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시간은 오후 1시.
식탁에는 이제 갓 완성된 철판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끓으며 구수한 풍미를 풍기고 있었다.
스윽.
오르비스는 그것을 큼지막하게 썰어 입에 넣었다.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예절 없다고 한마디 할 법한 식사태도였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나이프와 포크를 짚으니 절로 기품이 묻어나왔다.
스테이크를 목구멍으로 넘긴 오르비스는 눈을 번뜩 떴다.
“흐음. 맛있군요. 카토블레파스 고기가 이렇게 맛있다니……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리리스가 어째서 당신을 주방장으로 데리고 와야 된다고 안달복달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하하.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네요.”
[이참에 헌터 때려치우고 주방장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급여는 지금 버는 것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드릴게요.]
리리스의 말을 떠올린 건우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설마 진짜로 주방장 자리에 추천하다니…….
참으로 당돌하기 그지없는 꼬맹이다.
“혹시 매입이 가능하겠습니까? 금전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그냥 100kg은 선물로 드리고 가겠습니다. 이러면 리리스도 불만을 안 가지겠죠.”
“하하하하, 정말로 리리스가 단순히 그것 때문에 당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려는 건 아닐 텐데요.”
“전 어딘가에 매이지 않는 성격이라서요.”
오르비스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식사를 끝마쳤다는 것을 인지한 집사는 접시를 치우고 차를 내밀었다.
후룩.
다즐링을 한 모금 들이켠 오르비스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내기는 당신의 승리입니다. 드래곤마저 죽일 수 있는 바다뱀을 그렇게 제압할 수 있다니.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헌터임이 틀림없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그 광경이 현실 같지 않다.
그건 비단 오르비스의 생각만이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헌터들의 생각이었다.
“그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면, 그의 칭찬에 건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오르비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죠. 당신은 제가 보는 이 시스템이 궁금하신 거겠죠?”
“…….”
오르비스의 말에 건우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어떤 경위로 얻은 건 말하지만, 어떤 세계에서 이 시스템은 그렇게 희소한 게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 세계에서 이 시스템은 매우 흔하면서도 공기 같은 거죠. 그 세계가 어디인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겠죠?”
건우는 양손에 깍지를 끼며 답했다.
“탑이겠죠.”
오르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탑을 등반하는 이세계인들은 모두 플레이어라고 지칭하며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탑의 시련을 받고 공략의 대가를 받게 되죠.”
“왜 탑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거죠?”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탑이 부여한 제약에 법칙에 언변을 구속받고 탑 밖에서는 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탑에서 플레이어로 지내던 사람들은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탑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
예상치 못한 사실에 건우는 눈을 부릅떴다.
‘그러면 나와 오르비스는 어째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거지?’
건우가 미처 질문하기 전에 오르비스는 그 답을 내놓았다.
“저와 최건우 헌터가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거겠죠. 가령 저 같은 경우에는 파르데비아 가주의 자리를 승계 받으면 자연히 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던 세이비어는 곰곰이 고심하다 말했다.
-음, 탑 안에서는 너만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틀린 말은 아니지.’
확실히 그는 시스템을 이용해 막강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탑 안에서는 모두 동일한 규칙을 가지고 활동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스템 외에도 난 여러 가지를 갖추고 있다고.’
가령 탑 등반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필모어의 기록서를 소지하고 있다든지.
어떤 부상도 치료할 수 있는 복원의 권능이라던지.
남들보다는 조금 유리한 고지에 시작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오르비스는 그런 건우를 보며 싱긋 웃으며 물었다.
“자신만만한 표정이군요. 탑에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시기는 정하지 않았습니다만, 몇 가지 준비를 해 놓고 오를 생각입니다. 그전에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7성급 몬스터가 이곳에 넘어올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
단 하나의 질문에 분위기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6성급 몬스터를 해치운 지 얼마 안 돼서 그보다 격이 한 단계 높은 몬스터에 대해 논하다니…….
주변에 있던 시종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건우와 오르비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후룩.
하나, 질문을 받은 당사자, 오르비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단순히 가능성과 확률에 대한 것을 묻는 거라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7성급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으니 확답 드리기 어렵군요.”
씨익.
다소 애매한 답이지만 건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거면 됐습니다.”
“……?”
색다른 반응에 오르비스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고 건우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당분간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잖아요.”
맥이 빠졌는지 오르비스는 실없이 웃음이 터졌다.
두려움과 절망으로 가득한 미래.
모두가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을 터지만.
이 남자는 구태여 그 미래를 피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을 받으면, 그것을 극복할 방법만 고민할 뿐이었다.
“정말인지 리리스가 어째서 반했는지 알 것 같군요.”
“참고로 전 관심 없습니다. 이상한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건우의 확답에 오르비스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리리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분명 우아한 숙녀로서 당신을 맞이할 테니까요.”
“……글쎄요.”
언제나 앙칼지고 빽 소리를 지르는 여자애가 우아한 숙녀가 된다라…….
그 모습이 좀처럼 상상이 안 됐는지 건우는 오르비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요.”
“…….”
생각지도 못하게 오르비스는 진심을 답했고, 일순간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푸훗.”
그러다가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
여정은 끝이 났다.
이제는 집에 가서 지혜를 볼일만 남을 뿐이었다.
