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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300화 (300/308)

300화

똬리를 트는 뱀, 그리고 건우가 서있는 곳은 탑의 100층에 있는 무형의 공간이었다.

이곳부터는 장소라는 개념이 모호해지는 공간으로…… 주변 곳곳에 3차원 다각도형처럼 생긴 신들의 문자가 사방팔방 흩어져 있었다.

이곳은 뱀이 본격적으로 탑을 정복하고 난 후 누구의 출입도 금한 곳이었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자신에게 끝없이 도발을 날리던 교란자, 최건우가 이곳에 당도해 있었다.

-어째서 네놈이 여기에 있는 거지?

심기에 거슬렸는지, 뱀은 이맛살을 좁히며 건우를 노려봤다.

건우는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의 마지막 패는 결국 내 수중에 들어왔어.”

-?!

마지막 패라고 언급한 게 ‘니하트’임을 깨달은 뱀은 진심으로 깜짝 놀란 듯 보였다.

건우는 지그시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의외라고 생각했나봐. 난 줄곧 숙적인 너만을 생각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말이야. 정말 섭섭한데. 안 그래? 파.편.”

-나를 향해 저급한 발언을 내뱉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놈이 나에 대해서 뭘 알지?

발설 직후.

쿠구구구 콰아아앙!

뱀의 전신에서 탁하고 어두운 기운이 활화산처럼 피어올랐다.

압도적인 마나의 출력에 탑 곳곳의 대기가 불안정하게 뒤흔들렸지만, 건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뱀의 근본을 찌르는 답을 내뱉었다.

“너의 정체는 티아마트.”

티아마트.

그녀는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대지모신이자 11종의 괴물을 낳았다고 일컬어지는 여신이라 알려졌다.

하지만 건우는 아직 말을 마친 것이 아니었다.

“……에게 빙의한 아자토스의 파편이지.”

-?!

정곡을 찔렸는지, 뱀은 크게 놀라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7성급의 괴물을 탄생시킬 수 있는 이유도 네가 빌붙은 육신, 티아마트의 힘을 아자토스의 능력으로 한껏 활용해 증폭시켰기 때문이고 말이야.”

아자토스.

그 이름은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외우주 최강의 신격으로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멸망시켜버리는 강대한 신이었다.

외우주의 신격.

그것은 탑에 있는 모든 신들이 견제하며 경멸하는 존재들이었다.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들은 상식 밖의 만행을 저지르는 무자비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뱀은 지그시 눈매를 좁히며 자신의 근본을 떠올렸다.

정확한 계기는 모른다.

아자토스는 어떤 이유로 파괴되어 세상 곳곳에 자신의 파편을 흩뿌렸다.

똬리를 튼 뱀 같은 경우에는 우연찮게 여신의 몸에 빙의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신들은 그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유일무이하게 이를 깨닫고 늘 장난을 치며 경계를 해왔던 것은 바로 차이트였다.

경계한 이유는 단 하나.

파괴 충동을 이기지 못한 아자토스의 파편이 반드시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똬리를 튼 뱀’의 목적은 전 인류를 몰살하고 자신의 창조물만을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실패로 끝났다.

그녀가 만들어낸 창조물들은 파괴의 충동으로 전 인류를 말살한다는 목적에는 충실했지만, 홀로 살아가라는 임무만큼은 극도로 꺼려했다.

이미 너무 강한 나머지 곁에 있어줄 이들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아라크네는 창조주인 그의 뜻을 거스르고 알을 낳았으며…….

브렌넨 같은 경우는 활동을 중단하면 온전히 잠에만 빠져들었다.

그것이 그가 만들어낸 7성급 몬스터들이 고독을 참는 비결이었다.

“……딱하네. 애써 만든 창조물들은 내 명이나 따르고 말이야.”

“입 닥쳐!”

콰아아아앙!

건우의 말에 짜증이 났는지, 어슬렁거리던 뱀의 그림자 속에서 광포한 기운이 뛰쳐나와 건우를 습격했다.

[게이트가 생성됐습니다.]

그러자 건우의 뒤에 생성된 게이트 너머에서 니하트가 튀어나와 날개로 건우를 둥글게 감쌌다.

콰아아앙!

아이기스의 능력은 뱀의 광포한 기운을 가뿐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주인의 신변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스스스스.

니하트는 하데스의 투구, 퀘에네의 능력까지 발동해 건우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지금 와서 도망가려는 수작이냐!!! 썩 튀어나와!

“난 도망가지 않아.”

