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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225화 (225/308)

225화

19층의 시련은 무사히 클리어 한 지 어언 보름이 지났다.

평상시라면, 곧장 다음 층을 등반하기 위해 부랴부랴 서둘렀겠지만.

20층의 플로어 마스터가 밝혀진 만큼, 건우는 과감하게 등반을 미루었기 때문이다.

키메라의 왕, 라폰.

그 위험성은 전생 때부터 널리 퍼졌었다.

생체 실험 중 잘못 탄생한 키메라가 모든 생물 중 최상위에 군림하고 있는 드래곤까지 학살한 것은 당시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라폰을 방비할 전력을 마련해야 했다.

[이그너스의 최상층]

모처럼 당도한 영지지만.

건우는 요 며칠 동안 밤낮을 새가며 의식의 제단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우웅.

영지에는 탑에 넘어오기 전에 챙겨 온 마정석들로 한가득이었다.

에너지를 추출한다면, 한 나라가 1년도 거뜬히 쓰고도 남을 정도의 양.

스스스스스.

그것들은 모두 보랏빛의 용액이 되어 의식을 진행 중인 보스들의 몸을 휘감았다.

그 대상은 네메시스와 세피아였다.

건우는 의식의 과정이 지긋지긋한지 미간을 찌푸렸다.

케이론은 렌을 훈련시키기 위해 제일 먼저 의식을 진행해 5성급으로 도약한 상태였다.

그리고 세피아와 네메시스는 동시에 의식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 시간이 무려 28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머지 녀석들은 5성급이 한계지만 세피아 녀석은 아직 두 단계나 남았는데, 잠을 꼴딱 새니 미치겠네.’

-그러게 한 마리씩 하지. 왜 두 마리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건데.

세이비어의 타박에 건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라폰은 엘프를 학살하고 있을 테니까, 꾸물거릴 수 없어요.”

-……

보기 드물게 정의감에 찬 발언에 세이비어는 침묵을 지켰다.

니파는 아직까지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며 안심시켰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건, 그녀에게도 건우에게도 부담이었다.

바로 그 순간.

건우의 눈앞으로는 시스템창이 연달아 생성됐다.

[세피아의 등급이 4성에서 5성으로 상승됩니다.]

[세피아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됩니다.]

[네메시스의 등급이 4성에서 5성으로 상승됩니다.]

[네메시스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됩니다.]

스스스스스.

의식을 마친 보스들은 스스로 광채를 벗어던지며 건우의 앞에 예를 갖췄다.

전보다 한층 세련된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쿠구구구구.

한 층 더 강해진 그녀들의 힘으로 인해 이그너스의 최상층이 크게 뒤흔들리기까지 했다.

건우는 은근슬쩍 네메시스를 쳐다봤다.

<머메이드퀸, 네메시스>

-등급: ★★★★★

-설명: 이그너스의 4계층, 심해정원의 최종보스,

-능력치

체력: 12000/12000 공격력: 9070 방어력: 8000 마력: 9700

-특수스킬

현혹의 노래, 평안의 노래, 재액의 노래, 비 부르기의 노래, 전장의 노래

그녀는 이전, 아틀란티스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채, 5성급으로 도약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경지라고 탄성을 자아내고 싶었지만.

쿠구구구구.

문제는 그녀보다 더 압도적인 힘을 세피아가 방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빙의 군주, 세피아>

-등급: ★★★★★

-설명: 이그너스 2계층, 얼음미궁의 최종 보스.

-능력치

체력: 37000/37000 공격력: 21700 방어력: 14500 마력: 18200

같은 5성급임에도 불구하고 힘의 차이는 현격했다.

시스템 상으로는 5성급으로 분류되지만 그녀의 힘은 오히려 6성급에 가까웠다.

“아무리 봐도 넌 너무 사기인 것 같아.”

칭찬이라고 생각했는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피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 보였다.

……

반면 네메시스는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건우는 한쪽 손을 허리에 짚으며 네메시스를 타일렀다.

“서운해 하지 마. 어차피 너희들은 분야가 달라. 세피아가 못하는 일을 네가 할 수 있는 거라고. 실제로 전투 때는 세피아보다 너를 더 많이 활용할 수밖에 없어.”

쉽게 이기려면, 세피아를 소환하면 그만이지만.

피해를 덜 주며 이기는 데는 네메시스가 제격이었다.

방긋.

건우의 말에 네메시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에는 세피아가 충격을 받은 듯 건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

한 명 타이르니, 한 명이 삐지고.

또 타이르니, 타일렀던 한 명이 다시 삐지고.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고리에 건우는 잠깐 두통이 일었다.

척!

하지만 그는 곧 팔짱을 끼며 최종보스다운 포스를 발휘하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너희 둘 다 나한테 중요한 부하들이야. 그러니까 싸우지 말고 전력으로 나를 보필해. 알아들었으면 자기 층계로 돌아가.”

씨익.

건우의 말에 세피아와 네메시스는 서로 만족한 듯 웃다가…….

[게이트가 형성됐습니다.]

[게이트가 형성됐습니다.]

그대로 게이트를 통해 자신들의 층계로 돌아갔다.

‘……갔나?’

왜 부하들 눈치를 살피고 있는지 모르지만…….

“후우.”

그녀들이 사라지니 건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유령의 모습으로 튀어나온 세이비어는 슬쩍 웃으며 건우에게 말을 붙였다.

