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잠시 후.
리자드맨들을 모두 전멸시킨 건우의 손에는 마정석이 잔뜩 들려 있었다.
“S급까지는 갈 길이 아직 머네. 무기는 이게 전부인가?”
바로 뒤편에는 늪에서 건져온 무기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관리가 안 돼 있어 상태는 죄다 엉망진창이었다.
“이참에 무기상을 한 번 해볼까?”
건우는 무기를 모두 복원시킨 뒤, 아공간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때, 반지에서 세이비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손자야.
“네.”
-이 섬 가장 끝자락에서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그래요?”
먼 곳까지 신경을 집중했지만 건우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아직 내 역량이 부족하다는 거겠지.’
건우는 내심 실망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부족하다면 그 역량을 더 끌어내면 되는 것이다.
건우는 세이비어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이참에 내기할까요?”
-허허 좋다. 뭔데?
“제가 일주일 동안 여기서 몬스터를 2천 마리 이상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말이죠.”
-2천 마리는 너무 적어, 한 5천 마리면 생각해보지. 난 못 잡는 것에 걸지. 그리고 내가 이기면 앞으로 티비 시청을 방해하지 말거라.
건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소박하네요. 제가 이기면 티비는 하루에 한 시간씩만 시청하는 겁니다.”
세이비어도 웃음을 흘렸다.
곧 건우는 명도의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
크르르르르.
어두운 협곡.
세찬 빗줄기 속에서 맞이한 식사는 차디찬 몬스터들의 시체였다.
우드드득!
손아귀에는 리자드맨을 비롯한 몬스터들이 잔뜩 쥐어져 있었지만, 포식자는 만족하지 못했다.
크르르르르.
어둠 속에서 빛나는 4개의 눈동자는 다시 사냥감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배고프다.
아무리 먹어도 이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찍찍찍찍!
우글우글 모인 쥐떼들이 일제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물론 포식자는 쥐떼는 무시하고 지나갔다. 저것들로는 배가 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젠장! 몬스터들 더럽게 많이 깔려있네.”
“어떻게든 버티자고. 우리가 A급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B급 정도만 받으면 되니까.”
사냥감을 찾던 포식자는 귀를 쫑긋거리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살폈다.
타닥!
그곳에는 모닥불을 피우며 상처를 치료 중인 헌터들이 다수 모여 있었다.
숫자는 다섯.
포식자는 확실하게 그들을 먹잇감으로 식별했는지 군침을 흘렸다.
“자, 잠깐! 그런데 뒤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 나지 않아?”
“소리는 무슨 소리?”
한 남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등을 돌린 순간,
툭.
들고 있던 불쏘시개를 손에서 놓쳐버렸다.
동시에 포식자의 그림자가 헌터들을 덮었다.
“도망가!!”
리더의 경고에 너 나 할 것 없이 발을 박차는 걸 보며 포식자는 잇몸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섬 전체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소리에 자고 있던 새들이 놀라 푸드득 날개를 접었다 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
같은 시각.
메아리처럼 퍼지는 포효 소리에 강성민은 등골이 오싹했다.
“여기 엄청난 놈이 있는 것 같네.”
어쌔신의 감각이 발휘한 건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추측했다.
“뭘 새삼스럽게 쫄고 그래.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되지.”
사냥 중이었는지 그들의 주변으로는 고블린의 시체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강하민은 고블린을 산 채로 해체 중에 있었다.
끼에에에엑!
팔, 다리의 힘줄이 끊어진 고블린은 절규하며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강하민은 고블린의 머리통을 덥석 잡으며 바닥에 찍었다.
“어딜 도망가? 새꺄! 남의 뒤통수에 칼침 꽂으려고 했으면서.”
키이이이익!
전의를 상실한 고블린은 눈물을 흘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만약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여 달라고 애걸복걸할 것만 같았다.
물론 강하민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푸욱!
키에에에에에엑!
오히려 고블린의 등 뒤에서부터 견갑골까지를 칼로 찍어눌러버렸다.
고블린은 버둥대며 고통스러워했다.
