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리커버리 마도사-145화 (145/308)

145화

이른 아침.

평소 적막한 분위기가 도장에는 기묘한 열기가 얽히고설켰다.

그 열기는 꺼지기는커녕, 도리어 활활 타올랐다.

타앙! 타앙!

도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검합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검을 주고받는 인영은 건우와 서일도였다.

카앙!

“크윽!”

때마침 서일도는 건우의 세찬 검격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낸 참이었다.

스륵.

그는 즉각 자세를 바꿔 건우의 목에 일침을 놓았다.

아니, 놓으려고 했지만.

카앙!

건우는 동요치 않고 목검의 손잡이로 서일도의 검신을 쳐 냈다.

“우와아아아아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수에 도장의 제자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타앙! 타앙! 타앙!

이윽고 두 사람은 몇 차례 주고받다 어느새 서로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오늘도 무승부네요.”

건우의 말에 서일도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기량이 이전보다 말도 안 되게 늘었는데, 무승부일 리가…… 어느 정도 손속을 둔 것쯤은 알고 있네. 내 자존심을 생각해 줘서 그런 거라면 오히려 큰 실례일세.”

뜨끔했지만 건우는 입꼬리에 호선을 그렸다.

“진검으로 했다면, 제가 졌을 겁니다.”

“허허허, 진검도 내 패배일세.”

분하기는 했지만 서일도는 무인으로서 건우를 높게 추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S급 헌터의 스펙을 다 제하고서라도.

건우의 검술실력은 서일도를 아득히 넘어섰다.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무협으로 치면 자네는 검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겠군.”

건우는 드물게 너스레를 떨었다.

“굳이 따지면 저는 화타가 적합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하하! 그야말로 무적이구먼.”

건우의 농담이 마음에 들었는지 서일도는 가슴 젖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아침 수련이 끝난 뒤.

건우는 서일도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감자조림을 젓가락으로 집은 서일도는 먼저 대화의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 파크에 대한 시찰이 내일이라고 했지? 준비는 다 된 건가?”

“그래봤자, 2박3일이니까요. 들르는 김에 유라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건우는 식사를 할 때 늘 유라가 앉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현재, 그녀는 4성급 게이트 공략에 참가해 부재중인 상태였다.

“보고 싶으면 매일 찾아와도 된다네.”

“하하하하 그렇게까지 시간이 안 될 것 같네요.”

건우의 대답에 서일도는 못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젊은 사람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일만 하고 사는군. 그래서 이번에 나를 찾아오는 것은 이것 때문이겠지?”

서일도는 가슴팍에 봉투를 빼 들어 안에 내용물을 꺼내 보였다.

스윽.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곱게 프린트된 하나의 초대장이었다.

초대장의 장소는 몬스터 파크를 가리키고 있었다.

목적은 본격적인 개막에 앞서 체험단 모집 형식으로 진행되는 베타 테스트였다.

그리고 이 베타 테스트 소식을 통해 세계는 다시 한번 열광했다.

왜냐하면…….

미지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사람들은 그 장소에 발을 들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의 재벌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초대장을 구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매수행위는 모두 불발에 그쳤다.

왜냐하면, 참가를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참가의 조건.

그것은 바로 S급 혹은 그에 준하는 A급 헌터 파티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서일도를 비롯해 모두 상위 랭커에 준하는 헌터였다.

그렇지 못하면 몬스터 파크의 베타 테스트는 불가능했다.

‘사업하는 재주는 남달라.’

솔직히 니콜라스는 탐욕에 미친 비즈니스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업수완과 방법은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네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은 건가?”

서일도의 담담한 질문에 건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참가해 주셨으면 싶어서 이렇게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호오.”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건우를 서일도는 지그시 눈매를 좁히며 쳐다봤다.

‘역시 무리한 부탁을 한 걸까?’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궁리하던 도중, 서일도가 섭섭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목숨까지 구해 준 자네에게 내가 못해 줄 것은 없지. 베타테스트에 참가하지.”

서일도의 수락에 건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서일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근데 자네는 유라가 아니라 나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거군.”

