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마침내, 차이트가 남겨둔 마지막 스킬을 완전히 터득하는데 성공했다.
스스스스스.
그로 인해, 건우의 몸에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마나의 농도부터 양까지…….
그 경지는 어느덧 이그너스 마나 연공식 10성까지 도달해 있었다.
-힘을 완전히 몸에 정착시킬 때까지 무리해서는 안 된다.
“알고 있어요. 그치만 이게 무리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세이비어의 충고에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양손을 모아 기도하듯 자세를 취했다.
스윽.
그리고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두 존재를 떠올렸다.
2계층, 얼음미궁의 보스, 세피아.
5계층, 작렬지옥의 보스, 브렌넨.
전생에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분명 최악의 숙적이었을 이 둘은 이제 건우의 충직한 부하가 됐다.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지금, 건우는 이 둘을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아주 잠깐, ‘찰나의 회귀’를 거쳐 임시로 7성급으로 되돌릴 수 있었지만, 지금 시전하는 비전은 시간의 제약 없이 완전히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콰아아앙!
그 여파로 각 계층은 지반이 흔들리는 체험을 맛봐야 했다.
힘의 근원지인 얼음미궁 전체에는 쩌걱 균열이 일어나며 붕괴 직전까지 갔고, 용암으로 출렁이는 작렬지옥은 하늘 끝까지 분화를 일으켰다.
쨍그랑!
힘의 여파는 던전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이그너스의 반지에 박힌 보석까지 깨뜨렸다.
스스스스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균열은 금빛 마력에 의해 씻기듯이 사라졌다.
건우의 힘은 지축이 흔들리는 두 던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스스스.
얼음미궁 전체에 스며든 금빛의 마력이 쪼개지고 붕괴되기 일보 직전인 미궁을 복구했고, 7성급의 모습으로 돌아온 세피아의 몸까지 감쌌다.
얼음처럼 혹독하기만 했던 세피아의 표정은 잠시지만 평안한 기분에 취해 온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악!
같은 시각, 작렬지옥 역시 치솟던 분화가 가라앉았다.
용암바다를 홀연히 부유하던 브렌넨도 300미터 크기의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왔지만, 전과는 달리 얌전한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세피아와 브렌넨을 길들이는데 성공했어.’
7성급 특유의 야욕과 파괴충동의 제어는 이전 9성의 모습으로도 불가능했다.
세피아야 그동안 정분을 쌓아서 그 성질을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한 것뿐이지, 브렌넨은 틈만 나면 지배를 거부하며 거칠게 저항했다.
물론 그때마다 지배권을 행사해 강제로 억눌러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온전한 전력을 손에 넣은 지금, 뱀과의 전쟁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뱀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뭔가 결심한 모양이구나.
“폴세이어(Fall sayer)를 사냥할 거예요.”
‘똬리를 튼 뱀’은 현재 제약의 법칙을 깬 대가로 긴 잠에 빠져 있는 중이다.
그동안 세계의 멸망을 위해 자신의 지지기반인 클랜을 움직여 쉼 없이 활동했지만, 그 클랜조차 건우의 손에 의해 박살난 지금 녀석은 준비해왔던 마지막 패로 종말을 고하는 자(Fall sayer)를 선택했다.
그 드높은 자존심을 가진 신들이 동맹을 불사할 정도면 이것이 꽤나 강력한 패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그 누구도 폴세이어의 실체를 모른다.
형체부터 그 능력까지…….
이런 점을 감안하면, 건우가 성좌들과 동맹을 맺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동맹을 맺는 게 마냥 옳은 선택이 될 수는 없다.
교란자는 신들이 정한 삼라만상의 법칙을 깨뜨리는 이단아.
오죽하면 탑에서 등재되기 어렵다는 ‘번외’로 취급된단 말인가.
이런 점에서 동맹은 양날의 칼.
토사구팽을 당하는 경우도 분명 생각해둬야 했다.
가뜩이나 강력한 적을 눈앞에 두고 그런 경우의 수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었기에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었다.
