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스윽.
건우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한 발할라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팔을 부여잡았다.
‘기선제압을 하려고 했는데, 자칫하면 당하고 말겠어.’
기세 좋게 선전포고를 한참이거늘.
건우는 개의치 않고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의표를 찔렀다.
-마법사의 싸움이 뭔지 보여 주마. 애송아.
무엇보다 그를 자극한 것은 이 말이었다.
마도사의 정점이라고 자부해 왔거늘.
이 어리석은 자는 그가 이 도시에서 지워 버린 율라가 제조한 아티팩트를 들고 그에게 당당히 도발을 가해 오고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결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다는 건우의 사고방식이 뚜렷이 엿보였다.
한편, 대치중에도 시스템 창은 연달아 갱신되고 있었다.
[룰 개정으로 인해 37층 시련, 큐브가 일부 조정됩니다.]
[양 팀의 사령관은 은신처, 혹은 거처를 지정하시면 강제로 전이됩니다.]
[패치 전까지는 양 팀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그 도발, 받아들여 주겠다.
심지를 굳힌 발할라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몸풀기로 가볍게 이야기를 하면서 농락하려고 했거늘. 자네는 실로 어리석군. 참고로 말해 두지만, 나는 번거롭게 룰 개정권을 쓸 필요가 없네.”
[플로어 마스터, 발할라 로키의 권한으로 교란자 ‘최건우’ 진영 플레이어는 추가 투입이 불가능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플로어 마스터 특권을 한껏 발휘해 건우에게 제약을 가했다.
그리고 딱하다는 표정으로 뻔뻔스레 말을 내뱉었다.
“자네가 상대해야 되는 건, 매그놀리아 전역에 퍼져 있는 마도사 전체라네.”
-이런 샹! 장난하냐?
세이비어는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처음부터 공평한 조건으로 시작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면 완전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피식.
하지만 건우는 결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세 명으로도 충분해. 네 찌질함만 더 부각될 뿐이야. 압도적으로 발라 줄게.”
“자네는 한 마디도 지려고 하지 않는군.”
“져 줄 이유가 없잖아.”
건우는 슬쩍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얄궂게 미소를 지었고.
거듭된 도발에 발할라도 참기 어려웠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하려는 찰나.
[패치가 완료됐습니다.]
[37층의 시련, 큐브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스슥!
패치 완료 소식과 함께 두 사람의 잔영이 천천히 사라졌다.
각자 자신이 정한 지점에서 강제 전이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플레이어는 서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다…….
스팟!
그대로 각자 지정한 장소로 강제 전이됐다.
***
매그놀리아는 기본적으로 성곽도시로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높다란 장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도사들의 도시답게 그 구조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계란형의 교량, 나룻배가 지나갈 수 있는 한 줄기의 강, 미로처럼 어지럽게 건물이 배치돼 있었다.
헤라우스와 샤를리제는 그 도시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뜻을 행하는 동료였지만.
막상 둘이 있으니, 사적인 대화가 없어 분위기는 무척이나 어색했다.
샤를리제는 안경을 고쳐 쓰며 헤라우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마스터. 어째서인지 표정이 많이 좋지 않군요.”
“……그래 보였나?”
“네. 평소와 다르게 감정이 고조된 느낌이에요.”
“이해해 주게나. 오늘 너무나 뜻밖의 것을 봐서 초조하면서도 기쁘니까.”
“기쁘다고요?”
이 남자가 미쳤나?
샤를리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씨익.
어째서인지 평소와 달리 헤라우스의 입가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문득 어떤 이유로 웃냐고 질문을 내던지려는 순간.
“이제 그만 쫓아오지?”
헤라우스는 표정을 고치며 뒤에서 어슬렁거리는 기척을 쏘아봤다.
“……?!”
적의 침입인가?
샤를리제가 뒤를 홱 돌아보자, 뒤에서는 렌이 모습을 드러낸 참이었다.
“……우리한테 무슨 볼일이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뭐지?”
렌은 똑바로 헤라우스를 직시하며 물었다.
“진짜 이름이 뭔가요?”
“헤라우스도 딱히 가명은 아니다만. 꼭 이름을 알아야 되는 사정이 있나?”
“그, 그게…….”
아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렌은 머릿속에 헤집는 호기심을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난감했다.
난 왜 이 사람에게 왜 접근한 거지?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자신에게 던져 봤지만, 그 스스로도 답을 쉽사리 낼 수 없었다.
