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한가로운 오후.
집 거실에 머물러 있음에도 건우는 단련을 쉬지 않았다.
두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령을 쥐고 있었다.
소파에서 이를 보고 있던 춘삼이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형님도 참. S급이 7kg 아령으로 근력이 늘겠어요?”
“나도 지금 그걸 시험해 보고 있는 중이야.”
“……?”
춘삼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때.
건우는 아령에 스킬을 전개했다.
[중력마법을 시전했습니다.]
증대시킨 무게는 약 70kg.
들어 보니 그렇게 크게 무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건우는 점차 무게를 늘려 나갔다.
현재 무게 120kg.
[근력이 1 올랐습니다.]
파르르.
건우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이제야 제대로 힘을 받기 시작했다.
“어?”
건우의 팔 곳곳에 핏대가 도드라지자, 춘삼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건우에게 슬쩍 손을 내밀었다.
“형님 저도 그거 한 번 들어 봐도 되겠습니까?”
“무거울 텐데?”
“에이, 그깟 아령이 무겁다면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자.”
콰앙!
“끄아아악! 내 손!”
건우에게 아령을 받기 무섭게 춘삼은 아령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이, 이까짓 거. 끄으응!”
춘삼은 인정하기 어려운 건지 아령을 들기 위해 고군분투 애썼다.
하지만 아령은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
그 자리에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삑삑.
바로 그때, 도어락이 열리며 지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 왔어. 오빠. 춘삼 씨는 거기서 뭐해요?”
“크흠. 로베르토입니다.”
상당히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던 터라 춘삼은 얼굴을 화끈 붉혔다.
지혜는 피식 웃으며 건우에게 물었다.
“아, 오빠 냉장고에 혹시 초콜렛 먹었어?”
“그거? 손 안 댔는데 왜?”
지혜는 냉장고에서 초콜릿을 가져와 건우에게 건네줬다.
“자, 오빠 거니까 꼭 먹어야 돼.”
건우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박스를 열어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으음, 맛있네. 혹시 오빠 주려고 만든 거야?”
“아니. 선정이가 그때 도와줘서 고맙다고 오빠한테 보답으로 준 거야.”
“보통 정성이 아니네.”
건우는 맛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눈치 좀 채주면 안 될까?”
“뭐가?”
“아니야, 아무것도. 이건 뭐야?”
지혜는 식탁 위에 올라온 봉투를 집었고 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열어 봐.”
봉투를 열어 본 지혜가 휘둥그레 눈을 떴다.
“세상에. 여기 친구들이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던 한옥 리조트네. 게다가 VIP야!”
“협회장님한테 선물로 받았어. 친구들이랑 갔다 와.”
“오빠는 안 가?”
“바쁠 것 같아.”
지혜는 입을 샐쭉 내밀었다.
“…….”
급작스럽게 말이 없어진 그녀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박력이 넘치는 그 기세에 춘삼은 소파에 일어서서 건우에게 붙었다.
건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춘삼에게 물었다.
“……왜 저러는지 아냐?”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까?”
“응. 가끔 가다가 저러더라고.”
“그럴 때면 무조건 형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 인마?”
건우가 버럭 화를 내려는 순간,
삐리리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건우는 버튼을 눌러 통화에 응했다.
“여보세요.”
-……잘 지내셨어요?
건우는 목소리의 주인이 봉황 길드의 A급 헌터인 서유라라는 것을 인지했다.
“어, 유라구나. 미안. 너무 바빠서 같이 밥 먹기로 했는데.”
-기억해 주셨네요. 저는 새까맣게 잊어버리신 줄 알고.
목소리에서 슬그머니 분노가 차올랐다.
“미, 미안. 이번 주에 한 번 볼까?”
-요즘 스케줄이 많아서 볼 시간이 별로 없어요. 오빠가 직접 와주시는 게 더 빠를 것 같기도 하고요.
“음 봉황 길드가 어디였지?”
-양평 쪽에 있어요.
“양평이라면 내가 갈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
[[email protected]#@$]
바로 그때 지혜가 TV 음량을 대폭 키우기 시작했다.
“지, 지혜야. 오빠 전화통화중인데.”
