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전생시절, 건우는 많은 몬스터와 만났다.
고블린, 코볼트, 리자드맨 등
대부분 군집을 이루는 몬스터들이었다.
그중 가장 강한 저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크다.
녀석들은 끊임없는 번식력으로 틈만 나면 주변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장 무섭다고 생각한 몬스터는 바로 켄타우루스였다.
녀석들의 높은 지능과 전술 활용은 사람들의 공포를 사기 충분했다.
지금도 그때랑은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음가짐 정도였다.
“지금은 사냥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글라체스를 손에 쥔 건우는 그대로 스킬을 전개했다.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습니다.]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습니다.]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습니다.]
쏴아아아아아!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혹독한 안개가 숲을 뒤덮었다.
글라체스는 냉기 계통의 마법을 220퍼센트 증폭시켜 준다.
그 힘으로 인해 아이스 포그의 범위가 훨씬 증대됐다.
쩌저저저적!
안개에 맞닿은 켄타우루스들의 전신에 성에가 뒤덮었다.
다그닥!
당황한 녀석들은 재빨리 아이스 포그의 범위에 벗어나기 위해 발굽을 박찼다.
푸푸푸푸푹!
하지만 안전지대로 나오기가 무섭게 얼음송곳의 비가 쏟아졌다.
건우의 아이스 미사일이었다.
녀석들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괴멸했다.
반면, 안개 속을 거닐던 켄타우루스들은 눈에 비친 건우를 쫓으며 창을 내던졌다.
창끝은 정확하게 건우의 머리에 적중했다.
스윽.
아니 적중한 듯 보였지만 그대로 건우의 머리를 통과했다.
일루전 마법이었다.
푸욱!
투척한 창은 그대로 동료를 맞췄다.
푸욱!
그리고 투척한 켄타우루스의 가슴으로 글라체스가 날아와 꿰뚫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글라체스를 손에 쥔 건우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느낌은 좋은데, 역시 나한테는 검이 맞나보네.”
검에 애착을 가지는 건우가 얄미웠던 건지, 세이비어가 투덜거렸다.
-왜 이참에 아예 쌍절곤에도 도전해 보지.
“그건 아무리 봐도 자살행위인데요?”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숲에 드러난 거대한 신전을 쳐다봤다.
신전에서는 왠지 모를 우중충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에 보스가 있겠지.”
푸푸푸푹!
바로 그때, 신전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켄타우루스들이 건우에게 석궁을 갈겼다.
스팟!
건우는 즉각 블링크를 시전 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푸푸푹!
눈먼 화살은 그대로 건우 뒤에 있던 나무에 꽂혔다.
“너희들 상대는 얘네가 하는 게 낫겠네.”
건우는 한 마디를 남기며 이그너스의 반지에 마력을 주입했다.
[게이트가 형성됐습니다.]
숲 언저리에서 각각 두 개의 게이트가 형성됐다.
스스스스
게이트 너머로는 각 층계 던전 보스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흉흉한 기운을 뽐내며 나타난 염소 악마, 바포메트.
반면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창빙의 군주, 세피아.
쿠구구구구구
다그닥! 다그닥!
그들의 존재감에 켄타우루스들이 위화감을 느끼고 일제히 그들을 포위했다.
건우는 이 풍경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3성급이어도 격이 다른 건 느끼는 걸까나.’
잠시 고심하던 건우는 이내 두 보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몰살시켜버려.”
고오오오오오!
그 명령을 기쁘게 받아들인 바포메트는 정신없이 낫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순식간에 바포메트를 둘러싼 켄타우루스들의 몸통이 썰려 나갔다.
콰콰콰콰콰콰!
반면, 세피아는 주변으로 형성시킨 얼음 화살로 켄타우루스를 과녁 삼아 꿰뚫고 있었다.
화력만 따지면 건우를 능가할 정도다.
건우는 혀를 내둘렀다.
‘아이스 포그 때문에 위력이 증폭된 건가?’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두 부하의 활약으로 건우는 편하게 레벨 업을 했다.
건우는 시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한 30분 걸렸네.”
남은 켄타우루스는 고작 해야 열댓 마리에 불과했다.
앞으로 5분이면 보스몹을 제외하고는 전멸하리라.
