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김민은 경황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대낮부터 대형 길드에게 납치를 당하지 않나.
의문의 괴물에게 구해지지 않나.
별일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 괴물이 건우에게는 순종적이었다.
건우는 혼란스러워하는 김민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이건 제 소환수예요.”
“소, 소환수 말입니까?”
소환 계열 헌터들은 보통 정령이나 환수와 같은 걸 소환할 수 있다.
대개 소환수를 본 사람들은 그 위엄에 찬 모습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바포메트는 달랐다.
고오오오오.
그저 눈빛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서렸다.
‘아, 악마 계열인가?’
김민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어쨌든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이네요.”
“머, 멀쩡합니다. 조금 두들겨 맞기는 했지만.”
“그렇습니까?”
건우는 즉각 김민에게 손을 뻗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금빛에 둘러싸인 김민의 상처는 곧 씻기듯이 사라졌다.
“최, 최건우 헌터님. 힐링도 가능한 겁니까?”
“그거랑은 약간 다릅니다.”
건우는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말했다.
비밀 엄수를 부탁한다는 걸 깨달은 김민이 황급히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럼 먼저 나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얼른 가서 협회 사람들한테 이놈들 싹 다 잡아 쳐…….”
“그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네?”
김민이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짓자, 건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원만하게 처리할 테니까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정말 최건우 헌터님께는 은혜만 입게 되네요.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민은 구태여 건우에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
한다면 그저 믿고 따르면 되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건우는 싱긋 웃으며 화답했고, 김민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세이비어는 김민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건우에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원만하게?
“그럼요. 원만하게요.”
대답을 마친 건우는 바포메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전부 쓸어버려. 죽지 않을 만큼만 두들겨 패.”
고오오오오오!
명을 받든 바포메트는 포효를 내지르며 밖으로 나섰다.
“자, 그럼.”
건우는 쓰러져 있는 헌터들에게 다가갔다.
“괴, 괴물 자식.”
의식이 남은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건우를 두려운 눈초리로 살펴보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오, 오지 마! 네놈이 한 짓이잖아!”
그는 부러진 팔을 붙들고 어떻게든 뒷걸음질 쳤다.
[치유의 요람을 시전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금빛 요람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다.
“이, 이건 뭐야? 빠져나갈 수 없어.”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공포와 달리 몸은 점차 편해졌다.
부러졌던 팔이 점차 뼈가 붙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우는 손을 턱에 괴며 말했다.
“치료가 다 될 때까지 벗어날 수 없어요. 정말 기적적으로 벗어나도 상처가 원래대로 돌아갈 거고요. 보실래요?”
건우는 그의 부러진 팔을 억지로 붙들어 요람 밖으로 꺼냈다.
우드득!
아물어 가던 뼈에 다시 균열이 일어나며 아까와 같은 통증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는 파르르 몸을 떨었고 건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상처가 다 나으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지 판단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매일 똑같은 악몽을 꾸게 될 거예요.”
오싹!
건우의 말에 그는 낯빛이 얼어붙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 상처가 나아봤자 내일 이 상황이 반복되면 의미가 없다.
매일 밤마다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습격을 가할 것이다.
아무리 공포에 질려 도망가도 마수는 어떻게든 자신을 아작 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싸이코 S급 헌터가 똑같은 방식으로 치료할 게 분명했다.
협회에 의뢰해도 소용없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증거를 내밀 수도 없기 때문이다.
건우는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똑같은 방법으로 치료하고 회유하였다.
세이비어는 그런 건우를 보며 그만 혀를 내둘렀다.
-악마 같은 놈.
“악마가 뭡니까? 기왕이면 영리한 놈이라는 좋은 말이 있잖습니까?”
-웃기지마! 너는 우리 가문이 배출한 최고 또라이야.
“저 이제 이그너스 핏줄이랑 상관없는데요.”
줄기찬 건우의 말대꾸에 세이비어는 삐졌다.
-영혼의 뿌리는 이그너스야! 이자식이. 나랑 여기서 인연 끊고 싶어?
“에이, 왜 그래요? 유치하게.”
더 건드리면 달랠 수 없을 것 같아 건우는 급히 수습에 나섰다.
저벅저벅.
그는 천천히 창고 밖으로 나서서 충무 길드 빌딩을 바라보았다.
1층에 들어서니 그곳에는 다수의 길드원들이 숨만 간신히 쉴 뿐,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등 엄청난 중상을 입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바포메트가 만든 파괴의 흔적이었다.
콰앙! 콰앙!
몇 층에 있을지는 예상이 안 가지만, 바포메트는 지금도 마음껏 폭주하고 있었다.
-브레스를 썼으면 진작 초토화되고도 끝났을 것 같은데. 뭐 하러 번거롭게 일하냐?
세이비어의 질문에 건우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원래 사냥은 천천히 먹잇감을 궁지로 몰아가면서 하는 거죠.”
-진짜 또라이 다 됐구나.
건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어느 정도 수긍했다.
“저한테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한테 잘해 줄 필요는 없잖아요.”
대답을 한 그는 그대로 부상자 치료에 나섰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말을 남겼다.
-매일 똑같은 악몽을 꾸게 될 거예요.
이 말의 효력은 어마어마했다.
그간 성익제에게 세뇌 당하듯 정신 교육을 받아 온 충무 길드의 헌터들의 가치관이 단번에 깨져 버렸다.
살고 싶다는 욕망 앞에서 지금까지 지켜온 옹고집은 필요 없는 것이었다.
