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SSS급 용병의 회귀
- 4권 11화
24장. 수련의 탑
"일찍 나오셨군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백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페이린에게 상당히 많은 골드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보여 주었다. 어찌나 많은지 마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제 맡기신 것들을 모두 처분한 겁니다. 꽤나 많이 잡으셨더군요."
"주머니 하나만 가져가도록 하죠. 나머지는 우선 맡아 주세요. 수련의 탑을 다녀와서 가져가든지 할게요."
페이린은 마차의 안에서 적당한 크기의 주머니 하나를 집어 아공간에 대충 던져두었다. 아공간이 있으니 다 가져갈 수야 있지만 페이린은 다른 생각이었다.
'나인 테일의 협조를 받아 이곳에서 인원을 보충해야 한다.'
나인 테일은 자신의 기억을 봤으니 아마 어지간한 부탁들은 다 들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부탁해 일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실현을 하기 힘든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포션을 제작해서 판매를 하는 것이다.
신을 모시는 녀석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들이 판매하는 포션보다 질 좋은 포션을 만들어 싸게 판매한다면 녀석들도 아마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뭐. 그렇게 해도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급해지면 그땐 움직이겠지.'
페이린은 신을 믿는 녀석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녀석들은 자신의 이익에 손해가 오면 반드시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발이 전부 탈 때가 되어서야 움직일 것이다.
'겸사겸사 그 녀석도 찾긴 해야겠군.'
페이린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페이린이 포션 제작이나 비약을 제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이유는 모두 그 사람 덕분이었다.
장사하는 방법부터 물건을 만드는 기술까지 모두 그 한 사람 덕분에 배울 수 있었고, 덕분에 어느 정도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용병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많은 돈이었지만, 한곳에 정착하는 것을 싫어하는 페이린은 그 사람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전국을 떠돌아다녔었다.
"출발하죠."
페이린은 생각을 마치고 수련의 탑으로 향했다.
그곳은 관광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수인들이 있는 이곳에서 꽤나 발길이 드문 곳에 있었다. 경비도 삼엄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외부인들은 접근을 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또한 수인이라도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일정 자격을 갖춰야 했으며, 자기 집 드나들 듯이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도착했습니다, 페이린 님."
백령은 어느새 페이린에게 '님' 자를 붙이며 나인 테일을 대하듯이 했다.
그걸 보며 페이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나인 테일에게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식량, 포션 등 필요한 물자는 모두 이곳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수련의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여러 물자들이 쌓여 있었다. 백령의 말대로 식량과 포션들은 기본이었고 취사를 하기 위한 도구나 침낭 등등 여러 물건들이 있었다.
페이린은 그것들을 모두 확인한 뒤 필요한 것들만 골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올라가죠."
페이린이 먼저 수련의 탑으로 올라가는 문을 열었다.
이곳 수련의 탑은 10층이 끝인 던전과도 비슷한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10층까지 존재하는 던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던전과는 다르게 지상으로 높이 쌓인 탑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부도 던전처럼 좁고 미로처럼 불규칙한 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련의 탑 내부는 꽤나 환했다. 고대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등불이 탑 곳곳에 걸려 있었다. 또한 천장에도 간간이 등불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이 수련의 탑이 신기한 점은 내부가 꽤 고급스러운 건물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곳곳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조형물들이 있었으며, 바닥도 그냥 땅바닥이 아니라 곳곳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 새겨져 있는 신기한 곳이었다.
-스르르.
페이린 일행이 탑 안으로 들어오자 가장 먼저 보이는 몬스터가 있었다. 던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라임들과 거미들이었다.
문제는 그 숫자가 무식하게 많다는 것이다. 못해도 백 마리 이상이 지천에 널려 있었으며 생긴 것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즉, 일반적인 던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녀석들과는 다르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일반 던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슬라임과 거미들도 제법 강한 편이기에 일반적인 용병들이라면 힘을 합쳐 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녀석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수인들조차 1층을 클리어하는 것이 버겁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5층까진 최대한 빠르게 갈 겁니다."
페이린의 말에 일행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야와 백령은 이곳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페이린의 말도 안 되는 힘을 봤기 때문에 토 달지 않고 납득을 했다.
반면 넬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페이린이 강하든,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촤라라락.
페이린이 먼저 허공에 손짓을 했다. 적들의 수보다 많은 매직 애로우들이 단번에 완성되었다. 페이린은 완성된 매직 애로우에 마나를 불어넣어 그것들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파파팟!!
동시에 페이린이 만들어 낸 화살들은 사방으로 날아갔다. 강력한 마력이 담긴 그것은 더 이상 매직 애로우라고 볼 수 없었다.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녀석들이지만, 페이린의 마법 앞에선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는 건 똑같았다.
페이린의 전투를 시작으로 일행들도 전투에 참가했다. 빠르게 5층까지 간다는 그 말은 절대로 허세가 아니었다. 방금 전 페이린이 보여 주었던 그 공격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니 일행들은 지금보다 더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서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짤랑. 짤랑.
