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집속한 검붉은 파동은 차원을 누비던 관리자들을 크게 위협했다.
콰앙!
방심한 사이 바포메스의 브레스에 직격당한 관리자들은 키보토스에 떨어져 뒤로 크게 밀려났다.
한 팔로 브레스를 막아 낸 엘니뇨는 인상을 홱 찌푸렸다.
“아아! 아파. 뭐야? 저 자식!”
“오빠 괜찮아?”
“그걸 질문이라고.”
라니냐의 질문에 엘니뇨는 팔의 상처를 순식간에 재생시키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커엉! 커엉!
바로 뒤에서는 한 개체에서 세 개체로 분열된 혼돈이 다시 추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판 위에서는…….
브레스를 직격당한 게오르그는 크게 타격이 없는지 휘청거릴 뿐.
곧 건우를 향해 랜스를 찔러 넣으려 하고 있었다.
“돌아가. 새꺄.”
[벨페고르의 권능 ‘전이’를 시전했습니다.]
스팟!
벨페고르의 반지 효과로 게오르그는 키보토스에서 50미터 밖으로 강제로 떨어졌다.
카아아아.
게오르그의 종속인 와이번은 즉시 주인을 받아 냈고 게오르그는 다시 키보토스를 쫓았다.
‘이걸로 한숨 돌렸네.’
위치를 재정립한 건우는 눈매를 살며시 좁혔다.
‘하나, 하나가 디아도스 이상에다가 프리메라에 가까운 힘을 갖고 있어. 위험해.’
코어까지 도달하려면 앞으로 50분 가까이 남았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이 미친 치킨런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게이트를 형성했습니다.]
“케이론, 세피아, 네메시스.”
우웅.
갑판 위에 생성된 게이트 너머로 이그너스의 층계 보스들이 제각기 모습을 드러냈다.
세피아의 모습을 확인한 건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세피아는 역시 게이트를 통해 귀속시킬 수 있었나 보네.’
건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명을 기다리는 보스들에게 명했다.
“모조리 떨궈버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콰콰콰콰콰콰쾅!
그들은 제각기 특기를 발휘해 관리자들을 향해 폭격을 퍼부었다.
***
키보토스에서 발사 된 화살과 마법이 빗줄기처럼 쏟아진다.
콰콰콰콰콰콰쾅!
그 공격들을 모조리 몸을 받아친 혼돈은 점차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엘니뇨와 라니냐, 그리고 게오르그는 혼돈을 방패삼아 추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매끄러운 대처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들은 지금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전무후무(前無後無)
관리자로서 탑을 관리하고 나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약의 힘으로 힘이 너프된 상태였기에 전력을 발휘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달한 층에서는 지배자급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놀랍게도 탑의 은폐된 진실에 다가가는 자는 그들과 비견되는 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는 관리자들에게 있어서 큰 굴욕이자 수치였다.
“……저 녀석 대체 정체가 뭐지?”
“일단 저 녀석은 마왕들의 인정을 받아 유산을 사용하는 걸로 보이는군.”
엘니뇨는 와이번의 머리에 서 있는 게이로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마왕들의 종속일까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느낌은 조금 달라.”
“다르다니?”
“저 녀석은 카론의 배까지 소유하고 있어.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분명 불길한 존재다.”
게오르그는 눈매를 좁히며 바이저를 쓰고 있는 건우를 쳐다보았다.
치직!
무슨 해괴한 짓을 벌였는지 관리자의 눈으로도 얼굴의 식별이 좀처럼 되지 않았다.
그들의 경계 어린 표정에 라니냐는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재미없게 왜 그래? 오빠 그냥 쓸어버리자. 신고식은 제대로 치러줘야지.”
“하하하, 역시 내 동생. 그게 맞지.”
엘니뇨는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두 남매는 곧 각자의 손을 키보토스를 향해 뻗었다.
스스스.
엘니뇨와 라니냐의 눈은 에메랄드빛을 발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곧 기계음처럼 변질됐다.
먼저, 운을 띄우는 것은 엘니뇨였다.
“이것은 신에게 대항하는 어리석은 자를 향한 징벌의 철퇴.”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두 남매의 주문은 권능을 발하기 위한 시동어였다.
마주 잡고 있는 두 손에는 강대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두 남매의 팔에서는 각기 불꽃과 빙결의 폭풍이 맺혀 있었다.
두 남매는 곧 목소리를 맞춰 동시에 말했다.
