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SSS급 용병의 회귀
- 4권 7화
-크아아앙!!
녀석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불꽃들을 향해 거대한 앞발을 휘두르거나 거센 눈보라를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녀석의 공격에 열기가 사라졌지만, 찰나일 뿐이었다. 잠시 후 말도 안 될 정도로 거센 불꽃들이 곳곳에서 피어났다. 페이린조차도 컨트롤을 하기가 힘든 강력한 불꽃이었다.
그것들이 샤벨 타이거를 향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신들끼리 하나가 되어 거대한 형상이 되었다. 마치 불의 상급 정령이, 이곳에 강림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녀석은 그것에 당황해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물은 불을 끌 수 있지만, 물보다 더 강력한 불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을 잡아먹고 더욱더 강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시공간 마법이 해제되고 그곳에 넣어 두었던 수많은 매직 애로우들과 날카로운 창들이 녀석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욱! 푸욱!
그것들은 거대한 불길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의 몸 곳곳에 박혀 끔찍한 소리를 냈다. 녀석은 고통을 느끼며 화염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크아아아!!
그렇지만 가시가 달린 덩굴처럼 몸부림치면 칠수록 녀석의 몸을 더욱더 옭아맸다. 녀석은 계속 울부짖었고 그럴 때마다 녀석의 권능이 발동되었다.
날카로운 얼음 가시들과 세찬 눈보라가 나타났지만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보다 더욱더 거대한 화염에 집어삼켜졌다.
그만큼 이곳에 있는 열기가 상당했다. 결국 녀석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점점 힘을 빼앗길 뿐이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 볼까.'
페이린은 자신을 뒤덮은 방어막을 해제했다. 방어막 안에서 잠깐이었지만 소모한 마나를 조금 회복할 수 있었다. 불길은 페이린보다 샤벨 타이거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이 되지 않았다.
페이린은 그것을 보며 모든 마나를 끌어모아 한 자루의 창을 만들어 냈다.
'강화.'
페이린의 손에 쥐어진 창에 막대한 마나가 녹아들어 갔다. 그것은 푸르게 빛을 발휘하며 강력한 진동을 일으켰다.
'크윽.......'
막대한 마나를 사용해 버렸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시야가 흐릿해져 갔다. 내장이 뒤틀려 몸 곳곳이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입에서는 비릿한 핏덩이가 제멋대로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페이린은 그 모든 것을 꾹 참아 냈다. 눈앞의 녀석을 확실하게 끝을 내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완성된 무기에 한 번 더 마나를 불어넣었다.
-키이잉!!
마법으로 완성된 창에 새파란 오러 블레이드가 생겨났다. 가지고 있는 모든 마나를 소모했기 때문인지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꾹 참고 쥐고 있는 창을 녀석에게 힘껏 내던졌다.
-푸욱!!
녀석을 향해 날아간 창은 정확히 꽂혔다.
-파파파팍!!
창은 꽂히자마자 사라지더니 수백 개의 작은 침이 되었다. 그것은 녀석의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더니 이내 몸 전체를 뒤덮었다.
-콰아아앙!!
그러더니 하나둘씩 폭발을 일으켰다. 덩달아 주위에 있던 화염들도 그 폭발에 휘말렸다.
폭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으며 한동안 계속되었다.
-보스 몬스터 샤벨 타이거를 잡았습니다.
-경험치가 3,000,000 증가합니다.
-회귀자 칭호로 인해 경험치가 3,000,000 추가로 증가합니다.
-레벨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한동안 지속되던 폭발이 사라지고 샤벨 타이거는 결국 죽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시스템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막대한 경험치와 함께 레벨이 크게 올랐으며 덕분에 소모했던 모든 마나와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몸은 회복되었지만 제법 긴 시간 동안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페이린은 근처에 있던 나무에 몸을 기대며 잠시 쉬었다.
"페이린!"
그런 페이린을 향해 파야가 곧장 뛰어왔다. 그녀는 페이린의 몸을 살피며 행여나 다친 곳이 없나 걱정을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페이린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 페이린은 가만히 한곳을 바라봤다. 파야도 그곳을 바라봤지만, 그곳엔 녹아 버린 눈들과 나무들만 가득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페이린은 뭔가에 홀린 듯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몇 발의 매직 애로우를 만들어 냈다.
-파파팟!
페이린이 만들어 낸 메직 애로우는 모두 하나의 나무에 명중했다.
"이제 그만 나오시죠. 뒤처리는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파야는 그 말에 의아했지만 곧 페이린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기척도 느낄 수 없던 나무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의 모습을 본 파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 백령 님......?"
꼬리를 감추고 있었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함께 그 얼굴은 백령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자라면 확실하게 그녀라고 지목을 할 수 있었다.
"백령 님이 어째서 이곳에 계시는 거죠?"
그런 백령이 이곳에, 그것도 숨어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을 단번에 찾아낸 페이린의 행동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항상 나인 테일의 옆을 지키고 있는 백령이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인지 큰 의문점이었다.