“아,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강성민이 인상을 찡그리며 단검을 횡으로 휘저었다.
빗금이 서린 고블린의 목에서 피가 분사됐다.
“더럽게!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
고블린의 체액이 자신의 몸에 묻자 강하민이 버럭 화를 냈다.
“시끄럽고, 마정석 오늘까지 몇 개정도 모았어?”
“한 700개?”
“생각보다 힘든 일이네.”
형제의 계획은 원래 둘 중 하나에게 마정석을 몰아주어 S급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회에서 인정하는 S급의 기준은 절대로 만만치 않았다.
강하민이 피식 웃으며 강성민에게 말했다.
“방법이라면 많잖아, 형.”
“안 돼.”
“왜? 말해보기도 전에 잘라?”
강하민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녀석들 것을 뺏어가자는 거잖아. 아니야?”
“……맞아. 빼앗긴 녀석들도 그냥 죽여 버리면 끝나는 거 아니야.”
강하민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명도는 통신기기가 전부 먹통인데다 시험 중에 사망한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증거만 감추면 마정석을 갈취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성민은 아직까지 신중한 편이었다.
“옛날이라면 나도 그렇게 했겠지.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협회에 한 번 찍혔잖아. 만약 이번에도 걸리면 감방행이다. 알고 있지?”
“으윽! 그래도 이대로는 2000개는 절대로 못 모을 텐데. 그럼 선우진 그 싸이코 새끼가 뭐라고 할 테고.”
“푸훕, 싸이코가 싸이코한테 욕먹는 걸 무서워하네.”
강하민은 발끈했다.
“형도 싸이코에 포함되거든! 그럼 어떻게 해결할 건데?”
그러자 강성민은 고심한 끝에 입을 열었다.
“역시 뺏는 거지.”
“아까는 안 된다며?”
강하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서유라. 그 여자 걸 뺏으면 되지. 걘 뺏겨도 자존심 때문에 우리한테 뺏겼다고 말 못 할걸.”
“오오! 괜찮은데.”
강하민은 강성민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단 말이지.”
“뭔데?”
“그 짐꾼 새끼 살아있으려나. 그 녀석부터 해치우고 싶은데.”
씨익!
그 말에 강하민이 아까보다 더 교활하게 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 녀석부터 처치하고 싶어. 그 건방진 자식 혓바닥부터 도려내야겠는데.”
“그럼, 빨리 찾아보자. 그 새낀 F급이라서 중간에 몬스터한테 죽었을 지도 모르니까.”
“좋아.”
서로 의견이 일치된 두 형제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형. 근데 아까부터 크기가 형 만한 고블린이 쳐들어오네.”
“멍청아, 그건 너한테도 해당되거든.”
고블린의 사냥을 마친 브라더스는 자신들이 사냥감으로 선정한 건우를 찾기 위해 명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
명도의 헌터 시험 5일차.
서걱! 서걱!
서유라는 레이피어로 고블린 무리 사이를 휘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블린 킹의 목에 레이피어를 찔러 넣음으로써 전투를 마무리했다.
“이걸로 494개.”
레이피어를 회수한 서유라가 짙은 한숨을 쉬었다.
S급까지 무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간신히 A급 수준에 도달했다.
“역시 2000개는 무리였어.”
스륵.
바로 그때, 수풀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휘익!
그녀는 질풍처럼 발을 움직이며 레이피어를 뻗었다.
레이피어 끝에 맺힌 날카로운 마력이 두터운 나무를 꿰뚫고 나아갔다.
카앙!
요란한 격철 소리가 울려 퍼지며 허공에서 불똥이 튀겼다. 검 끝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방패였다.
방패의 주인인 조광철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 한 번은 확인해보시고 찌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미안.”
서유라는 경계심을 거두고 레이피어를 회수했다.
며칠 못 보던 사이 조광철의 몰골은 말이 아니게 변했다.
다 헤진 부츠, 곳곳이 깨져 균열이 간 갑옷, 그리고 이가 나간 대검 등, 고생의 흔적이 역력했다.
“사, 살아있어서 다행입니다.”
