이정훈을 바라봤다.
그들은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설마 미리 이야기가 돼 있던 거요?’
그리고 이정훈은 그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는 일이야.’
하지만 둘의 마음속에 피어난 의혹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정훈 저 새끼가……!’
‘조용히 양기 행님 밑에서 숨만 쉬는 것 같드만 이래 통수를 치삐네.’
이정훈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 순간 살기가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본 시국이 정색했다.
“이런 개새끼들이, 보스한테 눈알을 부라려?”
마력의 파장이 살기를 담고 두 사람을 찔렀다.
둘의 눈가에 감돌던 살기가 곧장 사그라졌다.
“불만 있어? 그럼 너희도 김양기랑 같이 포대기에 들어가든가.”
둘이 몸서리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 아닙니더. 지, 지가 감히 우째 불만을 품겠십니꺼.”
“그, 그렇당께라. 아, 아따 우덜 이 사장이야말로 오, 오야붕으로 딱 어울리는 분 아니것소?”
“하, 하모! 저, 정훈 행님이 나이도 제일로 많고 또, 그, 그, 그 뭐고 그, 머리도 제일로다가 좋다 아이가.”
“그, 그렇제이.”
만담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시국은 마력의 파장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고, 강봉길과 한명호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잠시 두 사람을 스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시국이 시선을 이정훈에게로 돌렸다.
마력의 파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정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 사장은 불만 없지?”
시국의 물음에 이정훈이 그를 바라봤다.
그의 입술이 들썩였다. 하지만 튀어나오려는 말이 너무도 많은 것인지 아니면 차마 꺼낼 용기가 없는 것인지, 별다른 말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시국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솔직해지자고.”
강봉길과 한명호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훈은 그저 창백한 표정으로, 납득할 수 없단 눈빛으로 시국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김양기가 있을 때야 구심점이 있었으니까 봉길이랑 명호가 서로 물어뜯고 지랄을 해도 조직이 유지될 수 있었지. 어쨌건 그건 보스 밑에 있는 행동대장들끼리의 싸움이었으니까.”
강봉길과 한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스가 뒤졌어. 누구를 후계자로 하겠다는 말도 없이, 안배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둘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전면전이 되지 않겠어?”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어색한 헛기침만 내뱉으며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둘이서 각 잡고 싸우면 누가 이기건 둘 다 타격이 좀 클 거야. 그럼 그 상태에서 다른 경쟁 조직이 치고 들어오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
“……”
“그렇다고 둘 중 하나를 보스로 내세우면 나머지 하나가 거기에 순순히 따를까? 너희끼리 퍽이나 서로를 형님 동생으로 잘 모시겠다. 그치?”
“……”
“……”
“그래서 이 사장을 김양기의 뒤를 이을 보스로 세우려는 거야. 일단 나이도 제일 많고, 머리도 제일 좋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듣는 이정훈의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시국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을 느낀 시국이 이정훈에게 말했다.
“왜, 내 말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
시국은 침묵하는 이정훈의 눈과 호흡에서 그가 품은 강한 의심과 불신을 느낄 수 있었다.
시국이 피식 웃었다. 그가 강봉길과 한명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 사장이랑 이야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 너희는 저 방으로 가서 애들이나 좀 돕다가 내가 부르면 그때 다시 이쪽으로 와.”
“아, 알겠심더.”
“네, 네.”
강봉길과 한명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VIP룸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시국이 이정훈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의심스럽고 못 미더우실까?”
“……당신 도대체 누구요?”
“아까 말했잖아. 금천초등학교 6학년 1반 이시국이라고.”
“처음에 강봉길이 잠시 자기 가게에 간다 했을 때는 별생각이 없었소. 그리고 그대가 강봉길과 함께 룸으로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대가 김양기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순간 깨달았지. 아, 강봉길을 불러낸 것도 이 사람이구나.”
