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1층계는 신참 플레이어들이 모여드는 층계답게 많은 관리자가 존재한다.
그들의 권한은 시련 중 룰 위반자를 추려 내거나.
갑작스레 발생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련의 신전.
토끼 귀를 가진 수인, 관리자 래빗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상해.’
래빗은 붉은 동공으로 자신의 동료를 지켜보았다.
상대의 이름은 토그.
관리자 이명으로는 게으름뱅이였다.
나름 수치스러운 이명이지만, 토그는 별반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것조차 신경 쓰기 귀찮은 것이다.
한데, 오늘은 어쩐 일일까?
놀랍게도 이 게으름뱅이가 감시창을 시청하며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대낮부터 자려고 낮술이야? 먹고 마시는 것도 귀찮은 양반이 웬일이래?”
1층계 관리자 드래곤과 인간의 혼혈인 드라고니안, 드랙도 토그의 모습에 의아함을 품었다.
“키키키키키, 흥미로운 플레이어를 발견했다는데.”
유일하게 그 사정을 알고 있던 관리자, 고블린 리발은 간사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른한 건지, 토그는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내가 낮술을 마시든 말든.”
“그래도 네가 특정 플레이어를 그렇게 관찰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래빗의 말에 다른 관리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만큼 토그의 변화는 기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변은 언제나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 이변은 어디까지나 작은 변화.
결국 모든 것은 변화를 벗어나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그것이 탑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관리자의 관점에서 본 탑의 현실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던 토그가 모처럼 누군가에게 흥미를 가진다는 것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리발은 간사하게 웃으며 토그와 관리자에게 말했다.
“교란자의 3일을 겪은 후에 새삼스럽지만 새로운 루키들도 많이 유입됐어. 흥미로운 플레이어들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다들 안 그래?”
“…….”
리발의 말이 거짓은 아닌지 관리자들은 침묵을 지켰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리발의 발언에 토그는 인상을 홱 찌푸렸다.
“시끄러워. 잔챙이들 가지고 소란 떨지 마. 내가 본 녀석은 네놈들이 주시하고 있는 녀석들이랑 차원이 다르다고.”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내뱉은 토그의 발언은 관리자의 의욕을 자극했다.
드랙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모두를 쏘아보며 말했다.
“호오, 자신만만한데. 어차피 포인트 집계까지 결과는 아무도 모르잖아. 그럼 각자 1위 후보자를 지목한 다음 그 안에서 1위로 뽑히면. 1위 후보를 찍은 녀석한테 포인트를 몰아주자고.”
“자, 잠깐 갑자기 왜 이렇게 판이 커지는데?”
래빗은 고개를 홱홱 저었지만 이미 불은 지필대로 지펴진 상태였다.
토그가 내기에 응했다.
“좋지. 판돈은 개인 당 5000포인트다. 다들 자신 없으면 빠져.”
“5, 5천 포인트?!”
래빗은 기겁해 동공이 확대됐다.
5000포인트는 관리자가 정기적으로 받는 보상의 족히 세 달치를 합산한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하하하, 후회하지 말라고.”
드랙과 리발은 선뜻 5000포인트를 내걸었다.
“정말인지. 편파판정하면 가만 안 놔둔다.”
달아오른 분위기에 래빗도 결국 내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
시련의 신전.
1만 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거대 신전으로 몰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1차 튜토리얼을 완수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꿀꺽.
렌은 긴장 때문인지 주변을 서성거리며 고인 침을 삼켰다.
탁!
건우는 손날로 렌의 머리를 툭 치며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집중.”
“윽!”
건우의 말에 렌은 기마 자세로 서서 근력을 단련하고 있었다.
수인인 렌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충분히 괴력을 발휘할 테지만.
건우는 렌이 보다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훈련할 때만큼은 렌은 싫은 기색 없이 건우의 말을 따랐다.
“하하하하, 이렇게까지 긴장감 없는 플레이어는 또 처음 보는군.”
바로 뒤에는 신전 기둥을 등받이 삼아 나른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남자가 건우와 렌를 보고는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말 꼬랑지 머리에 여행자 옷차림.
어딜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이었다.
건우는 팔짱을 끼며 말을 걸었다.
“넌 누군데 시비야?”