“보니까 이곳에서 벌어진 짓은 네가 한 장난은 아닌가 보네.”
“자, 장난이라니요?”
서유라는 손끝으로 호수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 저게 뭐야!!!!”
조광철은 눈앞에 펼쳐진 괴이한 풍경에 깜짝 놀랐다.
호수 건너편에는 갈색 오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부상은 다양했다.
사지가 잘리거나 얼굴이 태워지거나 등등 손속이 꽤나 매서운 자의 소행이었다.
꿀꺽.
조광철은 고인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아, 아까랑 똑같잖아.”
“똑같다니?”
“슬라임, 고블린, 다이어 울프. 몬스터는 달랐지만 저런 풍경이 더 있었어요. 마정석하고 몬스터가 지니고 있는 무기도 없었죠?”
서유라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는 누님이 한 건줄 알았습니다.”
그 말에 서유라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불가능해.”
“그, 그럼 그 싸이코 형제들 짓일까요?”
서유라는 조광철이 언급한 이가 신촌 브라더스라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들 둘이 힘을 합쳐야 나랑 겨룰 수 있어.”
“그렇다면 누가……?”
“누구의 짓인 지 알 수가 없으니 우리도 조심해야겠지.”
“그건 그렇고, 누님 혹시 다른 사람들은 보셨나요? 사흘쯤 지나니까 슬슬 안 보이더라고요.”
“글쎄 어쩌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야.”
서유라는 뒤끝의 말을 삼켜 넘겼다.
***
야심한 밤.
건우는 험준한 계곡에서 낮에 잡은 멧돼지를 통째로 굽고 있었다.
타닥! 타닥!
-허, 그놈 참 맛깔나게 구울 줄 아는군. 한 입만 주면 안 되겠냐?
세이비어는 번들번들한 멧돼지 고기의 상태를 보며 쩝쩝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냈다.
건우는 아공간 배낭에서 후추를 꺼내 뿌리며 말했다.
“어차피 할아버지는 못 먹잖아요.”
그러자 세이비어가 탄식했다.
-크윽! 죽어서 실로 원통한 건 고독이 아니라 먹지 못해 생기는 한이구나. 그런데 넌 과거에도 그렇고 요리를 꽤나 하는구나.
건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짐꾼 생활 4년 차니까요. 이런 말 하기는 뭐 한데, 제가 지혜보다 요리 잘해요.”
-그럼, 집에서도 네가 요리를 하지 그러냐?
“지혜 기죽을까 봐 안 돼요.”
-얼씨구.
‘이제 한 5분 정도만 더 구우면 되겠지.’
노르스름하게 익어 질기긴 해도 괜찮은 맛이 나올 것 같았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건우는 자신이 그동안의 사냥을 통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최건우]
▶직업: 무
▶레벨: 25
▶전용스킬
-[복원][소유권 부여][완전기억능력][이그너스 마나연공식: 3성]
▶일반스킬
-11종의 마법(파이어볼.......)
▶스테이터스
[근력 70] [민첩 69] [체력 350] [마력 320][맷집 180]
“이제 꽤 그럴듯해졌네.”
건우는 한층 강해진 힘에 뿌듯한 표정을 짓다 한쪽 방향을 쳐다보며 눈꼬리를 삐죽 올렸다.
“그런데 왜 꼭 이럴 때마다 잡것들이 끼어드는지 모르겠네.”
스탯이 상승하자 기감이 발달해지면서 전에 느낄 수 없던 걸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가령, 지금처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살기라던가 말이다.
[초감각을 시전했습니다.]
다시금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졌다.
양옆으로는 언제 다가온 건지, 강성민과 강하민이 단검을 들고 건우를 찔러 들어왔다.
스윽.
건우는 즉각 리자드맨의 도를 들어 쌍둥이 형제의 일격에 대처했다.
카아아앙!
두 형제의 기습은 격렬한 불꽃이 튀기며 불발로 끝났다.
“뭐?!”
강성민이 건우의 움직임에 깜짝 놀라는 순간, 건우의 무릎이 강성민의 복부로 사정없이 날아갔다.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