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모처럼 산 자가용이 선우유정의 만행에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 때문에 건우는 춘삼과 함께 협회 차를 얻어 타고 귀갓길에 오르고 있었다.
“그 자식 때문에 이게 뭐 하는 거야?”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에 세이비어가 답해왔다.
-걱정 마라. 그래도 네가 이겼다.
“무슨 말이에요?”
-그놈 차가 훨씬 비싸거든. 크허허허허허
“아. 그래요. 깨소금 맛이다.”
건우는 쿡쿡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어차피 먼저 도발한 건, 선우유정이니 마음에 걸릴 것도 없었다.
‘왜 혼자 웃고 있지?’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서진은 백미러로 건우의 모습을 살폈다.
시선이 향한 곳은 붕대를 감고 있는 건우의 오른손이었다.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이 정도는 내일이면 나을 거예요.”
“역시 회복력이 빠르시군요.”
“뭐, 그렇죠. 근데,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건우의 질문에 이서진은 곤란한 웃음을 내비췄다.
“협회장님이 상당히 재촉하셔서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상당히 중대한 사안이니까요.”
춘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하긴 S급들이 다투면 지형이 변모될 정도니까요.”
이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잠시 근거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겠습니다.”
“?”
뜬금없는 화제전환에 건우뿐만 아니라 춘삼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서진은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선우유정은 자신이 꾸리고 있는 특별한 팀이 있습니다. 킬더스크라고 하죠.”
춘삼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어라? 아크 길드 1군은 플래쉬가 있지 않나요? 형님도 아시지…….”
건우는 대답 대신,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의도를 파악한 춘삼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서진이 이야기를 마저 했다.
“구성원은 B급과 A급으로 훌륭하게 밸런스가 잘 맞춰졌습니다만, 사냥이 아닌 암살에 특화돼 있습니다.”
건우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뭔가 레이드를 위한 팀 같지가 않네요.”
“실제 있는 팀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렵습니다만, 최근 조사를 하다가 저희 직원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증거는 물론 찾을 수 없었고요.”
일순간, 이서진의 눈빛에 살기와 비슷한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그는 가까스로 감정을 억제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소행으로 죽은 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충 아크 길드에 대항한 사람들일까요?”
“그렇습니다.”
“오! 완전 닭살! 전 이 얘기 못 들은 겁니다.”
춘삼은 팔을 비비며 으스스 몸을 떨었다.
“…….”
두 사람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춘삼을 흘깃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한 건우는 차에서 내렸다.
이서진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건우에게 신신당부했다.
“제 이야기에 근거는 없습니다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취지로 들어주셨으면 싶었습니다.”
“저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요.”
“만약 킬더스크가 어쩌다가 우연히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
이서진은 눈을 부릅떴다.
많은 의미가 내포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사라져도 되는 것들이니까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건우는 싱긋 웃었다.
“그렇군요.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갈 길이 급했는지 이서진은 곧장 저 너머로 사라졌다.
건우는 그 자리에 머무르며 잠시 깊은 고심에 잠겼다.
그런 그에게 세이비어가 말을 걸어왔다.
-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 녀석을 이기는 건 어려울 게다.
그가 언급한 대상은 물론 선우유정이었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그와의 만남은 사실 위험했다.
마력이 위태위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어 웨이브만 사용했는데 완전 고갈이 났다.
복원을 이용해 손을 치료하지 못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건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럼 뭘 고민하는 게냐?
“제가 그동안 너무 무신경했어요.”
-그 사기꾼 자식이 다칠 뻔한 것 말하는 거냐?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키기 위해서 강해지려는 건데, 정작 중요한 걸 보지 못 했어요.”
-딱히 네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그놈들이 이상한 거지.
“그래서 저도 방비책을 세우려고 합니다.”
-어떻게?
“힘들겠지만 방법이 있죠.”
건우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같은 시각.
이그너스 영지의 강 층계 보스들은 으스스 몸을 떨었다.