뱀의 짜증 섞인 외침에 건우는 당당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차이트는 아마 너 말고도 다른 파편들을 견제하기 위해 나 같은 사도들을 보내고 있겠지.”

슈타크나 젠제만의 목적은 모르지만, 분명 파편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네가 왜 차이트를 두려워하는지도 이제 알았어.”

스스스스.

니하트와 함께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건우가 말했다.

“근데, 그거 알아? 지금부터 네가 두려워해야하는 건 나야.”

[게이트가 생성됐습니다.]

건우의 선포와 함께 게이트에서 각 층계를 다스리는 보스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이그너스 보스들의 총집합.

쿠구구구구.

건우가 힘을 각성함에 따라 보스들의 기운들도 무척이나 강해져 있었다.

스릉.

그와 동시에 건우는 마검, 루나 다이크를 빼들며 ‘똬리를 튼 뱀’을 직시했다.

“이건 너와 나의 전생의 인연을 매듭짓는 싸움이야. 우리는 종말의 길을 걷지 않고, 반드시 너를 멸망시킬 거야.”

-정말이지, 차이트와는 별개로 네놈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이쪽도 너만 생각하면 밥맛 떨어져.”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앙!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본체로 현신한 똬리를 튼 뱀과 건우의 진영이 충돌했다.

***

콰르르르 콰앙!

쏴아아아.

서울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잔뜩 깔리며 소나기와 천둥번개가 쏟아졌다.

집에서 비가 오는 그 풍경을 보며 최지혜는 멀뚱멀뚱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혜 씨,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아직 형님 오려면 멀었습니다.”

그녀가 주시하는 방향에는 길쭉하게 세워진 탑이 있었다.

일반인으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공허의 영역.

어떤 위험이 도사렸는지 알 길은 없으며, 한국에서는 현재 국내 랭킹 1위인 최건우가 진입한 이래 누구도 탑을 등반하는 자가 없었다.

그 최건우가 탑에 등반을 시도한지 어언 2년 7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지혜는 쀼루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약속 어기면 꼭 올라가서 찾을 거예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야죠.”

최 씨 집안의 고집을 알고 있던 박춘삼은 건우가 오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최지혜.

이 아가씨는 온순한 기품을 갖췄으면서도 사고를 칠 때만큼은 결연한 의지로 저지르고 마는 아주 무서운 아가씨였다.

지혜는 진지한 눈빛으로 춘삼을 보며 말했다.

“그때가 되면, 춘삼 씨도 같이 가줄 거죠?”

“푸훗!!!”

지혜의 대담한 제안에 춘삼은 사례가 들려 먹고 있던 사과를 뱉으며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쿨럭, 쿨럭. 가, 갑자기 대뇌 전두엽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침입해…….”

춘삼은 다급하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늘어놓았고, 지혜는 칫 하는 소리와 함께 소파에 앉으며 춘삼을 타박했다.

“그렇게까지 질색할 것 없잖아요.”

“저, 저는 지혜 씨가 학업을 끝마칠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야 할 사명이 있으므로 탑에는 결코 갈 수 없습니다.”

딱 봐도 노골적으로 가기 싫다는 혐오의 표정에 지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반박했다.

“월반해서라도 학업을 끝마친 다음에 간다면 어떡할 건데요?”

“……그렇다면, 교수를 매수해서 어떻게든 F학점으로 만들어 다시 학업에 매진하게 만들어야겠죠.”

“…….”

아주 비열한 방법에 지혜는 치가 떨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춘삼은 여전히 뿌루퉁한 지혜를 보며 차분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님은 국내 랭킹 1위, 그리고 탑의 음모를 막아낸 영웅 아니겠습니까? 저한테도 떠나는 인사말을 전화로만 하고 홀연히 떠났지만,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와 반갑게 저희들을 맞이할 겁니다.”

“……춘삼 씨.”

잠시 감격한 표정을 지은 지혜였지만……

“어떻게든 안 가겠다는 의지가 아주 확고하네요.”

오랫동안 지낸 탓인지 춘삼의 본성에 쉽사리 속지 않았다.

“이제 그만 봐주십시오.”

춘삼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지혜를 쳐다보자 그녀는 풋,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건우와 떨어져서 외로운 그녀를 지켜온 것은 늘 춘삼이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볼게요.”

건우가 약속한 기한은 3년.

아직 기한이 좀 더 남았기에 그녀는 가고 싶다는 마음을 꾹 억눌렀다.

“그러지 말고 TV라도 볼까요?”

퉁명스런 표정을 짓는 그녀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춘삼은 TV를 틀었다.

