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쿠구구구구.
프리메라가 일으킨 지진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쩌저저저적.
그 여파는 갈수록 심해져 수정궁의 벽과 천장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무너져 가고 있는 그곳에서 건우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상대의 이름은 드미트리 레보스키.
이번 레이드에 있어서 줄곧 건우를 괴롭혀 왔던 적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와 눈을 맞닥뜨린 건우의 머릿속은 의아함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건우와의 전투를 포기하고 도주했었다.
만약 S급들과 사투 중 드미트리까지 가담했다면, 건우에게도 분명 부담이 됐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도주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까보다 더욱 강대한 기운을 품고 건우의 앞에 나타났다.
외양 또한 크게 변했다.
먼저, 머리는 새하얗게 탈색했다.
왼쪽 눈이 뱀과도 유사한 황색 빛을 띠며 오른쪽 눈과 서로 다른, 오드아이가 돼버렸다.
무엇보다 전신에서 수상스런 힘이 넘쳐흘렀다.
씨익.
드미트리가 입가에 실소를 머금으며 말을 걸어왔다.
“크크크크. 아아, 보고 싶었어. 내 사랑스런 숙적.”
건우는 질색하며 말했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건 스스로 알고 있지?”
드미트리에 전신에 일렁이던 독 분말은 곧 괴조의 발톱과도 유사한 형태로 그의 오른손에 달라붙었다.
“원래 짝사랑 상대를 만나면 변하는 법이야. 안 그래?!”
드미트리는 억양을 높이며 즉각 건우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건우는 인벤토리에서 크루엘의 마검을 꺼내 들어 그의 독조에 맞받아쳤다.
콰아앙!
‘뭐야? 이 괴력은?!’
단 일합을 나눈 것뿐인데.
건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미미하게 손을 떨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싸아아아. 쩌적!
어찌 된 영문인지 드미트리의 독조에 닿은 마검의 검신에는 균열이 일어나며 부서질 위기에 처했다.
‘말도 안 돼?!’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깜짝 놀란 건우는 즉각 복원을 발동해 내구도를 원상태로 회복시켰다.
“호오, 재주가 많아서 좋겠어. 난 이런 것들밖에 없는데. 크크크크.”
드미트리는 아까보다 더 많은 독 분말을 주변에 흩뿌렸다.
싸아아아.
수정궁의 주변이 그의 독기로 인해 순식간에 부식되기 시작했다.
건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약이라도 빨았냐? 뭐냐? 그 무식한 힘은?”
드미트리는 독조를 펼치며 의기양양한 자세로 말했다.
“크크크크크, 대단하지. 프리메라가 나에게 준 힘이야. 강신체로서 무려 날 선택했다지. 뭐야?”
“뭐?!”
예상치 않는 존재 언급에 건우는 낯빛을 굳혔고 세이비어는 몇 가지 깨달은 사실을 전달해 주었다.
-자신의 몸이 크니, 아바타로서 드미트리를 선택한 게다. 드미트리는 프리메라의 힘을 전수받으면서 인류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받았을 거고.
그의 설명에 건우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계약이라는 거네요.”
-그게 제일 적절한 단어구나.
프리메라와 드미트리는 서로 상호간의 계약을 체결했다.
드미트리는 자신의 몸을 프리메라에게 제공해 힘을 부여받고.
프리메라는 드미트리의 몸에 강신을 해 인류멸망의 사명을 완수한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분명 그런 종류의 계약일 것이다.
두둑.
건우는 주먹의 관절을 풀며 드미트리에게 물었다.
“그 말은 너도 인류 멸망의 뜻에 동조한다는 거네.”
“크크크크 그렇지. 이제 난 S급에 만족할 생각이 없어. 인간의 생사여탈권마저 거머쥔다면. 난 이 세상에 군림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그 전에 네놈은 반드시 죽인…….”
콰직!
드미트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우의 주먹이 그의 안면에 정확히 박혔다.
안면이 적중당한 드미트리는 1미터 거리까지 날아갔지만 곧 균형을 잡았다.
싸아아아아
정작 그에게 공격을 날린 건우의 주먹은 독기로 인해 부식되며 살갗 곳곳이 까지고 몸이 점차 잿더미처럼 변질되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
깜짝 놀란 세이비어가 호통을 쳤지만, 건우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권능을 발현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피부에서 벗겨진 살갗은 다시 제자리를 찾으며 원상 복구됐다.