***
시간은 새벽 2시.
자신의 던전으로 넘어온 건우는 가장 먼저 서재에 들렸다.
이그너스는 한 때, 대륙제일의 마도사 가문이라고 불렸다.
그 때문에 연구와 비전마법을 계발하기 위해 자료로 모아둔 서적이 매우 많았다.
건우가 이곳에서 찾고 있는 건, 특이한 스킬북이었다.
스킬북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는 것은 세이비어였다.
-거기서 그 빛바랜 주홍색 책이다.
건우는 책장에서 주홍색 책을 꺼내 먼지를 털고 제목을 살폈다.
<마리오네트>
-등급: 레전드
-설명: 괴짜로 소문난 드래곤 로드, 아로간트가 남긴 유산. 아로간트는 폴리모프를 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의사 사념체, 인형(Dull)을 통해 인간사를 샅샅이 살피고는 했다.
-내구도 100/100
*4서클 이상 마력을 가진 존재만 사용 가능.
*인형으로 활동하는 동안, 본체는 수면에 빠진다.
*인형으로 활동하는 동안, 힘의 제약을 받는다.
*인형이 훼손당했을 시, 본체 소환이 가능하다.
스킬북을 살펴본 세이비어는 오랜만에 추억에 잠겨 있었다.
-그립구먼. 아로간트 녀석. 생일 선물로 이걸 줬을 때, 꺼지라고 다시 던졌었는데.
“드래곤 로드랑 친구라니.......조상님들 스케일이 상상이 안 되네요.”
건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웃고 말았다.
드래곤.
아직 현 세계에 드러나지 않는 초월종족.
전생시절에는 중간계의 수호자로 그 명성은 어마어마했다.
아마 지금 모습을 드러내면 최소 6등급일 거다.
-어쨌든 후손에게 도움이 되니 나한테 좋은 거지. 근데, 너 진심으로 할 생각이냐?
“그럼요.”
건우는 비장한 표정으로 스킬북을 꼭 손에 쥐었다.
잠시 후.
탁!
건우는 마리오네트 스킬북을 바닥에 던졌다.
그 앞에는 충직한 세 마리의 층계보스가 건우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익혀.”
........
대답은 할 수 없지만 반응은 제각각 재미있었다.
바포메트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멍하니 스킬북을 쳐다봤다.
세피아는 표정을 구기며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다.
케이론은 벌써부터 스킬북을 펼쳐 스킬을 익히기 시작했다.
건우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두 명을 쏘아보며 말했다.
“익히라고.”
........
주인의 말인데, 어찌 반항하랴.
두 보스는 고개를 숙이며 굴복했다.
위엄과 공포로 격이 갖춰진 존재들한테 스킬을 익히게 하다니.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에 세이비어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흐 건우야. 네 모습을 보니 어째 억지로 자식들한테 공부시키는 진상 엄마 같다.
건우는 귀 끝을 붉히며 말했다.
“......이번에는 무슨 드라마 본 겁니까?”
-크흐흐흐 있어. 하늘 높다란 성벽이라고.
“.......슬슬 티비 유선을 끊을 때가 됐죠.”
-그렇게 되면 넌 나랑 전쟁이다.
세이비어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후우.”
조금이지만 건우는 진상 엄마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집으로 복귀한지 사흘이 지났다.
“후우, 후우.”
건우는 민소매 셔츠를 입고 팔굽혀 펴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성장해서 그런 걸까?
1시간동안 근력은 겨우 1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 행위는 수련이 아니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슬슬 끝났겠지.”
건우는 눈을 감아 심상에서 구현된 던전을 살폈다.
씨익!
결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건우는 즉각 이그너스의 반지를 발동했다.
[게이트를 형성합니다.]
우웅.
게이트의 크기는 사람 키 반도 되지 않았다.
스스스스.
그 너머로 아기자기한 것들이 넘어왔다.
그들은 모두 보스들의 의사 사념체인 인형(Doll)이었다.
