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야단났네.”
스마트폰을 살피던 춘삼이 머리를 긁적였다.
화면 안에는 희귀한 아티팩트를 싼값에 구매할 수 있냐는 질문이 빗발치고 있었다.
내용만 대략 1200여건.
더 이상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사태까지 치달았다.
“에잇! 몰라. 이 양반 힘들어 죽겠는데, 언제 오는 거야?”
춘삼은 구시렁거리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쯤 되면 튈 때가 되지 않았나?
솔직히 건우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어마어마했다.
그동안 골머리 아팠던 사채도 전부 탕감한 데다 남는 돈도 꽤 됐다.
더 이상 미련이 있을 이유가 없다.
‘가만, 내가 이런 식으로 찬밥 대우받을 이유도 없지.’
이렇게 생각하니, 춘삼은 슬며시 화가 났다.
틈만 나면 사기 치는 거 아니냐며 의심을 하지 않나.
자기 여동생이랑 이야기하면 죽일 놈 취급을 한다.
주변에는 항상 자신을 로베르토라고 소개하는데, 굳이 춘삼이라고 부르며 훼방을 놓기까지 했다.
“그냥 확 튀어 버릴까 보다.”
말하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왔다.
「춘삼아. 뭐 하냐? 시간되 면 밥 한 끼 하자.」
건우에게 온 메시지임을 알고 춘삼이 다시 중얼거렸다.
“하, 내가 자기 똥개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게.”
춘삼은 즉각 수신했다.
「넵! 어디입니까? 하이스피드로 달려가겠습니다.~♥」
“내가 특별히 봐줬다.”
그는 피식 웃으며 엑셀을 밟았다.
***
“넉살 좋은 건 네가 세계 최강이다. 춘삼아.”
춘삼에게 온 문자를 확인한 건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현재, 그는 공원 벤치에 몸을 기대 쉬고 있었다.
약 나흘에 거친 게이트 공략이 끝난 참이었다.
삐리리.
그리고 그런 건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냈는가?
노년의 중후한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단지 귀를 기울였을 뿐인데도 절로 긴장이 되었다.
“오랜만입니다. 협회장님.”
[허허, 잘 지냈는가?]
“무슨 일로 연락주신 겁니까?”
건우는 벤치에 몸을 일으키며 슬슬 약속장소로 향했다.
[허허허, 자네가 너무 화려하게 일한 터라 불만이 폭주하고 있거든.]
“……그렇습니까.”
자신이 게이트를 독점하고 있는 문제로 곤혹에 처했다는 것을 건우는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그거라면, 이제 끝났습니다. 저도 계속 물고 있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뭐 그건 큰 문제가 안 되네.]
“그럼 어째서 그 이야기를…….”
[단지 좀 골치 아픈 녀석이 자네를 찾아갈 것 같아서 미리 연락을 줬다네.]
“그게 누구입니까?”
[선우유정이라네. 자네도 잘 알지.]
“찾아온답니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자네는 그들과 엮인 게 좀 많지 않나.]
“악연 중의 악연이죠.”
어째 헌터 세계에 발을 들이면 들일수록 그들과 엮이는 것 같다.
‘춘삼이 저기 있네. 근데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눈앞에서는 낯익은 사내가 춘삼에게 윽박을 지르고 있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거칠던지 건우에게까지 와 닿았다.
곧장 건우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선우유정!’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어쩌면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찾아오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춘삼에게 위협을 가할 것 같았다.
건우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문을 열었다.
“협회장님.”
[응?]
“아무래도 너무 늦으신 것 같습니다. 그 꼴통 벌써 만났거든요.”
[…….]
수화기 너머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인지 침묵이 감돌았다.
***
한산한 밤.
공원 주차장, 가로등 불빛 아래.
“여긴가.”
차에서 내린 춘삼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건우를 찾았다.
“아직 도착 안 한 것 같으니까, 차에서 기다리자.”
다시 차에 탑승하려는 순간.
부와아아아아앙! 끼이이익!
“깜짝이야!”
그의 앞으로 느닷없이 람보르기니가 섰다.
‘누가 이렇게 위험하게 운전해!’
어이가 없어 화를 내려는 순간.
람보르기니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하와이안 셔츠에 긴 청바지, 그리고 다소 낯익은 외모.