“우리는 네놈의 존재를 윤허하지 않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두 남매의 손에서 떠나간 불꽃과 빙결의 폭풍이 곧장 서로를 집어삼키며 강대한 용권풍으로 승화됐다.
모든 것을 휩쓰는 그것은 키보토스에서 쏟아지는 공격들을 모조리 집어삼키면서 줄기차게 뻗어 나갔다.
‘끝났군.’
게오르그는 차디차게 웃으며 모처럼 자신들을 당혹시킨 침입자에게 애도를 표했다.
두 남매의 권능, 템페스트(tempest)는 극양과 극음의 성질이 만나 형성된 제 3의 속성이다.
닿는 것을 즉시 소멸시키는 강대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제아무리 벨페고르의 권능을 소지했다고 해도 템페스트를 강제전이 시킬 수는 없다.
심상치 않는 위력에 건우는 즉각 대응조치에 나섰다.
[사이클론을 시전했습니다.]
건우의 손에서는 곧장 맹렬한 회오리 바람이 치솟으며 템페스트와 부딪쳤다.
콰콰콰콰쾅.
충돌 직후 템페스트는 사이클론을 그대로 집어삼키며 집채만큼 커져 키보토스를 집어삼킬 듯 보였다.
‘어리석은 놈.’
게오르그는 모처럼 만난 호적수를 향해 조소를 흩날렸다.
제아무리 강대한 마법이어도 저 쌍둥이의 권능에 비할 쏘랴.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화륵!
느닷없이 허공에 푸른 화염이 모습을 드러냈다.
넘쳐흐르는 초연의 불꽃.
그것은 조금씩이지만 템페스트의 권능을 저지시키고 있었다.
쌍둥이는 눈썹을 꿈틀거렸고 게오르그는 눈을 부릅떴다.
“……설마?!”
콰아아아앙!
결국 키보토스를 집어삼킬 것 같던 템페스트가 푸른 불꽃에 저지됐다.
불꽃 사이로는 건우가 사탄의 목걸이를 들고 권능을 발하던 차였다.
[사이클론에 사탄 블레이즈의 권능이 인챈트 됐습니다.]
콰아아아앙!
사탄 블레이즈는 건우의 사이클론을 타고 그대로 소용돌이로 변질됐다.
콰콰콰콰콰콰콰!
템페스트와 사탄블레이즈의 폭풍은 피장파장으로 서로의 힘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위력에 방패막이가 되고 있던 혼돈이 일부 소멸됐다.
“게오르그!!”
위화감을 느낀 엘니뇨는 게오르그에게 소리쳤고.
쇄액!
게오르그는 와이번의 속도를 높여 키보토스에 진격했다.
“꺼지라고 하지 않았냐?”
건우는 언짢은 기색으로 즉각 갑판에 진각을 밟았다.
-꺄아아아아
-주인이 화났다. 화났어!
그러자 부유하고 있던 망령의 배, 키보토스에 부유하고 있던 데스마스크의 망령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키보토스 전용스킬, 망령포식을 시전했습니다.]
[영혼포식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영혼포식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영혼포식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임시지만, 엄청나게 레벨을 폭등시키니…….
화륵!
사탄블레이즈와 사이클론의 화력도 대폭 상승했다.
그 결과 집채만큼 커진 화력에 템페스트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고 게오르그도 그 여파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이 자식!”
게오르그는 어쩔 수 없이 우회를 선택했다.
믿기지 않는 풍경에 라니냐는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저 녀석 대체 정체가 뭐야? 왜 안 죽는 거야? 무서워.”
엘니뇨는 눈매를 좁히며 동생을 달래 주었다.
“긴장하지 마. 라니냐. 지금 아티팩트 힘으로 우리와 아슬아슬하게 대치를 이루고 있는 것뿐이야. 고갈되는 순간, 끝장나는 건 저 녀석이야.”
“내 의견도 같다.”
게오르그 역시 엘니뇨의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지금 당장 힘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집요하게 괴롭히는 쪽으로 가자고. 저 녀석은 그쪽이 더 괴로울 테니까.”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관리자답게 그들은 냉정하게 전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
차원터널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요격전.
관리자는 집요하게 맹공을 가해 왔고.
그때마다 건우는 층계보스들과 힘을 합쳐 의연하게 대처해 왔다.
하지만.
“하아, 하아”
관리자들의 예상대로 건우는 심신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사상 최강의 S급 헌터라고 칭송받지만.
탑 안에서는 관리자와 비견되는 한낮 플레이어에 불과할 뿐이었다.
