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심연보다 더 깊은 강줄기.
강줄기 곳곳에는 죽은 자의 얼굴을 본뜬 데스마스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상한 낌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꼬르륵.
이 어수선한 강에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숨을 거두고 시체가 되어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스틱스(Styx)
이곳부터는 신계와 인간계가 본격적으로 갈라지는 층으로 일반 플레이어는 결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은 간절한 바람을 안은 채, 이곳에 당도하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이 강에 몸을 담그고 살아남은 자는 불사의 육신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도달한 플레이어들은 그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가라앉혔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자살행위였다.
이 강에 몸을 담그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신의 안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사례가 되는 존재는 영웅, 아킬레우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과 인간의 혼혈.
그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안배가 없었더라면, 당연히 익사를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하고 이 강줄기를 타며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이었다.
끼익!
진녹빛을 발하는 거대한 나룻배의 노를 젓는 사내가 바로 이에 속했다.
잿빛의 머리칼, 무뚝뚝한 눈동자.
머리에 후드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노를 젓던 그는 문득 강의 아래를 살펴봤다.
사아아아악!
수면 아래에서는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부르셨습니까? 왕이시여.”
노를 놓으면 그대로 배가 난파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췄다.
단순하게 인기척을 드러낸 것뿐이지만, 그림자의 주인은 이 탑을 정복하고 있는 절대 강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사악!
하나, 기껏 인기척을 드러낸 왕의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단단히 화가 나셨나 보군.”
사공은 한숨을 쉬었다.
왕은 무척이나 노여워하고 있다.
구태여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그의 의도는 빤히 엿보였다.
충직하고 강성했던 사도들의 잇따른 실패와 죽음.
분노한 그는 더 이상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사공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무리해서 하계로 진출하면, 레벨이 대폭 삭감되지만 어쩔 수 없겠군.”
만약 안 간다면 이 탑의 내부는 신들의 다툼으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는 다시 태연하게 노를 저었다.
바로 그 순간.
[게이트가 형성되었습니다.]
“당분간 이 편리한 시스템과는 이별이군.”
그는 강 끝에 형성된 게이트를 그대로 통과했다.
***
몬스터 파크 베타 테스트 사흘 차.
관광 코스 중 하나인 청명한 호수에서는 아리따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범인이 들었다면, 의식이 몽롱해져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식별할 수 없을 거다.
호수 위로는 열댓 마리의 몬스터가 허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인간 여성과 흡사한 상체에, 양팔은 날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리는 명백하게 새의 다리였다.
-아아아아
아름다운 노래를 구사하는 그것들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인간들 위를 빙그르 선회하고 있었다.
후웅!
그리고 발톱을 세워 인간을 잡아채려는 찰나.
키잉!
목에 착용한 아티팩트를 통해 에너지 드레인이 발동해 단숨에 힘을 잃고 지면에 추락했다.
콰앙!
-키에에에에엑!
지면에 떨어진 하피는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 동공 안에는 니콜라스가 담겨 있었다.
니콜라스는 담담하게 웃으며 곁에 있던 리리스와 건우에게 이야기했다.
“허허허허, 특별히 몬스터 파크에는 가수를 초청할 필요는 없지요.”
건우는 인상을 홱 찌푸렸다.
“단순하게 듣기 좋은 노래가 아니라 환각을 유발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마약에 가까울 텐데요.”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잖은가?”
그의 뻔뻔한 표정에 리리스도 즉각 반박했다.
“이건 엄연히 도의적인 문제예요.”
“내가 도덕적 가치로 봤을 때, 무난하게 수용할 수 있는 범위네.”
꽈악!
기가 막힌 나머지 리리스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요 며칠간 탐사하면서 느끼는 건, 몬스터 파크의 경외적인 풍경보다 니콜라스의 도를 넘어선 탐욕이었다.
그가 몬스터를 선보인 방식은 여러모로 색달랐다.
미노타우루스가 날뛰게 하는 것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며칠간 굶긴 뒤, 사냥감으로 거대한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을 풀어 사냥하게 한다든지.
고블린과 코볼트 사이에서 영역 다툼을 유발해 서로 대항전을 벌이게 한다든지.
그야말로 극단적인 상황의 연출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두고 건우는 딱 한마디 평만 남겼다.
“어린이들은 절대 못 오겠네요.”
니콜라스는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건 어른들을 위한 놀이일세. 왜 몬스터에게 동정이라도 하는 건가?”
“전혀요.”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니콜라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 있나?”
“시찰 결과, 개최허가는 보류입니다. 사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통계로 집계할 수 없다는 변수도 분명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는 것 정도라고 할까요?”
꿈틀.
니콜라스의 안면근육에 심히 경련이 찾아왔지만 그는 가까스로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지적한 단점을 고쳐서 다시 보도록 합세.”
“그러시죠.”
건우의 시큰둥한 표정에…….
빠득!
분개한 니콜라스는 주먹을 으스러질 듯 쥐었다.
***
시간은 야심한 저녁.
치익!
건우는 니콜라스가 마련한 VIP 특실,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
탁자에는 리리스가 뚱한 표정으로 앉아 건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S급 헌터들은 호화롭게 돈을 써가면서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왜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하는 거예요.”
치익!
그릴에 구운 바비큐를 접시에 담은 건우는 느긋하게 답했다.
“요리하는 게 재밌는 점도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연습하는 거라고 치자.”
“어디 가실 데 있어요?”
그녀의 질문에 건우는 어딘가를 주시하며 답했다.
“갈 데야 있지.”
