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도그.
이것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이진광 무리들은 서로 속닥거리며 자신들을 가리켰다.
“아무리 봐도 우리들 가리켜서 말하는 거 맞지?”
“이게 죽으려고! 어디서 사람을 개 취급해!”
“외국인이라고 덩치 믿고 까부는 것 같은데, 이 바닥에서 우리가 알아주는 각성…….”
이진광 무리들은 거들먹거리며 경호원을 위협을 가하던 와중에.
저벅, 저벅.
어찌 된 영문인지 길거리 곳곳에서 그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정장에 선글라스 차림을 한 남자들이 발견됐다.
우연일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이진광 무리를 염탐하고 있었다.
삐비빅.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머리 경호원은 언짢은 어투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알파. 잔챙이 여섯 마리에 너무 몰려오는 거 아닌가?”
-그래봤자 새발의 피다. 경호에는 큰 지장이 없다.
“새, 새발의 피?”
미세하게 들려오는 답변 소리를 들은 이진광 무리들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새하얘졌다.
대머리 경호원을 필두로 몰려온 경호원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쿠구구구구.
구태여 감출 생각이 없다는 듯 그들은 일제히 미미하게 마력을 발출하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A급 파티를 만났을 때와 비슷했다.
우드득.
대머리 남성은 주먹의 관절을 풀며 그들을 대표해 입을 뗐다.
“무슨 용무로 아가씨 일행에게 접근한 거지? 대답 여하에 따라 국제적 문제까지 번질 수 있으니 신중히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이 깡패 새끼들이 어디 한국 땅에서 까불어?!”
여기서 수그리면 지는 거다.
‘치안 좋은 한국 땅에서 지들이 어쩔 건데?’
“대답을 회피하는 건가?”
이진광이 허세를 부리는 것을 진작 눈치챘는지 대머리 경호원의 음성은 굵직하면서도 차분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무슨 꿍꿍이로 아가씨에게 접근한 거지?”
이번이 마지막 경고다.
경호원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기며 그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움찔!
이진광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얼핏 봐도 경호원의 숫자는 열댓 명을 훨씬 넘어섰다.
‘똥 밟았다.’
등줄기에 오한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끝가지 허세를 감추지 않았다.
“쳐 봐. 새꺄. 깽판 쳐서 경찰서 함 같이 들어가 보자고.”
“그러지.”
“응?”
에누리할 것도 없는 칼 답에 이진광 무리들은 화들짝 놀랐다.
‘설마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우리를 때리겠다고. 무슨 수로?’
척척척.
경호원들은 일제히 이진광 무리를 둘러싸 큰 원을 만들고서는 바깥쪽을 살피며 양손을 등에 기대었다.
모두 2m가 넘는 장정들이어서 그런지 이진광 무리는 대중의 시선에 완전히 감춰졌다.
“뭐, 뭐야!”
“한 번 깽판 부려 보겠다. 이거냐!”
이진광 무리들은 크게 놀라 대머리 경호원을 위협했지만.
경호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동양인의 이목구비를 가진 그는 눈에서 푸른빛을 발출하며 입을 열었다.
“참고로 내 옛날 국적은 한국이었다. 더군다나 냄비근성이라 깽판 치다 전과도 몇 개 가지고 있는 바람에 한국에서 그렇게 환영받는 인사는 아니야.”
꿀꺽.
상세한 자기소개에 이진광은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내가 두들겨 팬 대상들은 너같이 개념 없이 범죄나 일으킬 것 같은 각성자들이었지.”
쿠쿵.
일순간, 이진광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네가 우리를 패보겠다는 거야! 우리 건드렸다가는 태광부터 한국 헌터협회 감시과 조사도 받는다고.”
“그건 이쪽이 알아서 할 문제다. 이쪽 국가 대표는 외교에는 이미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들어선 분이니까. 무협으로 치면 현경의 고수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이야!”
아직까지 상황이 파악이 되지 않는 건지, 이진광이 버럭 화를 낼 때.
경호원은 착용하고 있는 슈트를 벗은 뒤,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해해라. 이쪽은 경호 차원에서 너희 같은 불순물을 아가씨들 곁에 보낼 수는 없으니. 뭣하면 전부 덤벼. 안심해라. 이쪽은 나 혼자다.”
