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중국으로 입국하기 약 한 달 전.
소룡은 중대한 결심을 했다.
아틀란티스 게이트를 공략 후, 타냐가 운영하고 있는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그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지만.
고뇌는 깊어졌다.
왜냐하면 고향에는 지켜야 될 친구들이 무수히 있었기 때문이다.
타냐의 앞에 선 소룡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과 신념이 스쳐 지나갔다.
……강해져야 한다.
인정받아야 한다.
쓸모가 있어야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구할 수 있다.
내가 잘해야만, 내가 잘해야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 풀릴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입을 통해 직접 표출했을 때.
따악!
돌아오는 것은 건방지다며 날린 스승의 딱밤이었다.
소룡은 붉게 물든 이마를 매만졌다.
……아팠다.
그야 당연했다.
무려 S급 헌터의 완력에서 튀어나온 딱밤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맞은 폭력보다 가슴이 사무치게 아팠다.
절로 눈가가 시큰거렸다.
왜 가슴이 따뜻해지지?
자신의 제자, 소룡을 보며 타냐는 말했다.
“꼬맹이 주제. 쓸데없이 어른인 척 하면 가만 안 놔둔다.”
근엄함이 서린 말투에는 상냥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쑥스러움이 많아 애써 감추는 게 티가 날 정도로…….
소룡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가자.”
“……마스터. 어째서?”
소룡은 당황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 숭산에 갇혀 있는 각성자 소년, 소녀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비윤리적인 실험과 무자비한 학대, 가만 놔뒀다가는 죽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홀로 나서겠다고 했다.
줄곧 지내 온 친구들을 져 버릴 수 없었기에…….
은혜를 입었지만, 갚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던 참이었다.
한데, 그 이야기를 듣고 주저 없이 나서겠다니…….
타냐는 소룡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가족으로 받아들인 인상, 가족의 결의를 무시할 수 없지.”
“하, 하지만 마스터.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소룡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맞서려고 하는 적은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이었다.
S급 헌터만 무려 서른 명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데다 각성자로 이루어진 군대까지 갖추고 있다.
전력을 비유하자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
제아무리 세계 최강의 용병이라고 일컬어지는 타냐라고 해도 이 난공불락의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다.
타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실을 인정했다.
“당연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안 되지. 그러니까 지원 요청을 할 거야. 못 온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누, 누구한테…….”
타냐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가까스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한국의 히어로한테…….”
***
중국 허난성의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길거리 구석에 자그마한 오락실에는 보기 드문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타닥, 타닥.
양쪽에서 격렬하게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두 남녀가 격투기 게임을 벌이고 있다.
한 명은 남미계 미녀로 검은색 가죽으로 된 레이싱 슈츠를 입고 있었고.
반대편에 있는 남성은 아시아계 남성으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타다다닷!
그리고 결과는 여인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말이 무색하네.”
타냐의 노골적인 조롱에 건우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분하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이겼는데.”
가만히 서서 게임을 지켜보고 있던 춘삼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팩폭을 늘어놓았다.
“분하긴 뭐가 분합니까? 공격이란 공격은 다 먹고 저기는 피가 삼분의 일도 안 달았는데.”
-그건 이놈 말이 맞는 것 같다.
같이 게임을 보고 있던 세이비어도 쉽사리 공감했다.
“…….”
건우는 삐진 듯 입을 꼭 다물었다.
한편, 그들과 함께 있었던 소룡의 눈 밑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마, 마스터.”
“응 무슨 일이야? 너도 먹을래?”
타냐는 막대사탕 껍질을 벗겨 소룡에게 내밀었다.
소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요한 사실을 늘어놓았다.
“그, 그게 아니고. 이, 이렇게 긴장감 없이 놀아도 되는 거야?”
얼마 전에 진지한 표정으로 결의한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에 소룡은 살짝 실망하기도 했다.
“놀 때는 놀아야 되지 않겠어?”
답변을 마친 타냐는 사탕을 그대로 입 안에 넣었다.
소룡은 이번에 건우 쪽을 쳐다보았다.
건우는 LOST라고 떠 있는 게임 화면의 문고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분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필살기랑 조작법은 다 외웠는데. 왜 이기지 못하는 거지?”
‘긴장감 없는 건 저 사람도 마찬가지네.’
모처럼 건우의 얼굴을 봐서 반갑기는 했지만.
소룡은 마음 한편에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 둘이 언제부터 이렇게 친했던 것일까?
분명 소룡이 알기로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기에 친분을 쌓을 겨를도 없다고 알고 있다.
한데, 이 둘은 마치 오랫동안 만난 죽마고우처럼 지내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소룡은 스스로 겁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마스터는 친구가 없을 것 같았는데.”
우드득.
옆에서 잠잠히 듣고 있던 타냐는 조용히 주먹 관절을 풀었다.
잠시 후.
풀썩!
소룡은 머리에 커다란 혹을 단 채, 기절했다.
꿀꺽.
타냐가 띠고 있는 살벌한 분위기에 춘삼은 목구멍에 고인 침을 삼켜 넘겼고.
반면, 건우는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본 사이에 너희 진짜 친해졌구나.”
“누구 덕분에 말이지.”
타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더 도전해 볼 생각이 있어? 이래 보여도 애들하고 놀아주느라고 실력이 많이 쌓였거든.”
“음, 자신이 없네.”
승부욕이 생겼지만, 이런 게임에는 젬병인지 건우는 항복을 선언했다.
춘삼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 현실에서 S급이라고 해서 게임에서도 S급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B급 하류보다 못하는데요.”
