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SSS급 용병의 회귀
- 3권 1화
15장. 승급 시험
용병들의 랭크는 가장 낮은 E등급에서부터 가장 높은 SS랭크로 분류가 되었다. 하지만 페이린은 과거에 다른 SS랭크와는 격이 다른 힘을 가졌었다.
검이면 검, 마법이면 마법 두 가지 힘을 모두 다룰 수 있던 유일무이한 존재.
물론 검의 절정에 달한 자와 검을 맞대면 부족했으며, 마법의 절정에 달한 자와 마법을 대결하면 그 역시 부족했다. 하지만 검과 마법, 그 두 가지의 힘을 수준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페이린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린은 유일무이한 SSS랭크를 받을 수 있었다.
"넬. 따라올래?"
"응. 여기선 할 게 없으니까. 페이린을 따라갈래."
넬은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숙소에서 나가 용병 길드로 향했다.
이곳 대도시에만 있는 용병 길드만 하더라도 그 수가 꽤 많았다. 그렇기에 그들이 가는 곳은 그 모든 용병 길드를 총괄하는 협회였다.
협회는 대도시의 가장 복잡하며 여러 건물이 세워져 있는 중앙에 있었다.
'넬도 이참에 용병으로 등록을 시킬까?'
페이린은 함께 걷고 있는 넬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민을 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용병의 신분을 가지더라도 충분히 SS급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과거에도 용병으로 등록하지 않았던 넬이었다. 그녀에게 돈이란 그저 맛있는 밥을 먹게 해 줄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페이린이 사 줬기 때문에 그녀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은 넬과 함께할 것이다. 멍청한 흑마법사들의 싹을 모조리 뽑아 버릴 때까지 계속 함께할 것이다.
녀석들이 마왕을 소환한다 하더라도 이길 것이다. 그때에도 넬은 자신과 함께할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을 하자.'
과거에는 마왕을 이기지 못했다.
지상 최강의 용병. 유일무이한 SSS급 용병.
그렇게 불렸던 자신조차 녀석의 힘 앞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이기리라 다짐하며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가 협회네."
"오. 나 여기 알아!"
"그러겠지. 네 머릿속엔 내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페이린의 말에 넬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에 있는 거대한 건물을 바라봤다. 4층의 건물이었는데 그 안으로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용병들의 거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협회는 용병 길드에 의뢰를 배분해 주거나 급한 의뢰들은 모든 용병 길드에 배포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이곳에 오면 용병들의 신상을 알 수도 있었으며 수수료를 내고 그들에게 직접 개인적인 의뢰를 맡기는 것도 가능했다.
용병 길드가 많은 용병들이 일거리를 찾아오거나 쉬어 가는 등의 장소라면, 협회는 한층 더 나아가 그들을 관리하며 일거리를 받고 분배하는 역할이 컸다.
그리고 A급 이상의 용병이 되기 위해서는 이곳에 수수료를 내고 시험을 치러야 했다. A급 이상의 용병들은 귀족의 밑에 들어가 사병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자격을 허투로 주지 않기 위해서 협회에서는 직접 시험을 치르게 했다. 하는 김에 수수료도 받는 것이고.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한 여인이 깨끗한 옷을 갖춰 입고 페이린을 맞이해 주었다. 협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같이 하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옷을 입고 있었다.
거친 용병들의 세상과는 뭔가 맞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원래 이곳 자체가 사무적인 일을 많이 처리하는 곳이다. 그 때문에 어색하지만 장소를 생각하면 나름 잘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B급 용병 페이린이라고 합니다. 승단 시험을 보고 싶어서 왔는데, 여기 르웰 도시의 용병 길드 지부장님의 추천서도 가지고 왔습니다."
페이린은 품속에서 더크가 적어 줬던 추천서를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직원은 그것을 가지고 이런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게 안내를 해 주었다.
"그 도시, 르웰이라는 이름이구나?"
넬의 말에 페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기 전에 미리 추천서를 보지 않았으면 자신도 잊어버렸을 이름이었다.
절대 급하게 생각해 낸 이름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마탑에서 쫓겨나 도착한 도시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급하게 생각해 낸 이름이 절대로 아니었다.
'난 누구에게 설명하고 있는 걸까. 하하.......'
페이린은 넬의 질문에 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동안 승급 시험을 담당하는 안내자는 페이린이 내민 서류를 전부 확인했다.
"아. 소문으로 듣던 그 페이린 씨군요. 그 옆에 분은 처음 뵙는데 용병인가요?"
"아뇨. 얘는 저랑 함께 다니는 친구예요."
"알겠습니다. 마침 SS급 용병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께 승단 시험을 받으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가자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지상의 4층과는 달리 지하에 있는 층은 용병들의 승단 시험을 치르기 위해 사용하는 연무장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몇 분을 걸어가자 꽤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의 중앙에는 한 중년의 용병이 창을 어깨에 비스듬히 기댄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SS급 중에서도 저 용병인가?'
의자에 앉아 있는 중년의 용병을 페이린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SS급이지만 나중에도 SS급을 유지하며 상당한 무력으로 흑마법사에게 맞섰던 용병이었다.
창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데 그가 사용하는 창은 마법의 힘이 깃들어진 신비한 창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로 이루어진 평범한 창이었지만 마나를 불어넣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창의 몸 전체가 푸르게 뒤덮이며 두 장의 날개가 돋아난다. 그 날개는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더 생겨나거나 크기가 커지는데 장식이 아니었다.
