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리커버리 마도사-102화 (102/308)

102화

웅성웅성.

현재 HBS 방송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흥미가 돋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야, 들었어? 방금 전에 최건우 헌터가 우리 방송국에 들어왔대.”

“뭐? 전혀 이야기 못 들었는데.”

“보안 팀에서 확실하게 응답받았대.”

“그, 그치만 전혀 안 보이는데.”

매의 시선으로 건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됐지만.

인기척도 못 느끼자 그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보안 팀에서 장난 쳤나보네.”

“그러게. 진짜 오면 대박인데.”

낙담한 그들의 등 뒤로는 건우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유유자적 걸어가고 있었다.

국가 공인 라이선스를 이용하니 출입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게다가 인식저해 기능이 걸린 아티팩트 효과로 건우와 얼굴을 직접 마주치지 않은 사람들은 건우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은 한결 수월했다.

세이비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우에게 말했다.

-슈퍼스타 낯짝 한 번 보여 주지 그러냐?

“전 상관없는데, 오혜숙씨 사인만 받고 싶지 않나보네요.”

-크흠. 어허, 이 녀석. 당연히 사인이 제일 중요하지. 저런 놈들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라. 매스컴의 노예 같은 놈들. 감히 내 후손을 기삿거리로 삼으려고 해! 괘씸한 놈들.

“…….”

대마법사의 이계 정착이 너무 순조로워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바로 그때, 세이비어가 말문을 더듬었다.

-거, 건우야.

“왜요?”

-저기, 저 구석에 있는 사람 오혜숙씨 맞지?!

그의 흥분한 어조에 건우는 눈매를 지그시 좁혀 아래층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세이비어의 말대로 여배우 오혜숙이 있었다.

현재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한 남성과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아무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중요해도 요즘 점점 도가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게 크리에이터의 본분입니다. 저는 그 목표에 충분히 이바지하고 있고요.”

“제 말 뜻은 그게 아니잖아요! 지난번에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아티팩트를 소개하는 와중에 패널 중 한 명이 호흡곤란을 겪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교묘하게 그 부분만을 편집해서 사소한 빈혈인 것처럼 방송했죠.”

그녀의 항의에도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결과적으로 아무 문제는 없었고, 시청률은 좋아졌으니 그만 아닙니까? 그 이후로 최대한 안전에 신경을 기울이려고 저희 크리에이터도 힘껏 힘을 쓰고 있습니다.”

오혜숙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준영 PD! 당신은 지금 제 말 뜻을 전혀 못 알아듣고 있어요.”

남자의 이름은 이준영.

현재, HBS에서 가장 히트치고 있는 [던전 탐색]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PD였다.

이준영은 힐끔 주변을 쳐다보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뭘 봐. 빨리 가서 방송 준비하지 않고.”

웅성웅성.

주변에 있는 스텝들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치를 보다 스튜디오로 진입했다.

이준영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다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오현숙 씨. 막장 연기를 하도 많이 하다 보니 현실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일개 패널 중 한 명이에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웃고 떠들면 그만인 광대라 이 말입니다.”

“뭐, 뭐요!”

오혜숙은 크게 노해 얼굴이 뻘게졌다.

배우 생활 어언 삼십 년 차를 겪었지만 이런 모욕을 받은 건 생전 처음이었다.

“방송 그만하고 싶습니까?”

“그건 당신이 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이준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남들이 오냐오냐 떠받들고 존경하다 보니 세상 무서울 것 없나 봅니다. 제아무리 수억을 기부하는 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저희 심기에 거슬리는 짓은 삼가는 게 좋을 겁니다.”

짜악!

발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혜숙의 손이 이준의 따귀를 강타했다.

모욕감에 몸을 부르르 떨던 그녀는 이준영에게 말했다.

“이미지 따위를 위해서 기부하는 것도 아니고 부당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건 잘못됐다고 보지 않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사람이 죽을 뻔했다고요!”

이준영은 그녀의 말을 조언이 아닌 건방진 참견으로 받아들였다.

