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SSS급 용병의 회귀
- 2권 21화
'괜히 나 때문에 그런 건가?'
페이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식사를 하려고 했다. 막 수저를 들었지만 그는 곧바로 수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넬."
"우물우물?"
"언제나 얘기하지만 여기에 네 걸 뺏어 먹을 사람은 없어."
"우물우물!"
"그렇지만 적어도 내 거는 남겨 둬야 하지 않아?"
"우물우물. 꿀꺽."
"......."
넬은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을 급히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스튜마저 한 입에 마셔 버렸다. 빵과 스튜의 건더기를 씹으면서 넬은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페이린을 바라보다가 마저 식사를 했다.
결국 페이린은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이른 시각이라 식당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지만 6인분 정도의 음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6인분에서 페이린이 먹은 것은 1인분의 반도 안 되는 양이었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페이린과 넬은 돌아와서 가볍게 씻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챙겼다. 짐을 챙겼다고는 하지만 넬은 맨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페이린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이 메고 있는 가방에 짐을 챙긴 뒤 그것을 고스란히 넬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윽. 무거워!"
"네가 그동안 먹은 밥값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무거워!"
"그거라도 안 하면 밥 안 줄 거야."
"......나빠!"
넬은 자신이 가방을 메는 것에 대해서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때문에 빼액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꿀밤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 저기. 이걸 가져가세요."
여관을 나서려고 할 때 여관 주인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바구니 하나를 건넸다. 그 바구니는 제법 묵직했는데 내용물을 살짝 보니 호밀 빵 사이에 야채와 고기를 넣은 샌드위치들이었다. 또한 그것과 함께 먹기 위한 우유도 작은 병에 함께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페이린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까 전 식사를 할 때 주방이 바쁘게 움직였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와!"
"지금 먹으면 안 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저희야말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항상 몸 건강하세요. 그리고 이곳에 다시 온다면 꼭 들러 주세요."
"하하. 네. 그러도록 할게요."
페이린은 밝게 웃으면서 여관 주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보통 귀족들의 인사는 겉치레에 불과했지만 서민들의 인사는 진심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페이린은 귀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용병으로서 일거리를 준다면 감사히 받고 보수를 받겠지만 그 이상은 엮이고 싶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일단 시장으로 가자."
페이린은 넬을 이끌고 시장으로 향했다. 돈이야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여정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페이린은 시장에서 가벼운 배낭 하나를 구입해서 그것을 넬에게 주었다.
그리고 원래 자신이 쓰던 것을 돌려받은 뒤 그럭저럭 쓸 만한 침낭도 두 개 샀다. 그렇게 시장에서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 뒤 페이린은 용병 길드로 향했다.
"어서 오게나. 그런데 그 차림은 또 어딜 가는 겐가?"
더크의 물음에 페이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도시를 떠나서 대도시로 가려고요."
"그런가. 그동안 자네 덕분에 많은 이득을 봤는데 아쉽군. 용병이란 무릇 이득에 밝은 사람들이니까. 흠. 급한 것이 아니라면 잠시만 기다리겠나."
"그러도록 하죠."
더크는 말을 마치고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가 간 뒤 페이린은 넬과 함께 용병 길드 내부에 배치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이곳도 더 이상 올 일이 없겠지.'
과거 자신의 유년기를 보냈던 그리운 도시였다. 비록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용병들의 철학이라든지 원칙들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먹고살겠다는 생각에서 용병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었다.
-덜컥!
한창 페이린이 이 도시에 대한 옛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용병 길드의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이내 한 사람이 들어왔다.
"페이린? 페이린!"
"파, 파야 씨? 아니. 그 몸은 대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파야였다. 그녀는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상태였다. 게다가 정신없이 이곳을 향해 온 것 같아 보였다. 또한 자신에게 곧바로 다가온 걸 보니 아무래도 자신을 찾아서 온 것 같았다.
'듣기론 도시를 떠났다고 했었는데. 어째서?'
파야는 듣기로 이미 이 도시를 떠났다고 했었다. 이전에 늑대인간의 시체를 사러 온 상단의 호위를 맡았다고 들었다. 대도시를 통해서 수인들이 사는 동쪽 지역으로 갈 수 있었기에 임무도 할 겸 상단과 함께 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다시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나를 도와줘......."
"일단 진정하고."
페이린은 배낭에서 전에 만들어 두었던 포션을 꺼냈다. 효과가 미약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마나를 포션에 불어넣어 효과를 더 좋게 만들었다. 파랗게 빛나는 회복 포션을 파야의 상처에 발라 주고 남은 것을 그녀에게 마시도록 했다.
"고마워...... 페이린."
"얘기해 주세요. 대체 당신 같은 분이 이렇게 상처를 많이 입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게. 며칠 전의 일이었어. 난 상단을 따라 대도시로 가던 도중 내 동료들을 만났어. 그래서 동료들을 따라 그들의 임무를 도와주기로 했었지. 어차피 상단도 호위하는 용병들이 많았으니까 내가 빠져도 상관은 없었어. 동료들의 임무는 최근 실종된 다른 동료들을 찾는 것이랬어."