시선이 향한 방향이 탑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리리스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꼭 가셔야 되는 거예요?”
“갈 수밖에 없어.”
타악.
건우는 탁자에 바비큐를 내려 두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몬스터 파크에 대한 아가씨의 감평을 듣고 싶은데?”
“솔직히 볼거리도 흥미진진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음식도 숙박도 충분히 만족했고요.”
‘하긴.’
그 점만큼은 건우도 부정할 수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세계 재벌 자제의 눈과 입까지 만족시켰으니, 몬스터 파크는 개최만 한다면, 성공가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대화 도중 갑자기 리리스가 미미하게 동공을 떨었다.
“……무서웠어요.”
보통 저런 취급을 받으면 몬스터라도 동정을 살 법도 한데.
리리스는 그들에게 동정심보다 공포를 느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한 살벌한 눈빛.
그것은 야생동물이 인간을 보고 경계하는 눈빛과는 엄연히 달랐다.
“……무서웠다는 건가?”
바로 그 순간.
띠링!
귓가에서 시스템 메시지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제 3계층, 층계보스 케이론이 전령을 전합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뭐야? 갑자기.’
건우는 그대로 수락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허공에 하나의 영상이 출력됐다.
영상 속에는 종말의 비석의 글귀의 배열이 제멋대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예언이 또 수정이 돼?!’
디아도스 때와 마찬가지로 예언이 가속화되자, 건우는 적잖이 당황했다.
비석의 글귀는 실시간으로 완성되었다.
[저승을 가로지르는 뱃사공, 카론의 도래 완료]
“도래했다고?!”
시간이라면 아직 80여일은 남아 있었어야 할 터인데, 갑자기 도래해 버리다니.
예상치 못한 예언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는지 건우는 미처 혼란을 다잡지 못했다.
[녀석은 사제트 이상으로 주도면밀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당도할 것이고 가장 많은 혼을 탈취해 자신의 배에 실을 것이다.]
건우는 그제야 세이비어가 예전에 해 주었던 충고를 상기했다.
‘……녀석은 어디 있지?’
고뇌하는 건우에게 세이비어는 차분히 한마디를 남겼다.
-일전에 네가 나에게 말해 주었잖느냐. 녀석은 반드시 너를 찾아올 거라고.
“……?!”
무언가 깨달은 듯 건우가 눈을 부릅뜬 순간.
쿠콰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몬스터 파크 곳곳에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뭐야?! 몬스터들이 어떻게?!”
굉음의 정체는 바로 몬스터의 난입으로 인한 것이었다.
쉘터에서 안락하게 쉬고 있던 베타 테스트 참가자들은 크게 놀라 자신들의 병장기로 대응하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당황한 리리스는 안절부절못하고 건우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별거 아니야.”
건우는 그런 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 주었고.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세이비어에게 물었다.
“우연은 아니겠죠?”
-시설의 단점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몬스터에게 습격당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는 건 네 두 눈으로 확인했을 게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흉계일 게다.
“한 번 해 보자는 거네요.”
머리끝까지 분노가 피어올랐지만 이럴수록 머리는 이성적이어야 만하는 법이다.
싱긋.
그럴 때 나오는 루틴은 언제나 입가에 호선을 그리는 것이었다.
***
저벅저벅.
후드가 달린 루브 차림을 한 남자가 몬스터 파크의 어느 위험한 장소를 배회하고 있었다.
크르릉.
놀랍게도 그가 발을 내디딘 곳은 극악무도하기 소문이 난 샤벨타이거의 무리 앞이었다.
구부러진 칼같이 돋은 송곳니는 무쇠조차 씹어 버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크르르르.
어째서인지 녀석들은 남자를 습격하지 못했다.
지잉!
목에 두른 아티팩트가 에너지 드레인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가여운 것.”
원인을 단숨에 알아챈 남자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콰칭!
그러자 어찌 된 영문인 건지, 샤벨타이거 목을 두른 아티팩트는 단숨에 압착되더니 파괴됐다.
크앙!
구속에 해방이 된 녀석들은 곧장 남자를 습격했지만.
덥석!
남자는 단숨에 샤벨 타이거 우두머리의 목을 붙들었다.
콰지지지지직!
그리고 악력이 얼마나 센 건지, 우두머리의 목이 단숨에 분질러졌다.
끼잉!
우두머리는 연약한 신음 소리를 내다가 그대로 절명했다.
“조악한 짐승 주제에 내 앞에서 이빨을 세우지 마라.”
크아아앙!
꼬리를 말던 샤벨 타이거들은 그의 호통소리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이걸로 구속에 해방된 몬스터는 12여종.
그 숫자가 벌써 200을 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습격이 아닌 하나의 현상이었다.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평소라면 서로 다투었을 몬스터들이 집단의 형태를 띠며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맹목적으로 힘을 합친다.
그 힘은 인간이 힘을 합치는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밝은 조명으로 반짝이는 거대 쉘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크아아앙!
쉘터 주변에는 벌써부터 인간을 죽이기 위해 몬스터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방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쉘터 안에 인원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운영인원을 제하면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이는 백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콰앙! 콰앙!
머잖아 쉘터 주변이 모두 초토화되고 화재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사도들의 죽음을 모두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디아도스는 확실히 네 녀석이 해치운 것 같으니 한 번 실력을 봐주지.”
팔짱을 끼고 있는 그의 손에는 디아도스의 머리를 붙들고 게이트로 강제로 진입시키고 있는 건우의 사진이 게재된 신문이 들려 있었다.
14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