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아라크네의 허물로 빗어진 구울>
-등급: ★★★★
-설명: 7성급 대재앙의 몬스터, 아라크네의 허물로 조제된 구울.
-능력치
체력: 3080 공격력: 1150 방어력: 950 마력: 1880
아라크네의 허물로 빗어진 구울은 언뜻 봐도 수십 체가 깔려 있었다.
33층에서 봤던 구울과는 등급이 한 단계 떨어져 있었지만, 밖에 있는 마도사들보다 훨씬 번거로운 적임은 틀림없었다.
꿀꺽!
렌은 목에 고인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건우 형 생각이 발할라에게 읽힌 거야.’
발할라는 이미 매그놀리아의 맵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마도사 군단을 확보해 둔 상태다.
고작 세 명에 불과한 볼프강 일행이 숨어도 발각되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
하지만 만약 숨어드는 곳이 마도사들의 시야가 없는 하수도라면?
몸을 숨기기도 훨씬 용이하고 마법사들은 어두컴컴한 이곳에서 탐지 마법을 전개하며 볼프강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건우가 우선적으로 생각한 전략이지만.
발할라는 결코 어수룩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상황을 대비해 이곳 하수도에 자신의 애제자인 뤼제를 매복시켜둔 것이다.
‘훨씬 번거로운 복병을 숨겨놨어.’
“고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될 거다.”
뤼제는 핏줄이 팽창한 눈빛으로 렌을 쏘아봤다.
상황을 모르고 지켜보던 샤를리제는 렌과 뤼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치, 친구인가요?”
“어딜 봐서 친구야!!”
렌과 뤼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동시에 호통을 쳤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평정을 되찾은 뤼제는 볼프강과 렌, 샤를리제를 한 번씩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 몸은 발할라 로키의 제자 중 한 명인 네크로맨서 뤼제다. 스승님께서 재밌는 선물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정말로 반가운 선물이 반가웠어. 크크크크.”
“선물이라 재앙을 잘못 말한 것 같군.”
콰앙!
벌써 데미지가 회복된 건지, 볼프강은 아라크네 형상의 구울을 일각에 부스러뜨렸다.
씨익.
순식간에 소중하게 조제한 구울 한 구를 잃었지만, 뤼제는 전처럼 여유를 잃지 않고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너처럼 야만적으로 강한 자를 극도로 꺼려하는지라 이미 만반의 태세는 갖추고 있었어.”
쏴아아아아아.
주변에 깔린 아라크네의 구울들은 일제히 독실을 뿜어냈다.
꽈악!
순식간에 팔, 다리 곳곳에 거미줄에 결박된 볼프강은 이를 갈며…….
쇄액!
그것들을 단숨에 찢고 돌파하려고 했다.
[본 스피어를 시전했습니다.]
콰아아아앙!
뤼제는 그의 패턴을 꿰뚫어 본 듯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본스피어를 소환해 볼프강을 꿰뚫었다.
키기기기깃!!
볼프강은 단숨에 강체술로 단단하게 팔을 경화시켜 이를 막아 냈으나.
질량의 법칙은 무시할 수 없는지 중량에 밀려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쏴아아아아아!
아라크네의 구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고치로 만들기 위해 실을 뿜어냈다.
치이이이이익!
독이 담긴 실이 몸을 감싸자, 볼프강의 몸에는 수증기가 잔뜩 피어올랐다.
“젠장!”
이를 갈며 타계책을 고심하던 순간.
“난 위대한 마도사를 스승으로 둔 제자다. 33층에서는 형편없이 당하지만, 스승님이 나를 버리지 않고 다시 거둬들인 것은 나 역시 이 탑에서 강한 마도사이기 때문이야.”
[본 스피어를 전개했습니다.]
[고스트 버드를 소환했습니다.]
까아아아아악!
거대한 본 스피어 주변으로는 혼탁한 먹색 기운이 일렁이는 새가 잔뜩 깔려 있었다.
‘저건?!’
상당한 강자인 볼프강마저 지금의 공격은 예상 못 했는지 눈을 부릅떴다.
바로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쾅! 화르르르륵!
느닷없이 쏟아진 파이어 에로우에 의해 고스트 버드가 불꽃과 함께 소멸했다.
“응?”
뤼제는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마법을 시전한 샤를리제를 노려봤다.
샤를리제는 안경이 반쯤 내려간 상태로 볼프강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피해요! 마스터! 저것들은 무작위로 저주를 옮기는 놈들이에요. 강체술은 통하지 않아요.”
빠득!
“모처럼 즐기고 있었는데 방해하지 마!!”
이빨을 갈며 분노한 뤼제는 즉각 그녀에게 완드를 휘둘렀다.
[고스트 버드를 소환했습니다.]
‘캐스팅이 너무 빨라?!’
인정사정없다는 듯 빠른 기습에 샤를리제는 겁을 집어먹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정신 차려! 샤를리제!!”
