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경기도 의정부 하늘 위로는 보기 드문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재난의 징조였다.
“꺄아아악!”
“도망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어.”
재난의 장소는 의정부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마트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런 폭연과 화재 경보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콰앙!
이내 건물들을 부수며 들이닥친 변종트롤들의 등장에 절망하며 피난을 이어 가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아직까지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콰앙!
던전 브레이크 발생 때, 옥상이 무너지는 바람에 건물은 도미노처럼 점차 와해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몬스터한테 도륙 당하기 전에 잔해더미에 짓눌려 죽을 판국이었다.
‘젠장! 어떻게든 퇴로를 뚫어야 돼.’
가장 먼저 작전에 투입한 A급 헌터 박종훈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출구에 어슬렁거리는 변종 트롤은 12마리.
모두 3성급 이상으로 혼자서 저 많은 숫자를 상대하기는 다소 무리였다.
‘최소 7마리까지는 제압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 어떻게든 퇴로를 뚫는다면?
자신의 뒤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짜악!
의지를 다진 그는 양손으로 힘껏 자신의 양쪽 뺨을 때렸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박종훈은 손에 들고 있는 방패와 검을 들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가 저놈들을 유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건물이 붕괴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겁니다.”
“…….”
그의 말에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재난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저 미안하고, 할 말이 없을 뿐이었다.
피식.
박종훈은 괜찮다는 듯 피식 웃다가…….
콰앙!
그대로 변종 트롤 중 한 마리를 방패로 냅다 밀쳐 냈다.
우득!
방패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마력에 변종 트롤의 몸이 크게 뒤틀리며 전신의 뼈가 와장창 무너졌다.
서걱!
박종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변종트롤의 목을 베어버린 뒤 소리쳤다.
“덤벼. 자식들아!”
…….
어그로에 성공했는지 변종트롤들은 죽은 동료와 박종훈을 쳐다보다가…….
그웨에에에엑!
쿵쾅! 쿵쾅!
일제히 소리를 내지르며 육중한 몸에 어울리지 않은 날쌘 속도로 박종훈을 덮쳐왔다.
‘이래서 변종 자식들은?!’
트롤 중 한 마리가 뒤에서 박종훈을 붙들려는 순간.
휘익!
박종훈은 재빨리 허리를 숙인 뒤, 검을 휘둘렀다.
회피, 공격, 회피, 공격.
무려 11마리와 펼쳐지는 대치는 너무나 긴박해서 제대로 숨을 쉴 겨를도 없었다.
‘회복속도가 너무 빨라?!’
거칠게 몸을 움직이는 박종훈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나름 활약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늘.
아무리 베어도 금방 회복해 버리는 녀석들의 특성에 무릎을 꿇고 싶었다.
타닥.
하지만 트롤들 사이로 사람들이 도피하는 모습을 보니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휘익!
뒤늦게 사람들의 기척을 눈치챈 변종 트롤 두 마리가 급히 발길을 돌리려고 했으나.
서걱!
박종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마리의 목을 베어 버린 뒤, 트롤들에게 소리쳤다.
“덤벼! 이 자식들아!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바로 그 순간.
쇄액!
트롤들 사이로 육중한 기척이 드러났다.
‘뭐, 뭐지?’
뒤늦게 기척을 감지한 박종훈은 재빨리 검을 버리고 양손으로 방패를 세웠다.
막지 않으면 죽는다.
그것은 순순히 본능에 맡긴 판단이었다.
그워어어어어
그 판단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잔해물 더미를 숨어 있던 변종트롤이 곤봉을 들어 그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체구는 주변의 트롤들보다 두 배는 더 컸다.
힘 또한 역시 다른 녀석들보다 배는 강했다.
콰앙! 쩌저저저적!
그 압도적인 힘에 충돌한 박종훈의 방패는, 거미줄처럼 균열이 가며 박살이 났다.
터억!