-최근 라페아를 달래다 보니 스킬이 많이 늘었구나.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전투스킬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힘드네요.”

-그나저나 의문인 건, 케이론 그렇고 저 녀석도 그렇고 5성급으로 등급 상승했는데도 말은 하지 못하나 보구나.

“그러게요.”

일전에 네메시스와 케이론을 5성급 적으로 대치했을 때.

그들은 확실히 자신의 의지를 표하고 말할 수 있었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같은 5성급으로 등급을 상승했는데, 그들은 말을 할 수 없는 걸까?

-어쩌면…….

이에 세이비어는 진중한 표정으로 추측을 내놓았다.

“어쩌면 뭐요?”

건우는 귀를 쫑긋 세우며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대마도사 세이비어.

그가 이제껏 쌓아 온 지혜라면 이 의문의 현상에 대한 답을 의외로 쉽게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앞에서만 내숭을 부리는 거 아닐까?

“네?”

건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휙휙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인마. 진짜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단정 지어! 너 내기할래?

“해요. 해. 할아버지 말씀이 맞으면 제 손에 장 지집니다. 할아버지도 장 지질 거예요?”

유령에게 손이 어디 있겠냐마는.

탑이 지닌 기술을 이용한다면, 영혼을 육신처럼 타격을 줄 수 있는 아티팩트는 한가득이었다.

예시로 건우가 지닌 팬텀 스피릿 소드가 있다.

그 때문에 세이비어는 자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 자식! 할아버지한테 그런 잔인한 제안을 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내 후손이냐!

“자꾸 우기시니까 그러죠.”

-뭐 우겨? 그래. 장 지지자. 장 지져.

내기의 결과가 언제 나올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장차 이 내기의 결과가 났을 때 패자는 승자에게 무릎이 닳도록 빌어야만 했다.

***

석양으로 물든 예술의 도시, 몬타나.

“경치 좋네.”

모든 준비를 마친 건우는 평온한 표정으로 지붕에 앉아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느긋한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네.”

건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바로 뒤편에 있는 니파를 쳐다보았다.

“며칠 전부터 줄곧 말했던 것 같은데, 아직 괜찮아.”

대답을 하면서도 니파는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팔찌 아티팩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추정컨대, 아마 20층에 있는 엘프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통신용 아티팩트일 것이다.

“그리고 승산이 거의 없는 우리들을 위해 나서주는데,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솔직하게 말한 것이 쑥스러운지 니파는 뺨을 긁적였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거리가 좁혀진 것을 느낀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에서 해 보고 싶은 거 있어? 어울려 줄게.”

“……데이트 신청인가? 그 여자한테 시달리기는 싫은데.”

니파는 라페아를 떠올리고는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일일이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정말 하고 싶은 거 없어?”

집요한 질문에…….

“……있어. 마지막으로 어떤 그림이 보고 싶어.”

니파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솔직하게 답했다.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어떤 그림인데?”

***

몬타나에 위치한 리치몬드 박물관.

그곳은 탑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품들이 집대성한 곳이었다.

들으면 악령이 빙의되는 악보부터, 대마법사 율라의 마도서, 마도문명집대기의 활자본, 유령이 튀어나오는 초상화 등 다양한 전시품이 놓여 있었다.

시간은 자정 12시.

원래라면 누구든 발을 들일 수 없지만.

이 장소에 건우와 니파만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니파는 황당한 표정으로 건우의 등을 쏘아보며 말했다.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많은 포인트를 지불하면서까지 이곳을 빌린 거야?”

반나절을 대여한 비용은 167,000포인트.

탑의 하이랭커나 각 층의 귀족 등이 아니면 쉽사리 지불하기 어려운 비용이었다.

처음에 관람불가라고 했을 때, 니파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려고 했지만.

건우는 무덤덤하게 박물관 관계자에게 비용을 물었고.

관계자는 코웃음치며 167,000포인트를 불렀다.

-낼게요.

한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건우가 포인트를 지불하니.

박물관의 직원들 전원이 달려와 건우와 니파에게 인사를 하는 괴이한 풍경까지 펼쳐졌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던 니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피식.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너가 보고 싶다며?”

“……혹시 나한테 딴마음 품은 건 아니겠지?”

자신이 말해놓고도 상당히 부끄러웠는지 니파의 얼굴이 빨개졌다.

건우는 얄궂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어떤 마음?”

“그, 그러니까.”

능글맞은 대처에 니파는 말을 더듬으며 당황했다.

“푸훗!”

“웃지 마!”

결국 니파는 발끈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발이 멈춘 곳에는 한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그림의 배경은 반딧불이 일렁거리는 호수와 초목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림 속에는 두 연인이 있었다.

그들은 마치 혼례를 올린 것처럼 순백의 옷을 입은 여인은 꽃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남성은 그런 여인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이목구비 없이 윤곽만 드러낸 그림.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두 연인은 서로 웃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게 보고 싶었어?”

건우는 슬쩍 니파를 쳐다봤다.

“응.”

그녀는 보고 싶었던 그림을 등진 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있었다.

[고독한 가운데, 남자는 삶의 목적을 찾아냈다.]

‘어디서 많이 본 남자 같단 말이지.’

그림의 제목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건우는 다시 한번, 남자의 실루엣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완전기억을 가진 건우치고는 무척이나 겪기 힘든 일이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 누군지 알아?”

“……몰라. 이제 그만 가자.”

니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발길을 옮겼고, 건우는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행복해 보이네.”

22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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