“하하하하, 내 이름은 럼이야. 튜토리얼 도전만 벌써 3번째인 고인물이지. 모르는 것 있으면 한 번 물어봐. 웬만한 건 다 대답해 줄 수 있어.”
“흠.”
고심하듯 보이던 건우는…….
홱!
그대로 고개를 돌리며 렌에게 명했다.
“이제 그만 쉬어. 저녁에는 무투 수련이다.”
“무시하지 마!”
당황한 럼이 빽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난 느긋이 자리 잡은 꼰대한테 별 관심 없는데?”
건우의 무덤덤한 말투에 럼은 인상을 왈칵 찌푸렸다.
“정말 요즘 신입들은 왜 이렇게 건방진 건지. 그렇게 고개를 뻣뻣이 할 곳이 아니라고. 2차 시험이 그렇게 쉬울 줄 알아? 다들 나한테 도움 받고 싶어 한다고.”
-어후, 계속 나불거리네. 그냥 쫓아내면 안 되냐?
거슬린다는 세이비어의 음성에 건우는 한껏 동조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튜토리얼 참가자들은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다음 시련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은밀하게 협력을 논하고 있기도 했다.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을 마친 건우는 럼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냥 너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만만해 보이는 신입을 구해서 엮이려고 하는 거 아니야?”
뜨끔!
럼은 크게 당황한 건지 어깨를 떨었다.
딱히 몰아가려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속내가 훤히 보이다니.
건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휴. 그래 이야기라도 원 없이 해 봐. 들어 주기만 할 테니까.”
“그렇지. 역시 선배의 조언이 필요하겠지.”
금세 허세를 되찾은 럼은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교란자의 3일 이후 신출내기 플레이어 중 유난히 눈에 띠는 플레이어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전부터 그 녀석들은 포텐이 터질 예정이었어. 먼저 저길 봐.”
건우와 렌은 럼이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했다.
남쪽 문 쪽에는 창을 어깨에 기대고 있는 말끔한 외모를 가진 남성이 있었다.
“이름은 레온. 창을 다루는 플레이어로 작년에 튜토리얼에 도전하다가 공적치가 5점 모자라서 아깝게 떨어졌어. 무력은 여기 있는 중에서는 상위권일 거야.”
‘강하긴 하네.’
발달된 기감으로 레온의 상태를 살핀 건우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럼의 말에 무심코 빠져들었는지 질문을 했다.
“다음은?”
럼은 반색하며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거대한 철퇴와 메이스가 혼합된 무구를 들고 있는 남자였다.
직업이 사제인지 옷이나 분위기가 나름 경건했지만, 2미터 30cm는 돼 보이는 거대한 덩치는 주변의 플레이어들의 경계를 사게 만들었다.
럼 역시 긴장이 되는 표정으로 그의 소개를 했다.
“피의 사제, 레이크. ‘서리를 뒤덮인 자’를 성좌로 모시고 있는 플레이어야. 여타의 사제들이 힐을 해 주는 포지션이라면, 저 녀석은 상대에게서 체력을 빼앗아 채운 다음에 메이스로 적을 때려잡는 괴물이지. 이번 튜토리얼에서 제대로 깽판쳤다고 하더라고.”
“다음은?”
“다음은 이번 튜토리얼에서 1위를 차지했을지도 모르는 놈이야.”
‘잠정 1위라…….’
건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럼이 가리키기 전, 상대를 색출했다.
공령지체의 감각을 건드리는 불길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길한 기척의 주인은 구태여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웅성웅성.
대다수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빼앗는 존재.
연보랏빛의 머리칼을 뒤로 질끈 묶은 10대 후반의 외모를 갖춘 소년이었다.
그는 거대한 석장을 들고 부하로 추정되는 자들과 같이 신전을 걷고 있었는데, 집단의 분위기가 수상스러울 정도로 광포했다.
“마수 사역자, 솔로몬. 이제 막 날개를 펼친 플레이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해. 무엇보다 100층, 탑에서 최대 영역을 가지고 있는 똬리를 튼 뱀을 성좌로 모시고 있다고 해.”
“……?!”
낯익은 단어에 건우는 움찔 몸을 떨다가…….
“오호라 반가워라. 만나게 될 숙적이었다는 거네.”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거, 건우 형.”