안색이 창백해진 볼프강은 그녀의 이름을 힘껏 외쳤으나…….
까악.
이미 고스트 버드들은 그녀를 살점을 헤집기 위해 날카로운 부리를 박아 넣으려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렌의 손목에 달려 있던 엘리시움이 꿈틀거리며 할버드로 변모했다.
휘리리리릭!
렌은 그것을 발로 툭 차 회전시키더니…….
콰앙!
능수능란하게 휘둘렀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고스트 버드들은 육체가 풍선처럼 터지며 잿더미처럼 사라졌다.
꽈악!
“또 네놈이냐!!”
뤼제는 렌에 대한 증오를 한껏 드러내며 곧 다음 마법을 전개하려고 했으나.
피식.
입꼬리를 슬쩍 올린 렌의 손에는 이미 또 다른 푸른색 큐브가 들려 있었다.
“건우 형이 바보 같냐? 괜히 교란자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 말을 마친 렌은 그대로 푸른색 큐브를 개봉했다.
[볼텍스를 시전했습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쏴아아아아아아.
이번에 발현된 마법으로 인해 하수도에 흐르고 있던 엄청난 양의 물이 소용돌이치며 아라크네의 구울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까드드드득!
녀석들은 어떻게든 저항하기 위해 천장에 실을 뿜어내며 도피하려고 했지만.
쿠직! 쿠직! 콰앙!
거친 물살은 이를 허용치 않고 처절하게 구울들의 몸을 분쇄해 나갔다.
그로 인해 볼프강마저 물살에 휩쓸릴 뻔했지만.
촤르르르륵.
렌은 이것조차 예상했는지 엘리시움을 쇠사슬로 변모시켜 볼프강을 끌어당겼다
“……?!”
렌의 임기응변에 볼프강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제일 당황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뤼제였다.
“제정신이야! 미친놈들! 이런 좁은 하수로에서 이런 대규모 마법을 구사했다가는 너희도 전멸이야!”
그는 자신이 애써 조제한 구울들이 처절하게 부서지자,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네 몸이나 걱정해.”
히죽.
렌은 얄궂게 잇몸을 드러내며 노란색 큐브를 드러내보였다.
[나선의 경계를 시전했습니다.]
이번에 개봉된 박스에서는 건우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권능이 심겨져 있었다.
나선의 경계에 휘감긴 세 사람은 그대로 물살에 파묻혀 사라졌고.
“네 녀석!!”
뤼제는 발악하듯 소리를 쳤지만…….
쏴아아아아아.
이내 볼텍스의 격류에 휘말려 익사의 위기에 처했다.
***
쏴아아아아
엄청난 격류 속에서도 나선의 경계는 흐름의 영향도 받지 않았는지 렌이 의식을 집중하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경계 안에 있던 볼프강은 멍하니 자신의 아들, 렌을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얄궂은 악동 같으면서도 남을 지키는 데 있어서 서슴없이 나서는 그 모습이 실로 대견했다.
스윽.
무심코 그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고 싶었지만.
‘나한테 이럴 자격은 없어.’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며 마음을 접었다.
“……마스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샤를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볼프강이 품고 있는 번민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이렇게 강하게 키워 준 남자는 아마 최건우겠지?”
볼프강의 질문에 렌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스승님 때문에 강해졌다고 봐야죠.”
“스승?”
“뭐 아무튼 지금은 일단 도피하자고요. 이 끝으로 가면 아마 하수도 끝일 거예요.”
마도사들의 습격은 대비해야겠지만.
아까 상대했던 아라크네의 구울을 상대하는 것보다 덜 성가시기 때문에 볼프강과 샤를리제는 나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스스스스스.
이윽고 목표에 다다르자, 나선의 경계는 서서히 사라졌다.
“……여긴.”
하지만 어째서인지 볼프강과 모두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찰박.
지면에 발을 디딘 볼프강은 어두운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넝마조각이 돼서 널려 있는 아라크네의 구울 시체들, 물살에 휩쓸려 부서진 하수도의 시설.
“왜, 왜 다시 돌아온 거지?”
렌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적잖이 당황했다.
“당황할 것 없네. 그쪽에서 큐브를 개봉한 것처럼 이쪽에서도 큐브를 개봉한 것뿐이네.”
저벅, 저벅.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이는 2미터를 훌쩍 넘는 거한의 남자.
야만스런 복장과 달리 그는 지혜의 정수가 담긴 눈빛으로 볼프강 일행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발할라 로키.
바로 적 진영의 사령관이었다.
발할라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손으로 주황색 큐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큐브에 담은 마법은 뫼비우스의 띠, 이 마법에 걸린 자는 영영 한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저주에 걸리지. 참고로 난 큐브 게임을 할 때마다 은신처를 두는 것보다는 상대를 영원히 가두고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네. 하하하하”
볼프강은 렌과 샤를리제의 앞에 슬며시 서며 발할라에게 적의를 가지고 물었다.