“그, 그건…….”

이것만큼은 미처 대답을 준비 못 했는지 건우는 당황했고.

세이비어는 쯧쯧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런 집안 중대사에는 어른이 끼는 법인데, 몸이 없어서 아쉽군.

홀로 지박령으로 있을 때도 딱히 육체에 대해서 미련은 없었거늘.

이 둔감한 녀석을 보니, 뒤에서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려칠 손이 없어. 손이!

‘전 끼고 있던 반지를 지구 반대편으로 날려 버릴 손이 있습니다.’

-이, 이놈이!

미소를 띤 채, 건네는 건우의 대꾸에 세이비어는 반박하지 못하고 내뱉고 싶은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

필리핀 남부의 해안.

우웅.

청명한 푸른 바다의 물결을 거대한 유람선이 가르고 나아갔다.

“일 때문에 오긴 했지만 그래도 휴가 분위기는 나네.”

배의 난간에 기대있던 건우는 나른한 표정으로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쭉 빨아 마셨다.

“너무 긴장감 없는 거 아닌가요?”

그 옆에 같이 있던 리리스가 황당해하며 건우의 모습을 지켜봤다.

알로하셔츠에 단출한 반바지.

그것도 모자라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은 휴가를 즐기러 온 관광객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걱정 마. 그래도 긴장은 하고 있으니까.”

“……진짜요?”

집요한 추궁에 건우는 눈매를 좁히며 반박했다.

“그렇게 말하자면……, 너도 즐기러 온 것 같은데?”

“그, 그건?!”

건우가 역으로 지적을 하니, 리리스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복장 역시 업무보다는 관광 차원에서 온다는 느낌을 여실히 주었기 때문이다.

기다란 은발을 땋은 댕기머리.

언제든 물놀이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검은 민소매 티에 짧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불만인가요?”

리리스는 눈매를 삐죽 올리며 건우를 쏘아봤다.

이에 건우는 빨대로 주스를 휘저으며 피식 웃어 보였다.

“아니야. 그 나이 대 애 같아서 충분히 귀여워.”

“…….”

칭찬에 리리스는 얼굴을 화악 붉히며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너무 긴장만 하고 있으면, 격이 떨어지잖아. 어디까지나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패키지니까 그에 어울려 줘야 하지 않겠어?”

건우는 은근슬쩍 시선을 돌려 자신들에게 향하는 인기척을 살폈다.

인기척의 주인은 니콜라스 커비.

유람선에 탑승했음에도 그는 격식을 차리려는 의도인지 중절모에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암 충분히 즐겨 줬으면 싶네. 부족한 게 있나?”

“아니요. 음식도 볼거리도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러면서도 건우는 얄궂은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에피타이저는 여기까지고 이제는 메인 디쉬를 즐길 차례겠네요.”

“후후후후, 서두르지 말게. 느긋하게 기다려야 맛이 오르거든.”

“그나저나 회장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베타 테스트 참가자는 몇 명이죠?”

“총 마흔일곱 명이라네. S급 헌터는 네 명이 참가했고 나머지는 A급 파티 구성원이지.”

“의외로 적네요.”

“앞으로 두 차례 더 남았지. 이번 베타 테스트가 성공하면, 점진적으로 늘려 갈 심산이야.”

“흐음. 신중하네요.”

“그게 비즈니스 아니겠는가. 하하하하 그럼 도착할 때까지 부디 잘 즐기고 있게나.”

니콜라스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갑판 위를 떠나갔다.

-오르비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저 녀석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이구나.

세이비어의 호평에 건우는 입가에 조소를 그리며 말했다.

“글쎄요. 제 눈에는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가장 먼저 도망칠 장수로 보이는 데요.”

***

몬스터 파크.

그 취지에 맞춰 설립된 거대한 쉘터 겸 운영본부는 화려하고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건우는 선두로 서서 니콜라스와 함께 섬을 시찰하고 있었다.

부웅.

이동 수단은 지프차로 뒤에는 리리스가 앉아 있었다.

