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우웅!
건우가 발산하는 마력이 대기 사이에 미미한 진동을 일으켰다.
꼴깍!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혁은 목구멍으로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그럼에도 갈증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게 과연 인간인가?’
인간이 게이트를 자유자재로 소환해 넘다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건우는 선우혁을 보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한심한 몰골입니다. 대표님.”
빠득!
선우혁은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한마디를 읊조렸다.
“네 녀석은 몬스터라도 되냐?”
“글쎄요. 제 눈에는 대표님이 더 몬스터 같습니다만.”
“뭐야?!”
건우는 선우혁에게 시선을 떼 그대로 사제트를 노려보았다.
“쥐새끼처럼 도망가더니, 마지막 종착지가 여기냐?”
왈칵!
사제트는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이클립스 때 멸망한 버러지가! 네놈이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갖춘다고 해서 우리한테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분개한 사제트는 스컬헤드로 땅을 두들기며 다수의 언데드 군단을 소환했다.
우웅!
킹스켈레톤을 비롯해 구울, 매드독이 순식간에 건우의 주변을 에워쌌다.
건우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뚜벅뚜벅.
그저 인류 멸망의 실체, 사제트를 향해 똑바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크아아아앙!
뼈와 내장이 드러난 광견들은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건우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콰앙!
하지만 그 이빨은 피부에 채 닿기도 전에 케이론의 화살에 꿰뚫려 육신이 터졌다.
후두둑!
살점과 피, 뼛조각 등이 얼굴 등에 튀었지만 건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제트는 이빨을 빠득 갈며 일갈을 외쳤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쳐!”
쿵쾅!
그 명에 맞춰 킹스켈레톤이 거대한 대검으로 건우를 찍으려고 했으나.
콰앙!
빗발치는 화살들은 그것조차 무력화했다.
그 외의 많은 언데드 병사들은…….
콰앙! 콰앙! 콰앙!
건우의 몸에 채 닿기도 전에 화살에 꿰뚫려 소멸됐다.
“……말도 안 돼.”
사제트는 빠르게 사라지는 자신의 군세를 쳐다보다가 황급히 선우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 저 자한테 용액을 던지세요.”
“하, 하지만.”
선우혁은 당황하며 우물쭈물했다.
“원수를 죽일 기회잖습니까!”
“……?!”
사제트의 외침에 선우혁은 눈썹을 올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원수를 갚을 절호의 찬스가 아니던가.
내 아들들을 죽인 원수.
그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다.
“저승에서 울고 있는 내 아들들의 한을 네놈한테 뼛속 깊이 새겨 주마!”
선우혁의 외침에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승이요? 지옥을 잘못 말한 거겠죠.”
변함없이 건방지고 떳떳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선우혁의 눈에는 한없이 증오스럽고 또 증오스러웠다.
“주둥이 닥치지 못해! 죽어랏!”
분개한 선우혁은 곧장 건우를 향해 브렌넨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던졌다.
쩌적.
어떤 제스처도 없었음에도, 유리병에 빗금이 그려지며 홍염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건우가 즉각 손아귀를 뻗었다.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빗금이 간 유리병은 차이트의 권능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다.
아니, 복원이 되는 줄 알았다.
콰칭!
하지만 회귀의 링이 순식간에 파훼되며 유리병이 폭발하고 용액이 퍼져 나왔다.
“뭐?!”
시간의 순리가 깨졌다.
어째서?
주마등이 번뜩이며 순식간에 건우의 뇌리에서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제트는 교활하게 웃으며 짧게 말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내가 뒤통수치는 데 성공한 걸까나.”
발언 직후.
화르르르륵! 콰아아아앙!
태양처럼 거대한 마그마의 기운이 32층 마천루 꼭대기를 단숨에 폭발시켰다.
“크아아아아악!!”
인간의 몸으로 가히 감당할 수 없는 기운에 선우혁은 그대로 용암에 묻혀 사라졌다.
***
“아아아, 기분 죽인다.”
사제트는 미미하게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브레넨의 힘에 휩쓸리기 전.
그는 일찌감치 자신만을 위해 마련해 둔 구체형의 베리어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이것은 마법으로 빗어 낸 힘이 아니다.
바로 ‘똬리를 튼 뱀’의 권능 중 하나로, 침투가 불가능한 은닉처였다.
바깥을 살펴볼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안 봐도 뻔했다.
