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SSS급 용병의 회귀
- 4권 22화
페이린은 시스템의 메시지를 떠올려 봤다.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문을 열 수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 세상에 이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굳이 전 대륙을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철없는 꼬맹이라도 알 것이다.
"음?"
한참 주위를 떠다니며 이 공간이 무엇인지 밝혀내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였다. 유독 저 멀리 한곳에서 뭔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페이린은 그곳으로 곧바로 이동을 했다. 둥둥 떠다니는 마당에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육안으로 보기에 제법 먼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날아서 도착을 할 수 있었다.
"호오. 결국엔 이곳까지 온 것이냐?"
"누구십니까?"
"끌끌.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지. 다만 한 가지 말해 주마. 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그 힘을 준 존재라고 하면 납득하기 쉬울까?"
페이린이 도착한 곳에는 한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몸 전체가 새하얗게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자는 페이린이 가지고 있는 힘을 줬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힘? 에이. 설마.'
페이린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분명 저자가 말하는 힘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알기가 애매모호했다. 다만 분위기상으로 보면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시스템의 힘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지. 이건 신이 준...... 어라?'
페이린이 자신에게 힘을 준 존재를 떠올리며 가만히 부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신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뭔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공간.
거기에 시스템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
게다가 몸 전체에서 피어 나오는 알 수 없는 새하얀 빛.
"하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분이 아니죠?"
"응? 자네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을 걸세."
"......진짜 신이라는 겁니까?"
페이린의 말에 중년의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며 페이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무슨 신이라는 분이......."
페이린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신이라고 짐작되는 중년의 남자가 얘기했다.
"왜 그런가? 신이라면 응당 위엄이 있어야 하고 체통을 지키며...... 뭐, 그래야만 하는 건가?"
"보통 그렇지 않습니까? 저기 게으른 신관들도 그 정도는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페이린의 말이 맞았다. 포션이나 팔며 부만 쌓고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거지 같은 신관 녀석들도 자신들이 믿는 신을 대충 그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지적이며, 위엄이 넘치며, 근엄하며, 전지전능하며 등등.
이 세상에 신이라는 작자에게 붙이는 수식어만 세어 봐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건 신관 녀석들뿐만 아니라 신을 믿는 다른 이들도 똑같았다.
그런 거에 비해서 이렇게 형편없는 중년의 남자가 신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걸 믿는 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없겠지.'
그나마 신이라고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그의 몸 전체를 환히 빛내고 있는 이상한 빛뿐이었다. 덧붙여서 이 공간도 그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이 공간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네는 나를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적어도 나를 알아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군."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나를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니까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신의 말에 페이린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신의 말이 맞았다. 그를 처음 봤더라면 이렇게 편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진짜 이 사람을 신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페이린은 중년의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 이 중년의 남자를 신이라고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거의 신이라고 납득은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공간 하며, 저렇게 휘황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사람은 신 말고 다른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대는 아직도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그러면 누가 불쑥 찾아와서 신이라고 하면 믿을 인간이 있습니까?"
"그대들은 어째서 그렇게 불신이 많은지 모르겠군."
"애당초 신이라는 분이, 나타나 달라고 기도를 한다 한들 나타나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페이린의 말에 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신관들. 물론 제 주머니를 불리며 배만 채우는 이들이었다. 신을 믿는다고 기도는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일들은 하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매일같이 기도를 한다 한들 신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표면적으로만 신을 믿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자신을 믿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는 이들이, 자신의 가르침은 실행하지 않고 그것으로 이득만 취한다면 그들을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신관들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세상에 신을 간절히 믿는 이들은 그들 외에 더 많은 이들이 존재했다. 가난한 이들이나 뒷골목에서 몸을 떠는 이들 등등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불쌍한 이들이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긴 했지.'
아무런 재능이 없었다.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피워 낼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다. 운이 좋게 마법사의 눈에 들어 마탑에 들어갔었지만 재능이 없다고 쫓겨났었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단순히 마법적인 것. 그러니까 서클을 증진하는 그런 것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예로 들면 연금술이나 마법을 이용해 학문을 증진하는 그런 방식으로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탑에선 페이린에게 어떠한 재능도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마탑에서 쫓아내 버렸다.
마탑에서 쫓겨난 이후 페이린은 다른 이들처럼 신이라는 이름을 찾아 기도했다. 매일매일 지옥 같은 나날을 벗어날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를 했었다.
그렇지만 신이라는 작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먼 훗날 나타나 시스템이라는 이질적인 힘을 주었지만. 적어도 페이린이 필요로 할 때, 간절히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흐음. 지금 그대. 나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했군?"
"크흠. 신을 욕하는 건 누구나 하지 않습니까?"
"그대. 내 욕을 많이 했나 보군?"
"욕 안 했습니다. 그냥 옛날 일이 떠올랐을 뿐이죠."
페이린의 말에 신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대충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말문을 막히게 한 페이린을 한 번 골려 본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뭐. 그대에게 전해 줄 말이 많아서 내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지."
"전해 줄 말씀이시라면......."
"페이린."
중년의 남자, 아니 신. 그는 갑자기 페이린의 이름을 불렀다.
방금까지 장난기가 조금 있던 목소리라면, 지금 페이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진중함과 함께 뭔가 위엄이 실려 있었다.
그 위엄 있는 목소리는 페이린도 과거에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 목소리는 과거 신을 처음 만났을 때 들을 수 있었던 목소리였다.
그 때문에 페이린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긴장을 했다. 저런 진중한 목소리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는 없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분명 무거우면서도 중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대. 나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는가?"
"그날의 일을 제가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페이린은 신을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비가 퍼부었다.
그날 페이린은 소중한 동료를 잃어버렸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동료들이었다. 검으로 먹고살던 그는 용병 일을 하면서 홀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 페이린은 신을 원망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줄기의 빛처럼 가지고 있던 실낱같은 희망은 그날 산산조각 찢어져 버렸다.
페이린의 눈에는 온통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때 신이 나타났고 페이린은 시스템의 힘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강해졌다. 다시는 동료를 잃지 않기 위한 강함을 갖추기 위해 나날이 힘을 갈구했었고, 실제로도 강해졌다.
"많고 많은 인간들이 나를 찾는다. 나를 부정하는 자들도, 나를 원하는 자들도 존재하지.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이들 중 왜 내가 그대 앞에 나타나 힘을 주었는지. 알고 있는가?"
"......그 질문. 분명 처음에도 하셨죠."
"그렇다네."
신의 대답을 들으며 페이린은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그가 현재 페이린에게 묻고 있는 질문.
그것은 처음 신과 만났을 때에도 그가 했던 질문이었다.
많고 많은 인간들 중 페이린을 택한 이유.
이유야 많겠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때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죠. 곧 이변이 생길 것이니 그걸 막기 위한 사자로 절 택하셨다고."
"잘 기억하고 있군 그래."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또한 그것과 같기 때문이지. 난 그대를 만나기 전까지 이 세계를 지켜 줄 인물을 찾고 있었지. 자네를 제외하고도 재능이 많은 인간들은 여럿 있었지."
신의 말에 페이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많은 인간들. 당장 떠올려 보면 파야도 있을 것이며, 넬 또한 그 안에 포함이 될 것이다. 더불어 푸른 날개라 불리는 케이른 또한 상당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그들을 택하지 않고 자신을 택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전생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신이 자신을 택했다.
이 세계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과 함께 말이다.
단지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