"......그분께서 파야 님과 이분들을 지켜보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고작 세 분이 샤벨 타이거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만일에 대비해 제가 지켜보고 있던 겁니다."
백령의 말에 파야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령의 입에서 나온 그분.
그녀가 그분이라고 높임말을 사용하는 인물은 이곳 향원에서 한 명밖에 없었다.
-뚝.
백령과 파야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페이린은 근처의 나무에서 하나의 꽃을 땄다. 이파리부터 꽃까지 모두가 새하얀 색이었으며 화염의 진으로 만든 결계에도 녹지 않고, 오히려 냉기를 은은하게 풍기고 있는 백설초였다.
"넬. 정령들 소환해서 이런 풀들 모조리 긁어모아. 여긴 산의 정상이니까 많이 보일 거야."
"응."
페이린은 백설초를 하나 넬의 손에 쥐어 준 뒤 그것을 모두 가져오게끔 했다.
넬은 이곳에 있으나마나였다. 그렇기에 페이린은 일부러 다른 용병들이 이곳을 향해 오기 전 못 구한 백설초를 구할 겸 해서 그녀에게 시킨 것이다.
"......저 아이는 정말 정령의 축복을 받은 아이인가?"
"뭐. 그렇다고 해 두죠."
백령은 아무렇지 않게 네 명의 정령들을 소환하는 넬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도 넬이 정령을 모두 다룬다는 것은 용병 길드에 있던 일을 보고받아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니 꽤나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자세한 얘기는 산에서 내려간 다음에 나누도록 하죠. 토벌이 끝났으니까 백령 님께 뒤처리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매년 토벌이 끝이 나면 용병들은 토벌 시작 전에 지급을 받은 신호탄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백령은 품에서 그것을 꺼내 하늘 높이 던졌다. 작은 콩알만 한 그것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작은 소리와 함께 터졌다.
-파파파팟!
작지만 밝은 보랏빛의 불꽃이 생겨나더니 허공에 수를 놓았다.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스윽.
페이린과 파야도 지급받은 신호탄을 허공으로 가볍게 던졌다.
-파파파! 파파파팟!
보랏빛의 불꽃들이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한동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 많은 용병들이 이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팀별로 지급받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해 산의 입구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것으로 산의 정상까지 와서 샤벨 타이거의 사체를 확인하는 녀석은 없을 것이다.
페이린은 신호탄을 모두 사용한 뒤 샤벨 타이거의 사체로 다가갔다. 녀석의 덩치가 꽤 컸기 때문에 옮기기가 조금 불편했지만 문제없이 아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페이린. 다 긁어 왔어."
페이린은 넬과 정령들이 긁어모은 백설초들을 아공간의 구석에 잘 보관해 두었다.
그것으로 이곳에서 볼일은 모두 끝났다.
"추우니까 내려가죠."
페이린은 사전에 지급받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그런 뒤 일행과 함께 사용해서 설산을 빠져나갔다.
23장. 나인 테일
샤벨 타이거의 토벌이 끝나고 용병들 사이에서는 이번 토벌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를 잡으려고 토벌을 하러 온 건데, 정작 몬스터를 얼마 만나지도 못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페이린 일행이 싹 쓸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토벌에 자주 참가하던 용병들도 이번 토벌에서만큼은 샤벨 타이거의 꼬리조차 구경해 보지 못했다. 그런 용병들이 태반이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페이린 일행을 제외하면 전부 다 샤벨 타이거를 구경해 보지도 못했다.
그 거대한 사체라도 어떻게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뭐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정상까지 올라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 가관이었다. 그 거대한 샤벨 타이거의 시체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산의 정상에는 어찌 된 일인지 만년설이 모두 녹아 있었다고 했다.
또한 용병들을 제외하고서도 이곳 향원에서 소문이 쫙 퍼졌다. 그건 바로 설산의 정상에 나타난 의문의 불기둥 때문이었다.
페이린이 부적을 이용해 만든 결계 때문에 나타난 불기둥은 멀리서 봐도 잘 보였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그것은 산에 오르지 않은 이들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설산에 나타난 괴물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가 쫙 퍼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토벌을 성공하면 지급되는 기본적인 보상은 모든 용병들에게 나왔다.
한 마리의 몬스터도 잡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지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잘 나왔다. 거기에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추가적인 보상까지 살짝 더해졌다.
그 때문에 향원 곳곳의 술집에서 용병들은 모여서 페이린에 대한 얘기만 주구장창 해 댔다. 어떤 이들은 이번 토벌이 행운이었다고 얘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보상을 받았고, 추가적인 보상까지 더 지급된 걸 생각하면 토벌을 신청해 두고 공돈을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용병들은 술집에 자주 들락거렸다. 원래도 자주 가는 이들이지만, 이번에는 더욱더 그랬다. 겨울에 할 일도 없고 공돈도 생겼으니 그들로선 그냥 즐기는 것이 답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용병들 사이에서 페이린의 소문이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