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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56화 (56/308)

56화

헌터협회 VIP 치료실.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이계인이 있다.

치렁거리는 긴 금발에 뾰족한 귀.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는 그녀는 엘프였다.

이름은 시엘 타이히.

미하누프처럼 그녀 역시 탑에서 건너온 교류자였다.

치료실에서 그녀를 본 헌터들이라면 열에 아홉은 대시할 정도로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다.

오늘도 그녀는 그 용모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다.

사락.

꽃다발을 든 한 헌터가 그녀에게 느닷없이 구애했다.

“한눈에 보고 반했습니다. 저와 교제해 주십시오!!”

“저 그게…….”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협회에서 일한 지 어언 7년.

이런 비슷한 고백을 받은 건 수백 회에 가까웠다.

이런 때를 위해 마련해 둔 몇 가지 거부법이 있다.

그녀는 먼저 첫 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죄송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무리일 것 같아요.”

“나, 나이가 어떻기에 그럽니까. 저도 먹을 만큼 먹은 29살…….”

“580살이요.”

“…….”

헌터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낙담하는 것도 잠시.

그는 다시 용기를 가졌다.

“그깟 나이 차이 전 두렵지 않습니다. 극복할 수 있습…….”

그때 그의 뒤에서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저 방해되니까 좀 가주시겠어요?”

“이익! 지금 중요한 순간…….”

여인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꽈악!

그리고 그녀의 악력에 남자의 살점이 크게 짓눌렸다.

“으아아아악! 누, 누구야!”

그는 볼품없이 무릎을 꿇으며 위를 쳐다보다 경악했다.

‘궈, 권정아!!’

그곳에는 권정아가 저릿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죄, 죄송합니다.”

그는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기겁하며 후다닥 달아났다.

시엘은 곤란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는데. 또 박살 냈다가는 협회장님이 화낼 거야.”

권정아는 새침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그까짓 거 물어 주면 되지.”

“버는 돈이 다 피해 보상으로 나가겠다.”

“어차피 내 돈이야. 언니.”

S급 헌터, 권정아.

뒤에서 불리는 그녀의 이명은 파괴신이었다.

고집이 세고 꽤 다혈질이다.

그 때문에 주먹을 쓸 날이 많으니 하루가 나날이 부수는 일과였다.

그나마 그녀가 언론에 욕을 덜 먹는 이유는 부순 거에 대해서 바로 보상을 해 주기 때문이다.

시엘은 피식 웃어 버렸다.

“못 말리겠네.”

“그래서 언니, 결과는 어때?”

권정아의 질문에 시엘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안에 내재돼 있는 악마가 너무 강해. 치료의 영역이 아니야.”

“……그래.”

권정아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약 3개월 전, 그녀는 희귀한 던전에 들어간 적이 있다.

공략 자체는 금세 이루어졌다.

불길한 일은 보상을 확인하는 중에 이루어졌다.

권정아는 던전에 있던 보석 상자를 무심코 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안에 있던 무언가가 스멀스멀 그녀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시엘의 진단결과, 권정아의 몸에는 악령이 빙의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개 악령은 힐러의 마법으로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혹은 시엘의 정령마법으로 악령을 쫓아 퇴치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방법을 다 사용했음에도 악령은 견고하게 버텼다.

힐러의 마법에 다소 약화만 될 뿐이었다.

악령을 쫓기 위해 소환한 정령들은 악령에게 공포를 느끼고 모습을 감췄다.

이것은 탑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였기 때문에 시엘도 난감하던 참이었다.

“악령 상태는 어때?”

“시도 때도 없이 내 몸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악령이 빙의를 통해 권정아의 몸을 정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높은 정신 내성으로 버티고 있지만 점차 불길한 조짐을 느꼈다.

‘점점 강해지고 있어.’

“괜찮아?”

“응. 괜찮아.”

“내가 최대한 방법을 찾아볼게. 좀만 기다려 줘.”

“고마워. 언니.”