드미트리는 얼굴에 흐르는 코피를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아이고, 아파라.”
건우는 싸늘한 눈동자로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어차피 검으로 베든 마법을 갈기든 그 독분말에 부식되어서 닿지 않겠지. 그렇다면, 주먹으로 숨통을 끊으면 되잖아.”
오싹!
건우의 눈빛에 드미트리는 한순간이지만 심장이 철렁 가라앉을 것 같다.
나는 미친놈이다.
그는 줄곧 자신을 그렇게 여겨 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든 폭군처럼 강림할 수 있었다.
한데, 어찌 된 일일까?
눈앞에 있는 이 S급 루키는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그의 말에 사사건건 반발을 하며 단 한 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드미트리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한 가지 목표가 생겨났다.
그 건방진 얼굴을 짓뭉개버리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드미트리는 단 한 번도 이 녀석을 이길 수 없었다.
왜지? 왜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수없이 그 질문을 되뇌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진짜 미친놈은 이 녀석이었어.’
강화된 그의 독은 피부에 닿는 즉시 그 신체 부위를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닿는 즉시 피부부터 뼈까지 깡그리 부식된다.
아무리 무제한 회복 능력이 있어도 그 고통을 일일이 감수하고 타격을 하겠다니.
도저히 제정신으로 나올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다.
싱긋.
건우는 다시 한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 같은 쓰레기 따위랑 각오부터 남달라. 지금부터 네 공격은 나한테 털끝 하나 스치지 않을 거고, 너는 그냥 정신없이 두들겨 맞으면 돼. 내 주먹이 먼저 으스러질지 네가 먼저 죽을지 한 번 해 보자고.”
그와 동시에 건우는 온갖 버프마법을 시전했다.
[초감각을 발동했습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헤이스트를 발동했습니다.]
[스트랭스를 발동했습니다.]
콰앙!
스킬 시전을 마친 건우는 곧장 권각으로 드미트리를 타격했다.
“크아아아아악!”
그 일격에 드미트리의 살점이 통째로 날아가고 뼈가 분쇄됐다.
싸아아아.
건우의 몸 역시 잿더미로 부식이 됐지만.
우웅.
그때마다 금빛의 마력이 그의 몸을 수복시켜 주었다.
건우는 자신의 고통에 일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물 흐르듯 다음 타격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퍼억!
로우킥을 갈기니, 드미트리의 정강이뼈가 부서지며 그의 양쪽 무릎이 털썩 지면을 찍었다.
콰직!
타이밍을 맞춰 건우는 진공무릎차기로 그의 안면을 처절하게 박살냈다.
“크아아아아아악!”
이빨이 깨지며 날아간 드미트리는 독 분말로 연신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콰아아앙!
건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말을 뚫고나와 연신 주먹질을 퍼부었다.
부식, 재생, 부식, 재생.
그 몸은 달군 철을 통째로 연단하는 것처럼 고통스런 과정일 것이다.
싱긋.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연기를 하는 듯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의식이 차츰 흐려질 즈음 드미트리는 건우와 어떤 형상을 겹쳐 봤다.
‘악마?!’
그렇지 않고서야 저놈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다.
악마는 거침없이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숨통을 끊기 위해 근력을 쥐어짜내고 있다.
온몸은 피 칠갑이 되어 짜낼 기력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악마에게서 살아남을 방법은 과연 있는 걸까?
드미트리는 멍하니 생각하다 스스로 답했다.
……없어.
나는 이 악마를 이길 수 없어.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야!!
하지만 그럴수록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더욱 강대해졌다.
드미트리는 그게 가능한 존재, 심연을 삼키는 뱀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꿈틀거리면서 뭐하고 있는 거야! 프리메라! 빨리 튀어나와서 이 녀석을 죽여!”
죽여.
……죽여!
……죽여!
그 말은 마치 세상의 종언을 선포하는 것처럼 수정궁에 메아리처럼 퍼져 나갔다.
그와 함께……
쿠직!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키에에에에에에엑!
수정궁이 완전히 깨지며 프리메라가 현신했다.
***
콰콰콰콰콰.
프리메라의 거대한 몸은 수정궁을 휘감으며 완전히 박살 냈고, 수정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즉각 권능을 발현했다.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우웅. 우웅.
거듭해서 파괴가 진행되는 터라 완전 복원은 불가능하지만 임시로나마 붕괴를 지연시킨 것이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 자식. 아파죽겠네.”
