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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218화 (218/308)

218화

탑의 19층에 존재하는 예술의 도시, 몬타나.

이곳의 시련은 다른 층과는 여러모로 색달랐다.

탑의 문화와 역사 등의 자취가 살아 숨 쉬는 곳.

그렇기 때문에 이 층에서 시련은 누군가의 유산이나 혹은 예술품을 찾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지하수가 꽉 들어찬 지하신전 내부.

키에에에엑!

음습하기 이를 데 없는 천정에는 넝쿨이 한가득했다.

찰박, 찰박.

렌은 침수된 지면을 거닐다 잠시 발을 멈췄다.

“찾았다!”

렌의 시선이 향한 벽면에는 한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보르네의 여인>

-수집 난이도: 레어

-설명 : 고대 문명시절, 유명 화가, 하프레인이 농노의 부인을 모델로 삼아 그린 그림.

여성의 원숙미가 명암 등 뛰어난 기법이 사용됐다.

당시 시대상의 복장 등이 잘 표현돼 있어 역사의 고증자료로 취급받기도 한다.

-내구도 16/28

초상화를 찾기까지 어언 일주일.

“이제 스승님한테 안 맞아도 돼.”

렌은 그동안 겪은 고초를 생각하니, 눈가에 핑 돌았다.

이번 시련은 건우 등의 도움 없이 렌이 홀로 치러야 했다.

정부수집부터 던전 탐색까지 케이론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배운 덕에 렌은 심신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끝이다!”

찰박!

렌은 힘껏 발을 박차며 단숨에 보르네의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륵.

바로 그 순간.

천정에 흐느적 매달려 있던 넝쿨들이 구불거리며 일제히 렌에게 습격을 가했다.

바인 스네이크

그것은 눈이 존재하지 않았고 기민한 몸놀림이 수상치 않았다.

특징으로는 지금 같이 넝쿨로 위장해 사냥감을 사냥하는 습성이 있었다.

성급하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물리기 일보 직전.

쇄액!

렌은 바인 스네이크가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으려는 것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바인 스네이크 무리가 깃발처럼 넘실거리다…….

쇄액! 쇄액! 쇄액! 쇄액! 쇄액!

곧 총알처럼 자신들의 몸을 튕기며 렌을 기습했다.

“아 진짜! 짜증 나!”

렌은 바인 스네이크에 준하는 속도로 공격을 따돌렸다.

그때, 사각을 노리고 들어오는 뱀 무리가 왼쪽 측면에서 습격을 가했다.

덥석!

하지만 녀석들의 이빨이 렌에게 박히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일찌감치 그들의 존재를 냄새로 감지한 렌이 손으로 바인 스네이크들의 머리를 잡아챘기 때문이다.

파아아아앗!

렌은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줘 바인 스네이크들의 머리를 터뜨렸다.

피와 녀석들의 살점 등이 풍선 터지듯이 주변에 튀었다.

키에에에에에엑!

동료의 피에 맞은 바인 스네이크들은 피에 담긴 산성 용액 때문에 괴로워하며 그 자리에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덩달아 몸 곳곳에 녀석들의 피를 뒤집어쓴 렌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아아, 녹는다. 녹아.”

살점을 파고드는 독의 산성에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이미 레이드에 상당한 경험이 생긴 렌은 자연스레 해독약을 입에 물며 까득 씹었다.

하지만.

휘청!

해독 속도가 중독을 따라오지 못했는지, 시야가 희뿌예지고 몸의 일부가 경직됐다.

렌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또 혼나겠네.’

찰박! 찰박!

그리고 연달아 뒤로 발을 튕기던 도중.

휘리리릭!

순식간에 렌을 오른쪽 팔을 휘감은 바인 스네이크가 팔뚝에 독니를 박아 넣으려고 했다.

위기일발의 순간.

콰직!

렌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팔을 휘감은 바인 스네이크를 직접 깨물어 죽였다.

“퉤!”

재빨리 녀석의 살점을 뱉기는 했지만.

산성을 띤 피를 머금은 탓인지 입가에는 지글지글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 젠장!”

