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두두두두두.
헬기의 프로펠러가 힘차게 공기를 휩쓸며 이륙을 취했다.
빠드득.
니콜라스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활활.
몬스터 파크가 거대한 화제와 함께 몬스터들로 인해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니콜라스로서는 단순히 물질적인 피해만 입은 것이 아니다.
몬스터 파크는 그의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꿈은 맥없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부흥을 가져다주어야 할 몬스터 파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심신이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 그의 마음을 장악했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됐는가?
문득 머릿속으로 한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그 인물은 그와 오랜 앙숙이 아닌 제 3의 인물.
바로 최건우였다.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몬스터들의 아티팩트를 강제 해금시킨 것도 그 녀석인 게 틀림없어!”
실성한 나머지, 니콜라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그의 비서가 만류에 나섰다.
“회, 회장님.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언성을 높이며 몸을 들썩이자, 파일럿은 인상을 찌푸렸다.
“기내가 흔들립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다시 앉아주십시오.”
“이제 개나 소나 나를 엿같이 봐!”
그는 충혈된 눈으로 파일럿을 쏘아봤다.
쇄액!
바로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슬로우 모션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헬기 정면에서 느닷없이 덮쳐오는 그림자.
그것이 하피 무리라는 것을 깨달은 니콜라스는 동공을 부릅뜨며 이 기묘한 감각이 주마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크윽! 젠장!”
당황한 파일럿은 재빨리 하피 무리를 피해 우측으로 선회하려고 했으나.
-끼에에에에엑!
쨍그랑!
“꺄아아아아악!”
하피들이 쏟아 낸 기괴한 하울링에 헬기의 몸채가 찌그러지고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다.
우적!
“크아아아악!”
하피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파일럿의 목덜미 살점을 발톱으로 쥐어뜯었다.
그 표정은 희열이 가득해 보였다.
니콜라스는 하피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대체 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콰아아아앙!
이내 헬기 내부는 완전히 홍염으로 뒤덮이며 폭발했다.
***
콰앙! 콰앙! 서걱! 서걱!
완전히 관통당한 하나의 관문에서 서일도와 권정아가 완고하게 버티고 있었다.
하나, 그것도 이제 곧 한계인 상황에 다다랐다.
몬스터 웨이브.
그것은 비탈길을 구르는 눈뭉치가 거대한 눈사태를 유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구속에서 해방된 몬스터들이 몬스터 웨이브에 일제히 합류했다.
그 숫자가 무려 천에 이른 순간.
우르르르르 콰아아아앙!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쉘터의 방호벽에 균열이 가며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권정아와 서일도는 호흡을 몰아쉬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슬슬 버거워지네.”
“그렇다면, 임전태세로 임해야지.”
기껏해야 3성급 이하의 몬스터.
하나, 제아무리 S급 헌터라도 저렇게 쏟아지는 몬스터 웨이브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몬스터들이 그들을 통과하면 이 뒤에는 민간인들에게 어마어마한 피해가 번질 것이다.
같은 시각.
휘잉.
역중력 마법을 이용해 허공에 떠오른 건우 역시 몬스터 웨이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패러사이트 때랑은 차원이 다르구나.
세이비어의 평에 건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 웨이브는 다시 생각해도 토가 쏠릴 것 같아요.”
전생 시절, 시대에 종말의 그림자가 드리운 만큼, 건우 역시 몬스터 웨이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아라크네가 습격하기 전으로 카심과 호프너 등 용맹스런 기사들을 앞세워 간신히 막아 냈다.
그때는 몬스터의 죽은 시체를 제방 쌓듯 쌓아 막아 냈는데.
수일 동안 쏟아지는 몬스터들로 인해 결국 피로가 누적돼 죽은 병사도 일상다반사였다.
“그때에 비하면 저 정도는 새 발의 피죠.”
건우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방호벽에 손을 뻗었다.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방호벽 위로 형성된 금빛의 링은 단숨에 균열이 간 부위를 순식간에 원상태로 복구했다.
콰앙!
있는 힘껏 벽을 파괴하던 몬스터 무리들은 당황한 듯 주춤했다.
마법과도 같은 기이한 현상은 연달아 일어났다.
스윽.
