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빌런의 인생2회차-2화 (2/200)

002 회귀 [Wake Up]

2017년 5월 1일 월요일 16시 26분.

책자와 간행물로 빼곡한 책장 하나와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옷걸이 그리고 소파가 전부인 이곳.

한 남자아이가 소파에 모로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만 아니었다면 죽었다고 착각할 만큼 아이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요. 그때 호진이 오빠가.”

문이 열리며 한 남자와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어?”

여자아이가 소파에 잠든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시국 오빠는 여기서 또 자고 있네? 언제 왔데?”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손으로 흔들며 깨우려 했다.

“오빠. 시국 오빠.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오빠?”

덩치의 대부분이 지방인 남자가 여자아이를 보며 웃었다. 그는 정장 상의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 후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나연아. 그냥 자게 내버려 둬.”

여자아이, 나연이는 남자아이를 깨우다 말고 혀를 삐죽 내밀었다.

남자는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책상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티슈 몇 장을 뽑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그래서 호진이가 어떻게 했다고?”

남자의 물음에 나연이가 다시 그에게 쪼르르 달려와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어댔다.

남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노트북을 켰다.

“호진이 오빠가 글쎄……”

나연이의 이야기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말다툼에 관한 것이었다.

남자, 장영훈 목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일까지 끝내야 할 엑셀 작업을 처리했다.

“호진이 오빠도 불쌍해요. 주영이 언니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지훈이 오빠가 막 그거 가지고 놀리니까.”

한창 나연이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소파에서 자던 남자아이가 눈을 번쩍 떴다.

‘……?’

남자아이는 잠시 그 상태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지훈이 오빠도 그래요. 재철이 오빠가 경화 언니 좋아한다고 할 때도 막 놀리더니. 도대체 왜 그래요?”

남자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아이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장 목사와 나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니?”

장 목사가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입만 벌린 채 떨리는 눈으로 장 목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 언제 일어났데?”

나연이가 남자아이에게 쪼르르 다가왔다.

남자아이의 시선이 나연이를 향했다.

“머리에 새집 지었어.”

나연이가 손으로 남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남자아이는 떨리는 눈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또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나연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좀 있음 오빠 생일 파티인데 여기서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 이 꼴로 생일 파티에 가는 것도 웃기고. 가서 세수라도 좀 해.”

대충 남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나연이가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남자아이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주나연?”

순간, 남자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나연이는 그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아이의 눈앞에다 대고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거야? 이거 몇 개야?”

장난스럽게 손가락 두 개를 펴고 흔드는 나연이를 남자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별안간 남자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엑셀 작업을 하던 장 목사가 아이를 바라봤다.

“악몽이라도 꾼 거니?”

남자아이는 말없이 나연이와 장 목사를 번갈아 쳐다봤다.

별안간 남자아이가 자기 얼굴을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자기 손과 몸, 다리, 발을 빠르게 훑어봤다.

“오빠? 왜 그래?”

나연이가 약간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친 듯이 자기 몸을 더듬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확신한 장 목사가 자리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시국아. 괜찮니? 어디 아파?”

장 목사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을 듣고 남자아이가 행동을 멈췄다.

아이는 장 목사를 바라봤다.

“시……국……이시국…….”

변성기조차 오지 않은, 나연이보다 약간 낮은 톤의 자기 목소리에 아이는 다시 한 번 몸을 흠칫 떨어야 했다.

장 목사가 아이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이상하다. 열은 없는데.”

땀에 젖은 장 목사의 손바닥을 느끼며 아이의 표정은 점점 변해갔다.

놀람에서 불신으로, 불신에서 황당함으로.

아이는 곧장 창가로 달려갔다. 그리곤 창문을 열었다. 제법 따사로운 5월의 봄 향기가 바람을 타고 실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아이는 그 향기를 맡지도, 바람을 느끼지도 않았다.

아이는 황당하단 눈빛으로 창밖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천사의 쉼터?’

아이, 시국은 봄꽃이 만개한 마당과 거기서 뛰어노는 아이들,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할머니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시국의 눈이 떨렸다.

“오빠?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파?”

나연이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시국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장 목사도 걱정스런 눈으로 시국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한동안 마당을 내려다보던 시국이 별안간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바라봤다.

2017년 5월 1일 월요일 16시 31분.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그에게 기계적으로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허.”

시국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또 뭐야?’

시국은 멍하니 전자시계를 바라봤다. 그러다 시선을 내려 나연이와 장 목사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걱정스런 눈으로 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나연……장 목사? 진짜?”

도통 영문을 모를 시국의 말에 장 목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되겠다. 전도사님한테 가보자.”

장 목사가 시국에게 다가왔다. 나연이가 쪼르르 쫓아왔다. 장 목사가 시국의 손을 잡았다.

“시국아. 일단 전도사님한테 가보자.”

“그래. 어디 아픈 것 같은데 전도사님이 어디가 아픈지 알려주실 거야. 응?”

장 목사는 시국의 오른손을 잡고, 나연이는 시국의 왼팔을 잡은 채 그를 전도사에게 데려가고자 했다.

하지만 시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손쉽게 두 사람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살짝 뒷걸음질 치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오빠…….”

나연이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베였다. 장 목사도 땀을 뻘뻘 흘리며 걱정스런 눈으로 시국을 바라봤다.

“진짜라고?”