하지만 건우에게 아틀란티스 게이트보다 더 넘기 힘든 난공불락의 벽이 있었다.
파르데비아에서 마련해 준 건우의 숙소.
현재 네 마리의 층계보스가 마리오네트 상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포메트와 케이론은 무거운 짐을 현관 근처로 옮기고 있었고.
세피아는 캔 콜라를 들이켜며 그런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네메시스는 명쾌한 표정을 지은 채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심심함을 달래고 있었다.
피식.
저들이 한때, 인간을 위협했던 몬스터라니.
“이렇게 보면 참 유순해진 것 같네.”
-근데 어째서 몬스터보다 사람이 더 살벌해지냐?
“…….”
세이비어의 질문에 건우는 침묵을 지켰다.
건우의 바로 뒤에서는…….
으드드득.
벽에 손톱을 꽉 누르며 누군가 이빨을 갈며 쳐다보고 있다.
적의나 살의까지는 아니었지만 시선에는 명백하게 원망이 잔뜩 서려 있었다.
삐질.
건우는 등 언저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려고 했지만.
“혀어어엉님!!”
춘삼은 결국 건우를 불러 세웠다.
“뭐 인마.”
“본전 이상을 뽑는다는 형님의 말은 다 거짓이었습니까!”
“본전 이상 뽑았어. 계좌에 들어갈 돈만 없을 뿐이지.”
“이건 사기입니다!!”
“사기는 네가 치고 다녔던 거지. 인마. 그리고 내 돈 내가 쓴 것뿐인데? 왜 그러냐?”
“아아아아악! 형님은 주구장창 돈만 쓸 줄 알지. 그 돈을 버는 건, 저라는 겁니다!!”
춘삼은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리며 네메시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거로도 모자라서 이 생소한 크레이지 처키 한 명을 또 추가하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
인간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네메시스는 웃는 상태로 얼굴이 경직됐다.
춘삼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건우에게 요구를 했다.
“이것들 필요 없어요. 당장 버리세요.”
빠직!
그의 말을 듣던 네 마리의 보스는 이마 부근에 핏대를 세웠다.
-내 생전 저렇게 간덩이 부은 놈은 처음이다.
세이비어의 말에 건우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춘삼을 타일렀다.
“그래도 위급할 땐 네 목숨도 지켜 주잖아.”
“지켜 주기는 무슨…… 오히려 이것들이 제 목숨을 앗아 갈 뻔했다고요. 특히 쟤.”
춘삼은 검지로 세피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틈만 나면 혀를 차지를 않나. 발길질을 하지 않나. 저 봐. 저 표정 ‘또, 또 한 방 거리도 아닌 게, 자꾸 기어오르네.’ 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건우는 슬쩍 세피아의 얼굴을 쳐다봤다.
홱!
찔리는 게 있는지 세피아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홱 돌렸다.
“저기 저 두 놈들은 언제 팰까 기회 보면서 주먹을 풀고 형님 나가길 기다리잖아요. 내가 네놈들 패턴을 훤히 꿰뚫어 봤다. 이거야.”
다시 시선을 돌리니…….
홱.
케이론과 바포메트도 고개를 돌렸다.
이쯤 되니, 건우는 한마디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 텔레파시라도 통하냐?”
“텔레파시가 아니고 그만큼 앙숙이라 이겁니다. 앙숙!”
춘삼은 으르렁거리며 세 보스를 노려봤다.
바로 그때.
탁탁.
누군가 춘삼의 어깨를 두들겼다.
“누구야?”
슬쩍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서는 네메시스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리고 춘삼이 아리송해 하는 순간.
짜악!
네메시스는 그대로 미소를 유지하며 춘삼의 따귀를 후려쳤다.
“크허허헉!”
작은 몸집과 맞지 않게 강렬한 힘에 춘삼은 우당탕 바닥을 뒹굴었다.
“크아아아악! 어떻게 정상적인 것들이 하나도 없어!!”
다시 한번 인간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짓밟힌 춘삼은 절규를 내질렀고.
“네메시스 너마저…….”
두통이 밀려온 건지, 건우는 이마를 감싸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후.
네 마리의 보스는 옹기종기 앉아 다시 건우에게 정신교육을 받아야 됐다.
교육의 내용은 요약컨대, 인간을 때리는 기준과 때리지 않는 기준을 명확하게 인식하게끔 하는 교육이었다.
“알았지?”
건우의 교육에 네 명의 보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저놈들 분명 뒤에서 수작 부린다고요.”
춘삼은 여전히 입장을 굽히지 않고 간절히 애원했지만 건우는 가뿐하게 무시했다.
“됐고. 네 고생은 알겠다. 앞으로 사업은 번창하게끔 아티팩트들을 잔뜩 복원해둘 거니까 그리 알고. 그동안 내가 지출했던 돈은 깔끔하게 잊어. 알았지?”
“그치만.”
춘삼은 아직 미련이 남는 표정을 짓자, 건우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계속 꿍얼거리고 있으면 버리고 간다. 집에 가자.”
할 말을 마친 건우는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형님!”
당황한 춘삼은 재빨리 남은 짐을 급하게 챙겨들었다.
“제가 어떻게 형님을 두고 떠납니까! 섭섭한 소릴! 형님!”
방금 전까지 생각은 깔끔하게 잊었는지 춘삼은 부리나케 건우의 등을 쫓았다.
131.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