독의 일부가 체내에 들어간 것을 깨달은 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신진대사 속도가 느려지고 온몸의 감각이 둔화됐다.

재빨리 혀를 깨물어 어떻게든 감각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스스스스스스.

그 전에 이미 렌의 주변을 바인 스네이크가 에워쌌다.

키에에에에엑!

녀석들은 포식의 욕구를 드러내며 렌을 급습했다.

두둑!

렌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손톱에 마나를 씌웠다.

후우우웅!

하지만 그들의 격돌이 이루어지기 전에 적색을 띠는 빛줄기가 베인 스네이크를 단숨에 찢어발겼다.

푸욱! 푸욱! 푸욱!

빗발치던 화살은 렌의 어깨, 바지 등의 옷깃을 꿰뚫으며 벽에 박혔다.

주륵.

졸지에 벽에 박혀 버린 렌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스, 스승님. 이건 좀 무서운데요?”

시선이 향한 곳에는 케이론이 철궁을 들고 서 있었다.

“안 다쳤냐?”

케이론의 뒤에서 건우가 렌의 몸 상태를 물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괘, 괜찮…….”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혀의 기능 일부가 마비됐는지 발음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파르르르르.

이대로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될까 싶은 두려움에 몸을 떨던 중.

건우는 익숙한 듯 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금빛의 기운이 천천히 몸에 스며드는 순간.

통통 부었던 눈의 붓기와 전신에 입은 화상의 흔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을 떴을 때는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

“으윽! 분해! 저것들 뭐야!!”

렌은 양손의 주먹을 꽉 쥐며 발을 퉁퉁 튀겼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혼자서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는데.

정체불명의 몬스터의 기습에 렌은 분해했다.

따악!

건우는 그런 렌의 이마를 검지로 가격했다.

“끄아아아아아악!”

평소와는 다른 격통에 렌은 이마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건우는 냉담한 표정으로 렌을 꾸짖었다.

“던전 공략보다 네 생명이 먼저야.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자리를 뜰 줄 알아야지. 함정인 줄 알면 경계심도 갖춰야 되고.”

“…….”

하는 말이 족족 옳은지라 렌은 입을 꼭 다물었다.

케이론 역시 반성한 듯 뒤에서 예를 갖추며 경청하고 있었다.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렌은 반성한 듯 고개를 수그렸고 건우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스윽.

바로 그때 슬그머니 나타난 라페아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건우에게 갖다 댔다.

“……왜?”

그녀의 엉뚱한 행동에 건우는 오늘도 적잖이 당황했고.

라페아는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무래도 너는 반려자로서 애정표현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못 말리겠네.”

쑥스러운지, 건우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라페아는 진심으로 기쁜 듯 생긋 웃어 보였다.

“…….”

정작, 그 훈훈한 모습을 지켜본 렌은 바싹 얼어붙었다.

‘저쯤 되면 완전 인중인격잔데.’

11층에서부터 그녀와 함께 여행하기 약 3개월.

그동안 적지 않은 시련을 거쳐 오면서 렌은 라페아의 모습을 지켜봐 왔다.

27계층의 플로어 마스터이자, 정령군주로 불려왔던 이 무시무시한 하이랭커는 지금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 중이었다.

그 짝사랑 대상인 건우는 그녀의 애정표현에 언제나 난감해 하면서도 조금씩 받아주고 있었다.

애교를 부릴 때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봐도 무척 사랑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렌을 경악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라페아의 태도였다.

오만하면서도 높은 프라이드를 갖춘 여인인 만큼…….

그녀는 건우 외의 모든 사람에게 냉담하며 폭력으로 대했다.

실제로 최근, 그녀에게 치근덕거리던 불쌍한 플레이어들은 이빨이 깡그리 깨져 길바닥에 쳐 박혔다.

도가 넘는 폭력은 최대한 자제하지만.

추파를 던질 때, 그들이 내뱉은 음담패설에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건은 한 가지 더 있었다.

건우를 따르는 이그너스의 보스들.

이들은 결코 주인인 건우 외에는 따르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세피아를 제외한 나머지 보스들은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다.