“……”
“강봉길의 사업장을 흔들어 강봉길을 불러내고, 강봉길을 통해 김양기를 찾아내고, 김양기를 죽이고 나서 그의 조직 내에 존재하는 힘의 균형을 역으로 이용해 나를 보스로 앉히려 하고. 과연 이게 초등학생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이라고 보시오?”
“……”
“당신은 초등학생이 아니야. 겉보기엔 분명 그 또래 어린아이지만 절대 당신은 아니야. 절대. 차라리 동안의 난쟁이일 가능성이 높지. 절대 초등학생은 아니야. 그럴 수가 없어.”
동안의 난쟁이라는 대목에서 시국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이정훈은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한동안 소리 내어 웃던 시국이 웃음을 멈췄다.
그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이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래서 김양기가 당신을 클로버 사장에 앉혔던 거고, 내가 당신을 보스로 앉히려는 거야. 똑똑한 인간은 멀리 두면 위험하거든.”
“……”
“동안의 난쟁이라.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추론이야. 저 침팬지와 인간 사이 어딘가에 있는 두 머저리들 따위는 결코 생각해 낼 수 없는 합리적 추론 말이야.”
“……”
“합리적이고 똑똑한 건 이 사장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야. 하지만 때론 그 합리성이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고 말지.”
“……”
“때론 이 세상에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도 있는 법이야. 그리고 지금 이 사장 앞에서 이야기하는 나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놈이고.”
“……”
“난 정말 금천초등학교 6학년 1반이야. 열셋이지. 현재 금천구에 위치한 천사의 쉼터라는 고아원에서 살고 있고. 주민등록번호도 불러줄까? 050501에 3……”
“됐소. 그만, 그만하시오.”
이정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시국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가 품은 혼란을, 상식의 붕괴에서 오는 사고 체계의 붕괴를.
“이 문제는 일단 덮어 두자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약간의 마력을 뿜어내며 한 이야기에 이정훈은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었다.
“어이. 밖에 있는 새끼들.”
시국이 문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 개새끼들이 한번 해보자는 거야?”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강봉길과 한명호가 뛰어 들어왔다.
“이 개새끼들, 내가 가서 청소하는 거 돕다가 좀 쉬고 있으라 했지? 근데 왜 문밖에서 문에다 귀를 처박고 있니? 귀 잘라 줘?”
“아, 아닙니더.”
“죄, 죄송하당께요.”
“됐고. 가서 뭐 마실 거 좀 가져와. 목이 탄다.”
“아, 알겠심더.”
“그, 그리 하겠당께요.”
두 사람은 빠르게 룸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양주 한 병과 물을 들고 들어왔다.
“이 새끼들이 내가 언제 술 가져오라고 했어? 됐고, 그거 테이블에 올려두고 빨리 VVIP룸에 가서 대기나 하고 있어.”
둘이 양주와 물을 테이블에 올려둔 후 룸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이번에는 말을 듣고 VVIP룸으로 가는 두 사람의 기척을 느끼며 시국은 피식 웃었다.
시국이 잔 두 개에 양주를 탔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앞에 둔 채 입을 열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내가 몇 살인지,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야. 내가 왜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가지.”
“……”
“이 사장은 똑똑한 사람이야.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훌륭한 스펙을 가지고 겨우 김양기 따위의 밑에서나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 밑에서 일할 사람은 아니지. 그건 분명해.”
“……고맙소.”
“아니,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니까. 당장 나에 대한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저 유인원 같은 새끼들은 그냥 내가 강하게 나가니까 바로 나를 자기네들 오야붕 비슷하게 모시면서 아무런 의구심도 안 품는 데 비해 이 사장은 그렇지 않잖아. 안 그래?”
“……”
“자, 자. 지금부터 내가 당신에게 거래 하나를 제안할 거야. 이걸 받아 주고 말고는 오롯이 당신의 몫이지.”
“……거래 말이오?”
“그래. 거래.”
“……말해 보시오.”
“그 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
“왜 이렇게 살고 있어?”
“……”
이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흔들리는 눈빛으로 시국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국이 말을 이었다.
