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SSS급 용병의 회귀
- 3권 11화
"아, 글쎄 그렇다니까?"
"정말로? 그쪽 마을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그래. 지금쯤이면 신관 분들이 도착하셨을 지도 몰라."
"신관 분들이 움직일 정도로 규모가 큰 전염병이야?"
"그래. 지금 그 마을로 가는 길은 난리가 났을 거야. 나도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큰일이 났을 걸?"
상인들의 얘기를 들으며 페이린은 잠시 생각을 했다. 지금쯤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 시기가 맞아떨어지니 조금 놀랐다.
'그래도 신관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나서긴 했구나?'
과거에는 몰랐던 것이지만 상인들의 대화를 통해 신관이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지간해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신관이 나섰으니 아마 전염병은 금방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린의 기억으로는 그 마을에 퍼진 전염병은 너무 늦어 버려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었다.
'아마 신관 녀석들이 말로만 움직인다고 했을 가능성이 높아.'
신관이란 녀석들은 정말 어지간해선 움직이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전염병이 퍼졌다고 해도 하급 신관들이나 사제들을 보내 조금의 치료만 하고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 녀석들은 의외로 돈을 밝혔다. 신을 믿는 녀석들이 돈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 증거로 시중에 있는 포션들 대부분은 신전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를 하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막대한 돈을 받고 치료를 해 주었다.
그렇게 부를 불려도 이번처럼 전염병이 퍼지는 등 사람들이 도움을 원할 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일은 그들에게 있어 조금도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신관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흑마법사들이 나타났을 때에도 방관만 했다가 결국 그 사달이 나 버렸지.'
만일 신관 녀석들이 처음부터 흑마법사들을 막기 시작했더라면 일은 달라질 수 있었다. 충분히 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과거에는 흑마법사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소문이 들리며 그 증거까지 나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관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 신관 녀석들이 흑마법사에게 당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흑마법사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포션 판매를 해서 자금을 모으는 편도 나쁘지 않겠는데? 신관 녀석들은 내겐 필요 없으니까.'
빛의 정령이 있는 지금 굳이 신관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 신관이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흑마법사들을 좀 더 편하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녀석들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린은 녀석들의 자금줄을 끊어 버릴 겸 용병단의 설립을 위해 자금을 모을 방안을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포션을 만들어 직접 판매를 하는 것이다.
각지의 약초들을 모아서 제작을 해야 하지만 그 정도는 못할 것도 없었다. 제조법과 재료만 있다면 누구든지 포션을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빛의 정령까지 계약한 상태이며 물의 정령과 계약하고 있는 넬도 있었다. 충분히 질이 좋은 포션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선은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보자.'
"페이린! 안 오고 뭐 해?"
멀리서 파야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걷다 보니 그들과의 거리가 벌어진 것이다. 페이린은 빠르게 걸어 그들과 합류를 했고 함께 대도시를 빠져나왔다.
"우와. S급 용병이야?"
파야는 경비대에게 용병패를 보여 주는 페이린을 보며 놀랐다.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벌써 S급이 되었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됐어요. 참. 동쪽으로 가는 길에 네이비라고,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데 알고 있어요?"
"아. 들어 본 것 같은데. 혹시 알아?"
파야는 옆에 있던 칼과 돌프에게 물어봤다. 둘은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이내 페이린이 말한 마을을 생각해 냈다.
"그 마을이군. 작아서 잘 들르지 않는 마을이었지. 그런데 거긴 왜 그러지?"
"그 마을에 볼일이 좀 생겼어요. 평소라면 좀 걸리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급하니까 빠르게 가야 할 것 같은데요."
페이린의 말에 파야 일행은 의문이 가득했다. 작고 볼 것도 없는 그런 마을에 무슨 볼일이 있기 때문에 빨리 가야 한다는 것인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가면서 얘기를 해 드릴게요. 우선은. 헤이스트."
페이린이 마법을 사용하자 주위에 있던 일행들의 몸 곳곳에 새하얀 깃털이 생겨났다. 그 깃털은 곧 푸르게 변하더니 이내 새하얗게 빛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텔레포트를 하고 싶지만 그 마을의 좌표를 알고 있지 않거든요. 우선 출발하죠."
페이린은 먼저 이동을 했고 파야 일행과 넬은 그 뒤를 급히 따라갔다.
본래라면 대도시에서 네이비 마을까지 하루 정도는 꼬박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페이린이 걸어 준 헤이스트 마법 때문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평소보다 2~3배 이상은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었다.
거기에 페이린은 쉽게 지치지 않는 마법까지 걸어 줬고 일행들은 그 마을을 향해 달리게 되었다. 달려가면서 페이린은 자신이 서두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 마을에는 지금 전염병이 돌고 있으며 그것은 흑마법사와 연관이 있다는 말.
다른 이들이었다면 흑마법사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파야 일행은 흑마법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게다가 그들은 리치까지 봤으니 흑마법사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페이린의 설명을 듣고 더 이상 어떤 의문점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더 빠르게 움직였다.