‘귀여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샤를리제는 훈훈한 표정을 짓다가…….
스슥.
곧 주변에 불길한 기척들을 감지했다.
싸아.
어느새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헤라우스를 쳐다봤다.
“마스터.”
“아아 나도 눈치챘다.”
헤라우스는 투쟁을 내세우며 렌 이외에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기척을 살펴봤다.
화악! 스스스스스.
로브를 거친 그들은 연기처럼 일렁거리며 존재감이 다소 모호했다.
“일루전이에요. 렌. 이쪽으로 오세요.”
파앗!
샤를리제의 경고에 렌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단숨에 헤라우스에게 접근해 주변을 경계했다.
헤라우스는 팔짱을 낀 채, 동공으로 빠르게 주변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단숨에 일루전의 실체를 간파하고는 입을 뗐다.
“누가 보내서 왔지?”
“허허허, 과연 눈썰미가 다르군요. 저 정도는 그냥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건가요?”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
추정컨대, 그 역시 이곳 매그놀리아에서 마법을 연구하는 마도사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서로 못 본 척하는 건 어떨까?”
두둑.
말과는 달리 상대방이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진작 간파했는지, 헤라우스는 손톱을 세우며 살초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전신을 떨며 헤라우스의 행위를 비웃었다.
“후후후후, 어리석은 자의 우두머리답군요.”
“우두머리?”
렌은 마법사의 말을 되뇌다가 곧 눈을 번뜩 떴다.
‘설마 클랜의 리더였던 거야?!’
헤라우스가 클랜에서 상당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직감했지만.
클랜의 리더가 직접 몸소 활동할 것이라고는 건우조차 예측하지 못했다.
두둑, 두둑.
정체가 발각되자, 헤라우스는 미련 없이 어깨와 팔 등의 관절을 풀며 말했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거냐? 어떻게 죽여줄까?”
“후후후후, 진정하시죠. 곧 반가운 소식이 들이닥칠 겁니다.”
‘시간을 끌고 있어. 무슨 수작이지?’
단체로 기습을 했다면, 진작 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주변에는 다수의 마도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머잖아 헤라우스, 샤를리제, 렌의 눈앞으로 시스템창이 형성됐다.
[플로어 마스터, 발할라의 권한으로 큐브 게임의 참가 플레이어로 강제 임명됐습니다.]
[큐브의 룰을 일부 개정합니다.]
[사령관이 아닌 파티의 리더를 처치하거나 지니고 있는 큐브를 모두 소진 시, 승패가 결정됩니다.]
“뭐?!”
갑작스런 시련의 강제 편입에 세 사람을 일동 당황했다.
“게임 시작입니다. 참고로 리더는 제가 아니니 잘 찾아보시죠.”
게임의 시작과 함께 마법사의 손아귀에 화구가 맺혔다.
그리고 화구가 그의 손을 떠나기 전.
콰앙!
헤라우스의 발이 강렬하게 그의 늑골을 파헤치며 쪼개버렸다.
“쿨럭! 커헉!”
마도사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즉사했지만.
콰콰콰콰콰콰콰쾅!
동료의 죽음에 애도는커녕, 주변에서 날아온 화구들은 단숨에 동료의 시체와 함께 헤라우스를 불살라 버렸다.
콰앙!
“헤라우스!!”
깜짝 놀란 렌이 걱정스런 마음에 소리쳤지만.
화르르르륵! 쇄애애애액! 콰아아앙!
헤라우스는 순식간에 불바다를 비집고 나와 자신에게 마법을 난사한 마법사 무리를 손톱으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뭐, 뭐야? 저 속도.”
“미친 거 아니야?!”
순식간에 다수의 동료들이 목숨을 잃자, 마도사들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스팟!
헤라우스는 단숨에 두 명의 마도사 사이로 이동했다.
“크윽!”
당황한 그들은 재빨리 거리를 벌려 캐스팅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콰앙!
헤라우스의 양주먹에 두부가 분쇄도 목 없는 시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 녀석은 나중이야! 일단 여자와 아이부터 죽여! 숫자를 줄여야 우리한테 유리해!”
“……?!”
예상치 못한 적들의 침착한 대응, 그리고 냉정한 판단에 헤라우스는 눈을 부릅떴다.
콰콰콰콰콰쾅!
지휘에 맞춰 마도사들은 일제히 매직 미사일을 캐스팅해 샤를리제와 렌에게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콰앙!
