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쨍그랑!
뉴욕 도심에 위치한 11개의 게이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결계가 깨졌다.
그 소리를 듣던 사제트는 얼굴을 붉혔다.
“아아, 기분 최고야! 하하하하.”
그는 이 순간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웅!
다리에서 보는 뉴욕의 모습은 그가 꿈꿔왔던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하늘 부근에 생성된 게이트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썩은 살점과 흉한 골격이 드러난 본 와이번 17마리였다.
우웅!
잇따라 지상에 뿌려진 게이트에서는 스켈레톤과 구울이 병장기를 들고 나타났다.
히잉!
그 무리를 이끌고 있는 것은 팬텀 스티드에 올라탄 데스 나이트 40기.
그 외에도 킹스켈레톤을 비롯해 오오거와 오크 등의 좀비 무리도 튀어나왔다.
콰앙!
지구에 현신한 그들은 곧장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콰앙!
4미터 크기의 오우거는 눈앞에 있는 차가 거슬리는지 단숨에 걷어찼다.
마치 볼링공처럼 구르던 차는 주변의 차들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폭발로 인해 불이 화르르 도로에 번졌다.
“꺄아아악!”
당황한 시민들이 일제히 피난하기 시작했다.
서걱!
바로 그때 한 궤적이 날아와 난동을 피우는 오우거 좀비의 머리들을 토막 내버렸다.
휘리리릭!
오우거의 머리를 벤 아티팩트는 다름 아닌 세 날개의 부메랑.
크기는 무려 1미터에 달했다.
휙!
부메랑을 회수한 건,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는 장신의 남자였다.
“레드 클라우드?”
허공에서 그를 바라본 사제트는 눈매를 좁혔다.
제아무리 세상사를 등지고 스코필드 저택에서 은신했더라도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미국에는 많은 각성자가 있다.
길드 또한 수백 개에 이르렀다.
레드 클라우드는 그중에서도 명문 길드이며 각성자가 유난히 많은 인디언 부족이기도 했다.
방금 부메랑을 날린 저 헌터 역시 얼핏 봐도 A등급은 되어 보였다.
콰앙! 콰앙! 콰앙!
레드 클라우드의 길드원들은 게이트 부근에 몰려온 좀비 무리와 격전을 벌이며 시민들을 피난시켰다.
키에에에에에엑!
한편 다른 구역에서는 도끼 등의 병장기를 든 구울 무리와 킹 스켈레톤 등이 고통의 신음성을 토해 내고 있었다.
죽은 자는 육체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 영혼에 침체적인 일격을 가하는 일격은 다르다.
우웅!
불행하게도 그들은 성역에 발을 디디고 말았다.
바닥에는 거대한 신성력이 구울과 스켈레톤 무리를 정화시켰다.
위에서 보면, 지면 전체위로 거대한 십자가 모양이 형성되고 있었다.
홀리 크로스.
신성 계통 최고 권위 마법이었다.
가운데에는 가디언 복장을 하고 있는 권위 있는 헌터가 있었다.
백금발에 푸른 눈동자.
어린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엄청난 기운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오호라 S급 헌터, 테오도르까지 있네.”
그 외에도 뉴욕 곳곳에 엄청난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콰쾅! 쏴아아아아!
뉴욕 도리 곳곳에 비치된 소화전이 터지며 솟구친 물들이 강하게 압축되어 칼날처럼 변모하더니 그대로 건물과 통째로 언데드들을 썰어 버려다.
물을 통제하고 있는 이는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정체 또한 알고 있다.
마법 계열의 S급 헌터, 레이라.
그 옆에는 강대한 자력을 생성시켜 철제 더미로 언데드를 쓸어버리는 S급 헌터, 조셉 타프까지 있었다.
콰콰콰쾅!
뉴욕에 확실히 절망이 들이닥쳤다.
하나, 동시에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풍경이 아니었는데.”
뉴욕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헌터들은 무려 천 명 가까이 됐다.
사제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들이 언데드에 막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가 의아하게 여긴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대처가 너무 빨라.”
게이트를 소환해 브레이크를 유도하는 것까지는 오래전에 세운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사정으로 사제트는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과거와 똑같은 수법을 사용했다가는 광대가 눈치챌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뉴욕 한복판으로 게이트를 모아 습격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한데 그것까지 간파하고 누군가 헌터들을 보낸 거라면?