“……구태여 번거롭게 큐브를 소진할 이유가 있나? 그냥 마법으로 전개해도 상관없을 텐데.”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그건 큐브 게임의 장점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세. 하하하”
“장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하자, 발할라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큐브를 쓴 가장 큰 이유는 어떤 마법도 마력의 소진 없이 술식을 불어넣는 것만으로 마법이 구현되기 때문이네. 그리고 마력이 소모되지 않는 다는 것은 내가 평생 일궈온 마법을 아낌없이 쓸 수 있다는 거지.”
할 말을 마친 발할라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움찔!
볼프강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털을 꼿꼿이 세우며 대적의 의사를 표했다.
“자, 그러면 뱀에게 대적한 네놈들에게 공포가 어떤 건지 보여 주마. 아 더불어 내 제자를 죽인 죄 또한 달게 받을 거다.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도망가!”
발할라에게 살기를 감지한 볼프강은 모두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네.”
라는 발할라의 한 마디와 함께…….
콰아앙!
의문의 충격파가 렌과 샤를리제를 덮쳤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렌과 샤를리제는 의식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빠직!
“네놈!!”
분노한 볼프강이 즉각 발할라를 향해 권각을 내질렀지만.
콰아아아앙!
어째서인지 애꿎은 하수도의 구조물만 반파되고 발할라에게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계획했던 것과 다르지만 네놈들의 날개는 곧 색이 바라지면서 천천히 꺾이고 말 것이다. 살아남을 방법은 하나. 날 꺾어라.”
지금부터 펼쳐질 격전이 흥미진진했는지 발할라는 씨익 웃어 보였고.
“으아아아아악!”
볼프강은 두 사람을 위해 투쟁심을 불태웠다.
***
콰앙! 콰앙! 콰앙!
발할라와 볼프강의 격전의 여파는 엄청났다.
주변에 있는 지형은 충격에 휘말려 부스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깜박.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렌은 희뿌예진 시야 속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는 볼프강을 바라보았다.
뚝, 뚝.
어떤 공격을 당했는지,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 있었다.
“……아빠. 아빠?!”
렌은 그제야 지금의 사태를 실감했는지, 눈을 부릅뜨며 힘껏 볼프강을 불렀다.
렌을 목격한 발할라는 싱긋 웃으며 볼프강에게 말했다.
“하하하, 기특한 아들을 두었구나. 뱀에게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리더 주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말이야.”
“아아 네놈들이 없었으면, 진작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었겠지.”
볼프강은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고 칭찬을 하고 싶어도 난 그런 말을 할 수 없어.”
“그것도 우리 잘못이라는 거냐?”
볼프강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어느 것 하나도 이루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주제 파악은 잘하고 있구나. 네놈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뱀을 멈출 수 없다. 뱀은 탑의 모든 주민을 멸살시키고 신천지를 세운다. 그리고 나는 최고의 공신으로서 이 탑을 통치할 수 있게 되겠지.”
“……마도를 통해 이룩하려는 게 겨우 그거냐? 그럴 바에는 율라의 마도가 훨씬 가치 있어.”
의외로 시시하다는 듯 볼프강은 피식 웃고 있었다.
반면, 볼프강이 율라를 언급하자, 발할라는 지금까지와 달리 불쾌한 감정을 내비췄다.
“주제도 모르는 네놈한테 죽음보다 더한 형벌을 내려 주마.”
[썬더 크래시를 시전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손아귀에 맺힌 전광을 렌에게 쏟아 냈다.
‘움직일 수 없어!’
동요한 렌은 어떻게든 몸부림치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콰아아아아앙!
하지만 직격을 당한 것은 렌이 아닌 볼프강이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강체술을 발휘했지만.
바스락.
어림없다는 듯 벼락은 그의 복부는 벼락에 꿰뚫고서는 신경을 불태워 버렸다.
“아빠!!”
깜짝 놀란 렌은 자신의 앞에 쓰러진 볼프강을 보며 오열했다.
“크흐하하하! 꼴좋구나. 빌어먹을 피라미 주제에. 결국 네놈도 아비라는 거였구나.”
반면, 발할라는 그 광경이 매우 즐거웠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드르륵.
바로 그 순간.
녹청색의 큐브가 또르르 구르며 발할라의 발치에 닿았다.
“이건?”
의아한 표정으로 큐브를 집으려 할 때.
찰칵.
큐브가 그대로 개봉됐다.
[게이트를 생성했습니다.]
큐브 안에 담겨 있던 것은 거대한 아공간 게이트를 소환하는 마법.
스스스스스.
그리고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건우는……
콰아아아앙!
살벌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발할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흥, 소용없어.’
발할라는 별반 대응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콰아아앙!
왜냐하면, 항상 예외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건우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데미지는 크지 않았지만 발할라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몸을 비틀거렸고.
“일어나. 새꺄. 선을 넘은 대가가 뭔지 보여 줄게.”
건우는 탑 진입 이래로 분노로 가득 찬 표정으로 발할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274.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