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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293화 (293/308)

293화

‘슬슬 신이 개입할 때인가.’

낯익은 복장에 건우는 그가 올림포스의 최고신 제우스의 전령이자 도둑의 신인 헤르메스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챘다.

“올림포스에서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뭐지?”

“오호, 나를 알아봐주다니, 이거 영광인걸. 그래도 자기소개는 스스로 하게 해달라고. 내 이름은 헤르메스. 뱀의 체제에 위협을 느끼고 최고 숙적인 당신과의 동맹 의사를 전하기 위해 왔어.”

‘동맹?’

의외의 제안에 건우는 적잖이 당황했다.

탑에서 교란자란, 기존의 신과 하이랭커가 정착시킨 체제를 무너트리는 위험요소 중 하나였다.

시스템에서 번외로 취급하는 이유 역시 그 위험도 때문에 책정된 결과일 것이다.

이 말은 즉, 건우의 숙적이 똬리를 트는 뱀이라고 하지만 올림포스든, 아스가르드든 명망 높은 신위를 가진 성좌들에게도 건우는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건우의 경계 어린 시선에 헤르메스는 곤란한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지금 신들은 당신보다 더 뱀이 위협이고 막장인 존재라고 여기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경위를 알고 싶은데?”

뚜벅뚜벅.

건우의 말에 헤르메스는 싱긋 웃으며 모자와 망토를 구석에 비치된 옷걸이에 걸친 뒤, 테이블에 다가와 건우의 맞은편에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목을 좀 축일 수 있을까?”

‘넉살 좋은 놈이네.’

건우는 홍차를 타 건넸고, 그것을 받아든 헤르메스는 평안한 표정으로 들이키며 말했다.

“하아, 이렇게 아리따운 미녀들 곁에서 마시니 기분이 좋은걸.”

찌릿!

건우는 표독스러운 눈매로 헤르메스를 노려보았다.

시선의 의미를 간파한 헤르메스는 그 시선을 즐기는 듯 입을 뗐다.

“어이쿠야. 실례. 연인들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건, 아무래도 무례하지.”

“무례하지. 그러니까 한 백 미터쯤 떨어져.”

“……그럼 어떻게 대화해.”

니파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건우에게 딴죽을 걸었다.

헤르메스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대화는 가능하지만, 가급적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는 걸 중요시 여기니까 양해를 부탁하지.”

“윤허하지. 자질구레한 일로 서로 시간을 끄는 것도 번거로우니까.”

라페아는 차를 후룩 들이키며 건우 대신 답해주었다.

‘역시 십존은 신에 버금가는 존재니까. 동등한 눈높이에서 이야기가 가능하구나.’

그녀를 흘깃 바라보던 건우는 다시 헤르메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부터 먼저 할 거지?”

“우선 7성급 몬스터의 이야기부터 해볼까? 현재 탑 안에서와 바깥에서 확인된 개체는 총 다섯 마리, 맞지?”

“…….”

뭐든지 알고 있다는 뉘앙스에 건우는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눈매를 좁혔다.

헤르메스는 뻔뻔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확인된 개체를 나열했다.

“일단 태어난 순서대로 말해볼게. 처음은 심연을 삼키는 뱀, 프리메라. 거대한 바다뱀으로 그 형체는 ‘똬리를 튼 뱀’이 자신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으로 일컬어지지. 두 번째는 거미의 여왕, 아라크네, 세 번째는 서방의 대륙을 단숨에 빙하지대로 바꿔버린 창빙의 군주, 세피아, 네 번째는 동방대륙을 휩쓸고 다닌 이럽션 웨일, 브렌넨, 다섯 번째는 아직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칠대마왕의 권능 일부와 아라크네의 힘을 계승받은 몬스터. 이름이 뭐라고 했지? 뭐랄까. 굉장히 귀여운 이름이었는데.”

뜨끔!

괜스레 작명센스가 들통 난 것 같아 건우는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코콘이야.”

“그래. 코콘. 하하하하하! 앞선 선배들과 달리 정말 귀여운 이름인 걸.”

“한 대 맞고 싶냐?”

빠직!

건우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적의를 드러냈다.

헤르메스는 쓴웃음을 짓다가 처음으로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앞서 만들었던 것들은 모두 모르모토에 불과해.”

“모르모토?”

그 단어가 전해주는 깊이를 깨달았는지, 건우의 안색이 심각하게 경직됐다.

그것은 비단 라페아와 니파도 마찬가지였다.

5성급 개체의 강인함은 무척이나 다양해 힘의 척도를 판별하기는 어렵다.

6성급 역시 개체마다 강력함의 범위가 무척이나 넓지만.

5성급과 비교하면 그 힘의 강함이 확연히 달랐다.