빠직!
도발과 같은 말에 타냐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감탄사를 냈다.
“호오, 간이 없는 건 여전하군.”
“후후후후. 다 단련된 거 아니겠습니까?”
춘삼은 지지 않고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아니, 오히려 도발을 가하기까지 했다.
“뭣 하면, 저랑 한 판 붙어 볼까요?”
“좋지.”
춘삼의 도발을 받아들인 타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게임기를 붙들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퍼퍼퍼퍼퍼퍽!
찰진 구타 소리가 오락실에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그것은 게임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털썩!
구타를 당한 것은 캐릭터가 아닌 춘삼이었다.
“커, 커허허허헉! 아무리 그래도 피, 피케이를…….”
꼴까닥.
타냐한테 실컷 두들겨 맞은 춘삼은 동공을 잃고 실신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모습을 지켜본 건우는 저도 모르게 평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까불 때부터 알아봤다.”
-저놈은 어떻게 매를 버는 건지 참 신기하단 말이지.
세이비어는 다시 한번 춘삼의 깐족거림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고 말았다.
타냐는 분명 격투 게임의 고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상대를 만나도 단단히 잘못 만났다.
상대는 치졸한 데다 비열한 수법을 가리지 않는 춘삼이었다.
뻔한 전개였다.
그녀가 어떤 수를 쓰든 춘삼은 얍삽한 플레이로 그녀를 쉴 새 없이 골렸다.
-아, 이것밖에 안 되나요?
-쯧쯧. 저 이렇게 발로 하고 있는데, 건들지도 못하네요.
-푸하하하하, 지금 이 단순한 패턴도 못 깨요.
-아, 바보인가요?
춘삼.
이놈은 플레이하고 있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주둥이를 놀려댔고.
그 대가는 S급 헌터의 화를 불러왔다.
아틀란티스 게이트 공략전에 참가할 때도 이성을 잃지 않는 타냐였지만.
이번만큼은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지 못했다.
“……실수했어.”
그녀도 뒤늦게 그 사실을 자각했는지 깊이 반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식.
건우는 한쪽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다 놀았으면 슬슬 이야기 시작해 볼까?”
“그래서 우리 상황은 어느 정도 인지했겠지?”
의미심장한 타냐의 물음에 건우는 슬그머니 동공을 굴렸다.
“오락실 바깥쪽 건물에서 한 명, 오락실 내부에 네 명, 바깥으로 나가면 줄기차게 우리를 감시하는 시선이랑 CCTV가 깔려 있겠지?”
타냐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도 내 목적을 어느 정도 눈치챘을 거야.”
만나자마자, 오락실에서 놀고 있던 것은 단순히 유흥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타냐는 말이 아닌 상황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처지인 지 일깨워 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건우 역시 물론 이 사실을 명확히 인지했다.
상대의 규모는 아마 나라 단위.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적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중대한 사태였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실감한 건우의 평은 이러했다.
“난 별로 신경 안 써.”
“…….”
간단명료한 말에 타냐는 말문을 잃었다.
자신이야 각오하고 이 위험한 사지에 발을 내밀었건만.
어째서 이 남자는 그렇게 쉽사리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마냥 신기했다.
싱긋.
그런 그녀에게 건우는 얄궂게 웃으며 말했다.
“안 걸리면 그만 아니겠어. 눈 안 띄게 사고 치는 건 자신 있어.”
타냐는 놀랐는지 잠시 입을 벌리다…….
“정말인지.”
그만 기가 막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
전봇대에 숨어 타냐 래퍼드를 주시하고 있던 남자는 전화기를 들고 입을 열었다.
“……타냐 래퍼드와 소룡을 발견했습니다. 현재는 지금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신원 확인은 되지 않는 건가?
“그, 그게 어째서인지 명확하게 카메라로 포착이 되지 않습니다.”
감시원은 상당히 당황한 듯 PDA와 연결된 CCTV 영상을 살폈다.
어찌 된 영문인지 CCTV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빛줄기에 반사돼 그 얼굴을 식별하는 게 불가능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어쩔 수 없이 보는 대로 몽타주로 그리려고 해 봐도…….
스윽스윽.
종이에 그려진 남자의 얼굴들은 가지각색이었다.
“너 눈깔이 삐었냐?”
“네 눈이 장식이겠지. 멍청한 놈.”
한 명은 노인의 얼굴을 그렸고 한 명은 아예 앳된 모습의 아이를 그렸으며, 그로 인해 감시원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 기묘한 현상을 어찌 보고해야 될까?
고심이 깊어지는 찰나.
타악.
누군가 감시원들의 양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란히 어깨동무를 해 왔다.
“어떤 새끼가 겁도 없이!”
어처구니가 없던 감시원들이 표독스럽게 자신들에게 어깨동무를 한 남자를 흘겨보다…….
쩌적.
마치 얼음덩이가 된 것 마냥 표정과 몸이 경직됐다.
“대, 대대장님!”
놀랍게도 그에게 어깨동무를 한 이는 그들의 최고상사인 마오였다.
꽈아아아악!
마오는 서슬 퍼런 눈으로 감시원들의 눈꺼풀을 누르며 강제로 크게 뜨게 만들었다.
“끄아아악!”
“아, 아픕니다.”
“눈깔 달려 있는데 뭐하고 있는 걸까? 저건 말이야. 우리 조국에 발을 내디디면 안 될 대형 흉기라고.”
이 중에서 마오만이 정확히 건우의 존재를 식별했는지 빠득 이빨을 갈았다.
15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