VIP 병실에 나온 시엘은 권정아를 바래다주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 물건 부수는 것 좀 그만해. 사람들이 너 난폭하다고 오해하잖아.”

“……알았어. 나 그래도 조심하고 있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 요즘은 왜 얌전해?”

“얼마 전에 사기를 당했거든. 악령을 쫓아낼 수 있는 성수가 있다며 아주 비싸게 샀었어.”

“아.”

시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권정아는 우드득 주먹관절을 풀며 말했다.

“그 사기꾼 자식 면상에 주먹을 날릴 때까지는 자중하겠다고 결심했거든.”

“……그러면 죽을 텐데.”

“당연히 죽이지는 않지. 얼마 전에 돈이 다시 입금됐더라고.”

“그, 그러면 끝난 거 아니야?”

“아니지. 언니. 날 농락한 대가는 받아야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이름은 로베르토고 금발벽안에 준수하게 생긴 외국인이야.”

“아, 그래. 그럼 저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겼겠다.”

“설마.”

권정아는 피식 웃다가 시엘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언니.”

“응?”

“고마워.”

권정아는 곧장 금발 외국인에게 다가가더니…….

우당탕!

순식간에 주변을 풍비박산 내버렸다.

“으아악! 살려 줘!”

금발 외국인은 백지장처럼 새하얘진 얼굴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기 서! 이 사기꾼 자식아!!”

권정아는 그를 잡아 죽일 듯 쫓아갔다.

“그러니까 부수지 말래도.”

엉망진창이 된 현장을 보며 시엘은 이마를 매만졌다.

***

“생각보다 엄청 많네.”

추리고 추린 자료다 보니 알짜배기 정보가 가득했다.

건우는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며 빠르게 정보를 색출해 냈다.

협회에 요구한 정보에는 아크 길드의 대외관계와 동향도 포함돼 있었다.

[힘을 증강시켜 주는 포션, 잇따른 부작용으로 미국 사회에 문제 심화(미공표 상태)]

[선우유정이 스코필드 가문과 접촉 뒤 아크 길드의 전력 대폭 상승]

[스코필드 가문의 역사]

스크롤을 내려 보던 중 건우는 눈매를 좁혔다.

‘뱀?’

스코필드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은 ‘똬리를 튼 뱀’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묘하게 찝찝함이 자리 잡았다.

‘일단 스코필드 가문이랑 아크 길드의 접촉부터 확인해 봐야겠네.’

건우는 싱긋 웃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는 춘삼이 앉아 있던 대기석을 살피다 중얼거렸다.

“근데, 이 자식은 어디 간 거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의자 하나가 제대로 작살나 있었다.

묘하게 그 자리는 춘삼이 앉아 있던 곳 바로 옆이었다.

웅성웅성.

이를 두고 사람들이 수군덕거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건우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와, 권정아 진짜 무섭구나.”

“얼굴은 예쁜데, 완전 하는 짓이 마초라니까.”

“그나저나 그 외국인 대체 권정아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겁나 빡쳐 보이던데?”

“대시한 거 아닐까? 엄청 잘생겼던데.”

“누가 그 왈가닥한테 들이대겠냐? 크크크크.”

“하긴 권정아가 사기꾼이라고 외치며 죽일 듯이 쫓아가긴 했지.”

“…….”

왜일까?

단지 대화만 들었을 뿐인데, 어떤 광경이 벌어졌는지 훤히 예상됐다.

건우는 이마를 매만졌다.

문득 지난날, 춘삼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건우에게 세이비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애물단지를 받아들였구나.

“그러게요. 후회 중입니다.”

-그래서 어쩔 거냐?

“일단 만나 봐야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답변을 마친 건우는 부랴부랴 춘삼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

협회를 빠져나와 골목 어귀에 들어서며 춘삼은 간절히 애원했다.

달려라.

폐가 터지든 심장이 터지든 상관없다.

쾅! 쾅! 쾅!

