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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213화 (213/308)

213화

플레이어들의 야망이 집결한 탑.

그곳의 정세는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

기준에 정착한 자들에 의한 통치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물론 한 번씩 그 정세를 흔드는 크나큰 사건은 있기 마련이었지만.

이번 소식은 상층과 하층 가릴 것 없이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필리프 4세의 패배.

40계층의 플로어 마스터, 기가스 티폰에게 도전하려는 그의 야망은 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침공을 하기 직전.

한 플레이어에게 그의 무적함대가 대파 당했기 때문이다.

교란자.

그 불길한 이름에 플레이어, 관리자, 그리고 최고층을 다스리는 신들도 자연히 긴장했다.

언제 어디서 출물할지 모르는 플레이어.

그는 압도적인 강함으로 오랫동안 불변의 진리였던 탑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신들에게조차 대적할 수 있는 필리프 4세의 무적함대가 저지당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너진 건, 극히 일부.

나머지는 필리프의 권력을 계승받기 위한 지휘관들의 혈투로 자멸했다.

[랭킹 10위, 교란자, ###]

그리고 교란자가 유일하게 남긴 흔적은 필리프의 전 랭킹의 강탈이었다.

20계층, 세계수가 깊게 뿌리를 박아 넣은 영원무궁의 숲, 엘더리아.

초목 사이로 비춰지는 부스러진 햇살을 맞으며 활을 든 엘프 남성이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변혁의 바람이 불어오는 건가?”

“변혁? 겨우 저층에서 벌어진 일이야. 여기서부터는 차원이 다르다고.”

금발의 여성은 주먹을 꽉 쥐며 아랫입술을 말아 깨물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교란자. 어떤 녀석인지 모르지만 최근에 자꾸 괜한 꿈을 심어 주잖아.”

“희망을 가지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니파.”

니파는 눈물이 맺힌 상태로 그에게 반박했다.

“그 희망 때문에 어제 1200명이 넘는 동족들이 학살당했어!”

“…….”

남성 엘프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들은 지옥을 겪고 있다.

현재 엘프의 생존은 위태롭기 그지없는 것이다.

니파는 손으로 눈물을 훑으며 말했다.

“미안. 어차피 희망이랑 상관없이 녀석은 우리를 죽였을 텐데.”

“그 마음 모를 리가 없잖아.”

남성 엘프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여기에는 당도해 주지 않으려나. 교란자.”

“그가 정의롭다고 보장이 없잖아.”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누구한테 기댈 생각하지 마. 우리 힘으로 어떻게든 녀석을 저지해야 돼.”

니파는 심지를 굳힌 얼굴로 어딘가를 주시했다.

엘더리아의 중심.

그곳에는 엘더리아 필드 자체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세계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세계수라는 그 위상과 걸맞지 않게 곳곳이 썩어 금방이라도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키에에에에엑!

세계수 부근에 비치는 흉악한 그림자는 그런 그들을 비웃는 듯 끔찍한 흉성을 토해 냈다.

***

11층, 중립지대.

이곳 층부터 도달한 시점부터는 나름 경험 있는 플레이어라고 인정을 받는다.

필리프 4세의 독재로 대다수 플레이어가 수백 년 동안 이곳까지 도달하는데 실패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침투불가의 방벽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교란자에 의해 필리프 4세는 참수 당했다.

악독한 독재자의 죽음으로 변혁의 바람은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가장 먼저, 심연의 결투에 의한 금제로 필리프 4세의 병사가 된 플레이어들이 해방됐다.

지독한 사상교육을 통해 세뇌가 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의 죽음을 환영하며 제국에 반기를 들었다.

후폭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1층은 플레이어가 다음 층으로 도전하기 전에 정비와 휴식을 위해 마련된 층.

지금까지는 필리프 4세에 의해 플레이어들의 유입이 극소수로…….

늘 파리만 날리는 신세뿐이라며 한탄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바로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11층의 한 골목가 주점은 붐비는 플레이어로 인해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웅성웅성.

“빨리, 빨리 해!”

주점의 사장은 직원들을 닦달하며 맥주를 내놓고 있었다.

그러다 곧 한계가 찾아왔는지 그는 결국 그 자리에서 소리쳤다.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처럼 11층은 어디를 가든 인산인해를 이루는 현상이 발상했다.

그동안 필리프 4세의 독재 때문에 움츠려 있던 플레이어들이 한꺼번에 이동한 탓이었다.

그 덕분에 관리자들은 이번에도 교란자를 찾는 것은 실패했다. 시련을 관리하는 것 외에도 교란자 수색을 맡고 있는 고블린, 관리인 리발은 11층의 풍경을 보며 혀를 찼다.

