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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4화 (4/308)

4화

세이비어 이그너스.

그의 초상화는 귀족풍의 옷을 입은 다른 가주들의 초상화와 달리, 회백색의 로브를 걸친 근엄한 마도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초상화에서 마나가 실처럼 흐트러지더니, 그곳에서 무언가가 유령의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건우의 앞에 선 그는 대뜸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이그너스의 흥망성쇠는 진작 끝났다. 어느 놈이 내 앞에서 망발을 지껄이는 게야!”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는 로한 이그너스. 현생의 이름은 건우. 저는 변하지 않습니다.”

“……진짜, 네가 로한이라고?”

“네. 아니면 제가 어떻게 여기로 왔겠어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저한테 찾아왔잖아요.”

“……그건 그렇다만.”

세이비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는 가문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후손과 교감을 이루었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가문의 수호신, 차이트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

그 덕분에 건우가 복원의 권능을 얻었다면, 세이비어 이그너스는 붕괴의 권능을 얻었다.

한때 그의 손에 닿았던 것은 생물이라면 순식간에 노화가 돼서 죽고 사물은 썩어 문드러졌다.

심지어 강건한 소드 마스터들조차 그를 보고 벌벌 떨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이런 신세를 겪는 것은 바로 차이트가 저주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 누구도 아닌 차이트가 직접 한 얘기였다.

건우는 잠시 차이트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잘 들어라. 로한. 세이비어에게 힘을 준 것은 자신의 뜻을 펼치라는 의미였어. 한데, 그 녀석은 줄곧 자신이 신이라고 착각하고 무참히 죄 없는 사람들까지 죽였지.

-다시 힘을 뺏어 가면 안 되는 거야?

-신의 언약은 준엄한 법. 줬던 건 도로 회수하지 않아. 대신 자신의 과오를 살피게 할 의무는 있지.

차이트가 선택한 방법은 세이비어를 지박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세이비어는 긴 시간 동안 시간의 굴레 속에서 고통을 받았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이 세운 가문이 망하는 것을 봤을 때는 원통한 심정이었을 거다.

잠시 고심에 잠겼던 세이비어는 곧 입을 뗐다.

“……네가 로한이라는 증거는 확실히 있는 거냐?”

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거실에서 바람을 피웠을 때, 흘끔흘끔 곁눈질한 게 생각나네요. 그때, 어머니께서 화나서 들어오려고 할 때, 슬쩍 문 잠그신 거 할아버지…….”

“그만!”

세이비어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러다 곧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당돌한 자식. 많이 컸구먼. 오랜만이구나. 꼴을 보니 전생계승에 성공했나 보구나.”

“네. 정말 기적적인 확률로 성공했어요.”

“한데, 왜 이곳에 다시 기웃거린 거냐? 이미 이그너스는 망했다만.”

“어쩌다가 갇혀 버리고 말았네요.”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한 거냐?”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여기 있는 놈들을 다 퇴치하고 제 영지를 되찾을 생각이에요.”

“꿈도 야무지구나. 전생에도 실패하지 않았더냐.”

“그때랑은 달라요. 던전에 깔린 몬스터들도 그때에 비하면 약하고, 아라크네도 잡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크흐흐. 지금 그 몸으로? 부질없는 짓이야. 얌전히 이 할아버지와 체스나 두면서 여생을 보내자꾸나.”

그 말에 건우가 슬며시 이마를 좁혔다.

“할아버지가 도와주시면 전생 시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어요.”

“허허허, 글쎄 어떻게 할까?”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시면 차이트를 설득해서 성불시켜드릴게요.”

“허허,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천 년도 넘게 걸리겠다.”

“……좋아요. 그러면 전 이대로 돌아갑니다.”

“뭐?”

예상외로 건우가 차갑게 등을 돌리자, 세이비어가 당황하며 앞을 막아섰다.

“자, 잠깐! 사내놈이 쉽게 포기하면 안 되지.”

“훗.”

그 모습을 본 세이비어는 아차 싶었다.

또다시 혼자가 될까 싶은 두려움이 화근이 되어버렸다.

“에이, 그러면 어쩔 수 없죠.”

건우는 다 헤진 소파에 앉으며 거들먹거렸다.

‘건방진?!’

졸지에 자신이 부탁하는 입장이 되자 세이비어는 어이가 없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건우가 돌아가면 그는 또다시 무한한 시간 동안 홀로 지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반면 건우는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에 내심 크게 놀란 상태였다.

‘맞아. 로한 시절에는 한 성격하고는 했었지.’

전생의 기억을 계승 받았기 때문일까?

건우의 자존심과 자존감이 크게 격상했다.

일전의 그라면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도와주실 건가요?”

“끄응, 좋다. 어차피 나도 이 구역질 나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참이니 도와주마. 구체적으로 뭘 도와주면 되겠느냐?”

“마법을 익히고 싶어요.”

“네가?”

세이비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로한이 나름 재생의 마도사라고 명성을 떨치기는 했지만, 일반 마법에 대한 재능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습득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할아버지는 마법을 보여 주시기만 하면 돼요.”

“흠. 좋다. 하지만 나에게는 마력이 없어 너의 것을 빌려야 할 텐데.”

“마력공유가 필요하시다는 거죠?”

“쓸 수 있느냐?”

“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일반 마법 못 쓰는 거.”

“…….”

“일단 마력공유의 구결과 마나배치가 어떻게 되는지 일러 주마.”

세이비어는 자세하게 마법의 구조를 설명해 주었다.