백령은 눈앞의 적들을 보며 체내의 마나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러자 어디에서인가 방울 소리가 천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방울 소리가 나더니 점점 그것은 커져 갔다.
그녀가 백령(百鈴)이라 불리는 이유.
그것은 그녀의 마법 때문에 생긴 이명이었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때 수많은 방울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녀는 하얀 여우 일족의 족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법에 일가견이 제법 있었다.
-짤랑. 짤랑.
백령의 마나에 반응해서 들려오는 수많은 방울 소리들. 그것들은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내 주변에 수십 개의 방울들이 생겨났다. 마나의 색처럼 푸른색의 방울들은 저마다 울려 댔다.
백령의 마법은 일반적인 마법사와 같은 마법도 있지만, 그녀 특유의 마법도 있었다.
-파앙! 파앙! 파앙!
그녀가 만들어 낸 방울은 울리기 시작하며 특이한 음파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눈앞에 있는 적들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잠시 후 그 음파가 적들의 몸에 닿자 녀석들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소리만을 이용해서 적들의 몸을 묶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거미나 슬라임들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을 묶어 버리는 것은 백령에겐 일도 아니었다.
-짤랑! 짤랑!
그와 동시에 다른 방울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적들의 몸을 묶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위력적인 파란색의 구체가 생겨났다.
그것들은 꽤 빠른 속도로 날아가 적들에게 일격을 가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녀석들은 백령의 공격에 고스란히 맞았고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러는 동안 넬은 정령들을 소환했다. 정령들은 넬의 명령대로 움직여 움직이지 못하는 적들을 공격했다.
간혹 독침을 뱉거나 거미줄을 쏘아 내는 등 발악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넬이 소환한 정령들 앞에 가로막혀 아군에게 어떤 피해도 입힐 수 없었다.
-서걱! 서걱!
파야 또한 빠르게 움직여 녀석들을 베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들은 1층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챙길 건 챙기고 다음 층으로 가죠."
파야와 백령은 1층을 이렇게 간단히 클리어하는 페이린을 보며 크게 놀랐다. 용병 일을 하는 수인들조차 1층을 클리어하는 것이 어려웠으니 놀랄 만도 했다.
두 사람이 놀라는 동안 넬은 정령들과 함께 능숙하게 몬스터들에게서 나온 마정석을 긁어모아 페이린에게 가져다주었다.
페이린은 넬이 가져다준 마정석들을 아공간에 잘 넣어 둔 뒤 다음 층으로 넘어갔다.
다음 층에서도 1층에서 나타났던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제법 많은 박쥐들이 등장했다. 녀석들의 머릿수를 합친다면 1층에 비해서 약 1.5배 정도가 더 많았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머릿수를 믿고 페이린 일행을 향해 덤벼들었다. 머릿수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한 것이다.
"후우."
페이린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적들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녀석들을 확실하게 이길 수 있었다.
또한 지금 자신을 제외하더라도 일행들의 힘이 제법 강했다. 파야나 백령은 페이린을 대단히 강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힘도 강하기 때문에 1층을 빠르게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 있는 녀석들을 모두 잡으면 레벨이 올라가겠지.'
페이린은 이번에도 빠르게 클리어할 것이라 생각하며 1층에서 사용한 매직 애로우들을 만들어 냈다. 이전에 샤벨 타이거를 공격했던 것처럼 길고 날카로운 창이 나타났다.
'강화.'
거기에 더욱더 마나를 불어 마법을 강화시켰고, 추가적으로 마법을 하나 더 시전했다.
-후욱!!
허공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마법의 창들이 제자리에서 맹렬히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 회전이 어찌나 빠른지 주변의 공기가 울리며 일행의 앞쪽을 향해 강한 바람을 만들어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스윽.
페이린은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신호로 수많은 마법의 창들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상당히 많은 마나를 소모하긴 했지만 어차피 이곳의 적들을 잡으면 레벨이 오를 것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소모한 마나가 모두 회복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이 죽고 레벨이 올라갔다. 그 덕분에 페이린은 소모한 마나를 모두 회복할 수 있었다. 마나가 모두 회복된 그는 다시 같은 마법을 시전해서 남아 있는 적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또한 일행들도 함께 공격했기 때문에 이곳도 1층처럼 빠른 시간 안에 클리어할 수 있었다.
"넬. 마정석들 모두 회수해."
"응."
모두 클리어한 뒤 페이린은 넬에게 마정석을 회수하도록 시켰다. 1층보다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법 많은 양의 마정석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파야와 백령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페이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파야 님. 저게 사람이 맞습니까?"
"예...... 맞겠죠?"
두 사람은 페이린의 터무니없는 무력에 놀라 할 말도 잃어버렸다. 게다가 더 심한 건 저렇게 마법을 펑펑 써도 마나가 넘쳐흐른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페이린은 넬이 긁어 온 마정석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뭐 해요? 다 끝났으니까 올라가요."
페이린과 넬이 다음 층으로 먼저 올라갔고 그 뒤를 파야와 백령이 뒤따라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