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SSS급 용병의 회귀
- 4권 25화
눈앞에 있는 소녀가 여왕이었더라면 그에 맞는 대접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라도 자신보다 더 높은 존재이기 때문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하고 있긴 했다.
"페이린은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
"폐관 수련...... 그렇게 전하면 알아들으실 것이라 했어요."
"그런가요. 폐관 수련이라......."
넬의 말에 나인 테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폐관 수련이라니. 그 상태에서 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 것인지 그 끝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것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과거를 뛰어넘는 힘이 필요하긴 하지만...... 폐관 수련이라니. 너무 극단적인데?'
페이린의 기억을 읽어 본 경험이 있는 나인 테일이었다. 과거에도 페이린은 강해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했었다. 그중에서도 폐관 수련이라 불리는 것도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뭔가 시기가 맞지 않았다.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아직 몇 년. 아니, 10년 이상이 남아 있다. 굳이 폐관 수련까지 해 가면서 힘을 키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라는 건가?'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던 나인 테일은 적어도 페이린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든가, 무슨 말을 들었기 때문에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차근차근 일을 계획하는 단계였다. 그 단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갑자기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페이린이 하던 비약을 만드는 일과 마법사들을 가르치는 일은 모두 나인 테일 님께 맡기기로 했어요. 전 그런 일에 애당초 도움이 안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이미 초석은 닦아 둔 상태니 나머지는 관리만 잘 하면 될 것 같군요."
"예. 그리고 포션 제작은 원래 신관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시죠? 지금도 그들이 간섭을 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도 간섭을 하지 않을 거예요. 이건 확실해요."
"흐음? 그 신관들이 자기 밥그릇을 뺏기는 모양을 가만히 두고만 본단 말입니까?"
나인 테일의 말에 넬은 가만히 생각을 했다. 자신이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그것을 뺏어 간다면 그건 커다랗게 화를 낼 일이었다. 유독 먹을 것에 민감한 넬이었다. 그렇기에 나인 테일의 비유를 듣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예. 무척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그들로선 방법이 없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음. 알겠습니다. 그 밖에 또 달리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네. 저도 고향으로...... 정령계로 돌아갈 거예요."
"정령계로 말입니까?"
"예. 페이린이 돌아올 때까지 전 그곳에 있을 거예요. 나중에 페이린이 돌아오면 절 데리러 정령계로 오라고 전해 주세요."
"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 드리도록 하죠."
나인 테일은 답을 하고 찻잔을 들어 조금 식은 차를 음미했다.
넬 또한 차를 마셨다. 과거에 자주 마셨던 차였다. 넬이 기억하는 그 맛이 그녀의 입 안에서 맴돌았다. 씁쓸하면서도 그 이후에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좋은 차였다.
"그런데 정령계로는 어떻게 가실 생각입니까?"
"페이린이 없으니까 걸어갈 수밖에 없죠."
"흐음. 분명 입구가 미혹의 숲이라고 했던가요?"
나인 테일은 페이린의 기억을 되짚어 보며 얘기했다. 그 기억이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넬의 고향, 그러니까 정령계에 관한 것은 남아 있었다.
"네. 페이린에게 폐가 안 되려면 저도 힘을 길러야 하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출발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얘기가 끝나면 바로 갈 생각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혼자 가기에는 좀 위험한 길이니 준비를 마치고 며칠 뒤에 출발하시죠. 포션과 비약을 판매하는 상단이 대도시까지는 이동을 하니까 같이 가는 편이 나을 겁니다. 겸사겸사 그들을 호위도 해 주시면 감사하고요."
나인 테일의 말에 넬은 잠시 고민을 했다.
자신은 지금 당장이라도 정령계에 돌아가야만 했다. 만약 상급 정령과 계약을 한 상태라면 그 힘을 빌려 곧바로 정령계에 갈 수 있는 문을 만들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중급 정령과 계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먼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여왕님도 뭐라 하시진 않겠지?'
넬은 여왕이 전해 주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되도록 곧바로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었다.
페이린이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사실 넬은 놀려고 했었다. 페이린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컨트롤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왕은 그런 넬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넬도 수련을 시키는 것이다.
페이린이 강해지는 만큼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또한 그를 도와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넬도 강해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네.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저 혼자 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출발할 때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인 테일의 대답을 들은 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찻잔도 깔끔하게 비운 뒤였다.