헤라우스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콰콰콰콰콰콰쾅!
렌이 있던 지대는 포격을 맞은 것처럼 지반이 크게 무너지며 붕괴했다.
***
쿠구구구구구.
매직 미사일의 폭격 속에서 렌은 일리시움을 방패로 만들어서 샤를리제를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매직미사일의 세례 속에서 렌의 방패에는 어떤 충격도 닿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의아한 표정으로 방패를 치우고 앞을 바라봤을 때는……
콰드드드득!
헤라우스가 붕괴시킨 지반을 둠처럼 쌓아 전 방위에서 쏟아진 공격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콰지지지직!
하지만 미쳐 다 막을 수 없었는지 벽을 뚫고 들어온 매직 미사일이 정신없이 헤라우스의 몸을 두들겼지만.
카카카카카캉!
그의 몸은 굳건한 강철이라도 된 것처럼 어떤 타격도 줄 수 없었다.
“아, 아티팩트?”
“아니에요. 저건 헤라우스님이 사용하는 강체술 중 일부예요.”
샤를리제의 설명에 렌은 벙찐 표정을 짓다가 곧 머릿속에서 케이론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까 스승님도 분명 저거랑 비슷한 걸 썼었어.’
쿠구구구구.
그 사실을 깨달은 렌은 헤라우스의 전신에 흐르는 마나를 멍하니 쳐다보다……
휘잉! 팔락.
찢겨져 바람에 날아가는 헤라우스의 두건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아니, 정확히는 헤라우스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은백색으로 쫑긋거리는 늑대의 귀. 꼬리는 없었지만 그는 분명 렌과 같은 수인이었다.
“헤, 헤라우스?! 설마!”
샤를리제도 상당히 놀란 눈빛으로 렌과 헤라우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칫!”
헤라우스는 혀를 차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파르르르.
렌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다 입을 뗐다.
“……볼프강. 볼프강 헤라우스. 그게 이름이죠?”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헤라우스는 구태여 부정도 하지 못했다.
“뭣들 해! 빨리 죽여! 발할라님의 분노가 매그놀리아에 뻗치기 전에!”
하지만 반드시 그들을 처단하겠다고 생각한 마법사들이 아까보다 훨씬 강대한 4서클 마법을 집약해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난관에 봉착한 헤라우스는 전신의 마력을 발출해 직접 몸으로 공격을 받아 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터무니없는 짓을 감행하려고 하자, 샤를리제는 격정에 소리를 내질렀다.
“무모해요! 마스터!”
콰콰콰쾅!
다수의 라이트닝 체인이 일제히 그들에게 쏟아졌다.
‘절대로 녀석에게까지 파장이 미치게 하지는 않을 거다.’
헤라우스는 렌을 힐끔 쳐다보다 곧 강체술을 전력으로 발휘했다.
몸의 강도는 강철 이상, 덩달아 항마력까지 높아졌지만 저 무수한 라이트닝에 살아남을 확률은 고작 해 봐야 10% 내외였다.
번뜩이는 전광에 비춰온 헤라우스의 얼굴에는 쓸쓸한 웃음이 엿보였다.
사색이 된 렌은 그에게 소리쳤다.
“아빠!!”
직격까지 1초.
촉각을 곤두세우는 위기일발의 순간.
파앗!
뜬금없이 다수의 라이트닝 체인이 무산되며 그대로 증발됐다.
“뭐, 뭐야?”
“어째서 스킬이 취소된 거지?”
“시, 시스템이 간섭한 것 같은데.”
마지막에 내뱉던 이의 추측이 정답이라는 걸 알려 주듯 모든 플레이어 앞에 시스템창이 갱신됐다.
[룰 개정권으로 인해 큐브 게임을 재패치됩니다.]
[패치 전까지 상대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것은 룰 위반으로 적극 제지합니다.]
[큐브 게임의 패치가 완료됐습니다.]
[교란자, 최건우 VS 거대 거인, 발할라의 전략전이 시작됩니다. 플레이어는 각자 진영으로 강제 전이됩니다.]
움찔!
시스템 문구를 읽던 헤라우스는 몸을 떨었고.
안경이 콧잔등까지 내려온 샤를리제는 턱을 떨어뜨리며 경악했다.
“교, 교란자?!”
스팟!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전투를 벌였던 플레이어들은 각 진영으로 몸이 강제로 전이됐다.
272.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