건우는 지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저릿저릿.
이미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았지만 통증의 후유증은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그런 건우를 보며 세이비어는 심히 타박했다.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두들겨 패래?
“열받게 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나저나 그놈 어디 있어요?”
-바로 위에 있잖느냐?
“네. 위라니요? 위에는 프리메라밖에…….”
천정 쪽으로 시선을 던진 건우는 낯빛이 그대로 굳었다.
그 모습은 수정에서 봤던 모습과 그대로 일치했다.
하지만 아까와 한 가지 다른 수상한 점이 포착됐다.
그것은 그의 이마에 붙어 있는 나체의 사내 때문이었다.
혼탁한 동공과 완전 색이 바라진 남자의 정체는 바로 드미트리였다.
-프리메라가 드미트리를 소환해 자신의 몸에 흡수시킨 거다. 앞으로 저 녀석이 인간 세상에서 활동할 때, 드미트리의 몸을 이용하겠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네요. 인간 세상을 염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빼앗는 몬스터라…….”
콰아아아아앙!
얼굴이 노출된 프리메라는 그대로 수정궁을 부수고 바다를 헤집기 시작했다.
“저기는…….”
건우는 부서진 수정궁 틈새에서 바깥의 바다를 주시했다.
때는 어두컴컴한 밤.
9km 떨어진 해역에는 블루 게이트가 엿보였다.
“결계는 아직 부서지지 않았는데.”
블루 게이트는 아직까지 결계가 형성돼 있음에도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게이트에 접근하고 있었다.
-힘으로 강제로 뚫을 심산인 게다.
“아, 진짜 생김새만큼 무식하게 구네.”
-감평 따위나 할 때냐?
세이비어의 핀잔에 건우는 앞머리를 이마 뒤로 쓸어 넘기며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메인 디쉬가 나왔는데, 제가 가만있을까 봐요.”
자신만만한 말투와 함께 이그너스의 반지에서 빛이 발출됐다.
[게이트가 형성됐습니다.]
눈앞에 소환된 게이트 너머로부터 건우의 충직한 심복들이 튀어나왔다.
***
시간은 자정.
블루게이트 주변으로는 파르데비아의 함선이 배치되어 있었다.
혹여나 예언대로 게이트 바깥으로 심상치 않는 존재가 강림할 시 거대한 화력으로 퇴치하기 위해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풍경을 보며 그저 비웃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몬스터들에게는 현대의 병장기가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막을 아는 이들에게 지금의 풍경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우웅, 우웅.
각 함선에서는 고출력의 마나로 형성된 마법진이 배치되어 있었다.
각 함선의 마법진을 통제하는 마도사 헌터는 무려 B급 이상으로 총 122명이 대기 중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포지션을 당당하는 헌터까지 합하면 총 300명으로 웬만한 대형 길드는 넘볼 수도 없는 각성자 군단이 이 함선에 대기하고 있었다.
함선에 도착해 상황을 주시하던 타냐는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진정한 현질러네. 마정석 재벌다워.”
“하하하 딱 적합한 말이었어.”
권정아는 상쾌하게 웃음을 터뜨렸고, 리리스는 팔짱을 끼며 핀잔을 주었다.
“지금은 긴장할 때 아닌가요? 최건우 헌터가 걱정도 안 돼요.”
“당연히 걱정되지, 인마.”
권정아는 안색을 굳히며 블루 게이트 너머를 바라봤다.
가급적이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싶지만.
쿠구구구구.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대기가 불안정하게 떨리며 출렁이는 해류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바로 그 순간.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만원경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사내는 힘껏 소리쳤다.
“저, 저기 봐! 지금 거대한 바다뱀이 게이트 너머로 건너려 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사람들의 안색은 급격히 창백해졌고 함선에 있던 오르비스도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결국 실패한 건가.”
이로써 다시금 세상에 재앙이 도래하는 건가?
충돌까지 앞으로 1초.
-쿠에에에엑!
프리메라가 힘껏 포효하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선포하려는 순간.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거대한 금빛의 링이 블루게이트를 감쌌고 충돌은 그 뒤에 바로 이어졌다.
콰아아아아앙!
결과는 실패.
결계는 부서졌지만 곧장 수복되며 프리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쿠에에에에엑!
분개한 프리메라가 다시 게이트를 건너려고 했지만.
쩌저저저저저저적!
이번에는 엄청난 양의 빙하가 게이트 그 자체를 가로막았다.
12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