“……불가능해.”
사제트는 머릿속의 가설을 곧장 부인했다.
뉴욕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게다가 금융의 중심지였다.
알게 모르게 유명한 S급 헌터들이 다수 몰려 있을 때도 있는 것이다.
사제트는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금방 여유를 되찾았다.
“그래봤자, 멸망이 약간 미루어진 것뿐이야.”
바로 그 순간.
우웅!
뉴욕 전체의 대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현장에서 고군분투 사투를 벌이고 있던 미국의 헌터들은 지금 이 순간, 한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마력의 집합지.
게이트에서 지금 이 순간, 엄청난 크기의 와이번이 튀어나왔다.
와이번 역시 언데드로 눈깔 한쪽은 부패해서 빠지기 일보직전.
그러나 그 크기와 힘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단순히 힘만을 두고 보자면 일반 와이번을 월등히 상회하고도 남았다.
키에에에에에엑!
게이트로 간신히 얼굴을 빼낸 녀석은 몸을 꿈틀 거리며 조금씩 몸을 앞으로 빼냈다.
두근!
하지만 헌터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은 와이번이 아니었다.
바로 와이번의 등에 앉아 있는 괴이한 인기척 때문이었다.
썩어 들어간 피부와 해골 마스크.
반짝이는 보석 눈동자.
등에는 널브러진 거대한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머리에는 빛나는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에 절망을 안겨 줄 마왕과 같았다.
사태를 진압하던 헌터들 사이에서 동요가 퍼져 나갔다.
“저, 저건 뭐야!”
“리, 리치 같은데, 왜 저렇게 커?”
“겁내지 마! 여, 여기는 S급 헌터가 3명이나 있다고.”
헌터들은 S급이라는 한 마디에 마음의 동요를 간신히 가라앉히나 싶었다.
하지만.
“후우.”
아크리치가 첫 마디를 내뱉기 위해 입을 떼는 순간,
쿠구구구구구구구!
전신에서 거대한 마기가 분출됐다.
그것은 마치 분화하기 시작한 화산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왔다!”
끼에에에에에에엑!
마치 그 존재를 찬양하는 것처럼 언데드들이 끔찍한 포효를 내질렀다.
우웅! 우웅! 우웅!
게이트 밖으로는 지금까지 나온 병력의 두 배 이상 되는 언데드들이 튀어나왔다.
아포칼립스(Apocalypsis).
그야말로 종말에서 볼 법한 풍경이었다.
쨍그랑.
전의를 상실한 헌터들 중 몇몇은 무기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마, 말도 안 돼!”
씨익!
사제트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뭘 꾸물거리고 앉아 있나 했네. 디아도스. 마음껏 날뛰라고.”
뉴욕은 본격적으로 어둠에 물들기 시작했다.
***
아크리치, 디아도스의 등장.
단지 존재감만 드러낼 뿐인데, 헌터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타앗!
반면 전황을 눈치챈 S급 헌터들은 분주하게 디아도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현장에 파견된 S급 헌터, 테오도르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프린세스의 말대로였어.”
사건 발생 8시간 전.
그는 시엘 타이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곳에 모인 대다수 S급 헌터들은 그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상태였다.
그녀로부터 내려온 전언은 하나였다.
[뉴욕에서 6성급 게이트 출현 예정, 공략할 생각은 하지 말고 시간을 끌어 줘. 부탁할게.]
그녀의 전언에 뉴욕 근처에 있는 S급 헌터들은 대다수 동의했다.
머잖아 그녀의 통보는 미합중국 중앙정보에까지 전달됐다.
갑작스런 통보에 의심할 법도 했지만, 권위 있는 그녀의 말을 믿고 중앙정부에는 통제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뉴욕은 최악의 상황만은 면했다.
이미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수천 명에 달한 헌터들이 이곳에 밀집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악을 면한 것뿐이다.
콰앙! 콰앙!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들은 죽어 가고 있다.
헌터들은 개미처럼 몰아치는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시간을 끄는 건 무리야.’
상황이 급박해지자 테오도르는 작전을 변경해야 했다.
시간을 끄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6성급 보스를 퇴치해야 했다.
보스가 누구인지 구태여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보스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용을 뽐내며 인간을 얕보고 있다.
테오도르는 거대한 와이번 위에 있는 디아도스를 보며 외쳤다.