뒤에서 뭐든 부수며 달려오는 저 저돌적인 여인의 손에 맞아죽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S급 헌터, 9위.

그녀는 오히려 춘삼을 농락하며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도망갈 테며 도망가 봐라.

갈 길이 막히는 순간, 너는 죽는다.

대략 그런 뜻이 담긴 복잡 미묘한 얼굴로 그녀는 춘삼을 쫓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춘삼은 담장과 만나고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런 춘삼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우드득. 우드득.

권정아는 주먹을 풀며 살갑게 얘기했다.

“어머, 로베르토씨. 조깅은 끝났나요? 저희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할까요?”

덜덜덜

춘삼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미, 미스 퀀. 컴다운. 지, 진췅하세요.”

“그럼요. 저는 침착하고 대화에 응할 기분이 돼 있어요.”

쿠구구구구구

말과는 달리 그녀의 전신에서는 마력이 심히 요동치고 있었다.

꿀꺽.

춘삼은 고인 침을 삼켰다.

“성수에 대해서는 미, 미안합니톼. 사과의 뜻으로 이, 이자까지 부, 붙여서.”

권정아는 미소를 유지하며 답했다.

“어머 S급한테 3억 정도는 푼돈이니까 괜찮아요.”

“그, 근데 왜?”

“중요한 건, 저를 속였다는 거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전광석화로 춘삼의 앞에 도달했다.

쇄액! 콰앙!

이윽고 그녀가 내지른 주먹은 춘삼의 옆에 있던 담장을 송두리째 날려 버렸다.

“…….”

저 주먹에 얼굴을 맞았다가는 어깨 위가 허전해질 것 같다.

“어떻게 때려 드릴까요?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안심하시고요.”

“그쯤 해 주시죠.”

저벅저벅.

그들의 뒤로 건우가 한숨을 쉬며 걸어왔다.

“혀, 형님!”

춘삼은 반색하며 허둥지둥 건우의 뒤로 숨어들었다.

찌릿!

“너는 조금 있다 보자.”

“아휴, 그럼요. 얼마든지 보겠습니다.”

건우의 매서운 눈초리에 춘삼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살 수 있는데, 뭔들 못하랴.

건우는 혀를 차며 권정아에게 말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여기서 끝내주실 수 있을까요?”

권정아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냉담하게 답했다.

“제 3자는 빠져 주시죠.”

“이 녀석 때문에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면…….”

“필요 없어요. 저는 저 남자만 죽…… 아니 몇 방만 때리면 되거든요.”

“형님 지금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잘못 말한 것 같습니다!”

“촐싹거리지 말고 저리 가 있어! 정신 사나우니까!”

그러자 춘삼은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하며 물러났다.

건우는 그녀를 계속 설득해 나갔다.

“S급 헌터 맞으시죠?”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이쯤 해주시죠.”

“저건 죽…… 아니 다쳐도 상관없는 존재인데요?”

“…….”

아무래도 정말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다.

‘살벌하네.’

건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속이 풀리실 것 같나요?”

“제 문제에 대해서 아는 만큼 어떻게든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든가 해야 될 거예요.”

“후우, 어떤 사정인지만 가르쳐 주시면, 제가 돕겠습니다.”

“그건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에요. 그전에…….”

탁!

그녀는 오른쪽 주먹을 왼손으로 감싸며 말을 이어 나갔다.

“때리기 전까지 이 격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

지금까지의 설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건 아무리 들어 봐도 억지인데요.”

그녀는 슬쩍 건우를 보며 말했다.

“아니면, 그쪽이 대신 상대해 주시든가요? S급 헌터, 최건우씨.”

“흐음.”

건우는 새침하게 눈을 떴다.

‘지난번 선우유정도 그렇고, S급한테는 인식저해 마법이 통하지 않나 보네.’

그녀의 도발에 건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일방적으로 맞는 조건만 아니면 상대해 드리죠.”

“흐음. 좋아요. 따라와요.”

그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뭘 할 생각이지?’

건우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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