시국은 두 사람의 감정과 무관하게 혼잣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조금 전까지 오사카 제3초인형무소에서 죽어가던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회귀?’

혼란한 시국의 뇌리로 한 가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회귀.

과거로 돌아온 것.

시국은 그 단어를 떠올리곤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시국은 다시 한 번 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악명을 떨치던 B급 빌런의 굳은살 박인 손대신 어린아이의 희고 고운 손이 그 자리에 있었다.

시국은 울먹이는 나연이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하는 장 목사 사이를 뚫고 책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조그만 탁상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리 비싸지 않은 거울 속에선 열세 살의 아이가 웃는 것도 아니고 찡그린 것도 아닌 기괴한 표정으로 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시국이 거울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가 실내를 쭉 훑어봤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그가 기억 속에 묻어둔 풍경과 일치했다.

“씨발…….”

앳된 목소리로 시국이 욕설을 내뱉었다.

울기 직전이던 나연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장 목사는 깜짝 놀라며 소매로 땀을 닦아냈다.

‘회귀 같은 소리 하네. 씨발 진짜…….’

“으아아앙. 오빠 왜 그래. 무섭단 말이야.”

나연이의 울음소리를 뒤로한 채 시국은 그저 어이없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 * *

회귀.

2020년 1월 1일 이 세상에 게이트가 열리고, 초인들이 나타나며 별의별 요상한 것들이 현실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귀만큼은 여전히 판타지 소설 속의 소재로 남았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 오크나 트롤, 언데드 같은 몬스터가 거리로 뛰쳐나와 시내를 불태우고 다녀도.

초인들이 온갖 스킬을 이용해 그것들을 때려잡고 거기서 나오는 마정석과 부산물을 통해 부를 쌓을 때에도.

회귀만큼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당했다.

『나는 회귀자입니다.』

아주 가끔 자신을 회귀자라고 칭하며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 예언을 하던 자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였다.

『인생에 실패한 쓰레기들이나 회귀 같은 걸 생각하는 법이지.』

그리고 시국은 그 누구보다도 회귀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미 흘러간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다? 이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시국이 보기에 그것은 흘러간 시간에 집착하고 후회하는 머저리들의 몽상일 뿐이었다.

‘회귀라고?’

그랬기에 시국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자신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뼉을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그들의 뒤에 서서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어른들도.

생크림 케이크에 꽂혀 타오르는 열세 개의 촛불도.

이 모든 것이 시국에게는 익숙한 장면이면서도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사랑하는 시국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뭐 하니 시국아. 촛불 꺼야지.”

아이들의 말에 시국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타오르는 촛불을 껐다.

“우와아아아!”

“생일 축하해!”

촛불을 끄자 아이들이 시국에게 다가왔다.

“얍!”

목양실에서 펑펑 울던 나연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스럽게 웃으며 시국의 얼굴에 케이크 크림을 칠했다. 그리곤 손가락에 남은 크림을 빨아 먹었다.

“나연아 뽀뽀해!”

중학생, 지훈이가 바람을 잡았다.

“뽀뽀해! 뽀뽀해!”

그러자 그의 친구들이 곁에서 한마음이 돼 뽀뽀해를 외쳤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나연이를 바라봤고, 어른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던 나연이는 이내 시국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우워어어어!”

“사귀어라. 사귀어라.”

“나연이는 시국 오빠를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에이! 아니거든! 그냥 해준 거거든!”

아이들의 장난스런 목소리와 어른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자기 볼에 잠시 닿았던 나연이의 입술.

그 모든 것들은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 어디에도 가짜는 없었다.

그것이 시국을 더 혼란하게 했다.

‘진짜 회귀라고?’

케이크를 퍼 담는 보육원 선생들과 다섯 명 여섯 명씩 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국은 생각했다.

‘꿈이 아니라? 진짜?’

시국이 컵을 집어 들었다. 플라스틱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시국은 가만히 컵 안에서 거품을 내는 콜라를 쳐다봤다. 그리곤 천천히 그것을 마셨다.

강한 탄산과 달달한 향이 그의 미각과 후각을 자극했다.

시국이 컵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접시에 담긴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유심히 과자를 살펴보았다. 그리곤 그것을 입에 넣은 뒤 꼭꼭 씹어보았다.

고소한 맛이 그의 혀를 통해 생생히 느껴졌다.

‘이 감각이 다 현실이라고?’

시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어디 가?”

나연이가 물었다.

시국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

“으엑. 똥 싸러 가? 손 잘 씻고 와.”

시국은 말없이 자리를 빠져나가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앞에 서서 시국은 거울을 바라봤다.

형형색색의 고깔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

그것은 분명 열세 살 때의 자기 자신이었다.

‘회귀했다고? 이때로? 정말?’

시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시국은 거울을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도대체 왜? 누가? 어떻게?’

시국은 물을 틀었다. 세차게 쏟아지는 물을 손에 담았다. 그것으로 얼굴을 씻으며 시국은 끊임없이 되물었다.

‘진짜?’

한참 세수를 하던 시국이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어린 시국은 세상 모든 의구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만……혹시?’

순간 그의 뇌리로 생각 하나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그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코로 깊게 숨을 들이쉰 후 입으로 길게 내뱉었다.

‘상태창.’

순간 시국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눈이 강한 불신과 의구심으로 흔들렸다.

그러다 이내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