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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101화 (101/308)

101화

전생을 각성한 이후.

건우는 더 이상 전생에 관한 꿈을 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꿈을 꾸었던 것은 각성을 위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일까?

지금 건우는 로한 이그너스로서 숨을 쉬고 있었다.

‘늘 꿈을 꾸지만 이 생생한 느낌은 달갑지가 않네.’

건우는 눈매를 좁히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땋은 머리를 하고, 동양인의 이목구비를 가진 기사.

그는 로한에게 연신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탁! 탁! 탁!

로한은 그의 공격을 막기 급급했다.

탕!

그러다 결국 목검이 동강나며 로한이 철푸덕 넘어졌다.

“하하하하, 가주님. 아직도 약합니다. 좀 더 기운을 내십시오.”

그는 털털하게 웃으며 로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무하잖아. 호프너.”

로한은 호프너의 손을 거부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머쓱했는지 호프너는 손을 거두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괜히 가주님한테 원망만 사는 거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내 부탁이니까 신경 쓸 것 없어.”

로한은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하아.’

꿈속의 풍경을 지켜보던 건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 시절은 로한이 재생의 마도사로 불리기 전이다.

당시 차이트의 권능인 복원 밖에 사용하지 못하던 로한은 전투감각을 필히 익혀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고생을 했었다.

‘나는 지금이나 전생이나 개고생하는 팔자였네.’

건우의 생각과 상관없이 꿈은 계속 진행됐다.

지칠 대로 지친 로한은 대자로 뻗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옆에서 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은 호프너가 로한에게 물을 건넸다.

“가주님. 그래도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방금 전 일격은 저도 조금 당황했습니다.”

나름 칭찬이었지만 로한은 코웃음을 쳤다.

“소드 마스터한테 그런 소리 들어봤자, 아부로 밖에 들리지 않거든.”

“아부 맞습니다. 이번 전장에서 전공을 세우면 꼭 옆에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

로한은 침묵을 지켰다.

호프너는 이제 곧 전장으로 떠난다.

세상은 종말로 치닫고 있고, 인간은 그 종말에 강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번에 탑에 넘어온 재앙의 괴수는 호프너 같은 출중한 실력의 소드 마스터가 없다면 저지할 수 없다.

앞으로 그 전장에서 그는 고군분투하며 싸우게 될 것이다.

그게 몇 년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미안해.”

로한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호프너에게 사과했다.

이래나 저래나 호프너를 거둬들인 것은 로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호프너를 전장으로 보내는 것 역시 로한이었다.

호프너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저를 보내주신 가주님의 선택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로한의 나이는 이제 겨우 15살.

아버지인 라그너 이그너스는 종말 중 일찍 죽음을 맞이하여서, 로한은 너무 이른 나이에 가주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가신들은 로한을 신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반푼이 인생의 마도사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이를 볼 때마다 호프너와 카심은 기사들을 두들겨 패고 다녔다.

그것은 단순히 로한에 대한 충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 세계는 종말로 치닫고 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가주를 신뢰하지 않는 가문은 당연히 먼저 멸망하게 돼 있다.

“언젠가 저는 믿고 있습니다. 가주님이 이 세계를 구원할 빛이 될 거라고.”

호프너의 말에 로한은 인상을 홱 찌푸렸다.

“그러지 마. 빛까지 될 생각은 없다고.”

로한은 그렇게 말하고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주 서서히 달의 그림자가 해를 집어삼키고 있다.

이런 특이한 현상은 무려 십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토지에는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신선한 야채를 먹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또한 생태계 환경이 바뀌어 밤의 짐승들과 몬스터들이 낮에 활보하고 다니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달의 그림자가 해를 완전히 뒤덮는 순간.

종말이 시작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 중에는 지금의 시대를 ‘이클립스’라고 칭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 소문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그 명칭을 순순히 인정하고 사용하기까지 했다.

“이클립스라…….”

건우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입을 뗐다.

“엿 먹으라 그래. 그딴 거 인정하면 정말로 포기하는 거잖아.”