“당최 종잡을 수 없군요.”

“뱀께서는 분노하고 계신다. 어째서 그렇게 대놓고 필리프 4세의 목을 베었는데, 그 교란자 녀석을 찾을 수 없는 거지?”

그의 뒤에 있던 로브의 사내는 고블린 리발을 흘깃 노려보았다.

주륵.

리발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교란자는 무모한 것 같으면서도 기묘한 책략으로 감시를 피하는 건 틀림없습니다.”

“뱀께서는 그를 죽이라고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그 자의 덜미를 잡아 상세히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 같은 거랑 비교도 되지 않는 신의 역량을 지닌 관리자분들도 잡지 못했다는 것을…….”

“…….”

그 말에 공감했는지 로브의 사내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교란자는 강하다.

그리고 그가 자취를 남기는 곳은 탑에서 전례 없는 분란의 징조가 일어났다.

이것은 가까스로 탑에 똬리를 튼 뱀이 결코 원하는 현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소동의 원인인 교란자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스템에 무슨 수작을 벌인 건지,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분명 그의 얼굴을 봤다고는 하지만.

그 얼굴은 누구 한 명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다.

‘아마 정체를 숨기는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런 녀석을 찾을 수 있는 건이 녀석밖에 없어.’

로브의 남자는 힐끔 고블린 관리인, 리발을 쳐다봤다.

애석하게도 교란자를 수색하는 것은 힘이랑은 전혀 상관없다.

그를 찾아내려면 정확히 상황을 분석할 줄 아는 판단력과 탑에 일어나는 전반적인 사건을 파악할 줄 아는 이었다.

거기에 가장 부합된 인물이 머천트 출신이었던 리발이었다.

그는 알게 모르게 ‘똬리를 트는 뱀’의 정보원으로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로 인해 뱀의 사도들은 상당히 그를 총애하는 경향도 없잖아 있었다.

무엇보다 역대급의 힘을 가진 관리자들을 제압한 교란자를 보잘것없는 고블린한테 닦달해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여러 의미로 리발의 말은 충분히 합당하고 일리가 있었다.

한참 고심하던 로브의 남자는 앗차 싶은 표정으로 잠시 입을 벌렸다.

‘또 이 녀석의 페이스에 휘말렸군.’

뒤늦게야 자신이 리발의 화법에 말렸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리발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됐다. 네 녀석이랑 쓸데없이 말장난할 생각은 없으니.”

그는 로브를 고쳐 메며 서릿발 같은 눈길로 리발을 노려보았다.

오싹!

순간 의기양양하게 그를 농락했던 리발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 번은 넘어가주지. 단 말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할 말을 마친 뱀의 사도는 그대로 사라졌다.

“…….”

리발은 그가 사라진 자취를 찾아보다 한숨을 쉬었다.

“상당히 급한가보군. 서둘러야겠어.”

리발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눈매를 좁혔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토대로 탑 곳곳을 물색했지만 교란자로 추정되는 플레이어는 발견되지 않았다.

분명 상당한 강자는 있었지만.

신들을 위협할 만큼 강한 인물은 없었다.

그만한 강자가 있다면, ‘여섯 날개를 가진 기사’밖에 없다.

십존에 버금가는 플레이어.

탑에서는 그런 자를 번외라고 지칭한다.

사실 이 ‘번외’라는 호칭도 여섯 날개를 가진 기사 단 한 명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번외에 속하는 플레이어 한 명이 더 있다.

그것이 바로 교란자.

리발은 여섯 날개를 가진 기사를 상기하며 추리에 나섰다.

‘그 자는 탑에서 한창 자신의 적과 교전을 하고 있었어. 탑을 어지럽힐 시간이 없었던 거지.’

따라서 여섯 날개를 가진 기사는 결코 교란자가 될 수 없다.

탑의 시스템이 복구된 뒤, 그 짧은 시간 동안 리발은 억 단위의 플레이어를 봐왔다.

그 중에는 뱀이 특별히 총애하는 솔로몬같이 인상 깊은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리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플레이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최건우.”

리발은 무의식적으로 그 플레이어의 이름을 입에 담다가….

“설마?!”

무언가 깨달은 듯 머릿속에 교차하는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기 시작했다.

-교란자는 탑의 질서를 재구성시켰다.

-뒤바뀐 제약의 법칙으로 인해 뱀의 군세는 외부 세계로 나갈 수 없다.

이것은 분명 엄청난 일이지만.

그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했다.

‘교란자라고 해서 제약의 법칙을 받지 말라는 법은 없어.’

만약 그 교란자가 모든 것을 잃고 가장 밑의 층에 추락을 했다면?