분명 매스컴에 많이 알려진 얼굴이었다.
그 이목구비를 기억해낸 춘삼이 눈을 부릅떴다.
‘서, 선우유정?! 저 망나니가! 왜?’
춘삼은 고인 침을 목구멍으로 꼴깍 넘겼다.
대뜸 춘삼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호오, 의외로 잘생긴 외국인이네. 너냐? 지난번에 나한테 시비를 턴 게?”
‘시, 시비라니! 내가 언제?!’
이럴 때는 모르는 척 하는 게 상책이다.
춘삼은 평소처럼 외국인인척 영어로 말했다.
“와, 왓?”
그러자 선우유정이 씨익 웃으며 영어로 답했다.
“영어로 말하는 게 더 편하나보구나.”
‘크윽!’
춘삼은 급히 국적을 변경했다.
“보, 봉쥬르. 무, 무슨 일이에효?”
선우유정이 인상을 왈칵 찌푸렸다.
“프랑스 사람이야? 한국말 할 줄 알지?”
“초, 초큼 할 줄 압니다.”
“너 지난번에 잘도 내 차 날려버렸고 튄 놈 맞지?”
아. 저 람보르기니를 보니 이제야 기억이 났다.
지난번 난폭한 도로주행하던 걸 건우가 날려버렸던 차였다.
‘똥 밟았다.’
얼굴에 삐질 땀을 흘리던 춘삼이 궁극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자, 잘 못 들었습니톼.”
“……내 차 왜 날렸냐고?”
“자, 잘 못 들었습니톼.”
빠직!
선우유정의 얼굴에 핏대가 돋기 시작했다.
“내 차 왜 날렸냐고 물었다.”
“자, 잘 못 들었습니톼.”
“이 새끼가! 지금 장난치나!”
선우유정은 세 번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콰앙!
그는 춘삼의 차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우지끈.
철판은 단숨에 찌그러졌고 앞 범퍼는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충격은 그것으로 아니었다.
춘삼의 차는 어떤 힘에 의해 풍선처럼 팽창하며 찌그러지더니…….
우지끈! 콰아앙!
단숨에 폭발하며 폭연이 피어올랐다.
쇼크웨이브.
강력한 충격파가 단숨에 차를 폭파시킨 것이다.
“…….”
춘삼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꼿꼿이 서고 싶은데, 다리가 덜덜 떨렸다.
선우유정은 이를 갈며 춘삼을 노려봤다.
“이번에도 못 알아들으면, 넌 뒤진다. 내 차 네가 날렸냐?”
“…….”
자신이 아니라 건우라고 대답하면 되는 걸까?
진지하게 고심 중이던 춘삼이 곧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경험 상 이런 부류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성격대로 나가는 막무가내다.
무엇보다 사기도 통하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그는 반쯤 넋 놓아버리고는 말했다.
“무슨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
제대로 된 한국말에 선우유정은 눈을 부릅떴다.
빠직!
그러다 이내 선우유정의 얼굴에 핏대가 잔뜩 솟구쳤다.
“이 새끼가!!! 날 가지고 놀아!”
춘삼의 멱살을 쥔 그는 단숨에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춘삼은 질끈 눈을 감았다.
바로 그 순간, 두 사람 사이로 한 사람의 손이 난입했다.
선우유정의 주먹은 그대로 진로가 막혔다.
후웅!
공기를 부수는 권압이 춘삼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뭐, 뭐지?’
춘삼은 빼꼼 눈을 떴다.
“혀, 형님.”
그러자 바로 옆에서 건우가 선우유정의 손목을 붙들고 있었다.
꽈아아아악!
건우는 선우유정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듯이 쥐었다.
선우유정 역시 건우를 알아봤다.
“호오! 보고 싶은 낯짝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되네.”
건우는 서슬 퍼런 눈으로 말했다.
“넌 어딜 가나 보기 싫은 낯짝이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선우유정 아니야? 선우진 그 똘마니 형. 너희 가족 티비에 많이 나오잖아. 요즘은 네 동생 감방 갔다는 소식까지는 들었어.”
“남의 가족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 그리고 존댓말 해. 이 새꺄! 내 동생이랑 같은 나이라며!”
파지지직!
선우유정은 전신에서 쇼크웨이브를 발산했다.
