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화
최 씨 집안은 한국의 평범한 집안이다.
렌은 있는 그대로 솔직한 말을 내뱉은 거지만.
“평범한 집안? 웃기지 마! 어디가 평범해?!”
듣는 당사자는 어처구니가 없는 지경이었다.
“믿든지 말든지는 너희들 알아서 하시고.”
렌의 일관적인 태도에 지휘관은 빠득 이를 갈며 한 발작 물러서 협상의 자세를 취했다.
“리리스 파르데비아를 넘기면, 얌전히 물러나주지.”
“핫!”
렌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다……
콰앙!!!
할버드로 지면을 내려쳤다.
쩌저저저적 콰아아아앙!
갑작스런 타격에 바닥이 거미줄처럼 균열이 일어나 파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일순간 클라이노트 전체에 격렬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렌은 야수처럼 벼려진 눈동자로 지휘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건 얌전히 물러나는 게 아니지.”
파르르르르르.
렌의 흉포한 기운에 적들은 물론이고 아군마저 덜덜 떨었다.
반면 그에게 지켜지고 보호를 받는 당사자, 리리스는 기겁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당신 이게 무슨 짓이에요! 얼마나 많은 예산을 들여 이 건물을 지은 줄 알고나 있는 거예요!!!”
“…….”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빽 소리를 내지르자, 렌은 조금 당황했다.
리리스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벙거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바닥에 집어던지며 검지로 렌의 명치를 콕콕 쑤셨다.
예상 밖의 반응에 렌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나중에 변상해주면 될 거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위험하니까 섣불리…….”
“지금이다!”
한창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지휘관은 눈을 번뜩이며 부하들에게 신호를 내보냈고.
철컥! 철컥! 철컥!
리리스와 렌을 둘러싼 군인들이 일제히 총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빠득!
렌은 이를 갈며 자신의 양팔을 리리스의 어깨에 두른 뒤, 그대로 감쌌다.
타다다다다다닥!
쏟아지는 총격들은 렌의 등에 모조리 쏟아졌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팅! 팅! 팅! 팅!
렌의 피부에 맞닿은 총알은 뚫리기는커녕 오히려 불똥을 튀기며 튕겨나가는 기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휘관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각성자는 물론이고 교류자, 몬스터들에게도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특수 탄환인데.”
치이이이익!
강체술을 해제한 렌은 얼굴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그들에게 살기를 발산했다.
“죽을 걸 알고 쏜 거니까. 이쪽도 용서 없이 가면 되는 거지.”
크르르르.
오싹!
일순간, 렌의 입가에서 흉포한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은 이들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리고 렌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순간.
쇄액! 서걱! 서걱! 서걱!
그보다 한 발 일찍 섬광과도 같은 기척이 군인들을 스쳐지나갔다.
“쿨럭, 이, 이게 무슨?!”
그들이 들고 있던 총과 방탄조끼는 종잇장처럼 갈가리 찢겨나갔고.
서늘한 검흔이 기절할 만큼 얕게 살갗을 파고들었다.
생살이 통째로 찢겨 발겨지는 이질적인 느낌을 견디지 못한 군인들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혼절했다.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서 유유히 서있는 것은 먹색과도 유사한 빛을 품은 검을 들고 있는 엘프였다.
“에, 엘프까지…….”
믿기지 않은 사태에 지휘관은 주저앉고 싶을 만큼 절망에 빠져들었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실력자들이 대거 출현하다니…….
씨익.
렌은 얄궂게 웃으며 엄지로 엘프를 가리켰다.
“쟤도 최 씨 집안 진영인데.”
“크아아아악! 대체 그놈의 최 씨가 어디 최 씨야!!! 이렇게 된 이상, 너희들이라도 없애버리겠어.”
지휘관은 실성한 나머지, 가슴팍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육면체로 이루어진 아티팩트.
“……그건?!”
아티팩트의 실체를 깨달은 렌은 눈을 부릅떴으나……..
[이터널 큐브가 개봉됩니다.]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우우우우우!!!
급작스럽게 생성된 게이트 너머에서 엄청난 크기의 뿔을 가진 버팔로 몬스터가 콧김을 내뿜으며 튀어나와 지면에 발굽을 내딛었다.
쿠직!
생각보다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발을 딛기 무섭게 지면은 불길하게 떨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쿠쿠 콰앙!
녀석은 렌을 적으로 식별했는지 곧 엄청난 포효를 내지르며 렌에게 들이닥쳤다.
우드득.
렌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손목의 관절을 풀며 중얼거렸다.
“단순한 테러리스트는 아니라는 거네.”
“지금 무슨 여유를 부리는 거예요!!!”
끝까지 태평한 렌의 기세에 리리스는 버럭 소리를 내지른 순간.
우지끈 덥석!
렌의 손아귀는 어느새 버팔로 이마의 살점을 꿰뚫고 머리를 우악스럽게 쥐고 있었다.
쿠쿠쿠쿠쿠쿠 콰아아아아아앙!
더욱 놀라운 것은, 버팔로 몬스터의 맹렬한 돌진이 그것으로 끝이 났다는 것이다.
콰콰콰콰쾅!
그리고 그 대신, 렌이 버팔로 몬스터의 머리를 벽에 갖다 박으며 북도 끝을 가로질렀다.
그 여파로 지면은 분쇄되고 천정에 위치한 조명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꺄아아아악!”
그로 인해 놀란 사람들은 일제히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다친 사람은 전혀 없었고.
콰아아아앙!
벽을 하나, 하나 부수며 끌려 나간 버팔로 몬스터는 마침내 외벽까지 밀려나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쿠우우우우.
재앙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도 고공에서 추락하는 공포를 인지하고 있는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렌은 싸늘한 표정으로 버팔로 몬스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대를 가릴 줄 알고 덤벼야지. 무조건 힘만 쓰면 되겠어?”