'실종?'
파야의 입에서 나온 '실종'이라는 단어에 페이린의 표정은 구겨졌다. 다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더 듣고 생각하기로 했다.
"알지 모르겠지만 대도시로 가는 길목에서 방향을 틀면 숲이 가득한 곳이 나오지. 그 근처에 미혹의 숲도 있지만 칠흑의 성이라 불리는 곳도 있어."
-꽈악!
파야의 입에서 '칠흑의 성'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페이린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실종이라는 단어와 칠흑의 성이라는 단어는 아주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내 동료들은 칠흑의 성에서 최근 사람들을 무차별로 납치하는 미친 영주가 있다고 해서 그걸 조사할 겸 실종된 동료를 구하러 가던 거였어. 하지만 우리 모두 당하고 나 혼자 겨우겨우 도망칠 수 있었어......."
파야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그녀를 보며 페이린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여유가 없었다.
"자네. 많이 기다렸...... 음? 파야? 자네는 분명 대도시로 가지 않았는가?"
마침 집무실에 갔던 더크가 나왔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서류가 들려 있었는데 일반적인 일을 의뢰하는 종이보다 더 고급스러운 종이였다. 그것은 둘둘 말려 붉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말하자면 깁니다만 간단히 설명하면 파야 씨가 납치당할 뻔했습니다."
"......요새 세간에 돌아다니는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페이린의 말에 더크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납치를 당한다는 소문이 이곳에도 널리 퍼진 모양이었다.
'퍼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겠지.'
흑마법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는지도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사람들이 납치가 되었다. 납치된 장소는 다름 아닌 베일에 꽁꽁 싸여 있는 칠흑의 성이라 불리는 으스스한 장소였다.
그 소문을 듣는다면 당연히 흑마법사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녀석들에 대한 소문은 상당히 과장되어서 일반인들에게 퍼져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이건 내 추천서네. 내 능력으론 자네에게 A급을 줄 수가 없어. 마침 대도시로 간다고 했으니 이걸 보여 주면 A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시험을 치르게 해 줄 걸세."
"감사합니다. 그럼 전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그나저나 자네. 칠흑의 성으로 갈 생각인가?"
더크의 물음에 페이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눈빛으로 파야를 가리켰다. 싹싹하며 붙임성이 좋던 파야는 상당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페이린이 진정을 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더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가 무사하길 빌도록 하지."
"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페이린은 말을 마친 뒤 파야와 넬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왔다. 그런 뒤 천천히 체내의 마나를 퍼트렸다.
잠시 후 새파랗게 빛나는 마나가 용병 길드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페이린의 발밑에 하나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칠흑의 성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그곳의 좌표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애당초 거기에 납치되었을 때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렇기에 지금 텔레포트를 해서 이동하려는 곳은 칠흑의 성 근처에 있는 미혹의 숲이었다. 미혹의 숲은 이전에 가서 좌표를 외워 둔 상태였기 때문에 충분히 텔레포트로 갈 수 있었다.
'마침 잘됐어. 천천히 가려고 했지만 급하게 가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까. 가는 김에 미혹의 숲에서 챙겨야 할 것도 생겼고.'
페이린은 미혹의 숲에 있는 물건을 떠올렸다. 칠흑의 성을 뒤엎기 위해선 챙겨 둬야 할 물건이었다.
곧 페이린 일행의 몸이 푸른빛에 휩싸였고 그 모습이 용병 길드에서 사라졌다.
* * *
-키이잉!!
페이린 일행은 텔레포트로 미혹의 숲 근처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미혹의 숲의 입구 근처였다.
미혹의 숲은 매번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이전에 페이린이 그 안개를 걷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적이 없다는 듯 안개가 가득 뒤덮여 있었다.
"여, 여긴 설마 미혹의 숲? 미혹의 숲이야?"
"예. 보는 대로요."
"대체 어떻게?"
"이전에 볼일이 있어서 여기에 온 적이 있거든요. 그때 이곳의 좌표를 외워 뒀어요."
페이린의 말에 파야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짙은 안개로 뒤덮인 미혹의 숲을 바라봤다.
"그런데 파야 씨. 하나만 물을게요."
"응."
"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거죠?"
페이린은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용병 길드에 더크를 만나러 갔을 때 파야는 페이린을 찾아왔었다.
그녀가 페이린을 찾아온 것은 단순히 그가 그때 용병 길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파야는 처음부터 페이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그가 살고 있는 도시로 온 것이다.
칠흑의 성 근처는 페이린이 있는 도시보다 대도시가 더 가까운 편이었다. 게다가 대도시에는 커다란 용병 길드가 여러 개 있었으며, 용병 길드를 하나로 묶고 있는 용병 협회도 존재했다.
그것은 얼마든지 그곳에 가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파야는 그곳으로 가지 않고 굳이 더 멀리 있는 작은 도시로 와서 페이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것은 누가 봐도 페이린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