때마침 티비 화면에서는 가족끼리 오붓하게 휴가를 즐기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email protected]#@$]
지혜는 볼륨을 더 키웠다.
“…….”
보다 못한 세이비어가 슬쩍 한 마디를 던졌다.
-너 이러는데도 이상한 말 하지 않을 거지?
다행히 그 정도까지 바보는 아니었다.
“야, 양평 갈게.”
“진짜?”
-진짜요?
지혜와 수화기 건너편의 서유라가 동시에 반문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건우는 땀을 뻘뻘 흘리다가 간신히 답했다.
“……무, 물론이지.”
***
건우의 방.
춘삼은 건우가 받아 온 리조트 숙박권을 보며 말했다.
“이야, 이거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대단하네요.”
“왜?”
“이 리조트 봉황 길드에서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중 VIP 숙박권은 국내에서 제일 비싸다고 소문났거든요.”
“양평이 그렇게 대단한 땅도 아닌데?”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응?”
춘삼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지형이 변모하는 바람에 몸에 좋은 유황 온천도 잘 샘솟거든요.”
‘온천이라.’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글 생각을 하니, 건우의 표정이 절로 풀어졌다.
“봉황 길드가 관광사업을 선택한 게 진짜 신의 한수였죠.”
“될 사람은 되는구먼.”
“……형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춘삼의 표정은 ‘재수 없어.’ 라는 느낌이 확 깃들어 있었다.
“왜 ‘나 한 대 맞고 싶어요?’ 라는 표정을 하고 있을까?”
춘삼은 급하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아까 낮에 느꼈던 건데, 사람들이 의외로 형님을 못 알아봐서요.”
건우는 지그시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역시 사기 친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눈치 엄청 빠르구나.”
“그냥 눈썰미가 좋다고 해 주십시오.”
“환각 계통의 아티팩트를 썼어. 인식저해 기능이 있거든.”
“인식저해요?”
“있어. 그런 게.”
자세히 가르쳐 주면, 또 저 얍삽한 머리를 어떻게 굴릴지 몰라 건우는 최대한 설명을 아끼며 귀걸이를 매만졌다.
현재 착용하고 있는 니제르의 귀걸이에는 인스파이어 마법으로 추출한 아티팩트 효과가 깃들어 있었다.
<두 얼굴의 여인>
-등급: 레어
-설명: 인식저해 마법이 깃들어 있는 가면.
-내구도: 12/12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지하지 않는 이상, 눈의 띄지 않는다.
*착용자의 신변을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는 인식저해가 풀린다.
“그나저나 봉황 길드 대표 딸인 서유라랑은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까?”
“유라는 이번 헌터 시험 때, 우연히 알게 된 사이야.”
춘삼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보았다.
“형님은 서유라한테 서슴없이 말하네요.”
“왜? 친하게 지내면 안 돼?”
“아니요. 그게 아니라 서유라는 차갑다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그냥 사람 대하는 게 굉장히 서투른 녀석이더라고. 친해지면 착하고 좋은 애야.”
“그, 그렇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정보랑 다르네요.”
“알고 있는 정보가 뭔데?”
“아카데미에서 서유라 별명이 겨울마녀였대요.”
“왜?”
“지나가기만 하면, 분위기가 싸늘하대요.”
“그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건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거대한 한옥 저택.
이곳은 조선 시대 때부터 조상의 얼과 혼이 함께 해 온 서씨 가문의 터전이었다.
현판에는 봉황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기도 했다.
이곳이 한국의 삼대 길드인 봉황 길드다.
대부분 길드는 서울로 진출했지만, 봉황 길드는 수십 년 동안 이 자리를 고집했다.
그 이유는 봉황 길드의 속성이 기업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무가였기 때문이다.
본국 검법부터 시작해 서씨 가문에 전통적으로 내려온 봉황검법까지.
유구한 세월.
그들은 그 역사와 전통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계승해 왔다.
그러다 각성자가 등장하니 무는 괄시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그 괄시당한 무가에서 지금까지 유례없는 각성자가 발현했기 때문이다.
S급 4위, 서일도.
바로 봉황 길드의 대표이자, 서유라의 아버지였다.
