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봉황 길드의 무도장.
그 넓은 도장에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꿀꺽.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누군가의 손안에는 긴장으로 땀이 흥건히 고이기까지 했다.
이 두 명은 이미 한국에서 최강자란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봉황 길드 대표, 서일도.
그는 국내 서열 4위로 한국의 소드마스터로 불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남자는 최건우.
그는 얼마 전에 S급을 취득한 신예 강자였다.
활동한지 얼마 안 됐다.
하나, 그는 얼마 전 화성에 생긴 게이트 공략을 단신으로 성공했다.
거기에 TV에 출현한 S급 10위, 마동혁이 자신은 근접할 수도 없는 강자라고 호언장담까지 했다.
그렇기에 기대가 됐다.
이 두 강자의 싸움이…….
게다가 이 둘의 구도가 재밌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우와, 완전 살벌해.”
“그러게. 점잖은 대표님이 저렇게 투지를 불태운 건 처음 보는데.”
“아가씨를 두고 한 판 벌이는 느낌이잖아.”
“헉! 완전 대박! 그럼 최건우 헌터가 봉황 길드 사위로 들어오는 거야?”
“크윽! 그럼 우리 길드가 국내 탑이겠네.”
“그나저나 아가씨. 최건우 헌터와 사귀고 있는 거야?”
대화의 화제는 대부분 서유라와 최건우의 관계에 대해서였다.
서일도와 최건우.
지금 저 둘의 모습은 마치 예비 사위가 장인어른에게 ‘따님을 주십시오!’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기도 했다.
“어쩐지 아가씨가 살갑다고 했지.”
무도장에 있던 여제자들의 머릿속으로는 로맨스를 펼치고 있었다.
찌릿!
그때, 서유라가 등을 돌려 그들을 노려봤다.
낯 뜨거운 대화에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돼 있는 상태였다.
홱!
문하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회피했다.
한편, 건우와 서일도는 대련 전 간단히 담화를 나눴다.
서일도가 먼저 말했다.
“검을 잡는 자세가 남다르군.”
“꽤 혹독하게 배웠거든요.”
건우는 목검을 만지작거리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서일도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마동혁 대표보다는 훨씬 강하네.’
세이비어 역시 서일도에게서 흘러나오는 느낌을 건우에게 전해 주었다.
-저 녀석, 기량이 니제르를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보통내기는 아닐 거다.
서일도가 입꼬리를 올렸다.
“기대가 되는군.”
그 웃음에는 사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오직 무인으로서의 호승심만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서일도의 기운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에 맞서 건우도 눈을 부릅떴다.
[초감각을 시전했습니다.]
타앗!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두 남자가 발을 박차 검을 부딪쳤다.
타아앙!
“……?!”
문하생들은 두 검이 빗어 낸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단지 한 합을 나눴을 뿐인데, 서일도와 건우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강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었다.
홱! 홱! 타앗!
두 사람의 신형이 무도장 주변을 휩쓸었다.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세, 세상에 대표님이랑 호각이라고!”
“말도 안 돼!”
빠르게 발을 움직이던 건우는 그동안 써왔던 니제르의 초식을 한껏 발휘했다.
생소한 초식에도 서일도는 당황하지 않고 응수했다.
니제르 삼식, 월광(Moon light).
빛줄기같이 내찔러 온 찌르기 공격을 서일도는 검 끝으로 맞섰다.
타닷!
검 끝에 불어넣은 마나로 인해 두 사람의 검 끝이 으스러졌다.
‘장난 아니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서일도가 기가 막히게 응수하자, 건우는 혀를 내둘렀다.
스팟!
게다가 그는 손목을 휘릭 돌려 단숨에 반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카카카캉!
건우는 검을 역수자로 쥐고 그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렇다면…….’
건우는 눈에 더욱 힘을 주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리와 허리를 비틀어 검신에 힘을 싣는 서일도.
그의 움직임을 건우는 초감각과 완전기억능력을 활용해 모방했다.
“뭐?!”
서일도의 눈빛에서 처음으로 당황이 흘러나왔다.
그 뒤로도 건우는 서일도의 공격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뻐꾸기 짓을 해 주는군.’
가문의 비기를 어처구니없이 강탈당하자, 그는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위험해?!’
적의가 가득한 공격에 건우는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붙들어 휘둘렀다.
니제르 오식, 우각.
상대의 힘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니제르의 비기.
타앙!
맞닥뜨린 두 검이 서로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지 상대방을 베어 들려고 했다.
“크윽!”
의도치 않게 힘겨루기를 하게 된 두 남자의 팔에 근육이 팽창했다.
그러다가…….
우지끈! 파앙!
목검이 마치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터지더니 파편과 함께 날아갔다.
“…….”
모두가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침묵을 지켰다.
서일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면 서로 무승부가 되겠군.”
“한 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우는 절도 있게 허리를 숙였다.
짝!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유라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뒤이어 문하생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
하늘은 옅은 남색으로 물들었다.
봉황 길드의 접객실.
둥근 식탁에는 고급 한정식 요리가 올라와 있었다.
“우와, 예쁘다.”
“크윽! 냄새가 죽입니다.”
같이 식사에 참여한 지혜와 춘삼이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서일도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간소하게 차린 거지만 맛있게 드셔 주었으면 하오.”
그가 먼저 한 술을 뜨기 무섭게 춘삼이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건우는 지혜의 밥공기 위에 떡갈비를 얹으며 말했다.
“꼭꼭 씹어 먹어라.”
“오빠도 참. 내가 애야?”
하지만 챙겨 주는 게 나쁘지 않은지 피식 웃었다.
“자, 자네도 한잔하지.”
“네!”