빠득!

그리고 자신을 때렸다는 것에 대해 이를 갈며 분개했다.

“아! 정말! 이 년이! 오냐오냐해 주니까!”

이준영은 손을 크게 들어 올렸고 오혜숙은 눈을 질끈 감았다.

타악!

하지만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때릴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내치기도 전에 누군가 잽싸게 이준영의 손목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파르르르.

“이, 이건 뭐야?! 이, 이거 안 놔!”

이준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을 붙잡은 남성, 최건우는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 다 보는데서 이러는 거 곤란하지 않을까요?”

“뭐야?! 이 자식이!!”

흥분으로 인해 얼굴에 벌겋게 달아오르던 이준영은 무심코 주변을 살펴봤다.

웅성웅성.

주변에는 방송국에 견학을 온 사람이나 출연진이 간간이 엿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금의 다툼을 지켜보며 속닥이거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쳇!”

이준영은 건우의 손을 뿌리치며 오현숙을 노려봤다.

“오혜숙 씨. 오늘까지 방송에 출연하고 하차하세요.”

“바라던 바입니다. 저도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이랑 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의 일방적인 통보에도 오현숙은 당당히 받아쳤다.

-캬아, 실제로 보니까 더 멋진 여자 아니냐?

세이비어는 그 모습을 보며 흠뻑 빠진 듯 보였다.

‘어련하시겠습니까?’

건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준영은 씩씩 콧김을 뿜어 대며 촬영장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심신이 많이 시달렸는지 오혜숙은 이마를 매만지다가 휘청거렸다.

건우는 쓰러질 뻔한 그녀를 부축하며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가, 감사합니다.”

잠시 후.

건우는 녹화가 시작하기 전인 오혜숙과 잠깐의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혜숙은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후룩 들이켜며 말했다.

인상은 아까보다 편안해졌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건우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참 나이에도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네요.”

“저한테 죄송할 것까지야 없죠. 근데, 무슨 일이에요?”

오혜숙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뗐다.

“던전 탐색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흥한 건 알고 있죠?”

“……네.”

그동안 미국에 있던 건우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어물쩍 넘어갔다.

눈치채지 못했는지 오혜숙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처음에 취지는 정말 재밌었어요. 사람은 미지에 관심이 많으니까요. 던전에서 발견된 아티팩트를 공개하며 아티팩트가 발산하는 현상을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출연진들이 아티팩트를 직접 만져 보는 체험도 가졌죠.”

‘시기상 적절한 때를 맞이한 거겠네.’

그동안 비슷한 취지의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본격적으로 방송에서 방영되는 일은 없었다.

아티팩트는 던전에서 발굴되는 초고대문명의 유산.

따라서 위험하다는 것을 근거로 수없이 저지되어 왔다.

한데, 그 관문을 뚫고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땄으니 시청률은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파르르르.

오혜숙은 손발을 떨며 말했다.

“시청률이 어느 정도 잡히니, 이준영은 더욱 위험한 아티팩트를 공개하고 있었어요. 출연진도 위험한 상황을 몇 번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이준영은 그 상황조차 이용한 악랄한 인간이에요. 솔직히 점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난감해 하던 차였죠.”

“그래서 싸우신 거군요.”

내막을 이해한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하니 어느 정도 후련하네요. 아참 이 이야기는…….”

“일단 함구하겠습니다.”

건우가 빙그레 미소를 짓자, 오혜숙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이야기 들어 주셔서 고마워요.”

녹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오혜숙은 녹화장으로 다급하게 뛰어갔다.

“…….”

건우는 멀뚱히 있다가 곧 이마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사인해 달라는 타이밍을 놓쳤네.”

-이 자식이 내가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이런 샹 우라질!!#$!%$%#$%%

그 뒤로 형용할 수 없는 세이비어의 욕설이 난무했고.

스윽.

건우는 슬그머니 반지를 빼 주머니에 넣었다.

***

HBS 방송국 정문.