광대.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최건우는 브렌넨의 힘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했음이 분명하다.
“디아도스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얻은 힘인데, 참으로 적절하게 사용했어.”
돌이켜 보면 지금의 세계는 모든 게 수월했다.
이클립스 때는 간교한 꾀를 부려 영웅들을 참살했으나, 제아무리 많은 언데드 군단을 거느려도 인간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고생 끝에 인류 멸망에 성공했지만.
무수한 세월이 흐르니 인류는 부활했다.
참으로 지겨운 루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쉽사리 인류를 멸망시킬 수 없었다.
태곳적 인류를 멸망시켰던 재앙들이 대부분 탑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류 멸망 후.
탑이 부여한 제약과 법칙으로 인해 재앙들은 탑의 바깥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무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현류의 인생은 너무나 약했으니까.
S급이라 불리는 각성자들 역시 태곳적의 영웅과는 그 역량이 현격히 낮았다.
따라서 사제트는 무난하게 세상을 농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심은 화를 불러일으켰다.
자칫했다가는 그 자신이 최건우에게 소멸당할 뻔했다.
“크크크, 그럼 그렇지. 이 무고한 세월 동안 내가 어떻게 견뎠는데, 네놈이 나를 죽일 수 있겠어.”
이제 축배를 들 일만 남은 걸까?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만면에 드리웠던 웃음기는 싹 가셨다.
“……이, 이건 대체.”
그에게 충격을 안겨다 준 것은 눈앞의 풍경 그 자체였다.
본래라면 브렌넨의 힘에 의해 도심의 절반이 분화가 되어 사라졌어야 될 터였다.
쿠구구구구구.
한데, 어찌 된 영문인 건지 건물은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
정확히는 낙석 더미들이 부유하며 느리지만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힘의 진원지는 건물 전체를 감싼 금빛의 링으로 인한 것 같았다.
쿠구구구.
그 순간 부유하는 잔해물이 그늘이 되어 사제트를 가렸다.
“분화고래 브렌넨의 힘이라 솔직히 이건 예상 못 했네.”
“……?!”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사제트의 안면은 순식간에 경직됐다.
무심코 위를 쳐다보니, 부유하고 있는 낙석더미 위에 건우가 앉아 있었다.
“놀랐다고, 사제트.”
입가에 웃음기를 띠던 건우의 눈빛에 일순간 살기가 피어올랐다.
“네놈!!”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콰직!
트윈헤드 오우거 건틀렛을 낀 건우의 주먹이 사제트의 안면을 강타했다.
이빨을 비롯해 두개골이 산산이 부서졌다.
쿵쾅!
충격의 여파가 얼마나 큰 건지, 낙석 더미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쏟아졌다.
스스스스.
하지만 그조차 링의 힘에 의해 다시 원래 자리로 찾아갔다.
사제트는 얼굴에 흥건히 피를 흘리며 소리쳤다.
“아아아아악! 네 녀석! 어디까지 나를 방해할 심산이냐!! 어째서! 어째서 죽지 않는 거야!”
까드득!
건우는 그대로 사제트의 목을 움켜쥐며 답변해 주었다.
“브렌넨의 힘이라면, 모두 세피아의 얼음미궁으로 흘려보냈어. 미궁 전체가 녹을 정도로 김이 피어올랐다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불가능해.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때는 게이트를 열 여력 따위는 없었어.”
“그건 맞아. 근데, 하늘은 날 버리지 않더라고.”
건우는 싱긋 웃으며 오른손의 건틀렛을 해제하고는 오른손에 낀 반지를 보여 주었다.
“그, 그건.”
사제트는 눈을 부릅떴다.
흑마법사인 그가 반지에 실린 권위를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우는 사제트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아공간 생성이라는 재밌는 효과를 가졌지만, 효력 범위는 고작 10미터 내외밖에 안 돼. 하지만 브렌넨의 힘은 결코 칠대마왕의 힘을 앞설 수 없지.”
브렌넨과 칠대마왕.
이 존재들은 탑에서 권능을 가지고 있는 하이 랭커다.
어쩌면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권능과 권능이 충돌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제아무리 브렌넨의 권능이 먼저 발휘되었어도 칠대마왕의 권능이 우선순위로 작용된다.
있을 수 없는 모순.
실로 간교하기 짝이 없는 시간의 굴레였다.