-심혈을 기울이는 게 좋을 거다. 근데, 폴세이어가 어디서 튀어나올지는 알고 있냐?
헤르메스는 그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씨익.
건우는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인벤토리에서 컨패스 버드를 소환해 자신의 검지에 앉혔다.
“이 녀석을 이용하면 되죠?”
-폴세이어란 추상적 개념은 검색이 불가능한 거 아니었냐?
“헤르메스가 말해줬잖아요. 연합의 구성원을…….”
올림포스 신들부터 아스가르드 신, 그리고 타르타로스의 칠대마왕까지…….
그 구성원들이 몰려있는 곳에 폴세이어가 있다.
헤르메스는 최소한의 정보만 넘겼기에 건우가 알아낼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
세이비어는 다소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로 건우를 흘겨보다……
-영악한 자식.
이라고 한 마디를 내뱉었다.
피식.
이제는 그것이 칭찬처럼 들렸는지, 건우는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폴세이어 격퇴가 실패로 끝난다면 신들 역시 좋을 건 없으니, 딱히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그건 잘 알고 있어요.”
건우는 냉혹한 눈초리로 앞으로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신은 생각보다 편협적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다.
나는 전지전능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 틀린 말은 될 수 없으나, 문제는 한참 낮은 계급을 갖춘 신조차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콰아아아앙!
뱀이 똬리를 틀어 제약의 법칙을 깨뜨린 순간.
신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성좌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하계에 강림했다.
탑의 주민들이 봤을 때, 그날 하늘은 새하얀 유성우가 가득 뒤덮여 있었을 것이다.
하강한 층은 가지각색.
그러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제약의 법칙으로 인해 60층 밑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힘을 키운다면 최고신의 권위까지 누릴 수 있을 테니.
탑의 시스템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다.
모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꾸륵.
하지만 신들은 하나를 간과하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을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큰 실수로 다가오리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61계층.
꿈틀.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는 자신이 추종하던 헤라를 배신하고 더욱 큰 업적을 쌓아 완전한 신이 되려는 음모를 꾀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기 전.
꿈틀.
백 개의 눈은 자신을 뒤쫓아 온 그림자를 감지하고는 즉각 강대한 신력으로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콰직!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형체의 무언가에 집어삼켜졌다.
아르고스를 섭취한 생물은 더욱더 몸이 커졌고, 전신에 백 개의 눈이 생겨나 일렁거렸다.
역시 61계층에 불시착한, 마물이자 신으로 취급받는 메두사.
꾸르르르륵.
그녀는 아르고스가 포식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겁을 집어먹고 부리나케 발을 박찼으나.
꿈틀.
백 개의 눈으로 그녀를 감지한 포식자는……
크아아앙!
사납게 포효하며 메두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민첩하면서도 기민한 움직임에 퇴로가 없다고 확신한 메두사는 즉각 석화의 권능을 이용해 포식자의 몸을 경직시켰다.
쩌저저저저적!
포식자 몸은 순식간에 돌로 변해버렸지만…….
콰직! 콰앙!
단 한 번 기합을 내지르는 것으로 석화의 권능을 깨뜨리고 더욱 더 거리를 좁혔다.
-궈, 권능 파훼!!
당황한 메두사는 신력을 발휘해 포식자를 다시 한 번 제압하려고 했으나…….
콰직!
예외 없이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승화됐다.
마물이면서도 신으로 취급되는 이들이 순식간에 두 명이나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 불길의 징조를 감지하지 못한 신들은 마음껏 탑을 활보하고 다녔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포식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킬 뿐, 딱히 신만을 골라서 사냥하겠다는 본능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냥 그런 존재로 태어났을 뿐인 존재.
그 포식자의 사냥 본능을 일깨운 것은 의외로 강력한 권능을 가진 신이 아닌 아무 힘도 없는 연약한 신, 한 개체였다.
그의 이름은 크바시르.
먼 옛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의식으로 신들의 침에 의해 태어난 존재.
훗날 다크 엘프들에 의해 꿀술로 빚어지는 운명을 맞게 되나…….