정문을 지키던 방송국 경비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는 낯선 외국인 두 명이 버젓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사십 대 후반의 구릿빛 피부를 가진 중년의 남성.

다른 한 명은 그를 보조하는 것 같이 보이는 호리호리한 백인 남성이었다.

택배를 배달하는 것 마냥, 그들은 연두색 계통의 옷을 갖춰 입고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거대한 트레일러트럭이 시동을 건 채, 정차 중이었다.

언뜻 보면 도시락 업체나 다른 물품을 배달하는 업체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얼토당토하지 않는 사안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소속과 트레일러에 운반 중인 물품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확인차 경비원은 배송을 요청한 부서나 그들의 소속을 확인하기 위해 증명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들이 떡하니 내놓은 것은…….

[MIMIC]

이라는 성의 없는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이었다.

경비원은 결국 눈썹을 꿈틀거리며 화를 냈다.

“당신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물러나세요. 대체 저 안에 있는 게 뭡니까?”

경계심은 더욱 강해졌다.

그런 그에게 중년의 남성은 모자를 벗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저 안에 있는 건 말이야…….”

“다, 당신 이마에 있는 그건?!”

그의 인상을 제대로 엿본 경비는 크게 당황했다.

흑백이 반반씩 뒤섞인 푸석푸석한 머리칼, 그리고 그 아래 이마에 박힌 길쭉한 붉은 보석은 마치 하나의 눈인 것 같았다.

“테러리스트 한 세트야.”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은 무척이나 재미없는 진담이었다.

“……?!”

다급한 경비원이 재빨리 비상호출을 누르려고 했으나…….

쿠웅!

그의 이마에 박힌 붉은 보석을 직시한 순간, 그의 초점이 슬그머니 모호해졌다.

씨익.

한쪽 입꼬리를 비튼 남성은 경비에게 명령을 내렸다.

“열어.”

끄덕.

단호했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경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를 열었다.

우웅!

트레일러트럭은 그대로 방송사로 진입했고, 두 남자는 느긋하게 방송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십 대의 남성은 슬쩍 보석이 박힌 남성을 보며 입을 뗐다.

“근데, 테이머.”

“왜?”

“여기서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도굴꾼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아?”

“아직 이 나라말이 익숙지 않아서 그래. 구개음화? 연음법칙? 시부럴, 제대로 쓸만한 건, 욕밖에 없군. 성가신 게 많아.”

그간 한국어를 배우냐고 열이 받았는지 그는 이를 잘근잘근 갈았다.

옆에 있는 남자는 그의 화를 한 층 더 돋웠다.

“그리고 단장 지시는 최대한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하라는 건데, 너무 느긋하지 않아?”

결국 테이머는 인상을 왈칵 구겼다.

“아아, 듣기 싫으니까 입 좀 닥쳐, 커서. 어차피 일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서 순식간에 끝나. 무엇보다 우리한테 대적할 수 있는 각성자가 이 방송국에 있을 것 같아?”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했다고 생각한 걸까?

커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협회에서 인력이 파견되지 않는 이상 막기 어려울 것 같아. 왜냐하면 우리는 미믹이니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내뱉는 답변은 결코 오만이 아니었다.

테이머는 그의 대답이 흡족했는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는 미믹. 가장 위험한 것을 내포한 집단이지.”

끼익! 타앙!

말을 끝마치기가 은밀한 곳에 세워진 트레일러가 개방됐다.

우웅!

트레일러 안에는 형형색색 빛을 내는 게이트가 자리 잡혀 있었고.

스윽! 콰앙!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의 손이 튀어나오더니 트레일러의 박스를 종잇장처럼 움켜쥐곤 찢어 버렸다.

우웅!

그 순간 테이머의 이마에 박혀 있는 붉은 보석이 형형색색 빛을 내뿜었다.

씨익.

테이머는 음산하게 웃으며 게이트 너머에 있는 존재들에게 말했다.

“자 일할 시간이다. 굼벵이들아.”

103.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