건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전생의 그라면 당연 애를 먹었을 법한 장황한 설명이지만, 지금의 건우에게는 크게 장애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완전기억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마력 공유를 습득하셨습니다.]

‘좋았어!’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건우는 속이 시원했다.

“어떠냐? 손자야. 한 번 더 이야기해 줄까?”

“아니요. 이제 할 수 있어요.”

건우는 곧바로 마력 공유를 시도했다.

우우웅.

세이비어의 몸에 금빛의 마력이 스며들더니, 불투명했던 그가 생기를 띤 모습으로 변했다.

“허허, 이거 놀랍군. 그건 무슨 재주인 거냐?”

“그냥 단순하게 기억력이 좋아진 것뿐이에요.”

건우는 그렇게 얘기하며 시스템 창을 엿봤다.

[마력 공유 시간 : 20:00]

[마력 공유 시간 : 19:59]

‘이런 것까지 나오네.’

생각 외로 체내에서 마력이 빠르게 고갈되자, 건우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일단 이동하죠.”

“어딜?”

“이제 캐리할 시간이죠.”

“캐리?”

처음 들어 본 말에 세이비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

던전 입구 부근.

아크 길드의 활약으로 강한 몬스터는 대부분 소멸했다.

그리고 현재는 그 자리를 고블린들이 메우고 있었다.

입구 부근에는 고블린이 열 마리 정도 들어차 있었다.

건우는 평소처럼 녹색 후드티와 아공간 배낭을 멘 채, 몸을 숨기며 세이비어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하던 도중, 세이비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했다.

“로한. 그건 또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냐?”

“할아버지가 들으셨던 대로예요.”

“그래서 도중에 마법이 소실되게끔 하라고?”

“네. 꼭 그러셔야 해요.”

“……알았다.”

썩 내키지 않는 요구였지만 세이비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니다.”

건우가 뚜벅뚜벅 입구 부근으로 다가섰다.

키엑!

그러자 건우를 인지한 고블린들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세이비어는 즉각 손을 뻗어 파이어 볼을 날렸다.

화르륵!

처음에는 강렬한 화염구가 쏘아졌지만, 고블린에게 도달할 때쯤에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꽃이 사그라지려고 했다.

키익!

이를 본 파이어 볼에 놀랐던 고블린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울컥!

‘고블린 따위가?!’

어이가 없던 세이비어가 마력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그보다 한발 앞서 건우가 손을 들어 복원 능력을 사용했다.

후우웅.

[파이어 볼을 복원하셨습니다.]

화르르륵! 콰아아앙!

키에에에엑!

고블린은 갑자기 강렬해진 파이어 볼에 묻혀 잿더미로 사라졌다.

“로한, 뭐 하러 그런 불필요한 방법을 쓰는 거냐?”

아직까지 건우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세이비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우우우우웅!

건우의 손아귀에서 강렬한 화염구가 맺히더니 쏘아졌다.

화르르륵! 콰아아앙!

고블린들이 아비규환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무, 무영창 캐스팅?!”

세이비어는 경악했고, 건우는 피식 웃어 버렸다.

[스킬, 파이어 볼을 터득하였습니다.]

“할아버지, 다음 마법이요.”

“그, 그러마.”

건우는 입구에서부터 던전 공략에 나섰다.

그와 동시에 마법을 터득하고 온전히 역량을 키워나갔다.

[스킬, 윈드 커터를 터득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스킬, 체인 라이트닝을 터득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스킬, 헤이스트를 터득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스킬, 에어웨이브를 터득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호라. 이제야 원리가 파악되는군.”

곁에서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세이비어도 감이 왔다.

확실히 건우의 방법은 마법을 배우는 정석은 아니었다.

가령, 지금과 같이 소실되는 마법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건우는 마나 배열 구조를 자연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 구조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억도 못 할 정도로 복잡했다.

하지만 완전기억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건우는 머릿속으로 기억한 해당 마법의 마나 배열 구조를 허공에 있는 마나를 통해 복원을 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과정과 상관없이 마법은 그대로 구현되고, 동시에 시스템 보정으로 스킬까지 획득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방법이라면 당연 실패도 없고, 방금처럼 무영창 캐스팅이 가능했다.

그 결과 건우는 무시무시한 힘을 얻게 된다.

바로 지금처럼.

콰앙! 콰앙! 콰앙!

손아귀에서 난사된 파이어 볼이 전면을 빼곡히 메우며 폭발했다.

카아아앙!

다음 방에서 기어 나온 팬텀울프들은 불꽃에 가로막혀 접근하지 못하고 포효했다.

카앙!

보다 못한 팬텀울프들은 영체화를 통해 불꽃을 통과했지만, 건우는 말없이 손을 들었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이번에는 불꽃이 아니라 강렬한 돌풍이 쏟아졌다.

화르르르르르륵! 콰앙!

카아아앙!

주변의 불꽃들이 에어 웨이브를 타고 그대로 팬텀울프를 집어삼켰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력공유시간: 00:00]

“오늘은 여기까지.”

세이비어는 다시 옅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유령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편 건우는 마력 고갈 때문에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떨어진 마정석을 줍기 시작했다.

“너 정말 어떻게 된 거냐? 이렇게 머리 좋은 놈이 아니었잖아.”

“나름 마법사였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합니다.”

“다음 생에서는 부디 똑똑한 놈으로 태어나달라고 기도했었는데, 기도가 통한 모양이군.”

“뭐요?”

건우가 찌릿 노려봤지만 세이비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손자야, 꼭 이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냐?”

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잖아요.”

“쉽지 않을 거다.”

세이비어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5성으로 다운됐지만 아라크네는 여전히 위협적인 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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