세이비어는 북도를 거닐며 사람들을 치료하고 다니는 건우에게 말을 걸었다.
-건우야?
“왜요?”
-널 보니 닮은 사람이 떠올랐다.
“누군데요?”
-그 있잖아. 도를 아십니까? 하는 그놈들이랑 인상이 비슷해.
“…….”
-건우야?
“…….”
그의 말에 홱 기분이 상한 건우는 입을 다물었다.
***
삐리리
한밤중에 전화가 북새통을 이루자, 성익제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그를 불안스럽게 하는 것은 통화 내용이 아니라 길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회, 회장님. 도망가십시오.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우드득!
[크아아악!]
뚜둑.
이런 패턴의 전화가 벌써 수십 통이 걸려왔다.
그는 급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CCTV를 돌려보려고 했지만, 회선이 끊어졌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는 식은땀을 주륵 흘리며 건우와 했던 마지막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후회하실 거예요.
만약 건우가 쳐들어왔다면 모든 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충무 길드의 헌터들은 일제히 습격자를 괴물이라고 지칭했다.
필시 건우는 아닐 것이다.
“대체 그 괴물이 뭐기에.”
상황이 안 좋은 쪽으로 기울인다는 것을 깨달은 성익제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뭔지는 몰라도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 돼.”
그는 서둘러 금고를 열고 큼지막한 가방에 현금과 서류더미를 부어 넣었다.
“회, 회장님!”
그의 곁을 보좌하고 있던 비서가 적잖이 당황해했다.
“빨리 챙겨! 일단 여길 나가고 나서 생각해야 돼.”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결정을 좀 더 일찍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콰앙!
회장실의 문짝이 갑자기 나가떨어졌다.
성익제는 기겁했다.
“누, 누구야?!”
비서가 호신용으로 준비해 둔 검을 뽑아 성익제의 앞에 섰다.
쿵, 쿵.
이내 문을 박살 낸 습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장실 반을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
그것이 단지 걷는 것만으로 천장에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습격자는 산양과 인간의 모습을 섞어 둔 거대한 형체의 몬스터였다.
툭.
전의를 상실한 비서는 들고 있던 검을 놓쳐버렸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막아! 빨리! 내가 거액을 들여 A급 헌터를 호위로 왜 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도망가십시오. 저건 아무도 못 잡습니다.”
비서는 분명 A급 헌터다.
하지만 A급 중에서 특출난 헌터는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 분수를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몬스터는 자신은 물론 A급 최상위의 강자도 못 잡는 괴물이라는 것을.
“그, 그런.”
성익제는 바들바들 떨며 돈가방을 꼭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스륵. 쿵.
염소악마가 한쪽 무릎을 꿇고 누군가에게 예를 갖췄다.
이어서 염소악마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부터 건우가 아주 여유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너, 너.”
성익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손가락으로 건우를 가리켰다.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벌써 굴복한 겁니까?”
건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성익제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얼굴이 벌게진 성익제는 비서에게 소리쳤다.
“뭣하고 있어! 지금 당장 저 자식 죽여!”
비서는 주춤거리며 달려들었다.
[중력 마법을 시전합니다.]
건우의 대처는 단순했다.
그저 오른발을 들어 올려 바닥을 쿵 내릴 뿐이었다.
콰아아아아앙!
하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콰아아앙! 쩌걱!
회장실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회장실 바닥이 쪼개지고 갈라져 벽에까지 균열이 일구어졌다.
균형을 잃은 비서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었고 건우는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우드득 콰앙!
“쿨럭!”
단 한 방에 비서는 늑골이 부러지고 내장이 짜부라져 치명상에 이르렀다.
[치유의 요람을 시전했습니다.]
건우는 그 즉시 그의 몸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
비서는 파르르 몸을 떨뿐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건우는 그의 손목을 집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억지로 요람에서 빠져나오게 되자, 비서는 왈칵 피를 토하며 아까와 같은 통증을 느꼈다.
치유되기 시작하던 상처들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크아아아아악!”
스륵.
건우는 절규하는 그를 다시 요람 안에 눕히며 충고를 남겼다.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 판단해 보세요. 매일 밤 이 고통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비서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는 마침내 성익제와 눈을 마주쳤다.
움찔.
책상을 붙들고 있던 그는 파르르 떨었다.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이 괴물 자식!”
그는 진심으로 공포에 사로잡혔다.
지금까지 S급 헌터를 많이 만나기는 했지만, 건우의 포스는 그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건우는 그대로 성익제를 스쳐 지나가 그의 의자에 앉았다.
“너, 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알아? 이건 범죄야!!”
“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건우의 뻔뻔한 대응에 성익제는 조소를 그리며 말했다.
“지금 이 참상을 보면,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될 줄 알아. 네놈의 명성은 여기서 끝나는 거야!”
“그러니까 회장님. 저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요.”
“뭐?”
성익제는 눈을 부릅떴다.
허세라고 하기에는 건우의 모습이 너무 태평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회귀의 링을 시전했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건물에 금빛의 링이 형성됐다.
쿠구구구.
그리고 부서진 모든 건물의 잔해더미가 제자리를 찾아가 달라붙기 시작했다.
“…….”
성익제는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반면 건우는 미소를 지은 채, 양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오늘 밤 회장님은 그저 악몽을 꾼 것뿐이에요. 알아들으셨나요?”
오싹!
건우의 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성익제의 안색은 급격히 창백해졌다.
7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