한데, 어째서일까?
‘너무 쉬운데.’
건우는 기분이 너무나 뒤숭숭했다.
반짝!
바로 그때, 신전 건너편에서부터 흑색 빛이 반짝였다.
건우는 눈을 부릅떴다.
‘저건?!’
그 실체를 일찍 알아본 건우가 두 부하에게 소리쳤다.
“피해! 세피아! 바포메트!”
콰앙! 콰앙!
하지만 너무 늦었다.
흑색 빛의 실체는 바로 철로 이루어진 화살이었다.
고오오오오오!
바포메트는 쇄도해 온 화살에 정확히 가슴이 꿰뚫렸다.
콰앙!
세피아는 왼쪽 팔이 통째로 부서져 날아갔다.
“돌아가!”
여기서 두 보스를 잃을 수 없었던 건우는 그들을 던전으로 복귀시켰다.
번쩍!
그와 동시에 후속타가 건우를 향해 빗발쳤다.
“같은 취급을 하면 안 되지.”
[앱솔루트 실드를 시전했습니다.]
허공에 경계선이 그어지며 그대로 반투명한 막이 형성됐다.
콰콰콰콰콰쾅!
쩌걱.
앱솔루트 실드가 하마터면 반파될 뻔했다.
“이 정도면 제대로 오러가 실려 있는 공격이라는 건데.”
더 이상 화살이 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신전 안쪽에서 무언가 질풍처럼 달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실체를 가진 질풍은 단숨에 아이스 포그 안으로 진입했다.
쩌저저적!
몸 곳곳에 성에가 끼기는 했지만 움직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이윽고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크 나이트?”
건우는 눈을 부릅뜨며 의문을 표했다.
지금까지 사냥한 켄타우루스들은 나체에 야만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한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녀석들의 대장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검은 갑주와 투구를 걸친 켄타우루스.
거친 장발을 흩날린 녀석은 건우를 주시하고 있었다.
왼쪽 어깨에 메고 있는 거대한 철궁이 방금 습격을 가했던 무기리라.
건우는 눈을 부릅뜨며 그를 주시했다.
머리 위로 뜬 문구는 물론 새빨간 색이었다.
<타락한 창기병, 케이론>
-등급: ★★★★★
-설명: 슬리핑 포레스트의 최종보스. 오직 전장을 떠도는 힘을 추구하며 격에 맞는 상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능력치
체력: 9000/9000 공격력: 10007 방어력: 17050 마력: 5200
“압도적인 스펙이네.”
-자신 있느냐?
“뭐 똑같지 않겠어요?”
건우는 그대로 케이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빛의 눈을 번뜩인 케이론이 건우에게 사념을 전달했다.
-애송이 주제에 잘도 이런 짓을 저질러줬겠다.
그는 동포의 죽음에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말할 수 있어?”
의외의 사실에 건우는 눈을 크게 떴다.
의사가 있다면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건우는 눈매를 좁히며 케이론에게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너희들이 인간을 습격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사명이다. 거부할 수 없는 순리지.
“그건 너한테 자유의지는 없다는 뜻이야?”
-나는 약자 따위의 말에 더 어울려줄 생각은 없다만.
“아, 내가 약해 보였구나.”
기분이 나빠진 건우는 머리칼을 이마 뒤로 쓸어 넘겼다.
“뭐해? 어차피 대화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덤벼.”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
케이론은 활을 아공간에 집어넣고 랜스를 꺼내 들었다.
휘익!
건우 역시 글라체스를 들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콰앙!
두 존재 사이로 굉음이 퍼져 나갔다.
***
건우가 보스와 격전을 치르는 시각.
봉황 길드의 어린 문하생 중 한 명이 서일도에게 물었다.
현재, 서일도는 크루엘의 마검을 든 채,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경계를 하고 있었다.
“사부님.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
“건우 아저씨. 유라 누나한테 장가오는 거예요?”
“흐음. 잘 모르겠구나.”
서일도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질문 수준이 마치 ‘첫 키스는 언제였어요?’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서일도는 아이들이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유라만 좋다면 적극 추진해 봐야겠군.”
“그렇게 되면, 사부님한테 건우 아저씨가 비기를 전수받겠네요.”