니콜라스는 그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수석에 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이 테마파크 계획은 구상한 지 얼마 안 됐지. 그 때문에 초기에 설계를 할 때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설계의 초안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었다네.”

설계의 초안.

그 말을 머릿속에서 연달아 되뇌던 건우는 곧 답을 내뱉었다.

“명도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그렇다네. 자네도 국가 공인의 S급 헌터의 자격을 획득한 명예로운 장소지.”

“딱히 명예롭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명도는 여러 의미로 나에게 영감을 줬네. 던전 브레이크가 연달아 일어남에도 쉘터를 구축해 끝끝내 섬을 시찰하지 않았는가. 그 결과가 바로 이 몬스터 파크일세.”

의외의 기원에 건우는 솔직한 심정으로 감탄했다.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

어째서인지 지반이 미미한 지진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 뭐죠? 지진인가요?”

당황한 리리스의 질문에 니콜라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옆을 보게.”

그 조언에 따라 건우와 리리스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한 몬스터 무리가 세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닭의 머리, 뱀의 몸통과 타조와 같은 다리를 가진 몬스터.

바로 코카트리스였다.

쿠구구구구구.

키에에엑!

녀석들은 마치 먹이를 발견한 것 마냥 지프차를 추적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날쌔고 힘이 강한 녀석은 그대로 지프차를 덮치려고 했다.

“엄마야!”

깜짝 놀란 리리스는 몸을 바싹 웅크렸다.

파직!

바로 그 순간, 도로에 깔려 있던 결계석이 발동하며 결계가 형성됐다.

콰앙!

결계와 몸이 부딪친 녀석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우웅.

그와 동시에 녀석들의 목에 있던 아티팩트가 일제히 발동하더니, 드센 기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축 늘어졌다.

그 현상이 무엇인지 단번에 짐작한 건우는 눈을 부릅떴다.

“에너지 드레인?!”

“역시 마탑의 저명한 현자답게 눈치가 빠르구먼. 어떤 구조로 돌아가고 있는지 자네라면 벌써 간파했겠지?”

니콜라스의 질문에 건우는 인상을 홱 찌푸렸다.

“악질적인 방식으로 운영하시네요.”

“설마 몬스터의 생명을 존중한다는 개소리는 안 하겠지?”

“왜, 왜 그러시는데요?”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던 리리스는 건우에게 그 이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건우는 혀를 쯧 차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몬스터 몸에 착용된 아티팩트가 에너지 드레인 현상을 일으키고, 그렇게 강탈당한 마력이 결계석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게끔 설계돼 있어.”

“아.”

리리스는 그제야 건우의 심기가 불쾌한지 깨달았다.

일전에 니콜라스와 당면했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잃은 게 없다네. 오히려 실패를 교훈 삼아 더 크게 성공했지.

그 말은 실패를 교훈 삼은 것이 아니라 그 실패를 역이용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정말 악질이야.’

리리스는 진심으로 니콜라스라는 인간에게 환멸을 느꼈다.

“나한테 불만이 많나 보군. 그래서 시설에 대한 결점은?”

건우는 나른한 표정으로 결점을 지적했다.

“결계석의 간격은 1m 간격으로 좁히고, 결계석 발동 에너지원을 몬스터에게 강탈한 에너지로 한정한 건 아니겠지만, 상시로 발동할 수 있게끔 에너지원의 용량을 대폭 늘려야 될 것 같네요.”

울컥!

냉담하게 늘어놓는 건우의 말에 니콜라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개발비용이 더 많이 들겠군.”

평소라면 로비로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문제지만.

건우가 뇌물이 통용되지 않는 상대라는 게 가장 큰 화근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 주제!’

건우는 그런 그를 보며 한 가지 충고를 덧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지만 이건 통계로 집계할 수 없는 내용이니 알아서 판단해서 들으세요.”

“뭔가?”

“몬스터를 도발해서 좋을 점은 없습니다. 꼭 무리 속에 있거든요. 유난히 지능적인 게…….”

“참고만 해 두겠네.”

나름 진실로 우러러 나온 충고였지만, 니콜라스는 그 의견으로 그대로 묵살 냈다.

14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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