현재, 그는 무도장에서 서유라와 이야기를 나누는 참이었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열띠던지, 도장 근처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끝까지 고집을 부릴 참인 것이냐?”
“제 뜻은 변함없어요.”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단 말이다!”
서일도의 기합이 천장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차라리…….”
“약하게 태어났으면 그저 죽는 걸 지켜봐야 되는 거냐? 제발 이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주거라.”
꽈악!
서유라가 주먹을 쥐며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일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흥분부터 식히고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
서유라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도장을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던 서일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센 건지.”
터벅터벅.
그때 도장 문 사이에서 누군가 들어왔다.
“대표님. 너무 그렇게 나무라시면 안 됩니다. 유라도 힘들 텐데.”
이름은 김광식.
봉황 길드의 부대표로 서일도와는 죽마고우처럼 지내 온 의형제였다.
서일도가 강건한 기풍의 남자라면, 김광식은 웃음기가 많은 남자였다.
“후우.”
서일도는 많은 의미가 담긴 한숨을 내뱉었다.
두 부녀가 이렇게 대립하게 된 원인은 바로 서유라의 약혼문제였다.
상대방은 아크 길드의 차남, 선우진이었다.
물론 가문끼리 진행되는 혼담이기 때문에 서유라의 의사는 전혀 없었다.
시대가 어느 때에 정략혼인을 하겠냐마는, 모순되게도 서일도가 억지로 혼담을 진행하는 것은 모두 서유라를 위해서였다.
서일도는 이마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술이 마시고 싶군. 그 친구는 언제 온다고 하던가?”
김광식이 곤란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구자혁 협회장님께 VIP 숙박권은 보내드렸는데, 이번에는 바빠서 못 오시겠다고 합니다.”
“……아쉽군.”
“대신에 재미있는 사람을 보내겠다고 꼭 한 번 만나 달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서일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꿈틀거렸다.
***
여행을 가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연령층을 고려해도 답은 하나다.
찰칵!
바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지혜와 나란히 한옥 앞에서 사진을 찍은 건우는 슬슬 지친 참이었다.
“아주 잘 나왔네요. 지혜 씨.”
춘삼이 지혜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고마워요.”
스마트폰을 받은 지혜는 사진의 배경이 된 한옥을 보며 말했다.
“여기가 진짜 우리가 머물 리조트구나. 오빠 나 온천에 갔다 와도 돼?”
“그렇게 해. 나는 춘삼이랑 느긋하게 있다 씻으련다.”
“네? 형님 저도 씻고 싶…….”
건우는 이글이글 눈빛을 불태웠다.
짐승 새끼랑 여동생은 같이 둘 수 없다는 오빠의 눈빛이었다.
죽고 싶지 않던 춘삼은 고개를 수그렸다.
“줄곧 형님과 함께 씻고 싶었습니다.”
“어머.”
지혜는 얄궂게 웃으며 건우와 춘삼을 쳐다봤다.
뭘까? 저 기대된다는 표정은?
왠지 모르게 불쾌한 마음이 든 건우는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빨리 가. 요상한 상상하지 말고.”
“알았어.”
지혜는 곧바로 리조트 안으로 들어갔다.
건우와 춘삼은 산등성이에 위치한 가장 큰 한옥 쪽으로 향했다.
서유라와 약속한 장소가 바로 저곳이었기 때문이다.
똑똑!
거대한 한옥 문을 두들기자, 한복을 입고 있는 남성이 문을 열어 주었다.
“누구신지요? 여기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만.”
“여기 약속이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건우의 말에 봉황 길드의 사범은 눈매를 좁혔다.
그는 곰곰이 고심하다가 얼마 전에 문하생 모집을 했던 걸 떠올렸다.
‘모집 장소를 여기로 적었나 보군. 어수룩하게 일하기는.’
그는 건우가 귀걸이를 착용한 것과 춘삼의 금발을 보며 중얼거렸다.
“품행이 불량하군.”
“네?”
두 사람은 진심으로 당황했고 사범은 뒤늦게 말을 수정했다.
“크흠, 실례. 각오는 단단히 되셨습니까?”
“……그게 무슨?”
질문의 의도를 물으려고 할 때.
끼익!
사범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들어오시지요.”
40.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