물론 탑 내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건우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마력공유를 통해 손을 보태마. 지금은 잠시 쉬어라.
세이비어의 말에 건우는 그제야 안도한 듯 털썩 주저앉았다.
권능을 연속사용.
강대한 마법으로 인한 마력 소진.
게오르그의 철저한 육탄전 감행으로 체력도 꽤 소모한 상태였다.
“남은 시간은…….”
[코어까지 도달 시간: 00:30:00]
“아직도 멀었어.”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가까스로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피며 건우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억지로라도 자기세뇌를 하지 않으면 이 고통에 벗어날 수 없다.
난 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잊지 마라.
‘내가 원해서 여기 있는 것뿐이야. 절대 희생 따위가 아니야.’
피식.
세뇌가 어느 정도 통했는지, 건우는 다시 입꼬리에 호선을 그렸다.
바로 그 순간.
스스스스.
심장 언저리에 금빛 마력이 미미하게 흘러나왔다.
-저건?!
세이비어는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마인트 컨트롤 중이라 건우는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세이비어는 애써 건우에게 이를 자각시킬 수 없었다.
‘방해하면 안 돼. 젠장 하필이면 이 순간에…….’
중요한 경지를 눈앞에 두고 건드리다가는 다시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스.
결국 어쩔 수 없이 세이비어는 유령의 모습으로 튀어나와 층계보스들에게 소리쳤다.
-전력으로 내 후손을 지켜라! 그게 너희들의 사명이다!
세이비어의 명이 통한 걸까?
바포메트, 세피아, 케이론, 네미시스는 한층 기세를 강하게 끌어올리며 관리자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
콰콰콰콰콰!
키보토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요격전.
건우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것을 눈치챈 관리자들은 일제히 눈을 빛냈다.
“끝내야 될 타이밍이다.”
게오르그의 선언에 엘니뇨와 라니냐, 그리고 혼돈이 전력으로 기운을 끌어올렸다.
“결국 네 녀석도 여기까진가 보네.”
“무섭기도 했지만 재밌는 경험이었어. 호호”
카아아앙!
쌍둥이는 다시 한번, 템페스트를 시전했다.
게오르그의 랜스 끝은 푸른빛의 파동이 집결했다.
다수의 개체로 분열된 혼돈은 입가에 브레스를 물며 뱉을 준비를 했다.
차원에 진동을 일으킬 정도로 강대한 일격들은 일제히 키보토스에 쏟아졌다.
콰콰콰콰콰.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한 층계보스들은 결국 자신의 몸을 방패삼아 일격으로부터 건우를 보호했다.
콰직! 콰앙!
그 결과, 키보토스는 그대로 반파.
바포메트, 세피아, 케이론의 몸은 유리처럼 깨지며 재로 소멸됐다.
마지막으로 남은 네메시스는 건우를 그대로 끌어안으며 보호했고…….
번뜩!
그와 동시에 건우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렸다.
***
콰콰콰쾅!
한참 동안 관리자들을 애먹인 키보토스에 관리자들의 일격이 작렬했다.
“이제야 속이 후련해지네.”
엘니뇨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게. 왜 우리 관리자한테 까불어? 호호호”
라니냐 역시 그런 엘니뇨를 그대로 따라 웃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너희가 뭐 대단한 줄 아냐? 앞으로 너희들보다 더한 것들한테도 까불 예정인데.”
피어오르는 폭연 속에서 서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자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목소리의 진원지에 시선을 돌렸다.
반파된 키보토스의 중심.
그곳에는 바이저를 쓴 건우가 부서진 파편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아까와 묘하게 달랐다.
전신에는 금빛의 마나가 원형의 형태로 겹쳐 피어올랐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관리자들은 일제히 긴장했고 건우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필두로 모든 것을 복원한다.”
묘하게 기계음처럼 들리는 음성.
“시, 시동어?!”
“하찮은 하계의 것이 권능을 개화했다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엘니뇨와 라니냐는 눈을 부릅떴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그것은 결코 거짓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건우의 시동어가 떨어지기 무섭게…….
스스스스스.
금싸라기 같은 마력들이 일제히 집약되며 부서진 파편들이 일제히 집속하며 키보토스가 제 형체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분명 소멸됐을 터인 층계 보스들까지도 완전히 수복을 마쳤다.
-조마조마했잖아! 임마.
“죄송해요.”
세이비어는 꾸짖음에 건우 피식 웃음으로 답했다.
우웅.
건우의 체내, 심장에는 태엽모양의 금빛의 마력기관이 생성돼 있었다.
181.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