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집들이 두 시간 전.
건우는 협회에 들려 정보 수집을 하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아크 길드]와 [의문의 약]이었다.
보안이 걸린 정보까지 요구한 관계로 시간은 대략 사흘 정도 걸린다고 했다.
정보이용료는 무려 2억이었다.
물론 건우는 라이선스 소지자였기 때문에 모두 무료였다.
참고로 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건, 한국에서 건우가 유일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감투, 감투하는 거구나.’
기분이 좋아진 건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구로 나서기 위해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타악!
바로 맞은편에 온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의외로 강한 충격에 건우와 상대 둘 다 인상을 찌푸렸다.
건우와 부딪친 건, 쇼트컷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장신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건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요. 부딪쳤으면 사과 좀 하시죠?”
‘부딪친 게 누군데?’
기분이 절로 불쾌해졌다.
“미안합니다. 근데 그쪽도 조심 좀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뭐요?!”
건우의 퉁명스런 반박에 그녀는 발끈했다가 곧 기세를 죽였다.
“진짜 별꼴이야.”
그녀는 사과 한 마디도 없이 건우를 스쳐 지나갔다.
건우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요즘 S급 헌터들은 개념을 밥 말아먹었나.”
건우는 이미 머릿속에 S급 이상 헌터들의 신상정보를 외워둔 상태였다.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녀의 이름은 권정아.
나이는 28세.
S급 헌터로 국내랭킹 9위에 등극한 헌터였다.
‘됐다. 엮인다면 얼마나 엮이겠어?’
건우는 곧 신경을 거두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이번에 새로 건축된 건우의 집은 으리으리했다.
규모는 종로에 위치한 대사관 저택보다 두 배는 더 컸다.
실내는 천정형 에어컨이 온도조절을 하니 시원했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건우는 눈가가 절로 시큼해졌다.
이렇게 되니 빚 때문에 겪은 고초가 다 꿈만 같았다.
그런 건우에게 세이비어가 말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래? 과거에 더 큰 영지를 가졌던 놈이…….
“그때는 그때고요. 이제는 잃지 않고 살아야죠.”
-…….
건우의 감회 섞인 말에 세이비어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때 춘삼이 건우의 앞에 섰다.
“형님. 진지하게 할 말이 있습니다.”
“또 왜?”
“제가 방금 전까지 이 크레이지 처키 3인방한테 농락당한 거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뭐?”
크레이지 처키 3인방.
그것은 건우의 던전을 구성하고 있는 층계 보스 세 마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춘삼이 드물게 건우 앞에서 감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했다.
“치욕스럽습니다. 분합니다. 아니 그보다 그 까칠 여왕, 성격이 왜 이렇게 더럽습니까?”
까칠 여왕은 세피아의 별칭이었다.
건우는 춘삼의 의견을 일부 수긍하며 말했다.
“걔는 아직 개과천선 중이야. 그래도 지혜 앞에서 살갑게 굴던데.”
“그건 형님 여동생이 먼치킨 친화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죠.”
“그, 그런가.”
건우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옆을 바라보았다.
세피아는 지혜의 옆에 딱 붙어서 콜라를 훌쩍 마시고 있었다.
지혜의 친화성은 어디까지일까?
이 부분은 건우도 새삼스럽게 놀란 부분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저한테 붙어 있는 이것들 좀 떼 주세요.”
춘삼은 그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바포메트와 케이론을 가리켰다.
“안 돼. 싫으면 네가 날 떠나면 되는 거고.”
“으윽!”
춘삼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결국 낙담했다. 그런 그를 보며 건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건우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혹시나 할 때, 춘삼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바로 던전 보스들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치는 해둬야겠지.’
“집합!”
건우의 부름에 세 보스는 즉각 응답했다.
건우는 모두를 불러놓고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특별한 경우 아니면 사람 때리지 마. 특히 얘는 절대로.”