건우는 서일도가 건네는 술을 받은 뒤,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서로 한 잔씩 술을 비웠다.
서일도가 들뜬 표정으로 건우에게 물었다.
“구자혁 말대로 자네는 참 재미있는 청년이군.”
“협회장님이랑 친하신가 보네요?”
“나름 뜻이 맞는 친구기는 하지.”
건우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서일도에게 물었다.
“저 근데 유라는 밥 안 먹습니까?”
서일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오늘 대낮까지 크게 싸워서 나 보기를 불편해하는 걸세.”
“아.”
건우는 그제야 서유라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유라랑 약속을 먼저 해서요.”
서일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게.”
“뭐야? 오빠 벌써 가게?”
지혜가 서운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건우는 피식 웃었다.
“너무 많이 먹지 마. 이따가 야식도 먹어야지.”
“그러다 돼지 된다고.”
“넌 통통해도 귀여…….”
찌릿!
지혜가 원망스런 눈으로 쳐다보자, 건우는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입 다물겠다는 의미다.
드륵.
그러고는 문을 열어 밖으로 빠져나갔다.
***
아름드리 솟아오른 버드나무.
그중 가장 높다란 가지 위로 서유라가 볼을 뾰로통 부풀리며 앉아 있었다.
“칫! 나랑 밥 먹기로는 해 놓고.”
눈치 없이 가족까지 데려와서 식사를 하는 것은 뭐란 말인가?
하나, 눈치 없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 서일도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원망할 수만은 없었다.
현재, 서유라는 머릿속으로 서일도와 건우가 벌였던 대련을 여러 번 되뇌고 있었다.
노도와 같은 힘.
섬광처럼 얽히고설키는 검격.
대련이 끝났는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굉장히 아름다웠어.’
자신은 언제쯤이면 그런 검술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러기 전에 먼저 죽어 버리겠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서유라는.
화륵!
느닷없이 다가오는 등의 통증에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으윽!”
그리고 고통스러운 듯 몸을 끌어안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뜨겁다.
체내에 아무리 얼음을 쑤셔 박아도 이 뜨거운 통증은 식지 않을 것 같았다.
등 언저리에서는 봉황 문신이 은연히 빛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화조혼(火鳥魂)
그것은 각성자들이 유발되고 난 후, 서씨 가문에서 발현되는 특별한 가호였다.
가호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만 한정적으로 발현된다.
남들이 보면 그것은 축복이었다.
하지만 이 가호가 새겨진 서씨 가문의 사람들은 절망했다.
왜냐하면, 이 가호는 조금씩 생명을 갉아먹는 무시무시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 힘을 극복한 자는 다시금 잃었던 생명을 수복하고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상 단 한 명, 서일도 밖에 없었다.
낮에 벌였던 말다툼의 원인도 바로 이 화조혼 때문이었다.
서유라의 화조혼은 남들 것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지만 대가 역시 컸다.
그녀는 남들보다 배는 빠르게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
가문의 의사는 그녀의 수명을 30살 안팎으로 예측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기구한 운명을 지닌 그녀는 늘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또한 그 때문에 남들과 거리를 두었다.
괜히 목숨을 잃기 전에 아쉬운 것들을 남기기 싫어서…….
운명은 점차 그녀를 옥죄어 왔다.
그때 아크 길드에서 제안을 했다.
서유라를 살릴 방도가 있다고. 그리고 살리는 대가로 혼인을 요청했다.
딸을 잃기 싫었던 서일도로서는 당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서유라는 냉담하게 거부했다.
은밀히 오가는 선우진에 대한 평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꿰차고 있었다.
그녀는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죽기 싫어.”
“왜 죽기 싫어?”
“죽는 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발끈 소리치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올라온 건지, 눈앞에는 건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 오빠! 어, 어?”
진심으로 놀랐는지 서유라는 그녀답지 않게 균형을 잃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졌다.
타탓!
건우는 즉각 발을 박차 그녀를 품에 안은 뒤,
[역중력 마법을 시전했습니다.]
몸을 둥실 띄워 사뿐히 지면에 착지했다.
사락!
거칠게 부는 바람에 머리칼이 나부끼었다.
얼굴을 발그레 붉힌 서유라가 말을 더듬었다.
“어, 어떻게 소리도 없이 올라왔어요?”
“뭐 이것저것 요령이 좋거든.”
건우는 씨익 웃으며 그녀를 내려 주었다.
“……고, 고마워요.”
서유라는 쭈뼛쭈뼛 서 있다가 민망한지 머리칼을 고쳤다.
그러다가,
화륵!
다시금 발현된 화조혼의 고통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으으윽!”
“괜찮아?!”
건우는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등 언저리에서 붉게 발광하는 화조혼을 발견했다.
그는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이건. 신수의 인장이네.”
“오, 오빠 이게 뭔지 알아요?”
등을 보인 사실에 서유라는 얼굴을 화끈 붉히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비슷한 게 있거든.”
그는 고개를 돌려 목 언저리에 아른거리는 문양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일전에 시조룡 에르모스에게 받은 문장이었다.
그 문장이 화조혼과 비견될 정도로 대단한 것임을 인지한 서유라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는 여러모로 대단하네요. 전 이것 때문에 곧 죽을 운명이거든요.”
그녀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딱콩!
건우는 손을 모아 검지로 가볍게 그녀의 이마를 때렸다.
서유라가 드물게 쌍심지에 불을 켜며 화를 냈다.
“저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건우도 덩달아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뭘 그렇게 무서운 소리 하고 있어? 고치면 되는 문제잖아.”
“고칠 수 있다고요?”
예상치 못한 건우의 말에 서유라는 크게 당황했다.
42.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