'분명 푸른 날개였지? 저런 사람이 시험 대상이라니.'
SS급의 용병들은 모두 강하지만 그중에서도 눈앞의 용병은 상당히 강했다. '푸른 날개'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그는 창에 돋아난 날개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공중을 날아다니며 전투를 할 수도 있었다.
그건 모두 창의 기능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가 진심으로 전투를 행한다면 자신의 등 뒤에도 날개를 만들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푸른 날개 님."
"그 이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을 한 것 같은데."
"흠. 알겠습니다, 케이른 님. 여기 이쪽은 페이린 님인데 승단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온 분입니다."
푸른 날개. 아니, 케이른은 안내자의 말에 페이린을 잠시 바라봤다. 아직 힘을 숨기고 있지만 확실히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일반인이 푸른빛의 마나라면 이상하게 페이린에게서는 은빛이 뒤섞인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군. 뭐, 네 소문은 많이 들었다. 용병들 사이에서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지. 이번에 칠흑의 성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것도 너라는 말이 있더군."
케이른의 말에 페이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의 성을 박살 내버린 것은 어제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벌써 용병들 사이에서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하긴 대도시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칠흑의 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계해 줬으니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 한번 칠흑의 성을 부숴 버린 녀석의 실력을 좀 보자고. 나도 간만에 진지하게 임해 주지."
그 말을 남기며 케이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이 쥐고 있는 창에 천천히 마나를 불어넣었다.
-철컥! 철컥!
뭔가 기계가 맞물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그가 쥐고 있는 창이 조금씩 변형을 하기 시작했다.
"우와. 신기해."
넬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은 창이 모습을 바꾸며 푸르게 변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페이린은 달랐다. 그가 나름대로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승단 시험이라면 창에 오러도 불어넣지 않고 상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저 창의 첫 번째 변형을 시도했다. 그것은 그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뜻이다.
"넬. 물러나 있어. 그리고 절대 힘을 쓰지 마."
"응. 알겠어."
넬을 뒤로 물린 페이린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승단 시험이라고 해서 대충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을 높이 평가하며 나름대로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최대한의 전력으로 보답을 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용병들만의 규칙이었다. 힘과 실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용병들의 세계에서 상대방이 힘을 다하는데 자신이 힘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페이린이었다. 그렇기에 페이린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체내의 마나를 주위로 퍼트렸다. 맹렬히 돌아가는 네 개의 서클을 느끼며 가볍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촤라라락!!
페이린의 손짓에 허공에는 수없이 많은 매직 애로우가 완성되었다. 그 수는 대충 100여 발 정도 되어 보였다.
"마법사인가?"
"보시다시피요."
"하지만 그 정도의 매직 애로우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거지?"
케이른은 순식간에 생겨난 매직 애로우를 보며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페이린에 대한 수많은 소문을 들었었다.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했던 던전을 혼자 깨 버렸다든지, 늑대인간을 불러낸 것도 모자라 홀로 잡았다든지, 칠흑의 성에 사는 불멸의 리치를 죽이고 인질들을 구해 왔다든지.
하지만 그 정도 되는 인재가 겨우 매직 애로우를 100여 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다.
무수한 숫자를 영창도 없이 만들어 낸 것은 충분히 칭찬해 줄 일이었다. 다만 완성된 매직 애로우들이 1서클의 기본적인 마법이라는 것은 창을 사용하는 케이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마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마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클이 높으면 좀 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낮은 서클의 마법은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었다.
페이린이 만들어 낸 1서클의 매직 애로우는 현재 케이른이 창을 한 번 휘두르면 충분히 박살 내버릴 수 있는 마법이었다. 설령 그 숫자가 많다 하더라도 고작 1서클의 마법에 불과했다.
"과연 그럴까요."
'강화.'
-키이이잉!!
페이린이 한 번 더 손짓을 하자 막대한 마나가 퍼져 나갔다. 동시에 100여 발의 매직 애로우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완성된 마법에 마나를 불어넣어 마법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방법.
한두 발의 매직 애로우도 아니고 100여 발이나 되는 매직 애로우들에 마나가 더해져 주위를 찬란하게 물들였다. 그 화살들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이 살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이것 참. 한 방 먹었군."
"그렇죠?"
페이린은 씨익 웃으며 손짓으로 케이른을 가리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100여 발의 매직 애로우들이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파앙! 파앙!!
어찌나 빠른지 공기를 찢어 버린 것처럼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케이른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마법을 보며 한 발을 앞으로 뻗었다. 그와 동시에 허리를 숙여 낮은 자세를 취했다.
"하아!!"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케이른의 창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검과는 다르게 길이가 긴 창이었지만 케이른은 능숙하게 휘둘러 매직 애로우들을 모두 튕겨 냈다.
'역시 SS급의 용병이라 이건가?'
지금까지 만난 적들보다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진 SS급의 용병. 현재 용병들의 랭크 중 최상위에 있는 만큼 그 힘도 막강했다.
어느새 페이린이 쏘아 보냈던 100여 발의 화살들은 그가 휘두르는 창 앞에서 맥을 추리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게 끝은 아니겠지?"
"그럼요."
페이린은 주변으로 마나를 퍼트렸다. 푸른빛의 마나는 점차 은색으로 물들어 갔고 페이린의 앞에 검의 정령 셀리온이 소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