아마 대답은 둘 중 한 가지가 될 것이다.

잃어버린 힘에 허탈함을 느끼며 탑의 등반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과거 이상의 힘을 되찾기 위해 탑을 등반한다든가.

만약 이 가정을 건우에게 대입해 본다면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진다.

튜토리얼을 치르는 신참 플레이어라고 보기에는 무시무시한 무력과 경험치.

관리자 이상으로 탑의 정보를 꿰뚫는 정보력.

그리고 마법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복원시킬 수 있는 권능.

‘가능성은 5% 미만. 하지만 쓰레기 같은 가설보다는 훨씬 아귀가 맞아떨어져.’

물적 증거가 부족해서 나온 수치일 뿐이지만.

리발은 건우가 교란자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수많은 정보창 중에서 건우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칫! 쥐새끼 같은 놈. 이전 층이나 다음 층에 있나보겠군.”

리발은 그대로 혀를 찼다.

시련을 관리하는 관리자라고는 하지만 정보를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가령, 리발은 자신이 머무는 층에 한해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접근에 제한이 있는 정보란 항상 있는 법이다.

11층 같은 경우에는 중립지대인 만큼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하이 랭커들이 구입한 영지가 있다.

그곳만큼은 관리인들조차 접근할 수 없다.

이곳으로부터 반경 50km 지대는 27계층 플로어 마스터였던, 라페아의 영지다.

리발은 라페아의 영지가 있는 쪽을 향하다…….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스레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학살하는 필리프 4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라페아의 분노를 산 자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그만큼 라페아는 관리자들이 꺼려하는 하이랭커 중 한 명이었다.

‘조만간 네놈의 행적을 찾아주지. 최건우.’

리발은 어쩔 수 없이 이를 갈며 발길을 돌렸다.

***

쏴아.

바다라고 착각할 만큼 거대한 호수에는 궁전이 놓여 있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솟은 기둥, 그 모양은 어찌 보면 바다에서 흔히 보는 고둥 같기도 했다.

주변에는 노움, 운디네, 실피드, 셀라임 등.

사대 속성의 하급 정령의 조각상들이 놓여 있었다.

‘이오니아 양식이랑 닮았네.’

평소에 미적 감각에 대해 별생각 없이 지낸 건우지만 이곳은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의 주인, 라페아는 널따란 의자에 옆으로 누운 채, 건우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의 별장에 감상을 듣고 싶은데, 어떻지?”

“아주 좋아. 필리프 녀석처럼 착취해서 얻은 성과라면 부숴 버리고 싶지만.”

라페아는 코웃음 치며 답했다.

“그대는 내가 필리프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로 고정관념이 박힌 듯싶군. 그런 일은 없다. 나는 그런 소인배가 아니니.”

“아마 이곳이 럼과 그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영역이겠지.”

“정답이다. 이곳은 나의 영지. 관리자라고 해도 침입은 불가능하다.”

“과연.”

건우는 라페아의 자신감이 결코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그래서 나한테 바라는 게 뭐지?”

-서두르지 말고 좀 쉬면 탈이라도 나냐? 이 녀석아.

세이비어의 핀잔에 건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마음이 급하잖아요.’

-캬야~ 여기서 막장 드라마를 찍어도 나쁘지 않지? 웬수 같은 남편의 불륜이라든지, 모 마피아가 튀어나와서 통째로 성에 불을 낸다든지.

“막장 드라마?”

세이비어의 말을 들은 라페아는 고개를 갸웃했고.

삐질.

건우는 식은땀을 주륵 흘리다가 무덤덤한 척 화제를 넘어갔다.

“라페아. 질문에 대한 답은?”

“그대는 참 성급하군.”

막장 드라마에 대해 답을 해 주지 않자, 라페아는 섭섭한 표정을 짓다 곧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바라는 건, 하나, 내 시험에 도전해서 통과했으면 좋겠구나.”

“시험?”

시련과 비슷한 걸까?

건우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지금까지 시험을 통과한 플레이어는 몇이나 돼?”

라페아는 무척 아쉽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대답에 건우는 인상을 홱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난이도가 얼마나 극혐이기에 성공 확률이 0%라는 말인가.

“시험 내용은 뭔데?”

라페아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 라페아를 상대와 승부를 겨루어 이기는 거다.”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뭐라고?

유령의 모습으로 튀어나온 세이비어는 귀를 후비적 파는 시늉을 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라페아는 미소를 유지하며 다시 한번 답해 주었다.

“그대들이 들은 게 맞다.”

미소를 띤 확답에 건우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입가를 씨익 올렸다.

“……아무래도 진짠가 보네요.”

214.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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