사건의 발단은 여행 중 라페아가 화로를 준비하던 도중 벌어졌다.

평소 고귀한 신분으로 취급받은 라페아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건우의 말에 차곡차곡 돌을 쌓으며 화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콰쾅!

하지만 무심코 본래 모습으로 나비를 쫓던 바포메트가 화로를 짓밟은 만행을 벌였다.

라페아는 그대로 눈이 뒤집혔고.

5성급 바포메트는 그녀에게 쪽도 못 쓰고 두들겨 맞아야 했다.

그때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네메시스와 케이론은 그 뒤로 라페아 앞에서는 공손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척.

지금 이 순간에도 케이론은 군기가 바싹 든 상태로 라페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이그너스의 보스들 역시 그녀를 건우의 반려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흠, 나한테 용건이라도 있느냐?”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누, 누님.”

렌은 식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싱겁기는.”

누님이란 호칭이 마음에 드는지 라페아의 입가가 실룩였다.

-졸지에 마님 한 명이 파티에 위계질서를 세우게 됐구나.

세이비어는 훈훈하게 웃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인 스네이크를 관찰하고 있는 건우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냐?

세이비어의 물음에 건우는 바인 스네이크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꿈틀, 꿈틀.

녀석은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 듯 팔딱팔딱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좀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괴이한 생김새, 난이도에 맞지 않는 치명적인 독을 살포하는 몬스터.

위장 솜씨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렌이 감각이 예민한 수인이었기에 물리기 전에 기척을 간파한 거지.

다른 플레이어였으면 이미 잔뜩 독니에 박힌 채로 레이드를 치렀어야 될 판국이었다.

-확실히 이건 인위적으로 변이한 종 같구나.

세이비어 역시 수상하다고 느꼈는지 분위기가 못내 진지해졌다.

구태여 인위적으로 몬스터를 탈바꿈시킬 이유가 있는 걸까?

건우는 무심코 라페아를 쳐다보다 곧 고개를 저었다.

제아무리 플로어 마스터라고 해도 라페아라고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건 아니다.

저층으로 내려올 때, 단계적으로 내려온 게 아니라 몇 개 층을 뛰어넘었으니 말이다.

“아는 게 없어서 미안.”

실망시켜 미안한 듯 라페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19층과 20층의 정보의 보안성은 매우 높았다.

이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포인트를 지불해야 했는데.

라페아의 입장에서 그리 궁금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하고 통과했었다.

“아니야. 일단 시련을 끝마치고 생각해 보자고.”

건우는 피식 웃으며 벽면에 걸려 있는 보르네의 여인 초상화를 집어 들었다.

***

예술의 도시, 몬타나.

그 이름에 걸맞게 거리 곳곳에는 행위 예술가와 묘기를 부리는 차력사들이 활력을 주고 있었다.

“흐음. 북적하구나.”

라페아는 신기한 듯 주변을 쳐다보며 감상에 취해 있었다.

“사람이 많은 게 신기해?”

“나는 일찍부터 신녀로 추앙받아서 마을까지 내려올 일이 좀처럼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건, 전장 정도밖에 겪지 못했지.”

“…….”

건우는 저도 모르게 측은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라페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건우에게 물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느냐?”

“크흠, 아니야. 저, 저거 먹어 볼래?”

괜스레 그녀에게 미안했던 건우는 길거리에서 파는 솜사탕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라페아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건우를 쳐다봤다.

“나는 애가 아니다.”

잠시 후.

솜사탕에 시선을 뺏긴 라페아는 쭉 솜사탕을 뜯어 입에 쑤욱 넣었다.

“…….”

감평은 남기지 않았지만 마음에 쑥 드는지…….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 빛내고 있었다.

건우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라페아를 지켜봤다.

-치명적으로 귀엽다고 생각했지?

그러다 세이비어가 넌지시 건넨 질문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요.”

-조금?

약 올리는 의도가 가득한 세이비어의 말투에 발끈하려는 찰나.

“이건 사기야!”

곧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여인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그쪽 방향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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