그뿐만 아니라 박종훈의 몸은 지면에 형편없이 굴렀다.
“쿨럭! 젠장!”
피를 잔뜩 토하던 박종훈은 곧 눈앞의 풍경에 힘없이 손을 떨어뜨렸다.
시야 너머로는 4성급 변종트롤들이 일제히 민간인들을 집채만 한 손을 내뻗고 있었다.
“안 돼!”
방종훈은 눈을 부릅뜨며 절망하는 순간.
화르르르르륵!
느닷없이 부서진 천장 너머로 맹렬한 불꽃이 플레어가 되어 터져 나갔다.
-키에에에에엑!
플레어에 묻힌 변종트롤들은 몸이 통째로 증발이 돼 사라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박종훈은 눈앞에서 사라지는 변종트롤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의문투성이인 저 힘에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아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화악!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일까?
다시 한번 눈을 떴을 때는 플레어는 사라지고 홍염에 휘감긴 새와 그 밑으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하얀 코트를 팔락이며 한 손에는 예리한 검을 들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할 만큼 눈부셔 보였다.
“이, 이게 어떻게?!”
박종훈은 믿기지 않는 풍경에 눈을 깜박였다.
주변을 살펴보니, 트롤들은 죄다 사라졌고 사람들이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다.
“괜찮습니까?”
그의 물음에 박종훈은 고개를 끄덕이다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더듬었다.
“호, 혹시 최건우 헌터입니까?”
“흐음.”
박종훈과 눈을 맞닥뜨린 건우는 일순간 인식저해 마법이 깨진 게 아닐까 싶었지만.
곧 그가 단순히 짐작만으로 자신의 정체를 간파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박종훈은 이 순간, 평소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정말 솟아날 구멍에 구원자가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저벅.
그때, 건우가 검을 지면에 꽂아둔 뒤, 박종훈을 스쳐 지나갔다.
‘서, 설마 이대로 가는 건가?’
홱!
당황한 박종훈이 등을 돌리는 순간.
“춘삼아 괜찮냐?! 정신 차려 봐.”
바로 뒤에서는 돌더미에 묻혀 다리만 고스란히 드러낸 춘삼을 건우가 붙잡아 끌어당기고 있었다.
콰앙!
잔해더미가 와르를 무너지며 모습을 드러낸 춘삼은 흙투성이 얼굴로 주작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닭둘기. 승차감이 완전 꽝이네. 어후, 진짜 삼계탕으로 해먹을 수도 없고.”
조곤조곤 날리는 비하 발언에…….
화륵!
성난 주작이 불꽃을 뿜어냈다.
슬쩍!
하지만 건우가 눈치를 주자, 곧 기운을 거둬들이며 고개를 수그렸다.
‘비 오는 날 개 패듯이 맞았나? 왜 저래? 저거.’
설마 화려하고 강해 보이는 신수가 눈빛 하나에 제압당하다니…….
‘역시 S급 중 탑클래스는 다르네.’
박종훈은 목에 고인 침을 꼴깍 넘기며 건우의 힘을 새삼스럽게 다시 체감했다.
하지만 본 실력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셀라임.”
[칭호 ‘정령왕의 계약자’의 효과로 언령만으로 하급 불의 정령, ‘셀라임’을 소환했습니다.]
단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건우의 주변으로 셀라임들이 반딧불처럼 넘실거리며 모여들었다.
한껏 화려한 광채를 뽐내며 건우는 주변을 살폈다.
“브레이크가 발생하기기는 했어도, 민간 피해는 생각보다 적네. 보스의 위치는 어디 있지?”
“네, 그, 그건?!”
건우가 자신에게 말했다고 생각한 박종훈은 크게 당황했다.
브레이크가 터져 정신이 없었던 터라 가장 중요한 보스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종훈은 곧 그 말이 자신에게 말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스멀스멀.
건우의 말에 반응한 것은 붉은빛을 발하는 반딧불 같은 정령들이었다.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녀석들은 어디론가 줄짓듯 길을 형성하고 있었다.