“인간을 얕보지 마! 몬스터 따위가!”
쇄액!
그 순간 빌딩과 건물 사이를 빠져나오자, S급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인커터, 레이라.
아이언 기어, 조셉 타프.
그 뒤로 수많은 A급 헌터 서포터들.
6성급을 퇴치할 최소 전력의 파티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디아도스까지 거리는 약 50미터.
콰르르르르!
테오도르는 전신에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신성력이 모여들더니 거대한 검의 형체로 집속됐다.
테오도르는 즉각 디아도스를 향해 검을 발출했다.
후웅! 서걱!
검은 단숨에 와이번의 가슴에 꽂혔다.
끼에에에에엑!
강렬한 빛 무리가 단숨에 와이번을 정화시키며 단순한 해골로 만들었다.
파직!
하지만 디아도스에게 검의 일격은 닿지 않았다.
검 끝이 디아도스를 찌르려고 하는 찰나, 검은 마력에 그대로 부서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새 자력을 끌어올린 건지, 추락하는 와이번 주변으로 병장기나 철골들이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셉 타프가 눈에 힘을 준 순간,
콰콰콰콰쾅!
거대한 철골과 병장기들이 와이번의 시체를 단숨에 부숴 버렸다.
하지만.
휘익!
허공에는 디아도스의 검은 망토가 팔락거렸다.
그는 오만하게 팔짱을 낀 채로 허공을 부양하고 있었다.
“과거에 영웅들보다 훨씬 약하군. 뭐 그래도 유희로는 나쁘지 않겠지.”
디아도스는 즉각 검지를 들어 마법을 시전했다.
캐스팅 시간까지는 1초.
화르르르르륵!
변화는 곧장 찾아왔다.
지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거대한 홍염, 헬파이어가 튀어나왔다.
그 크기는 무려 100미터에 이르렀다.
끼기기기긱!
열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건물들의 철골들이 녹아들며 붕괴되기 시작했다.
직격 직전.
콰쾅!
레이라는 뉴욕 전체에 있는 물을 끌어 모아 헬파이어와 대치했다.
헬파이어를 썰어 버리는 고압의 물줄기.
그리고 헬파이어의 열기를 사그라뜨리는 강력한 물살.
쏴아아아아!
두 힘의 충돌로 뉴욕 전체에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레이라의 등 뒤로는 A급 헌터들은 보조 마법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 덕에 헬파이어를 가까스로 무마시켰다.
“쿨럭!”
하지만 대가는 컸다.
단 한 번의 충돌로 레이라는 각혈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테오도르와 조셉은 인상을 찡그렸다.
“6성급 중에서도 강력한 편에 속한다는 건가?”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위스키나 거하게 마시고 싸우는 건데.”
지켜보던 디아도스는 쯧 혀를 찼다.
“실망이군. 이게 끝인가? 쉽게 끝나겠군.”
“으아아앗!”
테오도르는 다시 한번 힘을 끌어올렸다.
우웅!
이번에 디아도스를 덮친 건 거대한 두 줄기의 빛 무리였다.
홀리 크로스.
백색 빛 무리의 십자가는 디아도스의 몸을 점차 깎아나갔다.
콰드드드득!
바로 뒤에는 조셉 타프이 조종하는 철골이 말뚝처럼 디아도스의 몸에 꽂혔다.
디아도스는 가소롭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날 죽이고 싶으면, 너의 10배는 되는 프리스트를 데리고 와야 될 거야.”
디아도스는 다시 한번 검지를 들었다.
화르르르르륵!
그러자 아까와 같은 크기의 헬 파이어 두 개가 생성됐다.
“……마, 말도 안 돼.”
그 자리에 있던 헌터 전원은 경악했다.
헬파이어가 여지없이 대지를 녹이며 그들을 덮쳤다.
꿈틀.
엄청난 열에 살갗이 벗겨지며 갑옷이 녹아들었다.
“크아아아악!”
S급 헌터들은 일제히 절규했다.
“……크크크크 인류의 희망이 여기서 어처구니없이 사라지는군.”
“젠장!!”
테오도르는 다가오는 죽음에 소리를 내지르며 절규했다.
하지만 직격 5초 전.
쇄액! 콰아앙!
푸른 빛줄기가 스쳐 지나가며 헬파이어는 반 토막이 나버렸다.
8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