파괴된 문의 조각들이 자기 멋대로 맞춰지며 관문이 완전히 복원을 이루었고.
그로 인해 몬스터 웨이브의 흐름은 강제적으로 끊겼다.
웅성웅성.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게 말이 되는 현상이야?!”
헌터들은 제 얼굴을 꼬집으며 지금의 현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기회를 삼아 활력을 되찾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콰앙!
미노타우루스의 뿔을 주먹으로 단숨에 깨뜨린 권정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멋있는 건 혼자서 다 한다니까.”
“허허허허, 역시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는 사내야.”
쇄애애액!
다시 한번, 서일도의 검격에 수십의 고블린과 코볼트가 베여 사라졌다.
그들의 위용에 주변 헌터들은 벙찐 표정을 짓다 곧 표정을 고쳐…….
“우와아아아!”
단숨에 몬스터들을 일망타진 소탕하기 시작했다.
***
“이걸로 쉘터 쪽은 한숨 돌릴 수 있겠지.”
쉘터 안쪽의 방호벽을 완전히 복원시킨 건우는 이번에는 바깥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쿠구구구구구.
몬스터 웨이브의 발 굴림에 하늘에는 무수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반 역시 크게 뒤흔들리며 아름다웠던 광경은 삽시간에 황폐화되었다.
타악.
건우는 단숨에 관문의 바깥쪽으로 착지했다.
“역시 난 수비보다는 공격 스타일이라서 말이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이그너스의 반지에서 빛이 발했다.
[게이트를 형성했습니다.]
치칫!
바로 뒤에 형성된 거대한 게이트 너머에는 네메시스가 본래 모습으로 현현했다.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명을 내렸다.
“네메시스. 한 곡 부탁할게.”
-아아아아.
그 명에 맞춰 네메시스의 청아한 목소리가 몬스터 파크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끼기기깃!
모든 것을 분쇄시킬 것만 같은 몬스터 웨이브가 일순간 멈췄다.
-키이이이익
-크아아앙!
샤벨 타이거부터 시작해 오크 무리까지.
어떤 환각을 보고 있는 건지, 일제히 질겁하고 있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구구구.
몬스터들은 바로 앞에 있는 쉘터를 찾지 못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흩어지며 몬스터 웨이브가 삽시간에 무산됐다.
하나, 건우의 대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를 형성했습니다.]
우웅.
인근에 또 하나의 게이트가 생성됐다.
이번에는 게이트 너머에서 층계보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키에에에엑!
대신 착란상태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게이트에 진입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몬스터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환경이 파괴되는 것까지 막는 일석이조의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세이비어는 게이트에 진입하는 무리들을 보며 딱하다는 음성을 자아냈다.
스륵.
세이비어는 유령의 모습을 드러낸 뒤, 건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불쌍한 것들. 주인 닮은 미친 것들한테 혼쭐이 나겠구먼.
지금까지 봐 왔지만 이그너스의 층계보스들도 보통 또라이들이 아니었다.
성격도 괴팍한 데다 잔혹하기까지.
그야말로 건우와 판박이 아니던가.
싱긋.
세이비어의 평에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건우는 모처럼 웃으며 대응했다.
-왜 쪼개? 기분 나쁘게 인마.
그 웃음이 기분이 나빠 세이비어는 몸서리를 쳤다.
“그래도 세피아를 만나지는 않잖아요.”
“아.”
건우의 말에 세이비어는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 탄식을 자아냈다.
이그너스의 층계보스들.
이것들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었지만, 그중 가장 오만하고 잔인한 보스는 당연 세피아였다.
어떻게 하면, 잔혹한 방법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을까 연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성정은 포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를 만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세이비어는 이렇게 비평할 수밖에 없었다.
“짜식들. 구원받았네.”
“그렇죠.”
세피아는 현재 마리오네트 상태로 지혜를 지키고 있어 본체는 2계층에서 깊은 숙면에 취하고 있었다.
-그래도 불쌍하기는 해.
“왜요?”
-바포메트가 깡그리 부술 풍경을 생각하니 없던 동정심마저 생기련다.
“…….”