“……거기인가?”
건우는 마나스킨과 초감각을 통해 육감을 발휘하니.
셀라임들이 형성한 길 끝 너머에는 5성급으로 추정되는 변종트롤의 기척이 감지됐다.
건우는 인벤토리에서 스틸레인을 꺼내 들었다.
손에 들려진 가느다란 창신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했지만.
스스스스.
곧 창신 전체에 빛이 집속하니,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흉기로 변질됐다.
파직!
[스틸레인 전용스킬, 스패라를 시전했습니다.]
건우는 그대로 표적을 향해 창을 집어던졌다.
파파파팟!
순식간에 방 안 전체를 휩쓴 빛줄기는 트롤 무리를 단숨에 짓이긴 뒤.
이윽고 표적과 맞닿았다.
콰드드드드득!
너무나 멀리 있어 상황을 유추하기 어렵지만.
무언가 끔찍하게 갈리는 소리와 비명, 그리고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박종훈은 눈을 부릅뜨며 건우를 살펴봤다.
“아직 다루기 어렵네.”
현재, 그는 입맛을 다시며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잠시.
건우는 그대로 등을 돌려 기절한 민간인들에게 스킬을 시전했다.
[치유의 요람을 시전했습니다.]
시름시름 앓던 사람들은 요람의 능력에 점차 편안한 표정을 되찾았다.
박종훈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건우를 지켜보았다.
‘지, 진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어.’
정령사에 검사, 그리고 힐러 능력까지…….
소문으로는 고출력의 마법을 마음껏 난사하는 마법사로 알려져 있었건만.
지금 진실을 들추어 보니 최건우란 남자는 소문보다 더한 규격 외의 헌터였다.
***
몬스터에 의해 쑥대밭이 된 마트에는 다시금 구조와 복원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미 이런 광경이 익숙한지 협회 직원들은 무난히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지만.
툭!
조사과의 김선호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큼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전율에 몸을 떨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주차장 기둥에는 크기 8미터쯤 돼 보이는 거대한 변종 트롤이 무릎을 꿇은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길쭉한 창이 자신의 손가락 길이만큼 박혀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인은 저 창에 박혀 즉사한 것이었다.
“……말도 안 돼.”
사인을 밝혀낸 당사자, 김선호는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 듯 자신의 조사를 스스로 부인하고 있었다.
저 거대한 몸집을 가진 몬스터가 고작 저런 창의 힘에 못 이기고 벽까지 밀려나 피를 토하며 죽고 말다니…….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헌터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비웃을 게 훤히 보였다.
“내장이 통째로 타고 얼어붙기를 반복했어. 이건 대체…….”
그때, 그와 같이 파견된 수사과의 이서진이 김선호의 옆에 서며 말을 걸어왔다.
“고작 이런 걸로 놀라다니. 앞으로 이런 사건을 종종 보게 될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피식.
이서진은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그가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앞으로 종종 골치 아픈 일이 많이 벌어질 거야.”
긴장하라는 말투와 달리 이서진의 웃음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누가 보면 제가 트러블 메이커인 줄 알겠네요.”
그러다 문득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이서진은 등을 돌리며 입을 뗐다.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최건우 헌터님. 참고로 저는 트러블 메이커보다는 한국의 히어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부는 됐습니다.”
낯간지러운 칭찬에 건우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손을 들어 올렸다.
홰액! 스윽! 스윽!
그러자, 트롤의 가슴을 관통한 스틸레인이 저절로 뽑히며 그대로 날아가 건우의 손에 쥐어졌다.
“최, 최건우!”
건우의 인상을 알아챈 김선우를 비롯한 협회직원들은 그대로 경직됐고.
피식.
건우는 그런 그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한국의 히어로, 최건우.
본국으로 돌아온 첫날, 그는 가장 화려하게 자신의 등장을 세상에 알렸다.
170.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