어른이 물었다면,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을 거다.
서일도는 의외로 진심을 내뱉었다.
“글쎄 비기가 없어도 이미 충분히 강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네?”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긴장이 만연한 표정으로 숲을 살펴보고 있었다.
콰앙! 콰앙!
총을 격발하는 것 같은 굉음이 숲 전체로 울려 퍼졌다.
콰앙!
게다가 강력한 충격파가 멀찍이 떨어진 이곳까지 미미하게 전달됐다.
‘설마 벌써 보스랑 만난 건가?’
만약 사실이라면 최건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괴물이었다.
서일도의 손에는 어느새 땀이 흥건히 배어나오고 있었다.
“허허, 마동혁 대표가 했던 말이 과장이 아니었어.”
서일도는 너무 놀라 헛웃음을 터뜨렸다.
***
울창했던 숲.
그곳은 두 존재의 사투로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군데군데에 크레이터가 생긴 데다 아름드리 뻗은 거목은 부서져 있었다.
사투의 경로를 쭉 쫓으니, 거대한 신전까지 이르렀다.
쿠구구구
부서진 벽 틈새로 돌가루가 부스러지며 떨어졌다.
무너져 내린 신전 기둥에는 케이론이 깔려 있었다.
위엄이 풍겼던 그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탁월한 기동력을 자랑하던 말의 하반신, 네 다리는 얼어붙고 부서져 있었다.
게다가 몸은 무너진 신전에 깔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아, 피곤해.”
건우는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창을 지팡이 삼아 쉬고 있었다.
-……강하군.
적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었지만 건우는 피식 비웃었다.
“너를 이겼다고 강한 건 아니지. 자, 그럼 패배했으니 슬슬 알려 줄래? 너희는 여기서 무엇을 하려고 했지?”
-멸망에 대한…… 예……언을 저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하염없이.
케이론은 신전 제단에 있는 부스러진 비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역시 그런 거냐?”
케이론의 답변을 토대로 건우는 어느 정도 퍼즐을 꿰맞출 수 있었다.
탑이 전 세계에 흩뿌린 게이트.
등급과 난이도는 제각각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을 죽이도록 세팅돼 있다는 것이다.
정작 우스운 건, 신은 게이트와 보스들의 존재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라크네나 세피아가 움직였던 건, 그저 주어진 시스템에 순응한 것뿐이다.
건우는 케이론을 향해 딱한 시선을 던졌다.
“내참 어이가 없어서. 이제 보니 너희 불쌍한 존재들이었네.”
케이론은 건우에게 물었다.
-절망하지 않는 건가? 인간, 너희들은 언젠가 멸망한다.
건우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내가 막을 거야. 걱정하지 마.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해.”
푸욱!
그러고는 글라체스로 케이론의 가슴을 꿰뚫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슬리핑 포레스트를 공략했습니다.]
케이론의 눈빛은 서서히 꺼졌다.
그와 동시에 던전의 코어가 또르르 굴러 건우의 발치 닿았다.
우웅.
코어를 집어 든 건우의 손에 금빛의 마력이 집약되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슬리핑 포레스트 코어를 복원했습니다.]
[슬리핑 포레스트와 이그너스의 영지가 결합됩니다.]
[4계층 던전의 보스가 되었습니다.]
[던전 결합의 밸런스 조정으로 던전 보스, 케이론의 등급이 한 단계 다운됩니다.]
쿠구구구구
부서진 케이론은 완전 복구돼 건우의 앞에 섰다.
[케이론의 충성도 92퍼센트]
*주군에 대한 경외보다 강자에 대한 경의에 가깝지만 충성에는 변함이 없다.
“케이론.”
척!
호명을 하자 케이론은 말없이 절도 있게 예를 갖췄다.
등급이 떨어져서인지 몰라도 언어능력을 상실한 듯했다.
건우는 아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물어보고 죽이는 거였는데.”
-쯧쯧. 성급하기는 그나저나 저건 복구가 안 됐구나.
“네?”
그럴 리가?
신전까지 완전히 복원된 마당에 대체 뭐가 남았단 말인가.
건우는 의심 어린 표정으로 뒤를 살폈다.
제단 위에는 곳곳이 부스러진 비석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4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