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예선 2차, 그리고 3차가 차례로 진행될수록, 눈에 띄는 강자들은 자연히 관중들의 열광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챔피언, 스파르타쿠스를 제하고 눈에 띄는 이는 4명.
한 명은 조그만 날붙이와 돌멩이만으로 상대 플레이어를 참살하는 알데바란.
또 한 명은 무수한 마수를 소환해 상대의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 솔로몬.
이 둘의 잔학하고 화려한 퍼포먼스는 군중심리를 심히 자극했다.
이와는 반대로 어린아이의 체격으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렌은 귀엽다는 이유로 여성 팬들이 환호성이 잇따랐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을 조커라고 명명한 플레이어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묘한 기대감을 가졌다.
사용하고 있는 무기는 단순한 롱소드.
그러나 그의 검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적을 농락했다.
승리하는 법도 가지각색.
상대가 지쳐서 항복을 외칠 때까지 궁지로 몰고 간다든가.
상대의 무기를 일격에 박살 내 전의를 상실시키든가.
그 묘한 전투 법에 관중은 어느새 조커에게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가면 안에 있는 그 얼굴에 대해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졌다.
“와아아아!!”
“조커!”
“조커!”
대중의 환호성 속에 건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기실에 들어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페아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수고했어.”
“고마워.”
건우는 피식 웃으며 라페아, 니파, 렌 순서대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쿠구구구구.
그러자 건우의 진영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견제의 눈빛이 쏟아졌다.
16강 이상 진출한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참가자들 전원이 공동 대기실에 머물렀어야 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표독스런 눈동자로 건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건우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견제할 만도 하지.’
그리고 그런 건우에게 세이비어는 한심하다는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너 진짜로 눈치 없는 놈이구나.
‘왜요?’
-자세히 들어 봐. 저 남정네들의 대화를…….
‘남정네?’
익숙지않은 표현에 건우는 귀를 쫑긋 세우며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개새끼.”
울컥!
초반부터 심한 욕설에 소매를 걷어붙이려는 찰나.
“어떻게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저렇게 아름다운 미인들을 끼고 있는 거지?”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속지 마. 저 여자들은 아직 가면 안에 있는 저 놈팡이의 얼굴을 못 본 거야.”
“좋겠다. 연인이 두 명이나 되고.”
부러움과 시샘, 질투.
“…….”
그 질타의 눈빛과 험담의 의미를 깨달은 건우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래도 제일 불편한 시선은 저놈이려나.’
건우는 스윽 고개를 움직여 솔로몬 진영을 바라보았다.
솔로몬이야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건우 입장에서 애송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쿠구구구구.
바로 옆에서 보랏빛 갑주를 입은 알데바란이란 플레이어는 무언가 심상치 않는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딱히 그가 전신의 기도를 해방한 것도 아니지만.
느낌이라고 할까?
그 역시 건우만큼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는 대단한 플레이어일 거다.
무엇보다 솔로몬의 클랜은 ‘똬리를 튼 뱀’
그렇다면, 알데바란의 클랜도 역시 같은 소속이라고 봐야 될 거다.
안 그러면, 새삼 친구도 없는 저 솔로몬이 알데바란 앞에서 설설 기겠는가.
두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딱히 대치를 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단지 이 둘이 시선을 마주한 것으로 주변에서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건우에 대해 험담을 하던 플레이마저 그 분위기가 심각한 것을 인지했는지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알데바란과 조커.
이미 모두가 은연중 깨닫는 바지만.
이 둘이 스파르타쿠스와 맞붙는 것보다 이 둘이 서로 정면으로 결투를 벌일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 둘은 아직까지도 본신의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 분위기에 초를 치며 끼어든 것은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하하하하, 그렇게 노려보지 않아도 너희 둘의 대결은 큰돈이 될 테니, 최고의 하이라이트 무대로 준비할 거다.”
월계관을 쓰고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아이작 클라디우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달기가 팔짱을 끼고서 총총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작에게서 떨어진 그녀는 뒷짐을 지며 건우를 향해 고개를 쑥 내밀었다.
“오오!”
“저게 소문의 달기.”
“엄청 예쁘다.”
그녀의 눈부신 외모에 주변 플레이어들은 발그레 얼굴을 붉혔다.
빠직!