그는 그런 자신의 미래까지 알고 있는 현명한 자였다.
지혜로 손꼽자면 오딘을 뛰어넘는 존재.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능력을 활용할 때의 기준이다.
평화와 협정에 의해 태어난 존재기에 그의 지혜는 결코 악용될 수 없었다.
이번에 제약의 법칙이 해금된 후 불시착하게 된 것도 그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어쩌다 휩쓸려 떨어지게 된 것뿐이다.
그리고 방황하는 크바시르에게서 나는 달콤한 체취에 취해…….
콰직!
포식자는 그대로 크바시르를 집어삼켜버렸다.
그 순간, 모든 인류를 말살하려는 본능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혜가 더해져 한 명의 새로운 악신이 탄생했다.
자신이 태어난 의의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지 깨달은 포식자는 본격적으로 신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강한 신을 집어삼킬 수 없기에…….
그 신을 집어삼킬 때까지 남은 약한 신들을 집어삼켰다.
강의 신 아켈로스, 복수와 저주의 여신 에르니에스, 천둥과 벼락을 일으키는 뇌공 등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듯 보였지만.
그것은 다른 신을 공략하기 위한 제물로써 신들을 섭취하는 것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포식의 대상이 신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구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먹어치운 무구들은 완전히 동일한 능력을 가진 포식자의 신체로 재탄생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포식자의 심각성을 깨달은 신들끼리 연합하여 퇴치하려고 했으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포식자의 존재감은 더 없이 커져갔다.
크바시르로 인해 고도의 지능을 갖추게 된 포식자는 스스로 입을 열어 자신을 지켜보는 신들에게 선포했다.
-아아아아 신을 탐식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만찬이구나. 너희가 우리를 사냥하는 것을 즐겼듯이, 나도 너희들을 사냥하겠다. 나는 폴세이어(Fall sayer), 종말을 고하는 자다.
극단적으로 신을 사냥하는 데 몰두하겠다는 선포.
심지어 그것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건지, 폴세이어는 빠른 속도로 신들을 포식하며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 신위는 어느새 최고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제우스, 오딘, 옥황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나마 그 성장을 제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강의 마신, 펜리르였다.
건우와의 계약을 통해 펜리르 역시 닥치는 대로 신을 사냥하고 다녔는데, 놀랍게도 그 속도가 폴세이어보다 더욱 빨랐다.
이로 인해 펜리르에게 위협을 느낀 폴세이어는 펜리르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울여 사냥을 하고 다닌 것이다.
하지만.
3주.
고작 3주 만에 녀석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신으로 성장했다.
***
우르르르 쾅쾅!
새까만 뇌운이 하늘 높은 곳에서 원형을 이뤄 사방팔방 번개를 뻗어내고 있었다.
장소는 거대한 섬을 중심에 둔 아득한 바다.
지형과 맞지 않지만, 이곳은 65층, 절망의 평원, 바스테타스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하이랭커조차 진입하기 어려운 시련이 가득 펼쳐져 있었는데.
지금 바스테타스에는 플레이어가 아닌 성좌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뇌운을 지켜보고 있었다.
올림포스 진영.
그곳에 갑주를 갖춰 입은 제우스를 중심으로 12주신이 모였다.
아스가르드 진영.
이곳 역시 최고신 오딘을 중심으로 뭉쳐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타르타르소 진영.
그곳에는 평소 본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칠대마왕이 본체를 드러낸 상태로 뇌운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성격도, 성향도 제각각.
누군가는 선으로 추앙받으며, 누군가는 악으로 멸시와 증오를 받는 신들이었다.
이런 색깔이 다양한 신들이 연합을 갖출 정도면 사태가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상황을 관전하던 헤르메스는 눈매를 지그시 좁혔다.
늘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던 그는 지금 어울리지 않게 침중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조짐을 느낀 순간, 그는 각 연합에 있는 신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전파했다.
“……녀석이 눈을 떴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콰아아앙!
뇌운을 찢어발기며 폴세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29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