건우는 춘삼을 지목하며 가리켰다.
홱!
세피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없는 반응에 춘삼이 경악했다.
“형님! 쟤, 뭔가 혀 찬 것 같지 않아요?”
“……아니야. 뭔 소리야.”
건우는 그냥 모른 척했다.
***
시간은 오후 6시.
집들이 방문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혜의 친구인 선정.
봉황 길드의 서유리.
백석 길드의 마동혁.
그리고 서바이벌 시험 때, 만난 조광철 정도였다.
하지만 선물 규모는 얕볼 수가 없었다.
“지, 집이 커서 다행이네.”
지혜는 으리으리하게 큰 화초들을 보며 당황한 상태였다.
마동혁이 준 선물이었다.
“크하하하, 사람이 식물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지.”
“이건 아버지가 보내신 선물이에요.”
서유라가 내민 선물은 가볍게(?) 산삼 10뿌리였다. 마력이 흘러넘치는 것을 보아 분명 최상급이었다.
춘삼은 슬쩍 한 뿌리를 집어 조용히 씹어 먹었다.
그 모습이 딱해 보였던 건우가 말했다.
“그냥 당당하게 먹어.”
“쿨럭.”
목에 잘못 걸렸는지 춘삼은 구석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때 조광철이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전 조촐하게 준비했습니다.”
“아니, 뭐 선물 받으려고 집들이 초대했나? 상관없어. 선물이 뭔데?”
“네, 저기 오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통해 두 세 사람이 낑낑거리며 무언가를 끌고 왔다.
포장박스로 보아 그것은 TV였다.
그것도 무려 100인치였다.
건우는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어디가 조촐해! 인마!!”
“네? 다른 것보다 가격이 낮은데요.”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걸 무엇보다 기뻐하는 이가 있었다.
-오오오오오오오!!
세이비어는 지금까지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음색으로 환호했다.
깜짝 놀란 건우는 음성이 새어 나오지 않게 반지를 틀어막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자, 건우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마음을 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은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크하하하, 배포 있어 좋습니다. 다 같이 짠합시다. 집주인 외쳐주시죠?”
마동혁의 제안에 건우는 피식 웃으며 외쳤다.
“건배!”
“건배!”
모두 구호에 맞춰 잔을 부딪쳤다.
“오오! 이 고기 뭐야!!”
“엄청 맛있어.”
카토블레파스의 고기를 먹은 마동혁과 조광철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허겁지겁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 선정이 조용히 건우에게 다가왔다.
“……오빠.”
“왜?”
우물쭈물하던 선정은 아로마 향초를 빼꼼 내밀었다.
“진짜 조촐해서 죄송해요.”
“아니. 뭐 다른 사람이 너무 부담되게 가지고 온 거지. 이 정도가 딱 좋아.”
건우가 씨익 웃자, 선정도 살포시 웃었다.
그때 언제 온 건지 서유라가 작은 선인장을 내밀었다.
“오빠.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선물이에요.”
“어? 어. 고마워.”
갑작스런 선물에 건우가 얼떨떨해하는 찰나.
찌릿!
안면도 트지 않는 두 여인은 서로 싱긋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한데, 그 분위기가 묘하게 불편했다.
‘터, 텁텁해.’
건우는 조용히 둘 사이를 벗어나 지혜에게 다가갔다.
“지, 지혜야.”
“오빠가 알아서 해. 난 이제 몰라.”
지혜는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있었다.
***
집들이가 마무리되는 찰나.
건우는 야간 테라스에서 마동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사님, 혹시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자꾸 이사님이라고 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오해하잖아요.”
“뭐 어떻습니까? 명예이사일 뿐인데.”
건우는 마동혁의 고집을 꺾는 걸 포기했다.
“후우, 그래서 어떤 소식입니까?”
“최근 들어서 게이트 등급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흐음.”