“뭐, 좋아. 사람마다 사연이란 게 있는 법이니까.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럼 질문을 바꿀게.”
“……”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회계사까지 된 사람이, 기껏해야 동네 깡패 돈세탁이나 해주는 거 솔직히 이해가 안 가거든. 아무리 무슨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안 그래?”
“……”
“머리도 좋겠다, 얼굴도 잘생겼겠다. 나 같으면 뭔가 폼 나게 한 번 제대로 살아보고 싶을 것 같은데? 이 사장은 안 그래?”
“……”
이정훈은 시국의 말에 단 한마디의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반박도, 동의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을 지나가는, 차마 남에게 말하기조차 우스운 사연과 악연의 연쇄 속에서 이정훈은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깡패에서 번듯한 기업의 회장으로 만들어 줄게.”
살짝 고개를 내렸던 이정훈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가 흔들리는 눈으로 시국을 바라봤다.
그의 입이 가까스로 떨어졌다.
“그, 그게 가능하오?”
“가능해.”
“어떻게?”
시국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 힘과 당신의 머리를 합치면 가능해.”
“……”
씁쓸하고 어두운 과거의 기억들로 마비됐던 이정훈의 두뇌가 맹렬히 회전했다.
시국이 김양기를 죽일 때 보여줬던 무력, 기세만으로 강봉길과 한명호를 제압했던 카리스마.
그리고 자신의 두뇌.
“……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요?”
“말했잖아. 거래라고. 내 요구를 들어주게 하려면 뭐,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요구는 뭐요?”
“간단해. 당신이 날 입양하면 돼.”
순간 이정훈이 입을 벌렸다. 그는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시국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시국은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정훈의 얼굴에 다시 의심과 불신이 떠올랐다.
시국이 입을 열었다.
“동안의 난쟁이건 애늙은이건 조숙한 인간이건, 난 어쨌건 법적으로 미성년자야. 재산의 소유나 관리 측면에서 많은 법적 제약이 따르지.”
“……”
“그래서 난 믿고 내 재산의 관리를 맡길 만한 법적 후견인이 필요해. 그리고 거기엔 당신이 딱이지.”
회귀자라곤 하더라도 시국이 지닌 미래에 대한 기억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굵직굵직한 사건, 예를 들어 러시아 대통령의 죽음 같은 것들을 제외한다면 시국의 기억은 그가 살아온 빌런으로서의 궤적에 놓인 것들이 전부였다.
그 기억 속에서 시국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인간은 이정훈 정도가 유일했다.
시국은 가만히 이정훈을 바라봤다.
이정훈도 가만히 시국을 바라봤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렸다.
그 침묵 속에서 시국은 이정훈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이정훈이 입을 열었다.
“…… 왜 하필 나요?”
“제일 똑똑하잖아.”
“정말 그 이유 하나 때문이오?”
시국은 씩 웃었다.
“그럼 봉길이랑 명호한테 아버지가 돼 달라 할까? 저 머저리들한테?”
이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시국을 가만히 쳐다봤다.
마치 그의 눈동자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려는 듯.
이정훈에게 시국이 잔을 건넸다. 그리고 자기 잔을 들었다.
더 이상 그만 묻고 선택하라는 듯이.
이정훈은 자기 앞에 온 잔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고민했다.
잠시 후, 이정훈이 잔을 들었다. 시국이 씩 웃었다.
시국이 잔을 내밀었다. 이정훈이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시국이 그대로 잔 속의 양주를 쭉 들이켰다.
그것을 보던 이정훈도 양주를 쭉 들이켰다.
두 사람이 잔을 비웠다.
“크으…….”
아직 육체적으론 미성년자였기에 술의 독기는 더 강하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70%대까지 떨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시국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아졌다.
“…… 아버지가 될 사람 앞에서 미성년자의 음주는 좀 아닌 것 같은데?”
이정훈도 기분이 좋은지 실없는 농담을 했다.
“원래 술은 아버지한테 배우는 거랬어.”
시국도 농담으로 받아치며 웃었다.
이정훈도 시국을 보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