그녀가 나간 뒤 나인 테일은 찻잔에 차를 다시 따랐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차가 그녀의 찻잔에 가득 담겼다.
"폐관 수련이라......."
넬이 나간 뒤 그녀는 페이린이 폐관 수련을 하고 있다는 말을 곱씹었다. 아직 시간이 널널할 것인데 쉬지 않고 강해지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가 있었다.
"나도 폐관 수련에 들어가야 할까?"
나인 테일은 페이린의 기억을 봐서 미래를 잘 알고 있었다. 일부분의 기억이지만 그럼에도 그 끝은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흑마법사들.
그 녀석들이 불러낸 이계의 존재.
마계라는 곳에서 득실거리는 악마들과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인 마왕.
전생의 페이린은 무척이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힘이었다. 오히려 페이린이 가진 힘이 더욱더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자신은 죽었고, 자신의 딸인 파야마저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었다.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한 폐관 수련은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페이린이 준비를 하고 있다면 자신 또한 그에 맞춰서 힘을 기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페이린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처럼 지켜야 될 소중한 이들을 지키지도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나까지 폐관 수련에 들어가 버리면 이곳을 다스릴 사람은 없지 않은가."
폐관 수련을 한다는 건 좋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곳 향원을 굴러가게 할 책임자는 존재해야 했다.
자신이 없으면 백령이 모든 일을 대신해서 할 테지만 그녀도 현재 파야와 함께 힘을 기르고 있었다. 간간이 수련의 탑에서 나와 페이린이 양성하는 마법사들의 수준을 확인하고는 있지만 그뿐이었다. 현재 백령이 부재중이기 때문에 그 아래에 있던 인재들에게 일을 맡기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임자인 자신이 빠져 버린다면? 아마 커다란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을 기르는 편이 낫겠지."
세상이 평화로웠고 자신만큼의 무력을 가진 자는 없어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수련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천천히 시작하는 편도 나쁘진 않겠지. 후우."
그녀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이왕 생각을 한 것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어디 가십니까?"
"아, 나도 수련의 탑에 올라갈 생각이다."
"예?"
"걱정 말거라.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는 다시 올 것이니라. 이제부터 매일 그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알겠습니다, 나인 테일 님."
백령의 휘하에 있는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인 테일은 수련의 탑으로 향했다. 마지막 층을 클리어한 이후로 올라간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힘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은 그곳 말고는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는구나."
수련의 탑에 들어선 나인 테일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부터 자신을 반기는 수많은 몬스터들. 그것들을 보며 그녀는 오랜만에 힘을 사용했다.
* * *
"그럼 가 볼게요. 페이린이 수련을 끝내면 꼭 얘기를 전해 주셔야 해요."
"그러도록 하죠. 그럼, 다음에 볼 때까지 몸조심하시길."
며칠이 지나고 연금술사들이 만든 비약과 포션을 판매하기 위한 상단이 도착했다. 출발하기 전 넬은 나인 테일에게 인사와 함께 당부를 해 두었다. 페이린이 돌아오면 그녀가 정령계에 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기를.
그렇게 넬은 상단들과 함께 대도시로 향했다. 대도시로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향원으로 올 때는 페이린의 마법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지금은 페이린이 없었다.
그래도 걸어가는 것보다 상단의 마차를 타고 함께 가고 있기 때문에 기어가는 수준은 아니었다.
-키에엑!
-취익!
향원의 영역에서 벗어나 대도시로 가는 길목에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늘 여행객들을 습격하는 녀석들로선 마차를 타고 가는 상단에게서 제법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녀석들이 노리고 덤비는 그 상단에는 많은 용병들이 있었다. 용병들은 아주 간단하게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용병들이 몬스터들과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넬은 느긋하게 그 싸움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끼어들지 않더라도 상단을 호위하는용병들만으로도 녀석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취익! 죽어라, 인간!
"......."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오크 몇 마리가 혼란을 틈타 넬이 있는 마차로 다가왔다. 그 마차에는 넬을 제외하고는 싸울 수 있는 인원이 없었다.
"하아......."
넬은 다가오는 오크를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들 덕분에 심심하지도 않고 정령계에 늦게 갈 수 있기 때문에 좋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은 좋게만 볼 수 없었다.
넬은 가만히 허공에 손짓을 해서 중급 정령들을 모두 소환했다.
-뭐, 뭐냐? 취익. 이것들은 대체 뭐냐! 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