삑!

-비상입니다. 기상관측 결과, 탑을 중심으로 고에너지가 집결하는 영향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호우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화면에 나온 것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재해 소식이었다.

“……..”

지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기 시작했다.

춘삼은 재빨리 채널을 돌렸다.

삑!

-지금처럼 이렇게 호우가 계속되다가는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해 대륙 중 하나가 물에 잠기는 사태가…….

삑!

-주께서는 다시금 이 땅에 호우가 땅을 덮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우라질!!! 돌리는 채널마다 왜 이래!”

극대노한 춘삼이 소심하게 리모컨을 소파 구석에 집어던지며 쒸익쒸익 화를 냈다.

“일단 홍수가 날 지도 모르니 대피를 하는 게…….”

입장은 급격히 역전해 이제는 지혜가 춘삼을 달래는 꼴이 돼버렸다.

애초에 건우 일만 아니라면 지혜는 대부분의 일에 침착했다.

바로 그때.

끼에에에엑!

지붕 근처에 있던 주작이 본체의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화르르륵! 파아앗!

먹구름을 걷혀낸 주작은 거대한 불길로 빗방울들을 모조리 증발시켜버렸는데, 평소 지혜의 일상에 개입하지 않던 주작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다소 의외라 할 수 있었다.

“지금 날씨는 아마 탑이랑 연관돼 있겠죠.”

“아마도요. 그럴 것 같습니다.”

춘삼은 다소 수척해진 모습으로 이를 수긍했고, 지혜는 불안한 표정으로 탑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오빠.”

***

탑에서 드디어 뱀과 교란자가 격전을 벌였다.

탑의 주민들부터 비롯해 신들까지 이 싸움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결과는 예상 밖의 파국을 불러왔다.

먼저 외적으로 끼친 영향은 100층부터 90층까지를 둘이 마음대로 넘나들어 요란하게 부셔 버렸다는 것이다.

격전이 펼쳐진 지 어언 열흘째.

탑 곳곳에는 온몸이 토막 난 뱀의 몸통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그 한편에는 한쪽 팔을 잃고 눈이 꺼진 바포메트가 낫을 든 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하늘과 땅, 바다를 마음대로 드나들던 거대한 비마나, 스키드 블라드니르는 이곳저곳이 부서진 채 땅에 널브러졌다.

타닥, 타닥.

뒤이어 네메시스와 케이론이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 넝마처럼 바닥을 굴렀다.

끝까지 전투에 임한 것은 7성급의 몬스터들뿐이었다.

콰앙! 콰앙!

바로 그 순간.

100층의 경계가 다시 허물어지며 99층 하늘 너머로 온몸이 부스러지기 일보 직전인 브렌넨이 나타나 추락했다.

이대로 지상으로 떨어졌다가는 지면이 불바다가 돼버린다는 것을 아는 신들이 즉각 대비하려던 찰나,

스슥, 스슥, 스슥.

허공에 생성된 거미줄이 떨어지는 브렌넨을 받아내 참사를 미리 예방했다.

“갸우.”

거미줄에 서 있는 코콘의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옷자락 곳곳도 찢어졌지만, 큰 피해는 입지 않은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피해는 경미했던 것이지만, 그 사실이 내심 불만이었는지 코콘은 볼을 뿌루퉁 부풀리며 깨진 균열을 지켜봤다.

***

100층, 공허의 지대.

그곳은 건우의 참격에 의해 무수히 토막 난 뱀의 육신으로 한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세피아는 온몸이 깨져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고, 니하트도 날개가 처참하게 꺾인 채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었다.

타앙!

그리고 마침내 이 지겨운 승부의 끝이 났다.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은 무딜 대로 무뎌진 루나 다이크를 든 건우였다.

뱀은 청년의 모습으로 신전의 기둥을 등에 댄 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나의 패배인가. 어째서…….

뱀은 믿기지 않는지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건우는 지금 당장이라도 꺼질 듯 약하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유는 하나야. 네가 벌인 만행이 나라는 존재를 키워냈으니까.”

건우의 머릿속으로 전생부터 지금까지의 인연이 스쳐지나갔다.

세이비어, 니제르, 카심과 호프너, 최지혜, 라페아, 니파, 렌, 볼프강 등.

아마 그들과 인연을 맺지 않았으면 지금의 결과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야 될 때가 왔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스스스스.

금빛을 두른 루나 다이크의 무딘 날이 다시금 날카롭게 벼려졌고…….

푸욱!

검신이 그대로 뱀의 심장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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