“하하하, 당당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호프너는 호탕하게 웃으며 로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주의 머리에 손을 올리다니, 죽고 싶냐?”

“하하하. 가주님이랑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 죽여주십시오.”

“……너.”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호프너는 로한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발길을 옮겼다.

뒤에서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장발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호프너의 가신으로 있는 등이 굽은 꼽추 마도사.

파르르.

그 모습을 확인한 건우는 솟구치는 감정을 못 이기고 몸을 격렬하게 떨며 그 이름을 외쳤다.

“노티어!!!”

꿈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

깜박.

눈을 뜬 건우는 호흡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가 있는 곳은 리무진 안이었고, 옆에는 춘삼이 앉아 있었다.

“아야야야. 형님. 무슨 잠을 그렇게 살벌하게 잡니까? 하마터면 S급 헌터 잠꼬대에 턱이 나가떨어질 뻔한 한국인이라고 기사 나올 뻔했습니다.”

춘삼이 부어오른 오른뺨을 매만지고 있었다.

“……미안하게 됐다.”

건우는 즉각 손을 들어 춘삼의 뺨에 복원을 시전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스스스스.

부어오른 뺨은 곧 원래의 상태로 회복됐다.

춘삼은 말끔해진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역시 신기하네요.”

전직 사기꾼이기는 했지만 춘삼도 나름 레이드 경험이 제법 있는 헌터였다.

당연 힐러의 힐도 여러 번 받아봤지만, 건우의 것은 그 느낌이 매우 생소했다.

“가급적 다치지 마라. 성가시니까.”

“방금 전 거는 형님이 때린 거잖습니까?”

“네가 잘 피했어야지.”

교활하게 웃는 건우를 보며 춘삼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동업 관계이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 준 건우에게 불손한 마음을 어찌 품으랴.

춘삼은 사소한 감정을 제쳐두고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을 물었다.

“그나저나 형님. 귀국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지혜 씨가 분명 화낼 겁니다.”

“잘 달래봐. 너의 전용 스킬, 사기가 있잖아.”

춘삼은 불쾌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차라리 설득의 미학이 있다고 해주십시오.”

“그래. 그 설득의 미학으로 어떻게든 해봐. 진짜 내 동생한테 사기 치면 죽는 거고.”

춘삼은 퀭한 눈동자로 물었다.

“예를 들면 뭐가 있죠?”

“나 좋은 놈이다. 돈이 이만큼 있는 잘난 남자다. 뭐 이런 거 있잖아.”

왜 안 나오나 했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시스터 콤플렉스.

환멸을 느낀 춘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지혜 씨를 꼬실 생각은 기어코 없습니다.”

“이 자식이 네가 뭔데, 우리 지혜를 차는 거야?”

돌변한 건우의 반박에 춘삼은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되는 겁니까?”

“알아서 잘 맞춰.”

“…….”

춘삼이 어이가 없다는 눈초리로 건우를 쳐다볼 때.

끼익.

운전기사가 차를 멈춰 세웠다.

“나 간다.”

건우가 문을 덜커덩 여는 순간, 춘삼은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을 묻기로 했다.

“형님. 근데 갑자기 방송국에 가는 이유가 뭡니까?”

리무진이 멈춰선 곳은 다름 아닌 여의도 HBS 방송본부.

남의 눈에 띠기 싫어하는 건우가 자진해서 올 장소는 아니었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현숙씨 사인 받으러”

“……네?”

춘삼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탕!

대답을 마친 건우는 그대로 리무진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춘삼은 자신도 모르게 잇몸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훗, 웬일로 크레이지 처키를 나한테 안 붙였군. 이걸로 발 뻗고 편히 갈 수 있는 걸까?”

늘상 자신을 괴롭히던 마리오네트가 안 보이자 춘삼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편, 차 바깥쪽에서는 건우가 바로 떠나지 않고 지붕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바포메트가 마리오네트 상태로 앉아있었다.

“습격한 놈 있으면 바로 현신해서 생포해.”

바포메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절도 있게 인사했다.