크기는 30cm.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평소에 보였던 위엄과 격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먼저, 바포메트는 순진무구하게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평소 쥐고 있던 낫이 없어서 불편한 것 같았다.
홱!
그 옆으로 세피아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도도했던 자신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불만이 많은 듯 보였다.
이렇게 보니, 정말 세피아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척!
반면 케이론은 제일 의젓한 모습으로 건우에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기사도의 모범이었다.
그래도 아장아장한 게 조금 웃기긴 했다.
‘그래도 웃으면 기분 나빠하겠지.’
건우는 티가 날까 싶어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너희에게는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임무를 내릴 거야.”
척!
근엄한 목소리에 깃든 간절함을 느낀 건지, 보스들이 예를 갖췄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 뭐냐면.......”
덜컹.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오빠 밥 먹........”
문을 연 당사자, 지혜는 그대로 표정이 얼어붙었다.
앞에 펼쳐진 풍경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건우.
그 앞으로 절도 있게 예를 갖춘 인형들.
‘오, 오빠가 인형놀이를 좋아하는구나.’
그래도 하나뿐인 오빠의 취향이니 존중해줘야 되겠지.
그녀는 혼란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 다 놀고 처, 천천히 내려와.”
끼익, 탁!
문이 닫혔다.
그 뒤로 약 5초 동안 건우는 생각했다.
‘......왜 저러지?’
그러다 곧 상황파악이 됐는지 얼굴이 대경실색했다.
“지혜야! 잠깐만! 오해야!”
건우는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쫓았다.
타다다다닷!
지혜는 더욱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왜 도망가는데?!”
***
여차저차해서 사정을 설명하니 지혜와 오해는 풀렸다.
“그래서 이게 오빠가 만든 아티팩트라는 거지.”
“바, 바로 그렇지.”
보스들은 자신이 계발한 인형이라고 설명했다.
지혜는 별달리 건우를 의심하지 않았다.
건우는 고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일단 시제품으로 만든 건데, 너도 하나 가지고 다녀.”
지혜는 눈을 반짝였다.
“진짜? 그래도 돼?”
반면, 보스들은 썩은 동태눈깔로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우는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날 원망하지 마라. 믿을 건 너희들밖에 없어서 그랬어.’
보스들이 마리오네트를 하게 된 것은 바로 건우 주변의 인물을 지키기 위해서다.
“응. 대신 내가 만들었다고 아직 말하면 안 돼.”
“그러지. 뭐”
보스들은 일제히 지혜의 시선을 피했다.
“호호 부끄럼 많이 타나보네.”
고심하던 지혜는 결국 세피아의 볼을 꼭 눌렀다.
“얘로 할래.”
홱!
세피아는 거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혔다.
지혜는 눈을 반짝이며 세피아를 껴안았다.
“꺄악! 얘 완전 귀엽다. 새침해서 완전 귀여워.”
허둥지둥.
세피아가 지혜 품에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찌릿!
건우가 으름장을 주니, 얌전히 포기했다.
덜컹!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춘삼이 들어왔다.
“형님. 저 왔습니다.”
“응? 왔냐? 선택해라. 하나는 꼭 데리고 다녀야 한다.”
건우는 남은 인형 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춘삼은 인상을 홱 찌푸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바포메트를 가리키며 답했다.
“제가 애입니까? 그리고 누가 이런 못 생긴걸 데리고 다녀요.”
빠직!
화를 자극한 걸까?
마침 손이 허전했던 바포메트는 춘삼의 검지를 꽈악 붙들었다.
“끄아아아악! 아파, 아파! 자, 잠깐 항복! 항복!”
춘삼은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굴며 바포메트에게 빌어야 했다.
불안한 그 모습에 건우는 한숨을 쉬며 케이론에게 말했다.
“넌 그냥 같이 붙어 다녀라.”
척!
케이론은 예를 갖추는 것으로 답을 대신 했다.
52.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