실제로 니파는 20계층, 엘더리아를 6성급 라폰에게 장악당해 오랜 시간 고난을 겪어왔다.

건우 또한 탑 바깥에서 6성급 프리메라를 퇴치하지 못했다면 아마 지구의 절반은 해일 같은 참사에 파묻혀 사라졌을 거다.

그렇다면, 7성급은 어떨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7성급부터는 뱀만이 창조가 가능하며……

그 힘은 신들이 연합해 때려잡아야 될 정도로 강인하다고 일컬어진다.

그 증거로 이럽션 웨일, 브렌넨은 수백 년간 31층에서 플레이어와 하이랭커를 학살하며 엄청난 절망을 안겨주었다.

한데, 지금까지 만나왔던 7성급 몬스터가 모르모트에 불과했다?

평소라면 어떤 미친놈이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였냐며 신랄하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발언을 한 것이 다름 아닌 신들의 은밀한 비밀까지 알아낼 수 있는 헤르메스다. 신빙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헤르메스는 한층 더 기품이 넘치는 눈빛으로 입을 뗐다.

“그 모든 것들은 단 한 개체를 만들기 위한 실험작이었단 말이지.”

“?!”

“?!”

예상치 못한 진실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처음 성좌들은 그것을 절대 완성하지 못할 거라고 봤어. 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성좌의 관점에서 봐도 그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었거든.”

“……그렇다면, 지금은.”

건우의 추측이 들어맞았는지, 헤르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의 완성 직전에 놓여 있어. 그것의 이름은 폴세이어(Fall Sayer). 이름 그대로 종말을 고하는 자야.”

바로 얼마 전에 체르노보그를 쓰러뜨리면서 들은 이름과 똑같다는 것을 확인한 건우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확신했다.

라페아는 믿기지 않는지 살며시 눈매를 좁히며 헤르메스에게 물었다.

“이곳을 찾아온 용건이 보이는데, 슬슬 본론을 꺼내시지.”

표독스런 그녀의 말투에 헤르메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란자와는 달리 무척이나 비협조적인 태도네.”

라페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연모하고 있는 이와 같은 대우를 바라는 게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은데.”

쿨하게 웃는 그녀를 지켜보던 헤르메스는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탑의 십존, 랭킹 7위, 정령군주 라페아.

화려한 명성에 걸맞게 그녀는 오만방자하고 성격이 드세기로 유명했다.

그 때문에 탑에서 제일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고 있음에도 하이랭커를 비롯한 남신들은 다가가지도 못했다.

심지어 바람둥이로 유명한 올림포스 최고 주신 제우스도 라페아에게 수작을 걸다가 된통 당했고, 그 바람에 탑에서 그녀는 결코 구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까지 생기기도 했다.

한데, 그렇게 콧대 높은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니…….

솔직한 심정으로 탑에서 교란자가 시스템을 다운시킨 이후 두 번째로 받은 쇼크였다.

헤르메스는 이어 슬쩍 니파를 쳐다봤다.

오랫동안 엘더리아에서 활동해 명성을 떨칠 기회는 없었지만, 하이엘프의 외모를 물려받아 그런지 그녀 역시 라페아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

어느 순간, 헤르메스의 눈빛이 질투와 시샘으로 가득 찼다.

그는 원망 어린 시선으로 건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조만간 교란자 외에도 난봉꾼으로 소문나겠구먼.”

건우는 쯧, 혀를 차며 헤르메스를 질책했다.

“자꾸 딴 길로 새지 마. 이제 그만 속에 담아 놓은 음흉한 꿍꿍이를 들춰내라고.”

예상치 못한 추궁에 헤르메스는 깜짝 놀란 듯 니파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라? 나 그렇게 수상한 캐릭터였어?”

라페아와 달리 니파는 겸연쩍어 하면서도 솔직하게 답했다.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하아. 신의 입지와 명성이 추락하고 있는 게 느껴지는군. 그리고 실제로 추락 직전에 놓여 있어.”

슬그머니 웃음기를 뺀 어조에 건우는 어이없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조증인가. 이 자식.’

-사실 나도 꽤나 정신병자로 보고 있었던 참이다.

여기서 사적인 의견을 내봤자, 이야기의 진도를 빼지도 못하기에 건우는 얌전히 헤르메스의 말을 경청하기로 했다.

헤르메스 역시 이번만큼은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좌들은 폴세이어의 강림에 두려워하고 있어.”

“어째서?”

“녀석은 뱀의 최강의 화신. 완성되는 즉시 신과 인간, 요정, 타종족을 가리지 않고 멸망으로 이끌 거야. 이렇게 너를 찾아온 것도 폴세이어를 저지하기 위한 동맹을 맺기 위해서지.”