지당한 예언에 건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순조롭게 이어 나가던 몬스터 웨이브의 대열이 산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풍경을 지켜보던 카론은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하등한 것들 가지고는 턱도 없다는 거겠지. 그자는?”
카론은 몬스터 웨이브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주범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까지 지면에 발을 내딛던 상대의 인기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혹시 자신의 존재를 간파한 걸까?
경계심에 기감을 세웠지만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최건우라고 했나? 재미있군. 모습을 직접 드러내게 하려면 이 수밖에 없겠어.”
우우우웅!
발설 직후.
그의 발밑에서 유람선과 맞먹는 크기를 지닌 나룻배 형태의 배가 튀어나왔다.
혼탁한 진녹빛을 품은 배 주변에서는 데스마스크가 도깨비불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희번득!
카론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우우우웅!
그의 배가 지면에 그대로 잠기더니…….
후웅! 콰앙!
단숨에 네메시스가 있는 지면 위로 튀어나왔다.
?!
예상치 못한 급습에 놀란 네메시스가 노래의 음절을 바꿨다.
쏴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네메시스의 주변에 거대한 물살이 요동치며 방어벽처럼 내세웠지만.
콰아아아아앙!
카론의 배는 네메시스를 압살하려는 것처럼 몰아붙이며 방호벽과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건우가 복원한 뒤로 굳건한 기세를 자랑하던 방호벽이 순식간에 와해됐다.
“뭐, 뭐야?! 저 거대한 배는?!”
“미친 이제 별 해괴한 것들이 다 나오네.”
그 광경을 목격한 헌터들은 턱을 떨어뜨리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끼기기기깃!
하지만 기세등등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과 달리 카론의 배는 네메시스의 물살에 가로막혀 굼뜬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배의 머리에 서 있던 카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호오, 압살하려고 했다만 생사의 강을 건너는 나의 배를 가로 막아.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나.”
카론은 피식 입꼬리를 올린 순간, 그의 배에서 불길한 기운이 요동쳤다.
후우우우웅!
이내 몬스터 파크 곳곳에서 데스마스크가 도깨비불처럼 부유하며 배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카론의 배는 지면을 휩쓸며 네메시스를 100미터 반경까지 밀어냈다.
“꺄아아아악!”
“살려 줘!”
“미, 미친 저 배는 뭐야!”
지반과 구조물이 모조리 박살 나는 괴랄한 풍경에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우우웅!
카론의 배는 마치 잠수를 하는 것처럼 지면에 기어 들어가며 네메시스와 함께 종적을 감춰버렸다.
“아저씨. 저건 뭘까요?”
배가 나타난 곳과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권정아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고.
서일도는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왠지 혼을 착취하는 듯한 느낌이었지. 아마.”
“그,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저 그렇게 보였네.”
“네?”
의문의 한마디에 권정아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서일도는 단순하게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말한 것뿐이다.
육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배.
그곳으로 몰려드는 데스마스크의 인상을 자세히 살피면, 사람과는 거리가 먼 몬스터의 모습과도 유사해 보였다.
***
몬스터 파크의 깊은 오지.
콰아앙!
쏴아아아아!
숲이 자리 잡혀 있던 지면 속으로는 커다란 배가 물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네메시스는 상당히 지쳤는지 배에 올라서 있는 카론을 엄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카론은 네메시스의 인상을 조목조목 살피며 중얼거렸다.
“너는 일전에 본 프리메라의 장난감이군. 어째서 주인이 죽었음에도 살아 있는 거지? 그의 권속이 아니었던가? 대답해라. 너의 주인은 어디 있지?”
쏴아아아아.
네메시스는 대답 대신 물줄기를 퍼부어 카론을 공격했다.
스윽.
카론은 아공간에서 노를 꺼내 들어 세차게 휘둘렀다.
콰앙!
단 한 합을 휘둘렀을 뿐인데, 물살은 제멋대로 설치다가 고요히 가라앉았다.
카론은 이지적인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난 지옥의 강을 누비고 다니던 최강급 플레이어다. 그런 나를 네까짓 게 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피식.
네메시스는 대답 대신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비웃어?”
그 행위가 자신을 향한 도발적인 웃음이란 것을 깨달은 카론은 눈을 부릅떴다.
푸욱!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철제 화살이 단숨에 그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149.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