부웅!

리무진은 그대로 떠나갔다.

차 안쪽에서는 춘삼이 기분 좋은 듯 어깨를 들썩이는데, 바포메트가 붙어있다는 걸 알면 그 얼굴이 곧 절망으로 물들 것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춘삼아.”

바로 그때, 건우의 반지가 빛나며 세이비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오늘은 기분이 꽤 안 좋아 보이는구나.

건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예. 안 꿔도 될 개꿈을 꿨거든요.”

-로한인 시절의 전생을 봤나보구나.

“…….”

건우는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미 과거의 일이다. 이클립스 시대는 이미 끝났으니 너는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현세에 살아가야 된다.

대현자 세이비어가 모처럼 진지하게 충고를 했다.

건우는 그 충고를 마음에 새기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저는 지금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야죠.”

그와 동시에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원한 관계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잊으라고는 안 했다. 노티어는 반드시 만나게 돼 있다.

방송국으로 향하던 건우는 걸음을 멈췄다.

“할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미 죽었을 수도 있잖아요.”

-너와 로한의 시간축이 이어진 사례도 있다. 노티어는 동료를 배반하고 적에게 의탁한 녀석이니, 불사의 힘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아.

“아아,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녀석이 있을 곳은 한 군데밖에 없겠네요.”

건우는 은근슬쩍 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하늘까지 치솟은 거대한 탑이 있었다.

눈앞에 있으면서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신비.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거대한 신기루라고 일컫기도 했다.

그 탑을 향해 건우는 은연중 선전포고를 했다.

“기다리고 있어라. 너희 전부.”

-그래, 다 좋지만 우선 오현숙씨 사인부터다.

“알고 있다니까요.”

건우는 입가에 조소를 그리며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

약 5개월 전.

HBS 방송보도국은 크게 뒤집힌 적이 있었다.

그것은 대형 신인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 절대 없고요. 선우진이랑 친구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개소리는 작작해라. 선우진.

스크린을 통해 울려 퍼지는 음성에 방송국 관계자들의 표정에는 많은 의미가 담겼다.

망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몰렸다.

많은 언론에서 수많은 비평과 비난, 그리고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대거 이어졌다.

그중 가장 두려운 건, 당연 시사보도 국장의 분노였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시사교양 프로그램, [더 팩트]의 담당 PD, 이준영의 얼굴에 종잇장 뭉치가 한 아름 날아왔다.

퍼억! 촤아아아악!

자료가 적힌 A4용지가 주변에 펄럭거렸고, 이준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 미쳤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이딴 방송을 내보내?”

이슈는 생각보다 컸다.

한국에서 나타난 11번째, S급 헌터 최건우의 등장.

이준영은 평소 자극적인 영상과 악마의 편집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평소처럼 어김없이 시청률을 올리는데 혈안이 된 나머지 무리수를 강행했다.

바로 최건우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우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다.

선우진은 거짓말로 건우와 사이좋은 관계라고 공표했다.

헌데, 그런 와중에 건우가 매몰차게 거부하니, 방송국 입장이 말도 아니었다.

더 팩트의 게시판은 수많은 댓글이 올라왔다.

-선우진 과거 행적도 조사하지 않고 그런 거짓말로 시청자를 기만하는 거냐!

-내 이럴 줄 알았다.

졸지에 HBS는 유명인들의 부도덕한 일진 학창시절을 감싸주는 이미지로 전락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이준영은 결국 예능 PD로 직책을 옮겨야 했다.

한때 국장 자리까지 넘보던 그의 야망은 그렇게 끝이 난 것이다.

콰앙!

이준영은 책상을 쾅 내려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두과 봐. 내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아.”

다시 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예능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선보이면 되는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곧 머릿속에서 묘안을 떠올렸다.

“그래. 각성자를 방송국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만사형통이잖아.”

싱긋 입꼬리를 올린 그는 즉각 머릿속의 계획을 실천으로 옮겼다.

1개월 후.

HBS에는 [던전 탐색]이라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의 막이 열렸다.

102.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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