“……네놈.”
사제트는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최건우를 노려보았다.
건우는 왼손의 건틀렛에 더욱 힘을 주며 입을 뗐다.
“사제트. 난 더 이상 당하지 않아. 더 강해져서 탑에 있는 재앙들한테 도전할 거야.”
주먹에 힘을 주던 사제트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어리석은 놈. 탑에서 네놈의 존재는 개미에 불과해.”
“아아 그렇겠지.”
솔직히 장난감이라고 여겨도 할 말은 없다.
태곳적부터 인류는 이들의 손에 놀아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박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씨익.
건우는 차디차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몸이 짓뭉개지고 이미 한 번 멸망을 당했어도 네놈들은 내 영혼 하나조차 굴복시키지 못했어.”
“그, 그건!”
한순간 건우의 눈빛에 압도당한 사제트는 안색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건우는 까득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을 얕보지 마. 쓰레기 새꺄!”
발설 직후.
왼손 건틀렛의 마력이 요동쳤다.
[익스플로전을 발동했습니다.]
[익스플로전을 발동했습니다.]
[익스플로전을 발동했습니다.]
오랜만에 펼쳐진 다중 무영창 캐스팅.
사제트는 자신의 몸을 에워싼 익스플로전에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그만둬!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데, 날 죽이려고 들어?! 차, 참 너 탑에 등반할 거지. 이것저것 필요한 정보가 많을 거야. 네가 찾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말할 테니…….”
구차하게라도 살아남고 싶은 건지, 사제트는 끝끝내 입을 열었지만.
건우는 싱긋 웃으며 한 마디를 남겼다.
“잘 가.”
콰아아앙!
“크아아아아아악!”
대 아닌 이별선언과 함께 사제트의 몸은 폭발에 휘말려 그대로 사라졌다.
“최건우, 네놈!!”
사제트는 어떻게든 마력을 발휘해 한마디라도 남기려고 했지만.
사륵.
그 몸은 폭발과 함께 증발돼 삽시간에 사라졌다.
***
사제트는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전생의 악연을 하나 끊어낸 건우는 시원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속은 후련하냐?
“쓰레기 하나 소각했으니 안 시원할까요?”
건우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타악.
언제 올라온 건지, 그곳에서는 S급 헌터, 6위 유지호가 건우가 위치한 낙석 더미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짧게 설명 드리죠. 이 폭발은 빌라이언과 아크 길드 대표님이 벌인 소행이고, 저는 지금 부서진 이곳을 복구하느라 힘을 쓰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스스로 자폭하시던데요.”
유지호는 파르르 몸을 떨며 건우에게 말했다.
“결국 너로 인해 아크는 붕괴되는 거냐?”
“글쎄요. 자승자박이 아닐까요?”
“…….”
유지호는 부정할 수 없는지 침묵을 지켰다.
건우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아크와 인연은 여기서 매듭짓고 싶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아크 길드의 대표로서 아크를 이끌어가야겠죠.”
“……?!”
예상치 못한 건우의 선언에 유지호는 눈을 부릅떴고.
스윽.
건우는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남은 말을 내뱉었다.
“아니면 끝까지 가 볼까요? 질릴 때까지 어울려 드리죠.”
회귀의 링을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우는 한층 강한 힘을 해방했다.
쿠구구구구.
그로 인해, 부유하고 있던 잔해물들이 잔잔히 떨리기 시작했다.
꿀꺽.
마력의 파장을 몸소 느낀 유지호는 고인 침을 삼키며 건우에게 말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최건우 헌터. 앞으로는 그동안 잘못됐던 관습들을 철폐해 나갈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죠.”
어떤 의미로는 굴복.
어떤 관점에서 보면 지나온 자신들의 만행을 반성하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사라라락.
그 순간, 무너진 건물들이 삽시간에 제자리로 돌아와 모든 게 복원이 됐다.
건물을 에워쌌던 회귀의 링은 사라졌다.
건우와 유지호는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온 아크 길드의 대표실에서 서로를 나란히 마주 보고 있었다.
‘이, 이건 무슨 조화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유지호는 동요하는 눈빛으로 건우를 쳐다봤고.
타악.
건우는 그런 유지호를 스쳐 지나가며 한마디를 남겼다.
“딱히 기대하지는 않습니다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톡톡히 대가를 치루게 될 겁니다.”
109.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