“실제로 저도 감당하지 못하는 던전이 출몰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확실히 세피아와 케이론도 S급 한 명이 감당하기는 어려운 레벨이었다.
물론 위험 난이도로 둘을 비교하면 세피아 쪽이 압도적으로 위험했다.
“그래서 협회에서 급하게 탑으로 파견을 간 인원을 불러들일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1위랑 3위요?”
마동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에서 내로라고 내놓은 헌터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탑을 등반하고 있다.
탑에 도전한 인원만 숫자로 따지면 1억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 중에서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등반에 실패한 대다수는 탑의 구성원으로서 정착해 살아간다고 한다.
그만큼 탑은 미지의 세계였다.
간혹가다 이곳에 넘어온 드워프나 엘프를 통해서 구설수를 전해 들을 뿐이다.
한국의 헌터들 중에서는 탑 등반했던 멤버들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살아남은 것은 소수.
그중 랭킹 1위와 3위만이 간간이 연락이 닿을 뿐이었다.
마동혁은 속이 답답했는지 담배를 물며 말했다.
“솔직히 그 얼음마녀보다 더한 보스를 만나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동혁은 미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6성 이상은 S급으로 구성된 파티가 잡아야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소 여건이다.
6성 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몬스터를 만나면 S급 파티가 전멸할 수도 있다.
건우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현생에서 그는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부모님을 잃었다.
그때는 어렸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전생 시절은 절망 그 자체였다.
재앙을 만날 때마다 하루, 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남아 있는 감정은 절규와 아픔뿐이었다. 그때에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기분 참 더럽고 좆같았지.’
홀로 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동료를 잃은 슬픔.
살아남아야 할 각오.
그 기분은 결코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야죠.”
마동혁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뭔가 이사님은 가끔 저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요.”
전생 시절, 건우의 나이도 25살에 불과했다.
이런 점만 따지고 보면, 사람은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 참. 이사님을 보니 벌벌 떤 게 참 창피합니다.”
마동혁이 입 끄나풀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쇄액!
건우는 번개같이 그의 담배를 낚아챘다.
“여기는 새집이라서 담배 피우는 건 금지입니다.”
마동혁은 이마를 찡그렸다.
“이사님. 이제 보니 야박한 면이 있군요.”
“새집인데 야박하면 어떻습니까?”
서로 멍하니 쳐다보던 그들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하.”
***
헌터협회.
정보를 요청한지 사흘이 지나 건우는 다시 이곳에 발을 내디뎠다.
오늘은 모처럼 춘삼과 함께 왔다.
“형님, 요즘 바쁘네요.”
“뭐 그렇지. 방치하면 안 될 일이 꼭 있거든.”
건우는 안내 데스크로 향하며 춘삼에게 말했다.
“사고 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
“에이, 제가 애도 아니고.”
“너 자꾸 까불다가는 애들 붙여 둔다.”
애들은 물론 층계 보스들이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꾸벅.
춘삼은 허릴 숙인 뒤,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후우, 크레이지 처키 3인방이 없으니 홀가분하구먼.”
요 며칠 보스들한테 제대로 시달린 그는 모처럼 평화를 만끽했다.
그러다가 춘삼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가만 내가 협회에 왜 안 오려고 했더라.’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곰곰이 고심한 끝에 춘삼은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 괴력녀한테 제대로 뒤통수쳤었지. 사과하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대신 계좌에다 이자까지 넣어 뒀으니, 뭐 괜찮겠지.’
콰앙!
바로 그때, 그의 옆에 있던 의자가 발길질에 박살 나며 나가떨어졌다.
그의 앞에서 쇼트컷의 여인이 활짝 웃으며 춘삼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머, 로베르토 씨. 어떻게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삐질.
춘삼의 얼굴에 땀이 한가득 배어 나왔다.
파르르르르
그리고 동공을 잃은 흰자위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S급 헌터, 권정아.
웃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살기가 이글이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5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