“까불지 마!”
울컥한 이진광 무리들은 일제히 주먹을 들며 경호원을 덮쳤다.
퍼퍼퍼퍼퍽!
“크아아아아악!”
물론, 결과는 반전 없이 떡실신이 될 때까지 두들겨 맞아야 했다.
***
백화점의 한 의류 코너.
최지혜와 권정아는 굳게 닫혀 있는 탈의실 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끼익.
탈의실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리리스가 얼굴을 붉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귀족처럼 입고 있던 드레스는 온데간데없고 캐주얼한 블라우스와 바지, 그리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예쁘다!”
어떤 옷도 가리지 않고 소화하는 리리스를 보며 지혜는 반색했다.
“리리스. 머리만 조금 가꾸면 더 예쁠 것 같아. 기다려 봐.”
“자, 잠깐.”
지혜는 리리스의 모자를 벗긴 뒤, 즉각 빗으로 리리스의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그녀의 친근감에 리리스도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권정아는 그런 그녀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예쁘네.”
리리스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새침하게 답했다.
“예쁜 건 당연하죠. 그리고 아저씨 같은 멘트 그만 치세요. 숙녀면 좀 더 조신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이게 난데 어떻게 해?”
권정아는 시크하게 미소를 지었다.
“…….”
그 미소가 빛을 발하는 터라 일순간 주변의 여인들은 얼굴을 붉히며 권정아를 쳐다보았다.
리리스는 분한 듯 부르르 떨다 곧 묘안을 떠올리고는 눈을 빛냈다.
“흐음. 그러면 오늘은 다른 스타일로 가도 되겠는데요.”
“뭐? 누구?”
권정아의 알쏭달쏭한 표정에 리리스는 턱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이번에는 당신이 프릴이 달린 우아한 옷을 입어 보는 거예요.”
“……?!”
기습적인 한 마디에 권정아는 그대로 경직됐다.
“리리스!”
지혜는 그런 리리스에게 크게 호통쳤다.
움찔!
좀처럼 보기 드문 기세에 리리스는 어깨를 움츠리며 생각했다.
‘내, 내가 뭐 잘못했나?’
덥석!
지혜는 그대로 리리스의 손을 붙들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응? 화내는 거 아니었어?
리리스와 권정아는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지혜는 주변의 여성용 의류 코너를 보며 권정아에게 말했다.
“언니. 오늘 여기 있는 의상 다 입어 보는 거예요.”
“……그, 그게 무슨?!”
과감해진 그녀의 발언에 권정아는 슬며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뭘까?
건드리면 안 될 지뢰를 밟은 이 느낌은?
그것을 명확히 표현하기 전에 권정아는 지혜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일단 시간적으로 무리고. 사지도 않을 옷을 이만큼 입으면 여기 백화점에도 크게 민폐야.”
스윽.
지혜는 지갑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오빠가 준 용돈 많이 남았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이참에 전부 사고 장소 하나 빌리면 되죠.”
오싹!
이게 지나친 팬심을 경계해야 되는 이유일까?
지혜의 결사의 의지를 확인한 리리스와 권정아의 눈 밑에는 그늘이 자리 잡혔다.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수 있지.’
위기의 순간.
위잉!
마치 구세주가 찾아온 것 마냥 백화점 내에서 경보가 발령됐다.
‘게이트?!’
이미 이런 재난 사태에 익숙한 권정아는 눈을 빛내며 반색했다.
-백화점 6층 비상구 너머로 3성급 게이트가 생성 및 탐지됐습니다. 혹시 모를 브레이크 사태를 대비해 모두 대피를 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아! 이런 어쩔 수 없겠네. 진짜 입고 싶었는데. 빨리 가자. 내가 지켜 줄게.”
권정아는 입가를 실룩이며 쾌재를 불렀고.
지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으려나.”
“으으윽.”
리리스 역시 분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리는 순간.
갑작스레 요란하게 울려 퍼졌던 경보가 멈췄다.
뭐지? 고장이라도 난 걸까?