"후우...... 우리 정말 빠르게 온 것 같은데?"
"그런데도 별로 지치지가 않으니 참 신기해."
"마법이란 건 굉장하구나."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하루 정도가 걸리는 거리를 몇 시간 만에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치지가 않았다. 기본 체력이 있는 용병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넬 또한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들 페이린이 마법을 사용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페이린이 마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본래라면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이번에 빛의 정령과 계약을 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치료 마법 중 한 가지였다.
본래 치료 마법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을 응용하면 체력을 치유하는 것도 가능했다. 페이린이 자신과 일행에게 걸었던 헤이스트 마법을 비롯해서 다른 보조 마법들과 치료 마법의 효과가 뒤섞여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정도라면 충분히 정화를 할 수 있을 거야.'
빠르게 오기 위해서 치료 마법을 응용한 것도 있지만, 지금 어느 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 위함도 있었다.
결과는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금 가진 빛의 정령의 힘이라면 충분히 마을에 퍼져 있는 역병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이 전염병을 퍼트린 흑마법사까지 찾아내고 싶긴 한데...... 일단은 전염병부터 정화를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페이린은 일행들에게 전염병이 들러붙지 않도록 빛의 정령을 소환했다.
-샤라랑.
악기 같은 것이 아름답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빛의 정령 나뮤가 소환되었다. 그녀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
"저, 정령?"
"저건 다른 정령이잖아?"
파야 일행은 페이린이 소환한 정령을 보며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놀란 이가 있었다.
"맙소사! 그, 그대는? 여...... 웁!"
"쉿. 그 이상 말하면 안 돼, 나뮤."
빛의 정령 나뮤는 넬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내뱉었다. 하지만 페이린이 빠르게 나뮤의 입을 막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맙소사. 그대가 가진 힘도 범상치 않은데 그대보다 더한 존재가 있다니. 이게 대체......."
"설명은 나중에. 그 전에 우리에게 빛의 축복을 걸어 줘. 지금부터 역병을 정화할 거거든."
나뮤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는지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아직 넬이 정령들을 소환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령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검의 정령과 달리 빛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넬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우와아......."
정작 넬 본인은 빛의 정령을 보며 신기해하며 별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넬과 나뮤를 보며 페이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나뮤가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일행들에게 자신의 힘을 선사했다.
-샤라락.
새하얀 빛이 퍼져 나가더니 태양이 비쳐질 정도로 아주 얇은 천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 새하얀 천은 일행의 몸을 휘감더니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졌다.
"이, 이건?"
"이걸로 전염병에 걸리지 않을 거예요. 파야랑 두 분은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중앙으로 모아 주세요. 그리고 넬. 물의 정령을 소환해서 이분들과 같이 이동해. 병자들에게 물의 정령이 만든 물을 먹이면 그나마 나아질 거야."
페이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넬은 곧바로 물의 정령을 소환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뮤는 작은 두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냈다.
"여, 역시!"
"에휴...... 출발하자."
"아, 같이 가요!"
페이린은 한숨을 내쉬며 먼저 마을로 들어갔고 그 뒤를 나뮤가 급히 쫓아갔다.
페이린은 곧바로 마을의 중앙으로 향했고, 파야 일행과 넬은 그가 한 말대로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중앙으로 모이게 했다.
"후우. 시작해 볼까. 나뮤. 준비됐어?"
"언제든지 가능해요."
나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페이린은 천천히 체내의 마나를 주변으로 퍼트렸다. 그 위에 나뮤가 자신의 힘을 더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마나가 어우러져 마을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 * *
빛의 정령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초대형 마법진은 조그마한 마을의 하늘을 뒤덮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역시 이거 꽤 힘든데......?'
페이린은 마나가 뭉텅이로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로브 속에 넣어 두었던 비약 하나를 꺼내서 마셨다. 이전에 늑대인간을 잡고 얻을 수 있던 마정석들과 달맞이꽃으로 만들었던 비약으로, 마시면 순간적으로 마나를 폭발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파앙! 파앙!
비약을 마시자 내부에서 마나가 폭발을 일으키며 들끓기 시작했다. 어찌나 마나가 들끓던지 내부에서 이따금씩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키이잉!!
페이린이 만들어 낸 마법진에 대량의 마나가 더해졌다. 그 덕분에 마법진은 새하얗게 빛났고, 그 빛을 더욱더 찬란하게 퍼트리며 주위의 모든 것들을 밝게 비추었다.
그것을 보며 페이린은 마법진을 더욱더 견고하게 완성하기 위해 술식들을 새겨 넣었다.
'와. 이거 두 번은 못하겠는데?'
마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주는 비약을 먹었음에도 마나가 뭉텅이로 빠지는 것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느끼며 페이린은 지금과 같은 정화 작업을 두 번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8서클이었던 과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아직 성장을 하고 있는 지금으로선 한 번을 하기도 힘들었다.
-키이잉!!
'그래도 얼추 된 것 같은데.'
모두 완성된 마법진은 새하얀 빛을 발산하며 주위를 환히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