마지막만큼은 자비를 베풀겠다는 듯, 버팔로 몬스터 머리에 박아 넣은 손을 빼든 렌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가까스로 떨어질 위기를 면한 버팔로 몬스터는…….
쿠우우우우.
이내 분이 차올랐는지, 힘껏 발굽을 내딛으며 렌을 들이받기 위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그보다 일찍…….
콰앙!
렌의 발이 버팔로 몬스터의 얼굴을 찌그려 뭉개버렸다.
충격의 여파를 이길 수 없는지 단단하기만 했던 뿔은 아작이 나고 얼굴은 그대로 터져 피와 살점이 산산이 흩어졌다.
“……아아, 찝찝해. 가서 목욕이나 해야겠네.”
렌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시 지휘관 앞으로 다가갔다.
“…….”
“…….”
그때까지 주변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압도적으로 몬스터를 압살시켜버릴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 히익! 오지 마!!”
겁에 질린 지휘관은 그 즉시 렌에게 총격을 가했지만.
티잉! 티잉! 티잉!
어김없이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렌은 일부러 맞아주며 그에게 다가오며 검지를 끌어 모았다.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 갔어야지.”
퍼억!
그렇게 렌의 손가락이 그의 이마에 타격을 가한 순간.
“끄아아아악!”
머리에 흥건히 피가 흘러내린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졸도해버렸다.
대낮에 벌어진 테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사람들은 아직까지 벙찐 표정으로 렌과 칼을 쳐다봤지만.
정작 사건을 순식간에 진압해버린 두 사람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거래?”
“잘 모르겠어. 통신도 되지 않아서 일단 가장 떠들썩한 곳으로 와보니까 네가 있더라고.”
“그래. 우리 귀염둥이들은?”
렌은 최 씨 가문의 3남매를 떠올리며 염려스런 표정을 지었고.
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라페아 님과 니파 누나가 갔으니까 괜찮을 거야.”
“음. 절대로 무사하겠군.”
긴장감 없이 떠드는 그들의 대화에 리리스는 곧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최건우 헌터의 가족들 되시나보군요.”
“우리 형 알아?”
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리리스는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알죠. 절 차버린 못된 분이니까요.”
“…….”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렌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너는 누군데 녀석들한테 타깃이 된 거야?”
“제 이름은 리리스 파르데비아, 이 나라 총수의 딸이면서 동시에 재무부 차관을 맡고 있죠.”
“감투가 대단하네.”
어린 나이에 까마득히 높은 재상의 위치에 오르다니…….
렌은 진심으로 놀라 혀를 내둘렀고, 리리스는 팔짱을 끼며 렌과 칼에게 제안을 건넸다.
“갑작스럽지만, 당신들에게 제안이 있어요.”
“뭔데?”
“현재, 클라이노트는 의문의 테러리스트들한테 점령당한 상태에요. 먼저 그들을 진압하는 데 도와주시고 테러를 벌인 내막을 잡는 데 협조해주세요. 그에 준하는 보수는 반드시 드릴게요.”
“급한 상황이라는 건 알겠는데, 우리가 지금 꼭 만나봐야 될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지.”
“거절하겠다.”
“좋아요.”
렌과 칼의 단호한 거부에 리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 아가씨 왜 이렇게 쉽게 납득을 하는 거지?
리리스는 나른한 표정으로 은백발의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대신, 닥치는 대로 부숴버린 시설에 대해 경위를 묻겠어요.”
“지, 지금 당장? 이걸 물어내라는 건 좀 너무 하지 않아?”당황한 나머지, 렌은 말을 더듬었고 리리스는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음산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은인들에게 보상을 내드리기는커녕, 배상을 하라니 말도 안 되죠. 말씀 그대로 시설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경위만 일러주시면 돼요. 아주 천천히.”
“…….”
그녀의 의도를 깨달은 렌은 개탄을 금치 못 했다.
자신한테 협조를 안 하면, 죽을 때까지 이 자리에서 못 움직이게 만들겠다는 엄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박과 동시에 리리스는 확실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예의를 갖추기도 했다.
“나라가 위험해요. 지금 당장 수습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몰릴 거예요. 도와만 주시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아.”
그녀의 진중한 부탁에 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알겠어. 도와주면 되잖아. 괜찮지?”
렌은 넌지시 칼에게도 의사를 물었고 칼은 어렵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페아 님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또 지금 상황을 수습하는 게 오히려 더 빨리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씨익.
협의를 끝마친 렌은 빙그레 입 꼬리를 올리며 리리스에게 말했다.
“좋아. 협력할게.”
“감사합니다!”
리리스는 반색하며 얼굴을 들어 올렸고 렌은 슬그머니 검지를 추켜세웠다.
“단, 조건이 있어.”
“무, 무슨 조건이요?”
리리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렌을 쳐다봤다.
설마 지금 와서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지는 않겠지.
리리스는 염려스런 표정으로 렌은 역시나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건우 형한테 차인 이유 가르쳐주면 안 돼?”
“…….”
쿠구구구구.
눈치 없는 질문에 리리스의 눈밑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척!
“잠시 검 좀 빌릴게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칼에게 검집을 빼앗아 검을 꺼내들었다.
“왜, 왜 그러는데?”
렌은 경직된 표정으로 귀를 꼿꼿이 세웠고.
리리스는 음산하게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조건에 조건을 걸죠. 그걸 말한 대가로 당신 꼬리만 싹둑 잘라갈게요.”
발설직후.
리리스는 완전히 검을 빼들며 렌을 쫓아갔고.
“협상 왜 한 거야!!!”
깜작 놀란 렌은 그녀가 휘두른 검을 피하며 급하게 발을 박찼다.
30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