건우는 그제야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
저릿저릿!
손목의 통증에 선우유정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완력은 나랑 비등하거나 높겠군.’
“실력행사라도 해보겠다. 이거냐?”
쿠구구구구구.
선우유정의 전신에 마력이 집속되며 일렁거렸다.
쿠구구구.
단지 기세를 드러낸 것뿐인데, 대기가 잔잔히 떨려왔다.
‘과, 과연 S급이네.’
가만히 지켜보던 춘삼은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건우는 선우유정처럼 마력을 발산하지 않았다.
‘응?’
선우유정은 뒤늦게 건우의 오른손을 살필 수 있었다.
쇼크웨이브로 인해 건우의 손아귀가 약간이지만 찢어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문이 드는 광경이었다.
‘그리 강하게 낸 것도 아니고, S급이면 마력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 건우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다.
“뭐해? 안 덤벼?”
‘허세인가.’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선우유정은 기운을 누그러뜨린 뒤, 말했다.
“지난번에 내 차 날려버린 건 네놈이지. 그것뿐만 아니라 요즘 게이트 독점을 하는 것도 네놈이고. 어째 우리는 참 좋지 않은 일로 많이 엮인단 말이지.”
“그래서 그것 때문에 내 차 날려버린 거냐?”
건우의 말에 선우유정은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했다.
“차 값은 아크 길드에 가서 청구해. 그리고 요즘 너의 건방진 행보들도 가슴에 묻어주지.”
건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묻지 마. 네가 난폭운전해서 정신 차리라고 한 거니까.”
“사소한 건 집어치워. 남자 배포가 그렇게 좁아서 쓰겠어. 그보다 나하고 거래하지 않을래?”
“거래? 무슨 거래?”
“네가 S급이 된 비결. 분명 아티팩트나 스킬 쪽이랑 관련 있겠지. 가르쳐줘. 대가는 합당하게 치러주지. 내 동생이 아주 간절해서 말이야.”
건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대체 어떻게 이 일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이렇게 비상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걸까?
“한마디만 해도 되냐?”
“얼마든지.”
건우는 즉각 손아귀를 선우유정의 람보르기니로 향했다.
[에어 웨이브를 시전했습니다.]
후우우웅! 콰아아앙!
거대한 풍파와 함께 람보르기니가 연거푸 구르며 박살나버렸다.
쩌적!
가까이서 이 장면을 지켜본 춘삼은 충격과 공포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쿠구구구.
건우는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너희랑 얘기할 거 없으니까 꺼져.”
선우유정은 분노 어린 시선으로 건우를 노려봤다.
“죽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거냐?”
쿠직! 콰앙!
선우유정은 지반을 부수며 단숨에 발을 박찼다.
바로 그 순간.
“거기까지입니다!!!”
“어 이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어느새 다가온 건지 협회 직원들이 건우와 선우유정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충돌 직전에 벌어진 위급한 상황.
무표정이지만 그들은 땀을 삐질 흘리고 있었다.
협회 직원 이서진이 신속히 건우와 선우유정 사이에 서서 중재했다.
“이렇게 소동을 벌이시면 곤란합니다. 두 분 다 흥분을 가라앉혀주십시오.”
“꺼져. 난 많이 참아줬어. 죽일 거야. 저 새끼.”
건우는 한껏 비아냥거렸다.
“참아주는 건 네가 아니라 네 주변 사람이겠지. 멍청아.”
“계속 까불어봐. 새꺄.”
다시 다툴 기미가 보이자, 이서진이 소리쳤다.
“그만해주십시오. 최건우 헌터님. 계속 도발을 가했다가는 페널티가 부과될 겁니다.”
뒤이어 그는 선우유정에게 말했다.
“……아크 길드는 뭐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치잇!”
선우유정은 혀를 차며 건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건우의 손아귀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약해. 반쯤 죽이든 시체로 가져가든 그 녀석이라면, 저 힘의 경위를 알아봐 줄 수 있겠지.’
그래.
차라리 이게 더 쉬운 방법이었어.
생각이 정리되자, 선우유정은 입꼬리를 비틀며 건우에게 말했다.
“야, 조만간 화끈하게 놀아줄게. 기대해.”
건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형제들이 쌍으로 지랄한다.”
51.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