음산하게 웃고 있는 건우의 모습을 보며 렌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2차 튜토리얼의 장소, 시련의 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튜토리얼 참가자들이 모두 모인 건지, 곧 모두의 눈앞으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신전의 중심에서…….
“히끅!”
관리자, 토그가 몸을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제정신 맞아?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토그는 몸을 비틀거리며 말했다.
“1차 튜토리얼을 합격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히끅! 2차 때는 얼마나 살아남으려나. 미리 애도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바쁜 관계로 생략.”
“…….”
경박하면서도 잔인함이 느껴진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주변의 눈치를 살필 생각도 없었던 토그는 다음 단계로 진행을 서둘렀다.
“2차 튜토리얼에 앞서 여러분이 1차 튜토리얼 때, 활약을 집계해 우선적으로 보상이 지급될 겁니다. 시스템 집계는 끝났으니 참고 바랍니다.”
그 말과 동시에 모두가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창이 형성됐다.
[총 참가 플레이어: 1056명]
-1056위, 바론.
-1055위, 로이드.
……
긴장감을 살리려는 의도인지 꼴찌부터 그 순서가 차례, 차례 집계됐다.
그 와중에는 한 가지 재밌는 일도 있었다.
-980위, 렌.
“나, 나는 꼴찌여야 되는 거 아닌가?”
렌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건우를 쳐다보았다.
공적치는 모두 건우에게 할당되는 게 아닌 건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건우가 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스텔스 비틀들 정리하는 중에 몇 마리는 숨통을 끊고 마정석도 가졌잖아. 그것 때문이겠지. 별 신경 쓰지 마.”
집계는 계속 됐고.
-457위, 럼.
얼마 안 가 럼의 이름도 떠올랐다.
“하하하하”
럼은 낯부끄럽다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어중간하면 말을 하지.”
건우는 오히려 측은지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얼마나 잘 나오나 보자!”
울컥한 럼은 버럭 화를 냈다.
시간이 흐르기 약 10분이 지났다. 집계는 어느새 100위권 안쪽으로 진입했다.
한데, 어찌 된 일일까?
‘이, 이 녀석 왜 이름이 안 뜬 거지? 아니면 떴는데 모른 척하는 걸까나.’
럼이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는 와중에 순위는 어느덧 5위권까지 진입했다.
5위, 차수연.
4위, 레온
3위, 레이크
상위 5위 안에 든 자들은 모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차수연? 한국 사람인가? 한국 S급 헌터 중에서는 보지 못했던 이름인데?’
건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5위로 지명된 플레이어를 살폈다.
집계 중에는 머리 위에 이름창이 자연히 떠오르는 건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5위로 지명된 차수연은 솔로몬 일당에 있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이었다.
인상착의로 봤을 때는 분명 동양인의 이목.
이름을 살펴봤을 때, 한국인일 확률이 매우 높아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세이비어가 말했다.
-참 아이러니하구나. S급 헌터 1위, 2위인 자들은 시체가 되어 복귀했는데,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자가 이렇게 튜토리얼에 참가해 강자로 인정받다니.
“겨우 튜토리얼이잖아요. 강자로 인정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죠.”
건우는 냉정하게 반박하며 무심코 솔로몬을 쳐다봤다.
솔로몬은 매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안 나온 이는 이제 두 명.
솔로몬 역시 호명이 안 된 건 건우뿐이라는 것을 인지한 듯 싶었다.
바로 그 순간 집계가 끝났는지 1위와 2위가 갈라졌다.
1위, 최건우.
2위, 솔로몬
“뭐, 뭐야?”
“최, 최건우가 누구야? 들어 보지도 못한 이름인데?”
예상치 못한 집계결과에 모두가 일제히 경악을 터뜨렸고.
“오예!!”
만취해서 정신이 없을 것 같았던 관리자, 토그는 무릎을 꿇으며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터뜨렸다.
“헉!”
럼은 심히 놀랐는지 얼굴이 백짓장처럼 새하얘졌다.
“…….”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솔로몬은 안면근육이 경직돼 미소를 잃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건우는 발걸음을 옮기며 그대로 솔로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싱긋.
그는 얄궂게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뭘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어? 이길 줄 알았나 봐.”
193.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