반면, 누가 봐도 그녀가 건우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라페아와 니파는 은연중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신에게는 여러모로 기대하고 있어요. 혹 시간이 되면, 아이작과 함께 식사를 할까 하는데, 어떠세요?”
스윽.
건우는 팔짱을 끼며 짤막하게 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달기는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단호박이네요.”
“괜한 오해는 삼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긴. 아직 여인의 매력을 모를 때니까 어쩔 수 없겠죠.”
달기는 은연중 라페아와 니파를 쳐다보며 교태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밑에 그늘이 진 라페아는 니파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불살라 버려도 되겠느냐?”
“……안 돼.”
라페아 못지않게 불편한 표정을 짓던 니파는 마지못해 한 마디를 더 남겼다.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왠지 묘하게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이 녀석은 자기 애인이 이러면 기분 안 나쁜가?’
슬쩍 아이작을 쳐다보니, 라페아와 니파를 바라보던 그는 그윽한 눈길로 그녀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호오 실로 빼어난 미를 갖췄구나. 그 미모가 달기 못지않게 아름다워. 어떠냐? 나의 첩이 된다면, 이 탑에서 누구 못지않은 부와 명예를 선사하마.”
희번득.
아이작 입장에서는 구애의 의도로 말한 거지만.
라페아와 니파는 그것을 도발로 받아들여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꺼…….”
그리고 그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려는 순간.
스윽.
건우가 그 사이를 가로막으며 입을 뗐다.
“그건 곤란하겠는데요.”
“……어째서지?”
자신의 발언에 끼어든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아이작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건우는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제 여자라서 말이죠. 그러니까 함부로 남의 걸 탐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웅성웅성.
직설적인 건우의 말은 주변에 큰 파급력을 미쳤다.
“세상에 미친 것도 아니고 이곳 플로어마스터한테 저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야?”
“어떻게 해? 지금 당장 살인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니야?”
모두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때.
꼬옥.
라페아와 니파는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건우의 등을 지그시 지켜보고 있었다.
“…….”
한동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작의 몸은 이내 크게 들썩이더니…….
“크하하하하, 그 기개 실로 마음에 드는구먼. 그 배짱을 가지고 앞으로도 승승장구해 주게나.”
“직접 응원을 받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빠직!
건들거리는 건우의 말투에 아이작의 이마에 일순간 핏대가 솟구쳤다.
‘건방진 놈.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경거망동하다니!!’
지금 당장이라도 건우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타악.
달기가 손을 마주잡자, 그는 간신히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딱히 그녀의 온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머릿속에서 이해타산적인 계산이 끝난 결과였다.
알데바란 VS 조커
두 명 다 콜로세움에 처음 참가한 신출내기들이라지만, 이 둘의 대결구도는 지금 수많은 관객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이 녀석은 굴리기만 하면 거대한 돈이 돼서 들어오는 놈이다. 섣불리 재단해서는 안 되지.’
싱긋.
아이작은 그대로 활기찬 미소를 띠며 건우에게 말했다.
“하하하하하, 응원이라니 당치도 않네.”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그는 건우와 거리를 좁히며 나지막이 한마디를 남겼다.
“난 보고 싶거든. 알데바란 손에 참수당한 자네의 목을…….”
스윽.
건우는 그의 귓가 부근에 은밀하면서도 당찬 어조로 반박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그 기대에는 부응해 주지 못할 것 같은데요.”
왈칵.
약 올리는 말투에 다시금 아이작은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곧 평안한 표정으로 안색을 바꾸며 문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아무튼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지.”
마지막에는 대인배처럼 모두에게 한마디를 남긴 아이작은 다시 한번, 라페아와 니파를 훑어보다 건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느 쪽이 자네의 여자지?”
그 눈빛은 아직까지도 라페아와 니파에 대한 집착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끝까지 욕정을 주체 못하는 건가. 저질 새끼.’
건우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반면.
두근두근.
건우의 입에서 떨어질 답변에 라페아 와 니파는 긴장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에 대한 건우의 답은……
“둘 다입니다.”
였다.
빠직!
라페아와 니파는 어느새 험악하게 낯빛을 굳히고 있었다.
***
콜로세움의 전투가 끝나고 다시금 한산한 밤이 찾아왔다.
“아, 너무 아픈데.”