백화점 내부에 있던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재난 방송을 하던 직원이 떨떠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던전 브레이크를 앞둔 4성 게이트는 원인규명의 불꽃과 함께 그대로 소실됐습니다. 손님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고 다시 즐거운 시간이 보내길 바랍니다.
“방송이 장난이야?!”
권정아는 경악하며 스피커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사람들은 이 방송을 믿어야 될까? 말아야 될까? 아직까지 고심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쿨한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일단 안전을 확보한 뒤, 어디서 시간을 보낼지 고민해 보자.”
“……알겠어요.”
“후우.”
지혜의 고분고분한 대답에 권정아가 안도의 한숨을 쉴 때.
“언니.”
툭.
지혜는 권정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왜?”
고개를 돌린 권정아의 시선 너머로는 지혜가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근데 이것만 입어보고 가 봐도 될까요?”
와장창.
평정을 가장했던 권정아의 표정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지혜의 뒤에 있던 리리스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설마 본인이 했던 말은 잊으신 거 아니겠죠? 분명 입고 싶었다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은데.”
“으으으. 그, 그건.”
권정아는 다급하게 궁색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반짝!
“입어 주실 거죠?”
초롱초롱한 지혜의 눈빛에 굴복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5분 전. 백화점 6층.
느닷없이 형성된 게이트 너머로는 결계를 뚫고 나오기 위해 고블린 군단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아, 진짜 헌터들은 언제 오는 거야. 퇴근해야 되는데.”
탑의 에너지를 추적해 게이트를 탐지한 협회 직원은 긴장감 없이 나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흔하게 벌어지는 일도 아니고.
요즘 같은 IT시대에 길드에 연락만 하면, 반나절도 안 돼서 게이트 공략은 끝이 난다.
하지만 그 소홀한 버릇이 결국 화근을 만들어 냈다.
쿠직!
“……어?”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던 직원은 낯빛을 굳히며 정면을 살폈다.
“호, 홉고블린!”
게이트 너머에서는 고블린보다 월등히 큰 홉고블린이 공성병기로 게이트 결계를 돌파하고 있었다.
상당한 마나가 실린 무기로 인해 결계가 조금 엇나가 있었다.
탁.
직원은 그대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몬스터가 전쟁 무기를 활용한다고?!”
좀처럼 보지 못한 풍경에 협회직원은 다급히 백화점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피난통보 내보내세요!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장담 못 합니다.”
그의 경고에 보안요원들은 일제히 무전을 통해 피난 통보를 전달했다.
위잉.
다행히 시스템이 잘 자리 잡았는지 백화점 내부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젠장 운도 더럽게 없지.’
직원은 혀를 차며 즉각 방패를 들고 그 앞에 섰다.
쾅! 쾅! 쾅!
홉고블린들은 공성병기를 활용해 결계를 깨뜨려 나갔다.
쩌저저적!
그 효과가 실로 대단해 결계는 점차 깨진 유리처럼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브레이크가 발생한다.
“다들 도망치세요!”
그 사실을 직감한 직원은 마지막으로 절규하며 소리쳤고.
우당탕!
백화점 내부에 있던 보안요원들과 직원들은 우르르 도피하기 시작했다.
콰앙!
그와 동시에 홉고블린들의 공성병기가 결계를 완전히 파훼시키며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아니, 내디디려고 했다.
끼에에에엑!
화륵!
요란하게 불꽃을 발산하는 불새가 출격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키익?!
홉고블린들은 대뜸 자신들의 눈을 증발시킬 정도의 강렬한 불꽃에 얼굴을 감싸며 절규했다.
“이, 이건 무슨?!”
협회직원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다음의 광경을 무의식적으로 살폈다.
시간으로는 약 3초.
날개를 휘젓는 불새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몬스터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닿는 즉시 태양에 닿은 것처럼 잿더미가 되어 날아갈 뿐이었다.
결계로 넘어오려고 했던 보스의 최후 역시 숯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이게 뭐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정면을 들여다봤을 때는 게이트가 소실된 뒤였다.
경악한 협회 직원들은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았다.
한편.
‘내가 어쩌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됐는지.’
순식간에 3성급 던전을 불바다로 만들고 마리오네트 형태로 돌아온 주작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
콕콕.
날개에 붙은 잿더미를 부리로 쪼아 제거했다.
17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