건우는 턱에 손을 괴며 차분히 질문을 건넸다.

“이 동맹에 참석하는 성좌들의 구성은 어떻게 되지.”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그리고 타르타로스의 칠대마왕들이다. 나머지 성좌들도 참여한다고 했지만, 지금 그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되기 때문에 참가에서 제외했다.”

“나 말고 다른 번외들에게도 갔을 텐데?”

건우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는지 헤르메스는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는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힘든 일이 있었구먼.’

어떤 트라우마라도 떠올렸는지, 그는 벌써부터 골치가 아픈 듯 보였다.

“답변은 거부였다. 여섯 날개의 기사에게서는 너희 일은 너희들 스스로 처리하라며 꺼지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림자의 마수는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한 성질 하는구먼.”

-그래야 또라이 삼형제지.

‘지금 상황에 전 관계없습니다.’

자꾸 엮으려고 하네.

내심 불만인 듯 건우는 눈 꼬리를 삐죽 세웠지만.

이번에 그들과 건우를 엮은 것은 세이비어가 아닌 헤르메스였다.

“여러 이유를 늘어놓으며 거절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이야기를 들었다.”

“뭐라고 했는데?”

헤르메스는 슈타크와 젠제만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건우에게 전달해주었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더군.”

빠직!

“아놔. 이 자식들. 팰 수도 없고.”

어째 가만히 넘어간다 했다.

심신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한 마디에 건우는 두 사도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속내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의 숙적은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이겠지.

그들이 이번 싸움에 개입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사정을 우선한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건우를 배려하는 차원이기도 했다.

‘말을 그딴 식으로 해서 문제지.’

-내가 봤을 때, 너희들 전체적으로 성격에 결함이 있어. 신이 그 결함을 메워주기 위해서 또라이 인자를 한 백 스푼 떠다 넣었을 거다.

“…….”

참신한 비유에 건우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자, 그래서 동맹을 맺을 의사는?”

헤르메스의 권유에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반만 협조하겠어.”

“반만 협조하겠다니. 무슨 소리지?”

“너는 폴세이어가 나타날 층과 시간대를 나에게 알려줘. 나는 내 방식대로 폴세이어를 퇴치하겠어.”

스윽.

헤르메스는 눈빛에서 신위를 발출하며 건우에게 경고했다.

“나긋하다고 우습게 보였던 것 같은데, 나는 신이다. 교란자여. 너의 말은 성좌들을 이용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군.”

쿠구구구구구! 콰아아앙!

움찔!

뒤이어 헤르메스가 엄청난 기세로 전신의 신력을 발출하자, 깜짝 놀란 니파는 그 기세에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

쿠우우우우.

반면, 건우와 라페아는 동시에 마력을 발산해 그의 기세에 맞섰다.

‘싸, 싸우려는 건가.’

졸지에 신과 그에 버금가는 자들의 전투를 지켜보게 된 니파는 몸서리를 치며 경악했지만, 라페아와 건우의 투기를 맞닥뜨린 헤르메스는 바로 자신의 신위를 거둬들였다.

“손님 주제에 경솔하게 힘을 발했군. 사과하지.”

“…….”

이럴 거면 화를 내지나 말든가.

어처구니가 없던 라페아가 무어라고 하려는 찰나.

건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발언을 제지했다.

불만이 많은 듯 라페아는 볼을 쀼루퉁하게 부풀렸지만.

이 자리의 주인은 건우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 얌전히 자리에 착석했다.

피식.

건우는 살벌해진 분위기를 미소와 함께 누그러뜨린 뒤 입을 열었다.

“애석하게도 말이야, 난 신이란 것들을 믿지 않아. 신들은 오만하고, 옹졸하고,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평가하지. 그토록 기도를 했는데도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그들이 하는 것은 발 벗고 구경하는 것 빼고 아무것도 없었어.”

움찔!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지 헤르메스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너는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지?”

은연 중 건넨 질문을 건우는 가뿐히 무시하고는 자신의 할 말을 이어갔다.

“그런 너희들이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세상의 위협에 맞선다? 훌륭한 말이지만 너무 겉치레라고 생각하지 않아? 신들 나리~”

“지나치게 무례하군.”

건우의 언사에 상당히 화가 났는지 헤르메스는 얼굴을 붉혔고.

스윽.

건우는 그대로 헤르메스의 멱살을 쥐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솔직히 말해. 너희들의 안위가 위협을 받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됐다고.”

“…….”

정곡을 찔렸는지, 헤르메스는 일순간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니파는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심지를 굳혔다.

그런 심각한 와중에…….

피식.

건우는 슬며시 입 꼬리를 올리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래도 도와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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