건우의 양쪽 뺨에 어떤 여인들이 남기고 간 손바닥 자국이 여실히 새겨져 있었다.
-바람둥이!
-바람둥이!
지나가는 족족 정령들은 꺄르르 웃으며 건우를 놀리며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가면 갈수록 너한테서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포스를 느끼고 있다.
“공감합니다. 세이비어님.”
바로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렌 역시 심히 공감하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투정하듯 답변한 건우는 다시금 가면을 착용했다.
건우 입장에서는 그녀들을 지키겠다고 한 말이지만.
그 스스로 역시 기분 나쁠 수 있겠다고 공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기분이 심히 불편한 그녀들을 피해 이렇게 한산한 밤에 콜로세움을 배회하고 다니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참 동안 콜로세움을 배회할 때.
“어 저 아저씨는?”
렌의 눈에 어떤 이가 포착됐다.
장소는 콜로세움의 무대.
아직 건우와 렌은 서보지 못한 그 장소에서 한 남자가 달빛을 받아가며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얼굴, 등, 팔, 다리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흉터로 가득한 그 모습은 그의 삶 자체가 투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모습이 무섭다기보다는 실로 경건해 보였다.
어느 순간, 렌과 건우는 그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화악!
그 발소리에 놀랐는지, 사내는 몸을 일으켜 황급히 뒤를 쳐다봤다.
움찔!
그 박력에 렌은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너희들은…….”
사내는 눈매를 지그시 좁혔다. 건우와 렌의 존재에 대해서 눈치를 챈 듯 보였다.
그리고 건우와 렌 역시 사내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다.
스윽.
건우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입을 뗐다.
“챔피언, 스파르타쿠스를 여기서 뵙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소개는 필요 없어. 너는 이번 검투에서 내가 제일 견제하고 있는 대상이니까. 그러니까 악수는 하지 않아. 이 신성한 무대에서 우리는 검으로 이야기를 하게 될 테니까.”
솔직하고 거침없는 어조로 건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여기서는 뭘 하고 계셨던 가요?”
“…….”
그 말에 스파르타쿠스의 얼굴에는 일순간, 쓸쓸한 슬픔이 엿보였다.
“죽은 동료들을 위해 애도하고 있었을 뿐이야.”
“아.”
그의 답변에 건우와 렌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그때, 콜로세움의 쇠창살문이 열리며 한 병사가 소리쳤다.
“스파르타쿠스!! 자유시간은 끝났다. 신속히 복귀해!”
건우와 렌은 뒤늦게 그의 신분이 검투노예라는 걸, 다시금 자각했다.
“나는 이만 가보지. 다음에는 이곳 밖에서 보자고.”
스파르타쿠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건우와 렌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골똘히 고심에 잠겨 있던 렌이 건우에게 말했다.
“……그 사람 왠지 외관이랑 다르게 굉장히 상냥했던 사람인 것 같아.”
“그래? 비슷하게 생각했지만, 난 그것 외에도 굉장히 위험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형이 위험하다고 느꼈다고?”
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봤지만.
말없이 건우는 턱을 매만지며 스파르타쿠스가 남긴 말을 계속 되새기고 있었다.
“콜로세움 밖에서 보자. 밖에서 보자.”
맥락만 보면, 이 말 자체가 모순이었다.
왜냐하면, 검투노예인 스파르타쿠스는 절대 콜로세움 밖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
검투노예들의 철창 우리.
교도관이 없는 틈을 타 우리에 모여 있던 검투노예들은 일제히 한 남자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그게 진심이야? 스파르타쿠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아무도 안 했던 게 아니야. 못 했던 거라고.”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멍청아.”
대다수의 검투노예들은 스파르타쿠스를 만류, 혹은 비관하기 바빴지만.
희번득.
그들은 곧 스파르타쿠스의 냉철한 눈빛에 침묵을 지켰다.
“확실히 난 100번의 승리를 취하면 구속에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되겠지. 하지만 난 누구보다 아이작 클라디우스란 남자를 잘 알고 있다. 그 남자는 어떻게든 맹약을 깨뜨릴 소인배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해방하기 위해서는 검을 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꿀꺽!
진지한 어조로 반란을 꾀하는 그의 포스 앞에 기가 센 장정마저 할 말을 잃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운 눈동자로 그들에게 물었다.
“나를 따르겠는가?”
25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